로켓이 분홍빛 불꽃 구름과 가마솥 같은 열기를 내뿜으며 발전 기지에 서 있었다. 추운 겨울날 아침 배출 가스를 내뿜어 여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로켓이 기후를 만들어냈고, 짧은 한순간 여름이 땅을 뒤덮었다. -17쪽
"보통 사람 같았어요. 그렇게 키가 큰데도 말이에요. 그리고... 아마 당신은 날 바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사람 눈동자가 파랬어요!" "눈이 파랗다고? 맙소사!" K씨가 목청을 높였다. "다음에는 또 무슨 꿈을 꾸려고? 그러다가 이제 머리카락이 까만 사람이 나오겠구먼" -21쪽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당신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여기 이렇게 살고 있어요. 도대체 인생이란 게 뭘까요? 누가, 무엇을, 어디에서, 왜 하지요? 우리가 아는 건,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이렇게 다시 살고 있다는 것뿐이에요. -103쪽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만약 그들이 우리를 침략자로 생각하거나 우리가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 해코지하고 싶었다면, 그래서 우리가 경계심을 품지 않도록 아주 교묘한 방법을 쓰기로 작정했다면? 핵무기를 가진 지구인에 맞서 화성인이 쓸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무엇일까? 흥미로운 답이 나왔다. 텔레파시, 최면술, 기억, 상상력. -114쪽
지구에서는 어린이들조차 죽일 수 없는 병 수두! 이건 부당하다. 이건 부조리하다. 마치 고대 그리스인들이 감기로 사멸했다거나, 자랑스러운 고대 로마 시민들이 아름다운 언덕 위에서 무좀 때문에 사멸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화성인들이 수의를 준비하고, 반듯이 눕고,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그럴싸한 사망 원인을 생각하게 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수두 같은 지저분하고 바보 같은 병이 아니라. -125쪽
화성에 오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 했어. 오리엔테이션을 해서, 사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걸어 다닐지도 배우고, 한 며칠은 조용히 지내야 한다는 것도 배웠어야 했는데 말이야. -128쪽
"우리는 화성을 파괴하지 않을 거야. 그러기에는 너무 크고 아름다운 곳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지구인에게는 크고 아름다운 것을 파괴하는 재능이 있습니다."-131쪽
그들은 우리가 백년 전에 멈춰 섰어야 할 곳에서 멈춰 섰습니다. -151쪽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굴복시키려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종교와 예술과 과학을 융합한 것도, 결국 과학이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연구하는 일이고, 예술이란 그 기적을 해석하는 일이니까요. 화성인들은 과학이 미와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일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157쪽
햇볕에 누워 몸을 태우고 햇볕이 뼛속까지 스며들게 하는 법, 우는 법, 책 읽는 법, 음악 듣는 법도요. 지구의 문명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요? -159쪽
도대체 이 다수의 정체는 뭐고, 그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 거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해서 그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 생각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거야? 이 썩어빠진 다수에 내가 가담하다니,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162쪽
시간은 어떤 냄새일까? 먼지와 시계와 인간이 뒤섞인 냄새이다. 그리고 만약 시간이 어떤 소리일지 궁금하다면, 그것은 어두운 동굴을 흐르는 소리이고 울부짖는 목소리이고 텅 빈 상자뚜껑 위로 떨어지는 흙덩이 소리이고 빗소리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깜깜한 방 안으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나 낡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무성영화나, 새해를 알리는 풍선들처럼 허무하게 떨어지는 천억 개의 얼굴이다. 시간의 냄새와 모습과 소리는 그런 것이다. -185쪽
