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weekly님의 서재 (weekly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30 Jul 2026 11:16:43 +0900</lastBuildDate><image><title>weekly</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A_017.gif</url><link>https://blog.aladin.co.kr/weekly</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weekly</description></image><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미국-이란 전쟁, 다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409801</link><pubDate>Fri, 24 Jul 2026 20: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409801</guid><description><![CDATA[전쟁이 마무리되기를 바랬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고 지금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지상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것 같다.<br>양해각서 파기 이후 이란의 행동은 달라졌다. 그 전에는 미국의 공격에 대한 보복 공격의 성격이 짙었으나 지금은 매우 명확한 전략적 목표 아래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에서 이란의 통제를 벗어나 항행하는 배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때린다. 미군 기지를 유치한 곳은, 그곳이 설사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오만일지라도, 무조건 때린다. 특히 집중 타격을 받고 있는 곳은 쿠웨이트와 요르단이다. 이란은 자국에 떨어진 폭탄의 70%가 쿠웨이트에서 발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쿠웨이트는 이를 부정한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 지상군이 침공할 경우 그 경로는 쿠웨이트를 통한 것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에 따라 이란도 쿠웨이트 국경 쪽으로 군자산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란의 선제적 쿠웨이트 침공도 있을 수 있으리라 본다. 어쨌든 이번 전쟁의 최대 피해국은 쿠웨이트가 될 것 같다. 최악의 경우에는 나라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nbsp;<br>요르단은 페르시아만 인접 미군 기지에서 피신해온 미군 군인들, 미군 자산 등이 집결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니 이란의 집중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미군 사령부는 이란의 탄도 미사일 공격에 대해 그것들 대부분은 요격했고 일부는 바다에 떨어졌다는 둥의 말을 했었다. 다 거짓말이었다. 페르시아만 주둔 미군들은 요르단까지 쫒겨간 것이고 이제 또 짐을 싸서 국경 너머 이스라엘로 가야 한다. 이스라엘은 당연히도 이들이 오는 걸 싫어한다. &nbsp;&nbsp;&nbsp;이번 전쟁은 여러모로 비대칭 전쟁이다. 군기지의 양상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란의 군자산과 군수 공장들은 대부분 지하에서 보호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군이 아무리 공중 폭격을 해도 이란군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없다. 반면 미군은 너른 사막 평야 지대에 산재해 있다. 이란의 고속 탄도탄 공격이나, 드론과 미사일을 섞어쏘는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이번 요르단 기지 공격에서 세 명의 미군 전사자가 나왔다. 이란의 탄도 미사일은 집요하게 미군 숙소를 노렸다.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군은 벙커 안에 박혀 있거나, 아니면 기지를 버리고 호텔같은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nbsp;(이란은 드넓은 요르단 공군 기지에서 어떻게 미군 숙소 건물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미국은 러시아가 표적 정보를 제공했다며 러시아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란 측에서는 정보를 제공해준 요르단 현지의 민간인과 군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다.)<br>또다른 비대칭성이 있다. 예컨대, 담수화시설 의존도. 이란은 일부 도서 지역을 제외하면 담수화 시설에 대한 의존성이 크게 없다. 반면 쿠웨이트의 경우에는 거의 100%가 담수화 시설에 의존하고 있다. 미군이 이란의 담수화 공장, 발전소, 다리 등 민간 기간 시설을 공격하자 이란은 쿠웨이트에 주로 보복을 가했다. 이란은 쿠웨이트의 담수화 시설의 1/4 정도를 부순 것 같다. 나머지를 마저 부순다면 쿠웨이트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된다. 아마 쿠웨이트 등이 미국에 항의했을 것 같다. 내가 확인한 한에서는 이후에 벌어진 교전에서 미군은 더 이상 민간 기간 시설을 공격하지 않았다.<br>이란의 목표는 명확하다. 다시는 외세가 이란을 침공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고, 피가 필요하고, 지상전이 필요하다면 이란은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양해각서 체결 전후 이란이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얼마나 몸조심을 했는가를 기억해보라. 지금은 대놓고 미군 생명을 노리고 있다. 다음 타겟은 미군 함정일 것이다. 이란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미군 함선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목표를 선정하고 있다고. 이란이 미군 함정을 타격하기로 결정한다면 미군은 이를 막을 길이 없다. 미국이 함선들을 이란의 미사일 사정권 밖으로 빼고 있기를 바란다. 만일 이란이 미군 함정에 공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미국은 지상전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전쟁이 여기서 끝나기를 바란다.)