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weekly님의 서재 (weekly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3 Apr 2026 12:43:41 +0900</lastBuildDate><image><title>weekly</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A_017.gif</url><link>https://blog.aladin.co.kr/weekly</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weekly</description></image><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음식 나누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231292</link><pubDate>Wed, 22 Apr 2026 04: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231292</guid><description><![CDATA[https://www.reddit.com/r/iran/comments/1sjsk0q/an_iranian_old_man_whose_apartment_has_been/<br>위의 클립을 보고 옛날에 터키에 갔었던 기억이 났다.<br>생판 초면인 우리에게 귤을 나누어 주며 스스럼없이 말을 걸던 어떤 할아버지... 홍합밥을 먹고 값을 치르려 하는데 터키 돈에 익숙치 않아 버벅대고 있자 잔돈만 받고 되었다며 손사래치던 홍합밥 리어카 아저씨... 배 타고 가는데 갈매기 밥 같이 주자며 빵을 건네 주던 청년들... 어느 사원에서 누군가 뒤를 툭 치길래 돌아다 봤더니 백발의 꾸부정한 할아버지가 지진이 나면 파르르 떨린다며 작은 대리석 원기둥에 대해 설명해주던 일 등등... 아, 터키에서도 버스 등에서 노인이 서 있으면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 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br>나는 마치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왔다가 정이랄까 사람 냄새랄까 하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터키에서 그런 것들을, 한국의 사라져 가는 어떤 분위기같은 것들을 느꼈다.<br>한국의 사라져가는 어떤 것들...&nbsp;<br>인류의 역사에서 근대란 딱 한번 있었다. 유럽의 근대.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화. 지구의 나머지 지역들은 유럽의 근대화를 반복할 뿐이다. 제도적인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도 문화적인 수준에서 자본주의적 멘탈리티가 공고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한국의 경우에는 IMF 구제 금융 사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지금 우리는 미국이 이란을 폭격하면 즉각적으로, 그것이 유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것이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이 미국 중앙 은행의 금리 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머리 속으로 계산해보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나는 투덜대고 싶지 않다.&nbsp;&nbsp;<br>다만 한 가지... 조만간 도래할 AI, 로봇 시대에, 즉 생산성이 급상승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예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업자가 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답은 단 하나인 것 같다. 시장이 결정하겠지! 이것이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이다. 이것이 우리의 사고의 한계이다.&nbsp;<br>이것이 내가 미국의 시대가 이제 그만 종언을 고해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다. 지금의 멘탈리티로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 없을 것 같다. 집이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는데도 집에 온 손님에게&nbsp;대접을 해야 한다고 고지식하게 믿고 있는 저 할아버지를 보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이란 국민들의 희생에 감사함을 느낀다... &nbsp;<br>"세상에 돈같이 간악한 것은 다시 없다.돈 때문에 도시는 멸망하며 사람도 집에서 쫒겨난다.돈은 순결한 심정을 타락시키며염치없는 행위와 간악한 생각과 배신을사람에게 가르친다."&nbsp;--- &lt;안티고네&gt;, 소포클레스<br>]]></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이란과 미국의 1차 회담 실패...</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212606</link><pubDate>Sun, 12 Apr 2026 2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212606</guid><description><![CDATA[1차 대면 회담이 실패했다고 한다. 후속 대면 회담이 있을지는 매우 불분명하다. 만일 2차 대면 회담이 있게 된다면 그것은 전쟁을 피할 어떤 합의에 거의 도달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 같다. 미국이 이란의 핵무장을 용인할 리도 없고, 이란이 핵 옵션을 포기할 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br>이란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들을 풀어주는 방향의 해결은 정녕 불가능한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이 그동안 여러 번 약속을 어긴 전과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약속을 파기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 조건들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재라는 족쇄없는 이란은, 그 인구, 자원, 영토, 국민들의 교육 수준을 보건대 번영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이 중동 지역의 강국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를 용인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어떻게든 이란을 친미 국가로 만들던지, 그게 불가능하면 failed state로 만들어야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스라엘은 남이 죽어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느끼는, 공존은 사치라고 느끼는 그러한 정체이다. 이스라엘은 실존 그 자체가 비극인 정체이다. 그러므로 핵없는 이란의 번영이란 허언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누구보다도 이란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nbsp;<br>이란의 현재 전략은 미국에, 이스라엘에,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에, 그리고 세계 경제에 최대한의 피해를 주어서, 그러한 피해를 감수할 각오 없이는 다시는 이란 땅을 침공할 수 없다는 것을 침략자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nbsp;<br>한 가지 장기적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 정부는 미국이 막대한 돈과 무기를 이스라엘에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것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을까? 1). 미국에서 석유가 풍부하게 나기 때문에 중동의 전략적 가치는 이미 상당히 감소되었다. 2). 막대한 부채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는 지출은 삭감될 것이다. 3). 전세계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평판이 너무 나쁘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유대인 로비 그룹의 돈을 받는 문제가 표면화된지는 오래 되었지만 앞으로의 선거들에서 이 문제가 정치인들에게 치명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유럽의 많은 나라가 "이 전쟁은 우리와 상관없는 전쟁"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미국의 유권자들이 "이스라엘은 미국과 상관없는 나라"라고 말할 날이 올 것이라고 본다.