"우리가 살아있기만 하면 되지, 누가 과거고 누가 미래든 무슨 상관입니까? 올 것은 언제고 오게 마련이지요. 내일 당장, 또는 1만년 뒤에 저 사원이 당신들의 사원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부서지고 무너진 채로 말입니다. 그건 당신도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묻지 맙시다.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습니다. 축제의 불이 하늘로 솟고 있어요. 그리고 새들도" 토마스는 손을 내밀었다. 화성인도 토마스를 흉내내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손을 잡지 못했다. 상대의 손을 그냥 뚫고 지나가버렸으니까. -197쪽
거미다리 같은 늑골은 묵직한 하프처럼 구슬픈 소리를 냈다. 사람 몸에서 떨어진 검고 얇은 조각들은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소년들 주위 사방팔방으로 날렸다. 소년들은 서로 밀치락 달치락하며 낙엽 더미 속으로 엎어졌다. 죽음은 그렇게 시체를 메마른 얇은 조각으로, 뱃속에서 오렌지 탄산음료가 보글거리는 소년들이 까불거리며 노는 게임으로 바꾸어버렸다. -204쪽
"왜 하필 지금 떠나는 것인지 모르겠어.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하루가 다르게 저들의 권리가 향상되고 있지 않느냐고. 도대체 저들이 원하는 게 뭐야? 인두세도 없어졌지, 린치 금지법은 점점 더 많은 주에서 통과되고 있지. 온갖 종류의 동등한 권리들이 주어지고 있잖아. 도대체 뭘 더 바라는 거야? 저들은 거의 백인 못지 않게 돈을 벌어. 그런데도 저렇게 기를 쓰고 가고 있잖아" -220쪽
화성인들이 지은 옛 이름들은 물과 공기와 언덕의 이름이었다. 돌 운하의 남쪽에 있는 물을 비워 메마른 바다를 채운 눈들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봉인되어 묻힌 마법사의 탑과 오벨리스크들의 이름이었다. 로켓들은 그 이름들을 망치질하듯이 때리고, 대리석을 혈암으로 바꾸고, 옛 마을들의 이름이 새겨진 도자기 푯말을 산산이 부수고 거대한 탑문의 잔해에 새 이름들을 내던졌다. ‘강철시’, ‘쇠마을’, ‘알루미늄 시’, ‘전기 마을’, ‘옥수수 마을’, ‘곡물 주택단지’, ‘제 2의 디트로이트’ 등 하나같이 지구에서 가져온 기계와 금속 냄새가 나는 이름들로. -232쪽
정치적 편견, 종교적 편견, 조합의 압력, 뭐가 됐든지 간에 그것을 두려워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늘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대다수 사람들이 암흑을, 미래를, 과거를, 현재를,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게 되었지요. -237쪽
정치라는 말이 (이 말은 결국 보다 극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산주의'와 동의어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치'라는 말을 쓰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어요!) 무서운 말이 되었고, 여기를 나사로 조이고, 저기를 못으로 박고, 밀고 당기고 비틀어 예술과 문학은 곧 태피를 줄줄이 끼울 때 쓰는 실같은 신세가 되었지요. -238쪽
"그들은 그렇게 말했어요, ‘여기’와 ‘지금’을 직시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은 것은 뭐든 없어져야 한다고. 모든 아름다운 문학적 허구와 상상의 비약이 무방비로 사살되었어요. 그리하여 30년 전, 1975년 어느 일요일 아침, 그들은 어느 도서관 벽 앞에 그들을 한 줄로 세웠어요. 산타클로스와 목 없는 기병과 백설공주와 룸펠슈틸츠헨과 마더구스-아, 거위가 얼마나 울부짖었을지!-를 줄 세워놓고는 총으로 쏘아 죽인 거에요. -238쪽
"현실이 불만족스럽다면, 차라리 꿈이 좋을 수도 있어요. 내가 이미 사망한, 어떤 사람들의 진짜 가족은 아닐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진짜 가족보다 좋을 수도 있어요. 그 사람들의 마음이 빚어낸 이상적인 모습이니까요"-285쪽
죽은 도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목소리를 낮추고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법이다. -393쪽
지구에서의 삶이라는 게 말이지, 아주 좋은 일들은 절대로 할 수 없게 되어 있단다. 과학은 너무도 빨리 우리를 앞질러 너무 멀리 뛰어가버렸어. 그래서 사람들은 기계의 황야에서 길을 잃어버렸지. 마치 예쁜 것, 희한한 장난감, 헬리콥터, 로켓 같은 것에 푹 빠져 있는 어린아이들처럼 말이야. 그래서 기계를 어떻게 사용할지 하는 문제는 뒷전이고 기계 자체만 중요시하게 되었단다. 전쟁은 규모가 점점 더 커져서 결국 지구를 죽여버리고 말았지. -396쪽
"나는 항상 화성인이 보고 싶었어요. 화성인 어디 있어요, 아빠?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저기 있다" 아빠는 마이클을 어깨에 태우고는 똑바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 화성인들이 있었다. 티머시의 몸이 살짝 떨렸다. 화성인들이 거기에, 운하에, 물에 비치고 있었다. 티머시, 마이클, 로버트, 엄마 그리고 아빠. 화성인들이 티머시네 가족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물에서 아주 오랫동안 말없이.... -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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