<br>미국의 전략비축유는 팔월 달 안에 소진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가 홍해를 통해 나오는 경로도 현재 막혀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책임감은 전세계 경제를 판돈으로 질 수 밖에 없는 도박을 하는데 있어 아무런 자제력을 보이지 못한다.&nbsp;미군의 장거리 정밀 유도 미사일도 거의 소진되어 이제 영국 공군기지 등에서 발진한 공군기로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방식의 공격을 이어가야 한다. 이 더운 여름에 지상전을 한다고 협박하며 모아놓은 병력이 고작 5만, 그 중에 전투병은 적으면 5천, 많아야 8천에 불과하다. 전쟁을 일으킨 지 이주 만에 미국은 종전을 애걸복걸했다. 양해각서가 체결되기 이 주 전 똑같은 문서가 트럼프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당시 트럼프는 이건 도저히 사인할 수 없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그리고 이 주 후 똑같은 문서를 놓고 하루라도 빨리 서명하자며 본인도 G7 회의장에서 서명했다. 그렇게 종전을 갈구해놓고 미국은 이란에 돈맛을 조금 보게 한 것 말고는 약속 사항을 모두 무시했다. 결국 양해각서는 죽었고 양측의 교전이 재개되었다. 양해각서를 폐기하고 이란에 다시 미사일을 쏘기로 결정할 때 트럼프는 어떤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었을까? 그런 것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은 다시 카타르를 통해 협상을 제안하고, 오늘 뉴스 보니 이라크 쪽을 통해서도 협상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다시 미국과 협상하려 할까? 아마 전쟁은 미군의 무조건적 자진 철군의 형식이 아니라면 종식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br>(중국의 kimi k3가 좋다기에 나도 써봤다. 클로드처럼 깔끔한 맛은 없지만 여튼 좋더라. 가격이 괜찮으면 계속 쓸 것 같다. 석유 자원에 기반한 패권 전략이 흔들리자 미국은 ai를 독점화하여 패권을 이어나가려 하는 것 같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정수를 보여준다. 브로델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정수는 자유 경쟁이 아니라 독점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오픈 소스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독점을 막고 시장을 넓게 펼치는 전략이다. 저렴하고 투명하고 성능이 좋으면 사람들은 쓴다. 미국의 패권 놀이의 끝물에 대안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미국-이란 전쟁</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384784</link><pubDate>Fri, 10 Jul 2026 2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384784</guid><description><![CDATA[내가 이번 전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역사의 변곡점의 목격자 중 하나이고 싶기 때문이다...<br>미국과 이란의 교전이 아슬아슬하게 소강 국면을 맞고 있다. 간헐적 충돌이 이어질지, 본격적인 전쟁 상태로 들어갈지, 아니면 흐지부지 끝나버릴지... 나는 세 번째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다행히도 그럴 여러 조짐들이 보고되고 있다.<br>여튼 미국이 이란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환경들에는 변함이 없다. 트럼프 왈, 비축유가 4주치 밖에 안남았다, 폭격을 이 삼 주 정도 더 할 수 있다... 등등. 다시 말하면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미국에게 없다. 중간 선거도 다가오고 군함들 휴식과 정비도 해야 하고 등등...<br>이번 상호 교전 후 미군의 유도를 따라 오만 쪽으로 붙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배들은 거의 없어졌다.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 미국이 호르무즈 통제권을 이란에게 인정한 문서에, 혹자들은 항복 문서라고도 부르는 그 문서에, 사인을 했던 것이다.<br>지금의 상황 전개로 보면 이란은 요르단까지 전선 확대를 꾀하고 있고, (아마도) 이스라엘은 이란의 원전 지대를 타격하는 불장난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안멈추면 이란은 이스라엘을 타격할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종전은 완전 끝장난다. 아마도 트럼프가 여기서 멈추리라고 생각한다. 욕을 바가지로 퍼붓고 폭탄 몇 개 떨어뜨리고...&nbsp;(예전에 양해각서 합의할 때도 이란이 이스라엘을 강력 타격하겠다고 경고한 직후 트럼프가 합의에 동의한 것이다.) &nbsp; &nbsp; &nbsp;<br>(미국-이란 전쟁 포스팅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미국-이란 전쟁이 다시 시작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381146</link><pubDate>Wed, 08 Jul 2026 2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381146</guid><description><![CDATA[어제 그제 이란이 유조선 3척, 혹은 4척을 공격했다. 이 배들이 이란이 지정한 항로로 가지 않고 미국, 영국 등이 유도하는 오만 근처 항로를 따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해각서에 따르면 호르무즈 통항에 대한 책임은 이란이 갖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미국은 그러한 약속을 지키는 국가가 아니다. 지난번 컨테이너선 공격 때는 컨테이너 몇 개만 부서졌지만 이번 것은 기관실을 타격한 심각한 공격이었다. 지난 번 공격 이후 오만 쪽에 붙어 통행하는 배들의 수는 잠시 줄었다가 다시 늘어나 전체 통행건수의 1/3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란이 이런 배들에 본때를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번 장례식을 거치면서 이란 국민들이 총체적으로 미국과 끝까지 붙어싸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수도 있다. 