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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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13쪽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들이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또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레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22쪽

그도 난공불락의 남자로 남아 있으려는 전투에서 계속 패배했다. 시간은 그의 몸을 붕괴를 막기 위해 고안된 인공 장치들의 창고로 바꾸어 놓았다. -24쪽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37쪽

창문 너머로 나무의 잎들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10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의사가 찾아왔을 때 그는 말했다. "언제 퇴원하죠? 1967년 가을을 놓치고 있잖아요" 의사는 침착한 표정을 귀를 기울이더니, 이윽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모든 걸 다 놓칠 뻔했는데." -47쪽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86쪽

크레이머는 뇌암으로 쓰러졌고, 부인이 휠체어를 밀며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는 광경이 눈에 띄곤 했다. 그는 은퇴를 한 상태에서도 계속 중요한 사명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치는 사람처럼 전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죽기 전 열한 달 동안은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작아진 것에 어리둥절했고, 자신이 무력한 것에 어리둥절했고, 제럴드 크레이머라는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약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죽어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91쪽

한때 독단적으로 모든 일의 한가운데 있다 이제는 아무 일에도 끼지 못하게 된 사람의 쓰라린 의기소침함이었으니. 사실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가 나서 절대적인 소거라는 축복을 기다리고 있는 꼼짝도 못하는 영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92쪽

"통증이 사람을 정말 외롭게 만드네요" 그러면서 다시 허물어지며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정말 창피해요"
"창피할 일 전혀 없습니다."
"있어요. 있어요" 그녀는 울었다.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거, 궁상맞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건 전혀 창피한 게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되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자신이 이렇게 된것이 부끄러운 거로구나. 그는 생각했다. 자신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초라한 거겠지. 하지만 누군들 안 그럴까? 그들 모두 자신이 지금 이런 꼴이 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안 그런가? 신체의 변화가 부끄러웠다. 남자의 힘이 줄어든 것이 부끄러웠다. 그를 비틀어버린 오류들과 그를 기형으로 만든 충격들 - 스스로 가한 것과 외부에서 온 것 모두 - 이 부끄러웠다. -96쪽

밀리선트 크레이머가 겪는 축소의 과정에 무시무시한 웅장함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것과 비교되어 자신의 황량함이 아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녀가 겪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심지어 손자들의 사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통 집 사방에 걸어놓고 있는 그런 사진들, 어쩌면 이 여자는 이제 그런 것도 안 볼지 몰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통증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97쪽

열흘 뒤 밀리선트는 수면제를 잔뜩 먹고 자살했다. -97쪽

가족사에 저항하려면 상당한 전투성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이제 그의 무기고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전투성은 거대한 슬픔으로 바뀌었다. 긴 저녁의 외로움 때문에 아들에게 전화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고 나면, 그 뒤에는 늘 슬픔이 찾아왔다. 슬프고 기진맥진했다. -98쪽

순진하게도 그녀는 자신에게 귀중한 모든 사람의 결함을 지워버림으로써, 지나친 사랑으로 사랑함으로써 불행으로부터 숨으려 했다. 마치 건초를 꾸리듯이 용서를 꾸렸다. -110쪽

그러나 위로를 얻고자 하는 소망은 하찮은 것이 아님을 그는 깨달았다. 더군다나 기적적으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서. -112쪽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숙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상대한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아마도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할거야. 거짓말이 섹스도 안 하는 가여운 짝의 감정을 고려해 주는 친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겠지. 자기 거짓말이 미덕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얼간이를 향한 관용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이건 그냥 그거야. 빌어먹을 거짓말이라고. -127쪽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중략) 맙소사, 그는 생각했다. 한때 나였던 남자! 나를 둘러쌌던 생활! 나의 것이었던 힘! 그때는 어디에서도 '이질감'은 느낄 수 없었다. 한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135쪽

노년은 전투에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 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149쪽

그가 알게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고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 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162쪽

그래도 전에는 혼자 있을 때면 잠시, 사라진 구성요소들이 기적처럼 돌아와 그를 다시 거역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주고 그의 지배를 재확인해줄 것이라고, 실수로 그에게서 잘려나간 권리가 회복되어 불과 몇 년 전에 중단되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 없는 낮과 불혹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167쪽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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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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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워서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기쁜 마음을 배운 것이었다.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 -17쪽