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이재명 대통령...</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96719</link><pubDate>Sat, 04 Apr 2026 20: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96719</guid><description><![CDATA[<br>나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아주 아주 컸다. 그런데 이재명은 그런 과대한 기대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아주 아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br>예를 들어 나는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부동산의 강을 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무난한 낙승이 예상되는 이번 지방 선거의 판을 흔들지 않는 시점, 즉 지방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부동산 관련 강공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재명은 선거 후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직접 전쟁에 뛰어들었다. 나는 솔직히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재명은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br>예 하나 더. 나는 한국 사회에 부족한 것이 투명하게 토론을 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소양이라고 생각했고, 이재명은 이와 관련하여 좋은 모델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국 순회 타운홀 미팅, 국무회의 공개 등은 솔직히 내가 상상하던 바를 넘어서는 성공작인 것 같다. 어떤 기획이든 진정으로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사람들이 거기서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이재명은 그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내 생각에 60대 이상의 노년 세대에게 이재명이 어필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구태의연하고 세금만 축내고 있(다고 그 분들이 늘 생각하)는 공무원들을 갈구어서 실제로 일을 하게 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그럴려면 대통령이 업무를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재명은 그게 가능한 대통령인 것이다.<br>국무회의를 공개한다고? 뭐 또 무슨 쇼나 하겠지... ---&gt; 허 이재명 잘 하네. 아주 야무져. 똑똑하긴 허네. 일을 잘 하긴 허네. &nbsp;---&gt; 이재명 어제 외국에 있다 하지 않았나? 새벽에 귀국해서 또 저길 간거야? 어이쿠 우리 대통령 몸 상하지 말아야 할텐데...<br>위에 걸어놓은 동영상은 이재명이 미국 상원의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전시작전권 환수 등 한국의 국방은 한국이 책임지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재명이 현재 세계 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br>이번 전쟁이 보여주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대규모 군자산을 한데 모아 놓는 방식의 미국 육상 군기지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다. 구형 미사일과 드론들을 벌떼처럼 쏘아대는 비대칭 전술은 미군 기지의 값비싼 방어 시스템을 손쉽게 포화시켜 버렸고 한 두 발의 정밀한 탄도 미사일만으로 핵심 전략 자산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중동에 산재한 미군 기지의 상당수는 궤멸적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br>이제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앞으로 5년, 10년 후 한국과 북한이 전쟁을 벌일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확률이 높을까? 후자일 것이다. 그러할 때 한반도가 그 전장의 일부가 될 확률 또한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통령은 이를 방지할 대책을 수립해야만 한다. 이것은 한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은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가 미군 철수이다. --- 어쩌면 미국이 자발적으로 미군 철수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도처에 수 백 개의 군사 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은 어떻게든 재정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압박을 심대하게 받고 있고, 또 전통적인 군기지 운용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한반도의 운명에 관한한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상황을 조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느꼈다.<br>다른 하나는 자체 핵무장이다. 일본, 독일 등과 연대하여 동시에 핵무장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점도 이재명 마음 속에 있다고 본다.<br>(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정상을 만났다는 뉴스를 봤다. 내가 든 생각은, 어라? 얼마 전에는 브라질이었잖아? 라는 것이었다. 즉, 브릭스라는 것이다. 누가 봐도 이재명은 브릭스에 발을 걸쳐 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전략적 움직임의 일부일 것이다.)<br>한국은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의 군사적 우산 아래에서 잘 성장하여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다. 휴전 국가로서, 세계 최강의 무기로 보호받으면서 국가의 에너지를 산업 성장에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게 미국은 고마운 나라임에 분명하다. 보수를 외치는 노년 세대가 미국을 고마와 하고 보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보은이 미국의 우산 아래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면 이는 분명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다행히도 이번 전쟁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지구 역사상 최강의 패권 국가 미국에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던 중동의 아랍 국가들은 이번 전쟁으로, 현재뿐 아니라 미래마저 날릴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교훈은 누구에게나 자명할 것이다. 아마 보수적인 국민의 힘도 미군 철수 등의 민감한 이슈 등에 대해 이념적 자세를 더 이상은 취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무지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89732</link><pubDate>Wed, 01 Apr 2026 02: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89732</guid><description><![CDATA[<br>오늘 아침, 집 앞<br>"수십만의 사람들이 좁은 땅덩어리에 모여 자기들이 발 딛고 북적거리던 땅을 망가뜨리려 갖은 애를 써도,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돌로 땅을 메우고 풀들의 싹을 깨끗이 없애고 석탄과 석유를 뿜어내고 동물과 새를 전부 몰아내도, 도시의 봄 역시 봄이었다." &lt;부활&gt;, 톨스토이<br>필연과 자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인류가 이천오백년의 나이를 더 먹으면서, 경제, 과학, 예술 등을 발전시켜오면서도 투키디데스의 함정같은 필연의 고리에서 놓여나기가 이토록 힘들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 자유란 불가능한가? 