후자 쪽의 가능성을 보는 평자들도 있다. 이란의 이번 민간 선박 공격에 의해 촉발된 공방전이 어디까지 번져갈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nbsp;<br>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은 이란의 생명선이다. 이 해협으로 석유가 오가고 식량 등이 오간다. 페르시아만 국가들에게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이란에게 내준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이란은 이를 무기로 이들 국가들을 조이고 풀고 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예컨대 반미, 반이스라엘적 정책을 채택하도록) 통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이 이렇게 통제하지 않으면 이들 국가들은 언제든 미국에 붙을 것이다. 또, 미국이나 이스라엘과의 긴장 수준이 높아질 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선제적으로 봉쇄할 수도 있다. 그 긴장이 바로 폭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수단 하나를 갖는 것이다.&nbsp;미국과 이스라엘은 주기적으로, 때가 되었다 싶으면 이란에 폭격을 가해서 이란이 정상 국가로 안정화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란 국민들이 더는 못살겠다 하여 시위를 벌이고, 소수 민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이란이 내전 상황에 빠지는 것이 미국-이스라엘-서방에게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분열시켜-통제한다는 원칙이다.<br>그러나 미국은 전쟁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말고도 홍해도 막을 수 있다. 이란은 지난 번 전쟁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홍해를 막지 않았으며 사우디의 아람코 시설을 타격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담수화 공장을 폭격하지 않았다. 아마 전쟁이 다시 발발한다면 이 모든 것들을 이란은 할 것이다. 이란 국민들은 지금 처절한 분노 상태에 있다는 걸 고려할 만한 지성을 미국 당국자들이 갖고 있기를 바란다.<br>결국은 미국이다. 미국이 이란을 굴복시킬 좋은 시나리오를 갖고 공격 재개를 선택한다면 그것도 뭐 미국의 선택이니 그러려니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아무런 전망도 없이 막무가내로 행동한다면? 그럴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이 전쟁의 늪에서 자기 힘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중국이 중재자로 나서는 것일 것이다. 아마 그때 사람들은 제일패권의 붕괴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다.<br>미국은 아둔하다. 시대가 바뀐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미국 등의 서방이 아프리카에서 착취를 해먹는다고 해보자. 예전에는 그래도 되었다. 그래봤자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달리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자원만 쏙 빼가지 않는다. 중국은 그 나라에 산업 시설도 지어준다. 지금은 그 아프리카 국가들에 서방이라는 수탈 기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또 다른 대안이 존재하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지금은 이란을 고립시켜 일방적으로 뚜드려 팰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란은 그 위에 옆에, 러시아, 파키스탄, 중국 등을 동맹으로 불러모아 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지금은 이란이 중국에서 위성을 사서 그것으로, 온갖 요격 미사일로 방어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핵 연구 시설을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그런 시대다. 지금은 세계 여러 국가들에 있어 미국 외의 대안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시대이다. 미국과 그에 기생하는 서방 세력의 강압적 정책은 대안 세력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배재고 야구부 사태...</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372282</link><pubDate>Fri, 03 Jul 2026 2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372282</guid><description><![CDATA[어느 영어권 신문에서 2030 남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있는(아직도 그러한가?) 이준석을 한국의 젊은 극우 정치인으로 기술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해외 언론이 한국의 정치인에 대해 어떤 라벨을 붙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살짝 떨어져서 이준석을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준석은 여자, 장애인, 노인, 즉 전통적으로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아마 이준석이 서구권 국가의 정치인이었다면 이민자들과도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이준석은 이런 계층의 사람들과 관련된 갈등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예컨대, 이준석은 노인들의 무임승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준석의 제안은 지하철 공사의 적자 누적 문제에 대한 정책적 접근일 수 있고, 그런 한에서 나는 이준석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준석은 그 정책 발표 말미에 의도인지 실수인지, "무임승차한 노인들이 가장 많이 내리는 역은 경마장 역이다" 라는 말을 첨가한다. 그걸 보고 나는 이준석을 한국의 극우 포퓰리스트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2030 남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있는 정치인은 극우 포퓰리스트이다. 