실제로 아버지는 미쳤다. 소중한 외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삶의 위험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어린 소년이 성장하고, 키가 크고, 부모보다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 그때는 아이를 가두어둘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미쳐버렸다.-20쪽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에요, 아버지?"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23쪽

나도 그것이 좋았다. 내가 어른이 되던 시점에서는, 갑자기 모든 것이 그렇게 까다로워지기 전에는, 나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데 큰 재능을 보이던 사람이었다.-26쪽

나는 어른, 교양 있고, 성숙하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로 그 점에 겁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젊은 성인의 가장 작은 특권을 시험적으로 사용해본 것을 벌하려고 나를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도 나의 공부에 전념하는 태도, 대학생으로서 누리는 독특한 가족 내 지위는 더없이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29쪽

법률가가 되는 것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피가 잔뜩 묻어 악취를 풍기는 앞치마 - 피, 기름, 내장 조각 등 손을 닦을 때마다 온갖 것이 묻었다 - 를 두르고 일을 하며 보내는 삶에서 가장 멀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나에게 요구될 때마다 기꺼이 아버지를 위해 일했고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치는 정육점 일의 모든 것을 순순히 배웠다. 그러나 아버지도 내가 피를 좋아하도록 가르치지는 못했다. 아니, 나는 피 앞에서 무심해지지도 못했다. -47쪽

이래서 영원이 존재하는 것인가? 한평생에 걸쳐 있는 자잘한 것들을 계속 주물럭거리려고? 인생의 매 순간을 그 자디잔 구성요소까지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면 이것은 그저 나만의 내세일까? 각자의 삶이 독특하듯 각자의 내세도 독특한 것일까? 사람마다 다른 사람의 내세와는 다른, 지울 수 없는 지문 같은 내세를 갖게 되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삶에서처럼 나는 오직 있는 것만 알 뿐이고, 죽음에서는 있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바뀔 뿐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만 삶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계속 그 삶에 붙어 있게 된다. -64쪽

하지만 내세는 기억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기억이 전부인 곳이었다.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 -65쪽

꿈이건 아니건 여기에는 지나간 삶밖에 생각할 것이 없다. 이것이 '여기'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천국으로 만드는 것일까? 망각보다는 나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죽음에서는 적어도 불확실성은 사라질 것이라고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뭐하는 존재인지, 내가 이런 상태로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여전히 지속되는 것 같다. -65쪽

존재하는 모든 것이 기억된 과거뿐이기 때문이다. 복원된 과거가 아니다. 그러니까 감각의 영역이 직접 다시 살아내는 과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되풀이될 뿐이다. 내가 나의 과거를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을까? 육체에서 분리된 채 이 기억의 동굴 속에 숨어서, 시계 없는 세상에서 시곗바늘이 뱅뱅 돌도록 나 자신에게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으니, 벌써 백만 년이나 이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66쪽

어떤 사람들은 일을 갈망한다. 어떤 일이든, 가혹하든 고약하든 상관없다. 자기 삶의 가혹함을 쏟아내고, 마음에서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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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4-01-2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5쪽 놀랍구나! 기억이 전부인 곳이라니....

웽스북스 2014-07-07 01:10   좋아요 0 | URL
네 언니.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눈먼 올빼미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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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는 느꼈다. 이 세상은 후안무치하고 탐욕스러운 족속, 허세 부리는 막돼먹은 인간들, 양심을 파는 자들, 눈과 심장이 굶주린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세계이다. 사실 이 세상에 어울리도록 창조된 인간, 그리하여 내장 조각이나 얻을 욕심에 푸줏간 밖에서 꼬리를 흔드는 걸신들린 개처럼 지상과 천상의 권력자 앞에서 아양 떨고 굽실거리는 인간들에게나 필요한 세상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생각에 나는 무섭고 피곤했다. 아니다. 역겨운 얼굴들이 득실대는 이 모든 혐오스러운 세상들은 결코 보고 싶지 않았다. 신이 졸부와 비슷해서, 자신이 모은 세상들을 내가 꼭 봐야 한다고 우기려나? 나는 내가 생각한대로 말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살을 겪어야만 한다면 내 정신과 감각이 매우 둔해지기를 나는 소망했다. 그러면 노력과 권태감 없이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130쪽