우리는 회의주의자로 만족해야 하는가? &nbsp;&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1/pimg_7139371465078216.jpeg</url><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89732</link></image></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전황...</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85499</link><pubDate>Tue, 31 Mar 2026 02: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85499</guid><description><![CDATA[지상군을 투입할 것처럼 위협하면서 트럼프는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기를 애걸하고 있다. 이란이 최우선으로 원하는 것은 이란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트럼프는 이것을 보장해 줄 수 없다. 트럼프, 미국, 혹은 서구 세력 일반은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br>그러므로 이란은 실력 행사를 통해 이를 관철하려는 것 같다. 여기서 실력 행사란 이스라엘, 미국, 미군 기지를 유치한 인접국들에 가능한 최대의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nbsp;<br>진작부터 반-이란 진영의 요격 미사일 재고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정착촌에 대한 헤즈볼라의 미사일 공격 요격은 진작에 포기했고, 그래서 많은 정착촌들이 공동화되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향후 정착촌 정책에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 이스라엘 정착자들은 식민주의자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오로지 요격 미사일 재고 소진만을 목표로 한 이란의 공격도 보도되고 있다. 한 두 달 후 방공망이 완전히 걷어내지면 반-이란 진영의 운명은 이란의 자비 혹은 분노에 달려 있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아랍 인접국의 담수화 시설들은 개인적으로 이란이 건들이지 않았으면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지휘부가 전원 강경파로 재편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랍 인접국 몇몇을 거의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해버린다 해도, 그것이 이란이 스스로의 안녕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고 판단한 것이라면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란이 이 불법 전쟁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nbsp;<br>개전 초기 미국과 이스라엘은 미사일을 아낌없이 이란 땅에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90% 이상의 이란 미사일 능력을 파괴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 평가는 치명적인 오판이었던 것 같다. 최소 50% 이상의 이란 미사일 능력은 건재한 것 같다는 평가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란은 땅이 넓기 때문에 미사일 발사 원점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국토가 작고 기간 시설이 몇몇 도시에 몰려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미사일 소모전 성격의 전쟁에는 취약하리라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상대가 약해져 있는 지금이 기회라며 앞도 뒤도 가리지 않고 침공을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인 것을...&nbsp;]]></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권력...</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79753</link><pubDate>Sat, 28 Mar 2026 20: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79753</guid><description><![CDATA[나의 생각:1). 역사에 주재자는 없다. 음모 이론들은 전부 쓰레기다. 각 행위자가 저마다의 이해에 따라 행위하면서 그것들이 점차 일정 방향성을 갖는 쪽으로 수렴할 뿐이다. 미국은 최강국으로서 자원과 힘과 다양한 선택지를 갖는다. 예컨대 키신저의 페드로달러 아이디어가 아니었더라도 미국은 다른 방법을 고안해내어 위기를 잘 극복했을 것이다. 미국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패권을 유지해왔다. 혹은 미국은 패권을 유지할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었다. 트럼프님은 다 계획이 있다~가 아니라 말이다.&nbsp;<br>2). 트럼프주의: 미국에게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그럴 권리가 있다. 미국이 이 힘을 자제한다면 나머지 국가들은 미국의 자비와 관대함에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린란드든 베네주엘라든 이란이든 큐바든... 이것이 적나라한 현실이다.<br>3). 트럼프주의는 전사를 대표한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른 현대의 조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세계는 극도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 중국이나 브릭스 등 어느 정도 대체재 역할을 할 수 있는 블럭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조만간 AI와 로봇의 시대가 본격화하여 생산력이 사실상 무한이 된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각 나라들은 여전히 패권주의에 순응하게 될까? 권력은 자원에 대한 접근을 배제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컨대 페트로달러의 강제력은 이제 분명히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 미국은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 예컨대 미국의 AI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사용해야 한다든지 하는 다른 방법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런 것들을 강제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다만 미국은 과거의 미국과 같은 정도의 압도적 최강국은 아닌 것 같다. 트럼프의 '마가'가 바로 이에 대한 고백이다. 바라건대 '마가'가 하나의 노스텔지아로 끝나기를... 지금이 인류의 전사가 막을 내리는 황혼이기를...]]></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해양 세력 대 대륙 세력</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77956</link><pubDate>Fri, 27 Mar 2026 21: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77956</guid><description><![CDATA[링크는 굳이 안걸겠지만 이코노미스트 잡지의 유튭 채널에서 전직 MI6 수장에게 미국과 이란 중 누가 이기고 있냐고 물어봤다.<br>전직 MI6 수장: (당연하다는 듯이) 이란이죠. (너무 쉽게 단언하듯 말한 것 같다고 느꼈는지 다음 말을 덧붙인다) 나도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죠...<br>미국의 이란 침공은 유가와 주가를 박살내어 우리의 삶과 정신을 궁핍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전쟁 발발때부터 이것이 미국 패권의 종말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되지 않을까 하여 눈과 귀를 뉴스에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사태는 정확히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전쟁 시작도 전에 이미 졌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nbsp;<br>세계는 다층적 접근을 허용한다. 