그는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하여 거기서 이득을 취하는 정치인이다.&nbsp;<br>정치적인 차원을 잠시 떠나보자. 여자, 노인, 장애인과 싸우고 있는 젊은 정치인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미학적으로 그 사람은 어글리하다. 추하다. 이러한 미학적 기준을 자의적이라 비난할 것인가? 그러나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 곧 자의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의 월드 시리즈에서 일본 출신의 엘에이 다저스 선수 오타니와 야마모토는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특히 야마모토는 부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팀을 위해 헌신했다. 이런 선수에 대해 사람들은, 멋지다, 존경스럽다는 감정을 갖는다. 물론 그런 감정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보, 다치면 자기만 손해인데... ㅉㅉㅉ. 즉 '자기 손해" 일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 야마모토는 멋진 사람이 아니다. 비슷한 계열로, 자신의 이익을 해친다고 보는 일에 대해서는 결코 묵과하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학습권을 침해했다며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연세대의 몇몇 학생들의 경우가 그렇다. 이러한 예들에서 내가 느끼게 되는 감정의 주소를 정확히 찾을 수 없으므로 나는 그것들을 미학적 감정에 속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요컨대, 그 연세대 학생은 추하다. 이런 예들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절대적인 것까지는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자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 자의적인 감정으로 치부될 수 있을 때 인간이란 종은 다른 역사를 살고 있을 것이다.)<br>사회는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좋게 보지 않는다. 동양 전통에서라면 전자는 군자로, 후자는 소인으로 불렸다. 소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부정적인 모든 것. 짜증내고, 화내고, 안절부절하고 등등. 이는 무능의 징표이다. 소인의 무능은 자기 콘텐츠를 생성함에 있어서의 무능이다. 그러므로 소인은 부화뇌동한다. 남들 하는 것을 따라한다. 비극적으로 유명을 달리한 정치인을 희화화하고 그것을 놀이 대상으로 삼는 것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 재미는 또래 집단의 문화에서 소외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확인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네들 스스로도 죽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고 노는 것에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으리라고, 즉 그들 스스로 자신의 추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네들은, "재밌잖아요?" 라는 변명거리를 마련해 둔다. '재미'라는 단어가 주인을 잘못 만나 또 이렇게 고생한다.<br>예를 들어 물리학자 파인먼은 방정식을 이러 저리 비틀며 전개하는 일을 즐겼다. "뭐 하고 있죠?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재밌잖아요?" 파인먼의 중요한 업적들은 그러한 사고상의 놀이의 부산물이다. 리눅스를 처음 개발한 리누스 토발즈에게 어떻게 그런 엄청난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냐고 물으니 그의 대답이 "재밌잖아요!" 였다. 즉, 재미라는 말은 자기 생산의 순수한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쩌랴, 자기 생산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네들은 자신의 무능, 추함, 부화뇌동, 무책임을 덮기 위해 그 단어를 사용한다. 추함은 동조 집단에 들기 위한 회원료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br>야구는 비생산적인 인간 활동인 스포츠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것에 약간의 현실성이라도 부여하기 위해 유니폼을 갖춰 입고 예를 갖추고 엄격한 규칙을 따르면서 수행한다. 특히 야구는 야구공이나 방망이가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불문률을 갖는다. 예컨대, 프로야구에서 주로 적용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큰 점수 차에서 이기고 있는 팀이 도루를 하지 않는다는 것 등등. 그런데 이기고 있는 팀이 응원이라는 명목 하에 지고 있는 팀을 조롱한다? 이는 해당 팀의 야구나 스포츠에 대한 소양이 완전히 부재하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마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은 오타니나 야마모트를 존경하고 동경할 것이며 그들을 롤 모델로 하는 선수들도 꽤 있을 것이다. 아마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도 미국의 월드 시리즈 최종전의 그 깔끔한 최고급의 경기를 즐겼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멋진 최고급의 경기가 가능했을까? 최고의 선수들이 집중하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런 최고의 경기를 망쳐버리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상대를 흔들고 경직시키기 위해, "밤밤 히로시마!", "미국의 51번째 주!"를 외치면 된다. 최고급과 진흙탕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 수 있다. 최고급에 이르는 것은 너무 힘들지만 진흙탕을 만드는 일은 너무 쉽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다: 너무 쉬운 길로만 가려하지 말자. 