삶은 지속되는 과정에서, 인간 각자가 쓰고 있는 가면 뒤에 있는 것을 냉정하고 공정하게 드러낸다. 누구나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의 얼굴만 쓰고, 그러면 자연히 더러워지고 주름이 생긴다. 이런 이들은 절약하는 부류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손들에게 물려주려는 소망에서 자신의 가면들을 보살핀다. 또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얼굴을 바꾼다. 하지만 그들 모두 늙음에 이르면 어느 날인가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이 마지막 가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곧 그것이 너덜너덜해지고, 그러면 그 마지막 가면 뒤에서 진짜 얼굴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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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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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소설'이 유독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에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문장부호를 충실히 지켜가면서, 따라가면서 읽으세요."
큰 따옴표 안의 글은 정말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느낌표가 있는 문장은 정말 감탄하거나 놀라듯이, 쉼표에서는 꼭 쉬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책은,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43쪽

"시장님의 새 이름을 방송에서 어떻게 발음해야 합니까?"
"카로차입니다. 에이 네개는 묵음입니다"-56쪽

나의 부모님에게도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 시간을, 내가 늦출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이미 감당이 안 되는데, 그 시간이 왔을 때 내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겐 어떤 식으로든 많은 후회가 남겠지. 앞으로도 후회할 짓을 또, 많이 저지르겠지.

마지막 페이지들을 늦추고 싶다. 그것들이 항상 내 앞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114쪽)

나도 마지막 페이지들을 늦추고 싶다. 내게 최상의 부모들과 좀더 긴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 -114쪽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물론 이해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도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소 멀게 느껴지는 거리를 좁히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조금 더 다가가려고 해보고 조금 더 친근하게 굴려고 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자꾸 돌이켜보게 된다. 혹시 상대는 원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걸 부수려고 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오히려 나를 밀어내고 싶지 않을까?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만큼이 적당한 거리인지 모르겠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만큼이 그가 만들어둔 그만의 공간인지를 모르겠다. 그 거리를 모르겠는 건, 내가 그 사람에게 가고 싶은 욕망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그래서 내 눈이 가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알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나는 내 공간을 지켜주려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이야말로 나를 진정 아낀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니 아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렇겠지. 공간을 준다는 것, 그 공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듯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150쪽

물론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짐작해주거나 알아주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특별한 거지,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을 짐작해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상대에게 내 입장을 설명하지 않은 채 나를 잘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원망하는 것도 잘못된 일 아닌가.
문득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자신의 포크를 들고 앞은 이렇게 생겼지만 뒤는 다르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 앞만 보고 뒤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하는 이유야" 나는 되물었다. "그렇지만 앞과 뒤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잖아. 보여주지도 않았으면서, 앞뒤가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된 거 아니야?"-158쪽

참 이상하다. 현재를 버리고 꿈을 좇는 영화를 볼 때 나는 분명히 속 시원하고 위로를 받았는데, 이 책에서처럼 가고 싶었던 곳에 가지 못하는 남자를 보는데도 위로를 받는다. 사실 이 책에서 나이 든 선생이 "그건 나쁜 삶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만 바보처럼 나는 이 책을 껴안고 싶어졌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단편이라니! 시니컬하게 진행되다가 심드렁하게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따뜻해져버리다니! 그래, 지금 내 삶도 나쁜 삶이 아니다. 그동안 내가 한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 내가 만든 삶이다. -220쪽

가까스로 한쪽 눈 수술이 끝났다. 나머지 한쪽 눈에 대한 수술을 시작하려고 했다. 나는 한쪽 눈만 보이는 채로 살아갈 수 있으니 이대로 그만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248쪽

사실 나는 그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단 한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다시 시간을 돌려도 나는 그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언제든 무슨 얘기를 해도 자연스러운 그 관계를 택했을 것이다. 밤늦게 전화해도 거리낌이 없는 사이, 그 관계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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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5월
절판