혹은 달리 말해 우리는 세계를 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쉽게 말해 사건을 그것을 품고 있는 지층과의 관련 하에서 파악해야 한다. 물론 층위들의 분류와 구조는 어느 정도 자의적이다. 이를 감안하여 설득력이나 설명력 정도만 따져보면 될 듯 하다.<br>지금 지구 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전쟁의 전장을 보자. 러시아-우크라이나, 그리고 중동. 여기에 공통점이 있을까? 있다. 100년도 더 옛날에 영국에서 개발된 해양 세력 대 대륙 세력이라는 지정학 이론, 그 자기 실현적 예언의 구도에 따라 이 전쟁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대륙 세력은 러시아와 중국이고 해양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다. 그러므로 이 이론에 따른다면 앞으로 대만 앞바다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또 이 이론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의 동진 정책과 더불어 러시아의 힘을 빼기 위해 일어난 전쟁이 맞다. 그리고 다시 이 이론에 따르면 이번 중동 전쟁은, 이 이론에서 말하는 핵심 지역인 페르시아만 지역을 해양 세력이 계속 장악하기 위해 벌어진 전쟁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전쟁들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부딪히는 지역에서 해양 세력이 대륙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nbsp;&nbsp;<br>정말 놀랍도록 정확한 이론 아닌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이론이 정확한 것은 영국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이 이론을 신주 단지처럼 모시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세력이 나타나는 곳에는 항상 영국 해군이 출몰했다. 거의 강박관념처럼. 이 이론에 따라서.<br>이 이론에 따라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중동은 최고로 중요한 에너지 공급처이면서 서구와 전혀 다른 이슬람 문명권이다. 이 문명권을 어떻게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이라는 프락시 국가를 창설함으로써!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이스라엘과 관련된 서구 국가들의 강력한 터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페르시아만에서의 서구의 강력한 이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해양 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그 이익을 서구 세력들이 나눠먹기 위한 기제의 중요한 축이고, 유대-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터부는 이를 가리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그러므로 서구 세력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서구 세력 대신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벌어온 더러운 돈으로 서구 세력들은 우아하게 샴페인을 마시면서 철학과 예술과 인권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nbsp;서구 세력 전체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서 이득을 취한 공범이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서구 문명 자체가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서구 문명 전체가 공모에 참여했다. 그러므로 서구 문명 전체가 모랄적으로 파산했다. 그래봤자 나 스스로 소심하게 이스라엘산 무화과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br>저 지정학 이론은 더 이상 숭앙되어서는 안된다. 저 이론이 유지된다는 것은, 예컨대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모사드 등의 온갖 술책을 통해 중동 국가들을 이간질하여 갈등을 부추기고 전쟁을 하게 하여 중동 국가들의 힘을 빼고 서방 국가들, 서방 기업들에 의존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구 세력이 저 이론에 따라 중동을 계속 장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기적으로 제2의 가자, 제3의 가자를 만들어내는 것 뿐이다. 이런 갈등론에 입각한 행동 양태들의 수준에서 인류는 이제 그만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황폐함</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76471</link><pubDate>Fri, 27 Mar 2026 05: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76471</guid><description><![CDATA[<br>이스라엘은 폭력으로 남의 땅을 빼앗으며 건국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7, 80년 전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정착촌. 남의 것을 빼앗아 그것을 누리고 사는 것에 마음 편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어떻게든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한다. 나는 단지 자식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신이 이 땅을 점지해주신 것이다, 유대인은 계속 핍박받고 살아왔다, 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악마들이다, 등등. 그러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들...&nbsp;<br>(전쟁이 끝나면 중동에서 모든 미군이 철수하고 중동에 새로운 질서가 짜여질 것이다. 중동은 항구적 평화가 보장되지 않으면 석유 시대 이후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체계 안에서 이스라엘은 도대체 어찌 해야 하는가?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만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이스파한 그리고 가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70597</link><pubDate>Tue, 24 Mar 2026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70597</guid><description><![CDATA[<br>가장 피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상대를 함부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린 가자 지구 사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그럴 군사적, 정치적, 실용적 어떤 이유가 있었나? 이에 대한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윽고 심리학적인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이스라엘은 병리적인 상태가 아닐까?<br>삶은 하나의 여정이다. 처음에 우리는 완전히 무능한 상태로 세계에 던져진다. 그리고 점차 세계와 친밀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과정은 변증법적이다. 요약해 말한다면 세계와 친밀해지는 과정은 자신을 알고 자신에 친밀해지는 과정과 동등하다. 동일한 논리로 말하면 세계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심각한 불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든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만족 이상의 불만족을 느낄 수 없다.<br>이 분노의 극한은 무엇일까? 예컨대 살인일까? 아니다. 