진흙탕을 만들고 약자를 조롱하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일은 너무 너무 쉬운 일이라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중력에 따라 자연스레 그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양해각서 이후...</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370423</link><pubDate>Thu, 02 Jul 2026 2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370423</guid><description><![CDATA[이번 전쟁이 발발하고 열흘 쯤 지나서 뚱딴지같은 뉴스가 떴다. 이란이 종전 조건으로 미군의 역내 철수, 재침공하지 않겠다는 보장, 그리고 배상금 지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연일 이란 불바다, 테헤란 불바다 뉴스를 쏟아내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십일이 지나 이란의 이런 요구들은 양해각서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 앞으로 종전 협정서같은 것이 작성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몰라도 그런 것이 작성된다면 거기에도 이란의 이러한 요구가 똑같이 반영될 것이다. 개전 초기에 이미 미국은 자신들의 군전력으로 이란의 핵심적인 군 자산을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해제시킬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란의 탄도 미사일로부터 페르시아만 연안의 미군 기지들과 동맹국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완전히 인식했다. 이런 것들이 종전 양해 각서를 낳은 물질적 조건들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변하였다는 어떠한 징후도 없다.&nbsp;<br>엊그제 미국과 이란의 상호 교전에 관한 뉴스가 있었다. 이란이 지정한 항로를 따르지 않고, (미군의 유도 등을 받아) 오만쪽으로 붙어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배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이란이 그 중 컨테이너선 한 척에 드론 공격을 가한 것이다. 이란은 4기의 드론으로 공격했고 미해군이 3기를 요격했으나 컨테이너선은 나머지 한 기의 타격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미국과 이란은 서로 양해 각서 위반이라며 보복 공격을 했지만, 양측 다 확전을 피하기 위해 형식적인 공격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컨테이너선 피격과 미국과 이란의 상호 교전으로 오만쪽에 붙어 나오는 배의 수는 확실히 줄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무효화하기 위해 계속 이런 저런 시도를 할 것이다. 양해 각서에 뭐라 쓰여 있든 말이다. 이란은 양해각서같은 종잇장이 이란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최근에 공개되고 있는 위성 사진에 따르면 이란의 탄도 미사일과 드론은 매우 정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물질적 수단만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br>미국의 밴스 부통령은 이번 양해각서가 시간 벌기용이라 말한다. 석유 비축량과 탄약이 채워지면 전쟁을 재개하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일부 미군 전력이 증강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란 입장에서는 미국의 재침공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란이 원하는 것은 탄도 미사일 역량 등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 뿐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힘은 자신의 힘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그것을 관철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란은 지역 패권국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 그 첫 번째 시험대는 레바논에서의 자신의 대리 세력을 보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은 양해각서 1조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듯 한데 그 함의는 이란과 이스라엘에게 매우 크다. 이란은 1조가 충족되지 않으면 본 협상에 임하지 않고 시간을 끌 것이다. 이란은 그 시간 동안 이란 대 중동 전체라는 대결 구도를 이스라엘 대 중동 전체로 바꾸어 놓으려고 애쓸 것이다. 나는 이란이 성공하리라고 본다.<br>(미국이 지난 세기부터 유엔에서 한 일이라고는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비토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막무가내로 보호해주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 미국 내에서도 제기되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미국 정치에 대한 유대인 로비 그룹의 강력한 힘 때문이다. 이제 이 로비 그룹의 영향력이 허물어져가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유대인 로비 그룹의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축출되고 있다. 공화당에서도 몇 년 안에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미국-이란 종전을 위한 양해 각서 서명 완료</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342282</link><pubDate>Thu, 18 Jun 2026 19: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342282</guid><description><![CDATA[미국과 이란이 양해 각서 서명을 완료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양해 각서란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문서이기 때문에, 빠르면 월드컵이 끝난 후 파기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측이 합의를 깰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고질적인 낙관론자이다.)