"한국인의 반일 감정에 충격을 받았죠. 공동 개최까지 했는데, 어떻게 일본이 졌다고 그렇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불신감을 가지고, 인터넷을 통해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공부했습니다."
인터넷에는 교과서에 없는 '진실'이 넘쳐 났다. 그때까지 일본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식민지 정책도 사실은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언론에 세뇌되어 있던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다'. -184쪽

공격하기 쉬운 목표를 찾은 데 신이 났는지도 모르죠. 재일 조선인은 불쌍한 약자이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에 얽매여 왔단 우리에겐 터부를 깨는 쾌감이 있었어요. 비뚤어진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저 자신도 터부를 깨뜨림으로써 세상의 권위나 권력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략)
"솔직히 말해 취해 있었어요. 거대한 적과 싸우고 있다는 정의감에 취한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왜 재일 코리안을 미워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198쪽

"인터넷에서 그대로 현실 사회로 나왔을 뿐이에요."
그제야 그는 불량배다운 험악한 표정을 보였다.
"인터넷과 현실의 구분이 안 되는 거죠. 그들이 금방이라도 폭주할 것 같은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물리적 충돌을 경험하지도 않고 인터넷과 같은 감각으로 대처하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인터넷과 현실은 연속적이니까요"
키보드를 연타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감각을 그대로 길 위에 가져온다. 하리야가 말한 이 연속성 때문에, 집회 때 반대하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욕설을 퍼붓는 집단 린치도 블로그에 '악플'을 다는 정도의 의미밖에 아지지 않는다. '죽여버려'라는 말을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하리야는 말했다. -255쪽

"처음에는 다들 쭈뼛쭈뼛 활동에 참가해요. 어설프게 일장기를 손에 들고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마이크를 잡죠. 가두연설 같은 걸 잘할 리도 없고요. 솔직히 말해서 엉망진창이죠. 그런데 연설 마지막에 구호를 외치면 다들 제창해 준단 말이에요. 이게 중독되는 거죠. 다음 집회부터는 마이크를 손에서 놓으려 하질 않아요. 한번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 확 바뀌거든요. 저는 그런 모습을 몇 번이나 봤어요. 재특회에는 얌전한 아이를 전투적인 애국자로 바꾸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해보면 현실 사회에서 힘들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327쪽

"지역사회에서 겉도는 사람, 지역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재특회에 모이는 겁니다. 그렇게 일장기를 손에 든 것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에 안주하게 되죠. 거기서 인정받는 건 간단해요. 활동에 자주 참여하는 사람, 집회에서 큰소리를 내는 사람, 인터넷이든 뭐든 좋으니까 명분을 가져오는 사람, 그걸로 충분해요"
"그래서"라며 그는 말을 이었다.
"조선인을 쫓아내라는 외침은 제게 '내 존재를 인정하라!'라는 외침으로 들리죠" -339쪽

"최근들어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급증했습니다. 정규직 자리를 두고 가혹한 의자 놀이가 시작된 거죠. 의자가 남던 시대라면 외국인에게 신경 쓰지 않고 관용적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의자가 부족해지면서 먼저 앉아야 되는 건 일본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거죠.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외국인은 나가라는 욕설로 바뀌었고요. '외국인에게 친절해야 한다' '외국인은 귀중하다'라는 상식을 뛰어넘으면 배외주의적 경쟁이 남을 뿐입니다. 이것은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한 것도 아니고 애국적인 관점에서 생긴 것도 아니에요"
즉 살아남기 위한 절규가 필연적으로 국민적인 요소와 결합했다는 이야기다. 익명이 원칙인 인터넷에서는 이런 주장이 아무런 검증도, 주저도 없이 순식간에 퍼진다. -350쪽

계약직이나 하청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많은 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담당 관리하는 부서는 인사부가 아니라 기자재를 다루는 부서다. 사람이, 노동력이 기자재 중 하나로 취급받는다. 그렇게 빈부 격차와 분열이 생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런 상황을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소속이 없는 사람들이 아이덴티티를 찾아 나선다. 그중 일부가 의지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불변의 '소속감'이었다. -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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