단순히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넘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이다.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그 사람이 살았던 흔적 자체를 지우는 것이다. 이를 다시 변증법적으로 돌아보자. 그래서 결국 무엇을 지우는 것일까? 그것은 곧 나의 존재, 내가 한 행위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이스라엘 사회가 스스로의 원죄를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건국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원죄를 사는 방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택은 스스로를 파쇼화하는 것이었다. 이 선택이 필연적이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높았을 것이다. 가자 지구의 황폐함 앞에서 나는 이스라엘의 존재의 황폐함, 그 병리적 황폐함을 본다.&nbsp;<br><br><br>&nbsp;&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추적60분: 미국-이란 전쟁...</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69355</link><pubDate>Tue, 24 Mar 2026 04: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69355</guid><description><![CDATA[<br>서방 진영에서라면 이런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서방 언론은 유대인을 가해자로 묘사할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유대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란 사람들의 절규와 분노를 그대로 방영할 수도 없다. 그것이 반-유대주의의 '핑계'가 될 수 있고, 그런 사태가 예견되는 데도 그런 장면들을 방영한다면 그 역시 반-유대주의로 몰리게 된다. 예를 들면 BBC는 생방송 뉴스에서 가자 지구 현장 특파원이 이스라엘군의 백린탄 사용을 언급하는 순간 방송을 끊어버렸다. 유대인, 이스라엘, 시온주의 등에 대한 언급은 그냥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은 서방 사회에서 하나의 굳건한 터부가 되었다.&nbsp;<br>유대인들은 어떤 특정한 행동이 토라에 맞는지 안맞는지를 결정할 허다한 논리들을 개발해내었고 그런 판례들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있다. 조선 시대에 간혹 문제가 되었던, 왕이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그저 애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쓸데없이 정교한 이론화와 문제화가 유대인이 존재하는 곳에는 항상 따라 다닌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반-유대주의에 속하는가?<br>현대의 사상가들은 대상화, 소외, 정체성 등에 관한 어머어마하게 복잡한 이론들을 개발해내었다. 아마 하이데거같은 사람이라면 학문의 유대화라 불렀음직한 현상이다. 이런 복잡한 이론들을 전적으로 쓸모없는 것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분명 그렇다. 그것은 어머어마하게 복잡한 현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체성과 관련된 복잡한 이론들이 비싼 비용을 들여 개발되고 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너무도 명백한 소외의 현상들이 외면되고 있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긴급 음식 구조를 제공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이스라엘의 젊은 여성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그들은 그런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은 사람으로 헤아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sub-human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데 무슨 정교한 철학이 필요한가? 조심하라. 서구에서는 그러한 반박이 가능한지를 조사하기 위한 정교한 철학이 필요하다. 그것이 유대인과 관련되는 한에서 말이다. 이쯤에서 서구 철학에 조종을 쳐주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nbsp;<br>서구 문명에 있어 이 유대인 문제는 참으로 답이 없다. 온갖 것들이 긴 역사를 두고 온갖 것들과 엮여 있어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것은 커다란 파급력을 갖는다. 예컨대, 이번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의 경우가 그렇다. 그것은 유가를 올리고 주가를 떨어뜨린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의 이권 문제, 미국의 패권 문제 등이 하부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서 인류는 지질학적 연대를 살듯 이 시대를 살 수 밖에 없다.&nbsp;<br>이 유대인 문제는 서구 문명에 있어 커다란 위기를 구성한다. 나는 몇 년 전 로저 워터스의 공연을 보러 미국 뉴욕에 간 적이 있었다. 택시를 탔더니 운전사가, 우리가 관광객인 것을 알아보고는, "여기는 자유의 나라요.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요. 일하고 싶으면 차를 몰고 나오고 일하고 싶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고 그래요..." 좋게 맞장구를 해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렇게 과도하게 이념적인 데에는 필시 뭔가가 있기 마련이다. (자유라? 일하고 싶으면 차를 몰고 나온다고? 집세를 내야하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차를 몰고 나오는 것은 아니고?) 로저 워터스의 공연장 앞에서는 열 명쯤 되어 보이는 유대인들이 로저 워터스가 반-유대주의자라며 피켓을 들고 데모를 하고 있었다. 자유라 했나? 자 이제 서구 문명에 있어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구에서 유대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학교에서 퇴학당할 수도, 입사를 거부당할 수도, 회사에서 해고될 수도, 출판 계약이 취소될 수도, 교직 임용이 영원히 좌절될 수도, 영화 출연 계약이 취소될 수도, 공연장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입주 계역이 취소될 수도 있고, 하버드 대학같은 기관은 정부 지원금을 토해내야 할 수도 있다. 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졌던 일들이다. 그리고 유대주의 기관에서는 반유대주의자로 낙인 찍힌 사람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인생을 망가뜨려버리겠다고 지속적으로 공언하고 있다. 자 다시 서구 사회에서의 자유와 관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구 문명은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터부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라 했나? 그렇다면 가자는 또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 눈감으면서 자신들을 어떻게 문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서구 문명은 끝났다. 도덕적 역량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회복불능이다. 이런 문명이 어떻게 지구의 지도 문명이 될 수 있는가? 트럼프같은 사람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트럼프를 배출할 만한 문명에서 트럼프를 배출한 것 뿐이다. 그런 문명이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br>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서구 문명의 단일 패권은 저물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 다음에 무엇이 올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미국 패권보다 나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다음의 다중심 세계에 있어 한국도 분명 기여분이 클 것이기 때문에 한국도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요컨대 한국이 제국주의라는 시궁창 경력 없이 지도국 중 하나가 된다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음의 다중심 세계가 지금보다 확실히 나은 세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br>어제 아내가 BBC로 페르시아 문명에 대한 다큐먼터리를 보길래 BBC 따위는 보지 말라고 야단을 했다. 