<br>이란은 이번 합의를 통해 얻고자 한 모든 것을 얻었다. 호르무즈 통행세(서비스 차지?) 문제도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낸 것 같다. 이란이 합의를 깰 이유가 없다.<br>미국이 이란에 많은 양보를 하면서도 이번 양해 각서에 서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국제적 에너지 위기. 미국이 비축유를 풀면서 유가 방어를 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전쟁을 두 어 달 더 끌면 앞으로의 문제는 고유가가 아니라 원유 자체의 부족이 될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군자산을 중동에 계속 몰아넣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동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 빨리 종식하고 자신의 앞가림(아메리카 대륙과 인도-태평양에서의 중국 세력 억지)을 해야 한다. 허튼 데 탄약과 군자산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이러한 상황이 단시일 내에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즉, 미국이 이번 합의를 깰 이유가 없다.<br>본협정 단계에 들어가면 특히 핵문제에서 양측이 이견을 좁힐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이 애초 원했던 것은 기존 고농축 우라늄을 해외 반출하고, 앞으로의 농축 할동은 한 세대 정도 유예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은 이란의 핵기술 역량, 즉 이란 핵기술자의 역량을 아예 무력화할 것을 요구했었다. (한 세대 동안 핵기술에서 손을 떼면 이란의 핵역량은 무력화된다.) 그런데 나는 이번 양해 각서에서 미국이 이미 이러한 입장을 포기했다고 본다. 양해 각서에 양국은 상대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그동안 이란이 주장해 오던 것이었다. 즉, 핵기술 개발은 각국의 주권 사항이라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이란 말이 맞다. NPT나 IAEA같은 프레임워크 안에서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각국의 주권 사항이다. 아마 미국과 이란은, 기 고농축 우라늄은 국제 기구의 감시 하에 이란 내에서 희석하고, 앞으로의 농축 활동은 오바마 협정에 준하여 한다는 데 어렵지 않게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관련하여 한 가지를 더 언급하자면 최근 뉴스에 이란이 미국에, 미국이 이란을 재침공하면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선언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 있었다. 미국은 중동에서 이렇게 긴장을 극대화할 이유가 없다. (이란은 호르무즈 통제권을 유지하는 한 구태여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란이 잘 생각해서 결정할 사항이겠지만...)<br>그렇다면 당연히 이번 전쟁 왜 했는가 라는 질문이 나온다. 답은,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을 위한, 이스라엘에 의한, 이스라엘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적대적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소국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영속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의 답은 그레이터 이스라엘이라는 프로젝트, 즉 이스라엘 팽창주의였다. 이 프로젝트의 두 가지 큰 고비 중 하나가 이란의 무력화이고 그 다음이 터키인데, 이번에 그 첫 번째 고비에서 이 프로젝트는 영구히 좌절된 것으로 본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황당하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이스라엘은 나토의 일원이자 군사 강국인 터키를 주저앉혀야 한다. 누구의 무기로? 미국과 유럽의 무기로. 즉, 나토의 무기로. 더구나 터키와 전쟁이 나면 그리스도 참전하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의 또다른 전쟁. 이스라엘의 이런 망상적인 모험주의에 미국이나 유럽의 어느 나라가 동조할 수 있을까?) 미국과 이란의 양해 각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즉 팽창주의 노선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이미 영국이 이스라엘에 전쟁을 멈추라고 압력을 주기 시작했다. 유럽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이스라엘에 쓸 수 있는 레버리지가 많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자급률이 낮은 소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스라엘의 공공연한 팽창주의는 이미 역풍을 맞고 있는 중이다. 이스라엘 팽창주의의 직접적 목표가 되는 터키,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등이 군사 협의체 논의를 시작했다는 뉴스도 있다.&nbsp;<br>이런 의미에서 이번 양해 각서의 가장 놀라운 조항은 첫 번째 조항, 즉 전 전선에서의 전쟁을 영구적으로 종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미국이 이스라엘의 팽창주의를 저지할 것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로서는 충격적인 조항이지만 미국으로서는 논리적인 선택이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전쟁을 계속하면 이란이 이스라엘을 탄도 미사일로 공격할 것이고, 그러면 미국 함대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것들을 요격해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는 미군의 군자산을 중동에 계속 묶어두면서 아까운 탄약을 지속적으로 소모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국제적 에너지 위기는 덤으로 따라온다.