나는 이스라엘산 무화과에 대해서만 소심한 불매 운동을 했었는데 이번 사태로 품목이 좀 늘었다. 첫째, 스타벅스, 둘째, 미국산 히어로물(예컨대 이제 더 이상 스파이더맨은 안보는 걸로...)... 우리의 기대는 이렇다. 지구상의 패권이 바뀌고, 더 이상 전쟁이 정책 수단 중 하나가 아니게 될 때,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그때 꼭 이란에 가보자는 것이다. 철학도로서 가슴 아픈 것은 내가 읽는 책에 나오는 지명들이 죄다 미국의 폭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스파한. 바라건대 참으로! 인류가 승리하기를... &nbsp;<br>(누군가 하이데거에게 물었다. 현대의 문제에 대한 해결은 어디서 올까? 많은 사람들이 그 해결이 동양에서 온다고 말한다. 당신도 그에 동의하는가? 하이데거가 말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가 처음 시작된 곳에서 해결도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하이데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서구 문명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산출했다. 그리고 문명 자체가 이미 매너리즘의 문명이 되었다. 해결이 어디서 오든 서구에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도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잡담... 서구중심주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57074</link><pubDate>Wed, 18 Mar 2026 06: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57074</guid><description><![CDATA[지난 주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아내가 상의도 없이 예매를 해버렸는데 나는 영화를 볼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아니 21세기에 무슨 단종애사야?" 궁시렁거리며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는 나름 볼 만 했다. 천만 관객이 그냥 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br>나는 철학도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내에게 이리 말했다. 이 영화와 비슷한 이야기를 고대 그리스의 비극 "안티고네"가 하고 있어. "안티고네"는 철학적으로 다루어 볼 만한 이러 저러한 논쟁점들을 제공하고 있고 많은 사상가들이 그 주제를 집어들곤 했지. 나는 "왕과 사는 남자"에 그러한 논쟁점들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어. 없는 거 같아. "왕과 사는 남자"에서 감독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전락한 왕과 서민성, 혹은 민중성이라 해야 할 것의 교점이었던 것 같아. 이론성, 사유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야. 흔히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그런 논쟁점들을 풍부하게 제공하지. 철학에서는 사유를 이러한 논쟁점과의 관계에서 정의해. 즉, 습관적, 관성적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계기가 논쟁점이고, 그러한 깨어남 자체가 곧 사유라는 것이지. 예컨대, 현대의 미술품 앞에서 우리는 사유를 당하지. 작품이란 우리의 관성적 존재를 흔들어 깨우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야. - 이런 것들이 서양의 철학적 관점이다...<br>철학도로서 나는 이러한 관점을 동양적 세계에 적용해보려 하지만 매번 거기서 유의미한 어떤 것을 찾아내는 데 실패해왔다. 혹자는 이것을, 동양에는 철학이 없다는 말로 표현한다. 유튭에서 달라이 라마와 레이디 가가의 대담을 찾아보라. 레이디 가가는 달라이 라마에게서 철학적인, 추상적인, 이론적인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듣고자 한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는 일상적 수준에서 답을 주려 한다. 문제는 달라이 라마가 레이디 가가의 질문 자체를 초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둘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 둘 사이의 간극을 고통스럽게 바라본다... - 솔직히 나는 동양에서 온 사상가들에게서 무능함을 보고 있다고 느낀다. 자 봐봐, 데이비드 봄과 달라이 라마는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어. 그러나 달라이 라마에게는 어떤 무능력함, 어떤 관념성이 있어. 현실에의 적실성을 잡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교황의 말들이 관념적이라는 의미에서... 동양의 사유들은 아직 이 관념성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등등.<br>철학을 인도-유러피언 전통의 서사 쟝르로 결론짓는 것도 썩 나쁜 일은 아니리라. 철학이 아직 유효한 것은 이 서구 전통이 지구의 주도적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전통은 사라지거나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현재는 서구 전통의 근대의 확장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도 이 확장 너머에서 살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nbsp;<br>이 서구 전통이 지구의 주도적 문명임을 인정하더라도, 이 주도적 문명에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은 전혀 모순된 일이 아니다. 어떤 불만을 느끼는가? 예컨대 나는 이 서구 문명이 너무도 야만적이라는 데 불만을 느낀다. 예컨대 서구 문명은 바그다드나 테헤란에 융단 폭격을 가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로마나 아테네에 그런 짓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한국의 경주에 그런 짓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교황을 폭탄으로 폭살한다고 생각해보라. 서구 문명은 타 문명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다. 이런 것들을 뉴스로 지켜보는 것이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나는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이후 서양 뉴스를 보지 않는다. 그 적나라한 위선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란 미국이 지구의 에너지 패권 장악을 위해 중동에 설치해놓은 대리 국가에 불과하다. 현상적으로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스라엘이란 미국의 욕망, 그 극단적인 욕망의 발현기관이기 때문에, 둘을 나누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그린란드가 중동에 있었으면 미국은 이스라엘을 발현하여 그것을 점령했을 것이다. 캐나다가 중동에 있었으면 미국은 이스라엘을 발현하여 그것을 점령했을 것이다. 트럼프가 가장 아쉬워할 일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하나 밖에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현대 서구 문명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전쟁을 생산했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 이런 문명이 지구의 주도적인 문명이라는 것은 너무도 큰 비극이다.&nbsp;<br>다행히도 이 문명은 약화되고 있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중동 지배권 약화를 예상한다. 미국의 이란 침공은 그러한 흐름을 되돌리려는 갸냘픈 몸짓에 불과하다. 