&nbsp;<br>(물론 이러한 미국의 "배신"은 미국내 이스라엘 로비 그룹의 분노를 낳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트럼프에 대한 개싸움이 시작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든 누구든 미국의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위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br>그러므로 나는 이번 양해 각서가 실질적인 종전 합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nbsp;<br>이번 전쟁 초기에 카타르 외무부 장관이 한 말이 기억난다. "전쟁이 어떻게 되든 우리 옆에는 이란이 계속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사갈 수도 없고 그들이 이사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공존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nbsp;역사적으로 유럽은 그러한 공존에 성공하지 못하고 두 번씩이나 세계 전쟁을 벌였다. 이렇게 된 데에는 유럽 각국이 고만 고만하다는 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미국이나 중국같은 큰 나라가 지역 안정을 보장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어차피 이란은 중동 아랍 국가들과 사이가 개선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란은 중국을 끌어들여 중동 지역의 평화를 보장하려 하고 있다. 다양한 보장 체계를 구성하여 중동에 평화가 안착하기를 기원한다. - 나 개인적으로는 5년 안에 이란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이란 전쟁 뉴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336643</link><pubDate>Mon, 15 Jun 2026 1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336643</guid><description><![CDATA[미국과 이란이 곧 종전 양해 각서에 서명할 것이라 한다. 좋은 뉴스다. 이것으로 이번 전쟁이 완전히 끝이 나기를 희망해본다.<br>이번 전쟁의 승자가 누구고 패자가 누구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것 같다. 특히나 이란에 있어서는 그렇다.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최고의 전략적 목적은 실존에의 위협 없이 번영하는 국가를 건설하는 일일 것이다. 이란 입장에서 보면 핵보유나 호르무즈 해협 통행세 같은 부정적 수단없이 이러한 목적을 이루어 낼 수 있다면 최상일 것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분명한 괴리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바 이란은 현명한 나라이기 때문에 잘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북한은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보장하기 위해 핵보유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번영이라는 또다른 목적에는 분명한 장애가 되고 있다.)<br>희망적인 뉴스가 하나 더 있었다. UAE가 이란에 백억 또는 이백업 달러 지원금을 주기로 약속했고 이미 그 일부 대금은 집행을 마쳤다는 것이다. 당연히 미국의 동의 하에 이루어진 일이고, 그 반대 급부는 이란이 UAE에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지난 번 아파치 헬기 피격 사태 때 이란이 UAE에 보복 공격을 하지 않은 이유가 이렇다는 것이다.<br>UAE는 이번 전쟁 때문에 경제가 절반 수준으로 절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UAE가 아무리 친미나 친이스라엘로 밀착해도 바로 코 앞의 이란으로부터 UAE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현대 전쟁은 서구 세력의 이권 놀음의 부수물일 뿐이다. 이번 이란 전쟁도, 이스라엘로서는 지역의 강대한 적을 눌러 앉히기 위해, 미국으로서는 기존 이란 정권을 몰아내고 친미 팔레비 괴뢰 정권을 내세워서 이란의 자원을 통제하고, 그것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벌인 전쟁인 것이다. 보통 같으면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퇴락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끼여 들어 이것 저것 줏어 먹었겠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실패가 너무 자명하여 이네들이 쉽게 동참할 수 없었다. 반복되는 역사이고 반복되는 경험이다. 이번 전쟁으로 중동 국가들이 깨달은 바는 분명할 것이다. 즉, 지역에 평화 프레임워크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중동 지역은 공멸이라는 것이다. 공존을 위해서는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UAE 입장에서 보면 이란은 광대한 영토, 인구, 자원,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나라를 다른 강대국에 기생하면서 그것의 힘으로 눌러앉히려고 모의해보았자 최선의 결과가 공멸이라는 것이다. 이란도 자신의 체급이 지역 내 국가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의 얘기를 경청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br>어쨌든... UAE는 미국에게 이란의 공격을 막아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을 것이고 미국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을 것이다. UAE는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이란과 접촉할 것이라고 미국에 통보했을 것이고 미국은 이를 허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UAE는 이란에 막대한 자금을 보낼 것이라고 미국에 다시 통보했을 것이고 미국은 이를 묵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목도한다. 