이 지역에서 앞으로 한 번 더 그러한 전쟁이 날까? 그런 전쟁이 또 일어난다면 그것은 또다른 "필요 이상으로 발발한 전쟁"이 될 것이다. 또다른 전쟁을 벌이기 전에 미국이, 중국이 안정적인 에너지 소스를 확보하는 것을 방해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먹을 정도로는 똑똑해지기를 바랄 뿐이다.<br>오늘, 한국의 친척 어른 한 분이 돌아가셨다. 매우 똑똑한 분이셨지만 쉽지 않은 삶을 사셨다. 내가 대학생일 때 전국 무전 여행을 했었고 그 분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소주를 앞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 분이 말씀하셨다. "나에게 문제는 말이다, 나에게 항상 관심은 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까뮈를 읽으셨을까? 건강을 위해 조신하게 사신 적이 없으셨고 병원에 입원해서도 담배를 피셨다. 그러다 몇 달 전 통화를 했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다. "ㅇㅇㅇ야, 나는 말이다, 나는 요즘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뇨 등으로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무엇이 그 분을 변하게 했을까? 무엇이 그 분에게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은 빛을 갈구하게 하였을까? 그것은 스피노자적인 절대 진리가 아니었다. 파우스트가 "순간이여 멈추라" 라고 외치던 순간의 그 사업상의 충만감, 만족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자식들, 손주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고 걱정받고 있다는 감정이었다. 유치환은 지식이 그대의 고뇌를 다스려주지 못한다면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떠나자고, 그 그림자 하나 없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로 가자고 말한다. 사막은 고뇌를 다스려줄 수 있을까? 고뇌는 관계성의 한 양상일 뿐이다. 지식과 사막과 사업은, 철학은 고뇌라는 이름의 관계에의 갈망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nbsp;<br>그러므로 궁극적으로 말해서 달라이 라마가 옳았을 지도 모른다. 동양의 사상가, 예컨대 유가의 사상가들이 옳았을 지도 모른다. 인간 조건의 가장 커다란 부분은 관계적인 것, 요컨대 가족 관계와 그것의 확장일 수 있다. 이러한 관계성은, 말하자면 소프트웨어적이다. 서구인의 삶에 완전히 체화되어 있는 독립성, 자립성에의 절대적 가치 평가가 이제 새로운 대안과 나란히 진열될 기회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서구 문명이 소프트웨어적 관점에서 이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본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더 심화되기를 기원한다. 현대의 사람들이 하나의 종합이기를 바란다.&nbsp;<br>너무 두서없다. 어쨌든... 그냥 올리기로 한다. &nbsp;&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전쟁과 제국...</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52972</link><pubDate>Mon, 16 Mar 2026 01: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52972</guid><description><![CDATA[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사태를 매일 매일 뉴스로 지켜보고 있다.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br>일단 미국은 문명의 모든 규칙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패권이 끝나가고 있음을 자백하고 있다. 협상 중에 협상 상대방을 폭살하는 것에 어떤 정당화가 가능할까? 175명의 초등학생을 오폭이든 뭐든 죽게해놓고 사과도 없이 발뺌을 하면서 어떻게 스스로를 문명 세력, 문명 진영이라 말할 수 있을까?<br>반면 이란은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하면서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이 정유 시설을 공격하기 전에는 정유 시설을 공격하지 않고, 금융 기관을 먼저 공격하기 전에는 금융 기관을 공격하지 않는다. 중동 각지의 미군 기지에 공격을 집중하여 미군 기지들이 주둔국으로부터 비싼 돈을 받아가며 보호하는 것이 중동 국가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뻔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한다.<br>그리고 그렇게 하여 미국이 보호하고자 하는 잇권의 실체를 폭로한다. 즉, 에너지 패권. 이란은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결제한 석유 화물은 자유 통행이 가능하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한다. 대놓고 미국 페트롤 달러의 핵심을 겨냥하는 것이다. 뼈가 부수어지고 피와 살점이 터져나가는 와중에 이처럼 고도의 사유와 강철같은 자제력을 필요로 하는 대응을 하고 있는 이란 문명에 경외감을 아니 느낄 수 없다. 이에 비하면 미국은 즉흥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매우 얕은 세력이다. 그 깊이로 보건대 미국은 제국이 아니다.&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전쟁</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28311</link><pubDate>Tue, 03 Mar 2026 2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28311</guid><description><![CDATA[어린 시절 나는 반전주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철학자 버틀란드 럿셀이 반전 운동으로 감옥에 갔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 적군이 침공해오는데 어떻게 반전주의가 가능할 수 있지?&nbsp;<br>그러나 지금은 반전주의가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을 보라. 우크라이나, 러시아, 이란,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 그리고 그 나라의 지도자들을 보라. 전쟁의 가장 주요한 동기는 그 나라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이해 관계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윤석열이 어떻게든 국지적 충돌을 일으키려 했던 이유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br><br>]]></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나의 작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121526</link><pubDate>Sat, 28 Feb 2026 2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121526</guid><description><![CDATA[서문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일주일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암만 늦어도, 아무리 여유를 부려도 2월은 넘길 수 없다고... 그러나 내일이 3월의 시작인데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몇몇 문장 나부랭이뿐이다. "드디어 서문을 썼다!" 라고 이 블로그에 기록하는 나를 얼마나 즐거이 상상해왔던가... 쳇...<br>서문 첫 몇 단락에 대한 클로드 오퍼스 4.6의 평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 옳은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비평을 받아들여 수정을 했다. 그렇게 클로드는 통과했는데 또 다른 검열자가 나타났다. 나 자신이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났고 그리하여 작업이 진전되지 않았다. 즉, 지금까지 작업한 부분을 날리고 싶지는 않은데, 또 계속 진행하기에는 뭔가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 떠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 무엇이 어긋나 있는지 찾은 것 같기는 한데 주말에 작업을 해보아야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nbsp;<br>답답하기는 하지만 초조해하지는 않는다. 방법을 계속 찾는 중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웃라인과 자료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즉, 아웃라인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서문이 가장 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아마 "지성개선론"이나 "에티카"같은 단일 저작들을 다룰 때는 훨씬 속도감있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것도 가봐야 알 일이긴 하겠지만 말이다.&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잡담... - 쓰기 시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086847</link><pubDate>Thu, 12 Feb 2026 02: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086847</guid><description><![CDATA[<br>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고, 읽다 만 책도 많고, 읽은 책들은 대부분 아직 정리를 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난장판이다.&nbsp;<br>어쨌거나 원고 작성을 시작하여야 할 시점이 되었으므로 지난 주말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웃라인은 머리 속에 있었으므로 쉽게 나왔다. 그러나 그것을 원고로 조립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지지부진. 아직 집필 단계를 시작하기에는 이르다는 징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가 그때일 수 있을까?<br>문득 하루키가 초고를 영어로 쓰고 나중에 일본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나도 그렇게 해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서두가 잘 풀리지 않았다. 원고 작성의 무게감에 짓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크리브너를 사용한다. 이 툴 안에 스피노자 책 작업과 관련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 무게감에서 벗어나야겠다 싶어 스크리브너를 떠나 이맥스를 켰다. 이맥스를 순전히 텍스트 에디터 수준에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바탕 화면도 좀 정리하고...<br>결국 서두 부분을 얻을 수 있었다. 좋으나 싫으나 이 서두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인생에 데드라인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사실성이다).&nbsp;<br>출발점을 얻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 작성한 부분을 클로드 opus 4.6에 넣고 비평을 해보라 시켰다. 오퍼스 4.6은 아부없는, 냉철한 평가를 해준다. 평가를 읽으면서 등에 땀이 났다. 클로드의 평가는, 사실 정확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궁시렁거렸다. 논리의 비약이라고? 논리의 비약 맞지. 그러나 그 논리의 간극을 채우려면 뻔하고 형식적인 말들을 잔뜩 해야 한다고. 그러면 글이 늘어지고, 힘이 없어지고...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원고 작업 시간을 까먹었다. 일하기 싫으니 별 핑계를 다 만들어낸다. 엘엘엠에 리뷰를 시키는 것은 각 장을 끝낸 후에 하는 것으로... &nbsp; &nbsp;<br>결론은... 가볍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 가볍게.&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12/pimg_7139371465027674.png</url><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086847</link></image></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어느 끝점의 근방...? (마이 브릴리언트 프렌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043746</link><pubDate>Sun, 25 Jan 2026 0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043746</guid><description><![CDATA[(지저분함 주의...)<br>최종적으로 정착할 LLM 모델로 제미나이를 선택하여 어제 구독을 시작했다. 한달 무료다.&nbsp;<br>LLM 모델에게 내가 원하는 수준의 철학적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LLM 모델은 창의적인 부분을 날려버리고 글을 평균으로 회귀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nbsp;<br>구독을 결정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LLM에 질문했던 것들이 LLM을 학습시키는 데 다시 사용되겠지? 그렇다면 종국에는 LLM을 통해 나오는 모든 것들이 평균적인 것이 되겠지? 그러나 뭣이 문제란 말인가? 지금이 하나의 거대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라면 말이다. 그 끝점 어느 근방에서 읽을 만한 철학적 책을 쓰고자 고투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아이리스 머독이, 소설이 종말을 고하는 시점 근방에서 소설 쓰기를 시작하는 어느 작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br>얼마 전에 젊은 한국 소설가를 추천받기 위해 유튭에 들어갔다 헤매다 엘레나 페란테라는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의 "마이 브릴리언트 프렌드." 드라마로도 나왔다 하길래 시즌1을 샀다. 제1화를 보고 나서는 책을 사기로 결정했고 4권 합본으로 1300 페이지 특별판을 샀다. (이 특별판이 잘 안팔렸는지 50% 할인이었다.)&nbsp;<br>첫 몇 페이지를 읽자마자 작품에서 풍기는 고전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책을 매우 매우 지저분하게 본다. 그러나 이 책에는 어떤 밑줄, 어떤 메모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읽고 있고, 원어로도 읽고 싶어서 이탈리아어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이 책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아 볼 사람은 알아본다는 것.<br>이 책의 무엇이? 그것은 드라마에서 표현될 수 없는 것이고, 짧게 요약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문장 곳곳에 낑겨 있다. 그것은 작가의 깊은 관찰력, 성찰, 감수성, 통찰 등을 문득 문득 느끼게 하는 그런 것이다. 짧게 말하면 책의 고전적 풍모. 이에 대한 감수성이 아직 인류에게 완전히 잊혀지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br>어제 아내와 긴 산책을 했다. 우리는 "마이 브릴리언트 프렌드"를 동시에 읽고 있는 중이다.&nbsp;내가 물었다. 엘레나 페란테는 정말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해. 그런데 나는 릴리와 레누 사이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없어. 그것을 우정이라 불러도 되는 건가? 그런 관계가 실재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인위적으로 창조한 것인지도 모르겠어. 내가 남자라서 그럴까? 둘의 긴장 관계가 우정 안에 어떻게 포용될 수 있는지 모르겠어...<br>그러므로 결국... 시대의 종말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지속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인류는 계속 대화할 것인가?&nbsp;&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124/pimg_7139371465007544.jpeg</url><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04374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