중동에 영구 평화 프레임워크가 구축된다는 것은 미군이 이 지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중동에서 철수할 것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피렌체 여행(4/26~5/2)</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302383</link><pubDate>Thu, 28 May 2026 19: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302383</guid><description><![CDATA[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다. 영화에서 보던 좁은 골목들을 택시가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숙소는 4, 5층 정도 높이의 아파트 건물이었다. 페인트 조각이 덜렁거리는, 그런 매우 낡은 인상을 주는 건물이었다. 현관문 열쇠는 바지에 넣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다. 이 정도가 피렌체에 대한 첫 인상이다. 안내인 아저씨가 근처에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기에 그러려니 하고 가 본 식수대. 약 탄산수였다. 물맛이 좋아 여행 내내 아침 저녁으로 여기서 물을 뽑아 마셨다. 그립다.<br>(보기엔 이래 보여도 물맛은 최고였다.)<br>피렌체는 그 자체가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도시 구석 구석이 시선을 요구한다. 날씨도 좋고, 특히 두오모 성당 근처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의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두오모 성당 종탑도 올라가고 우피치 박물관도 가고 등등 피렌체에서 해야 할 것들은 어느 정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로스코 전시회 등은 예약을 해두었지만 포기해야 했다.<br>(어느 도서관의 야외 테라스. 주로 젊은이들이 노트북과 책을 가지고 뭔가를 열심히 한다. 두오모 성당의 돔이 잘 보이는 곳이고 해를 피할 수 있는 곳이고 맛있는 커피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br>그렇게 영국으로 돌아왔는데 웬지 유럽 문명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렌체, 시에나 등의 그 유래가 없고 생생한 환경에서 물빠지고 무미건조한 환경으로 옮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카푸치노의 맛을 새로 들여버렸다. 이탈리아에서 먹던 카푸치노 생각이 나서 이곳 영국의 카페들에서 먹어보았는데 너무 실망스러웠다. 차라니 내가 만들어 먹는게 낫겠다... 문에 도어벨을 새로 달아야 했다. 와이파이를 잡고 이메일 인증을 하고... 밖에서 누가 벨을 누르면 안에서 그 벨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만인 장치에 현대 기술이 총동원된 이 복잡함이란 도대체 무엇이람! 나는 단순한 일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접근하는 방식이 그리워졌다. 바지 주머니 속의 큼직한 열쇠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도나텔로라는 조각가를 발견했다. 두오모 박물관에서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상을 보는 순간을 돌이켜 보게 되는 지금 이 시점에도 나는 그때 느낀 충격과 전율과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감동을 억누를 길이 없다. 그런데 나의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서 도나텔로의 다비드상이 소장되어 있는 바르젤로 미술관에는 가보지도 못했고, 산 로렌초의 설교단 부조는 그것이 도나텔로의 것인지도 모른 채 쓱 지나치고 말았다. 나는 그 설교단 부조를 내 눈으로 다시 직접 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걸 사진으로 먼저 보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피렌체의 그 골목 골목들이 너무도 그립다. 과장하자면 한 집 건너 카페(바)가 있고 식당이 있고 가죽 공방, 가구 공방이 있는 그 골목들이 그립다. 피렌체에 가면 티본 스테이크를 먹어봐야 한다기에 먹어봤는데 맛있어서 또 한번 먹어야겠다고 맛집이라는 데를 찾아갔다. 개시 전인데도 줄이 죽 늘어서 있었다. 나는 줄 서서 먹을 정도로 먹는 데 에너지를 투여하고 싶지 않다. 노동절 휴일 전날이라 그런지 맛좋다고 온라인에 소문난 집들 앞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결국 숙소에서 30초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 여기가 맛집이네 하는 찬탄이 절로 나왔다. 다 맛집이다. 다들 좋은 스테이크를 내놓고 맛있는 커피를 내놓는다. 이탈리아의 가게들이 다 맛집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삶의 양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고 어떤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br>(막달라 마리아상)<br>이탈리아에서 기념품으로 막달라 마리아상의 마그넷, 그리고 13유로짜리 단테상을 사왔다. 나는 &lt;신곡&gt; 중에서 '지옥편'을 읽었을 뿐이고 별 감흥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와 어떤 연결점을 만들기 위해 궂이 궂이 단테상을 사왔다. 그런데 단테의 옷깃이 살짝 깨져 있다. 아마 이탈리아에 다녀오기 전이었다면 이런 작은 결점은 나에게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문제가 된다. 나는 그걸 어떤 식으로 수선할까를 계속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이렇다: 저 작은 단테상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사람 머리 크기의 단테상을 사자.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단테를 읽고 단테를 사랑하도록 해보자.&nbsp;<br>이상이 피렌체를 다녀온 후의 휴유증이 되겠다... &nbsp;&nbsp;<br>추) 두오모 성당의 파사드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그런데 나를 진정으로 감흥시킨 것은 그 앞에 있는 세례당이었다. 세례당 안도 사람으로 북적였고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의 허투른 논쟁과 고뇌와 악다구니를 다 내려놓고 스스로를 침묵 속에서 쉬게 하도록 이끄는 분위기, 성소의 분위기.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나는 이 성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상을 살다 아침이나 저녁에 모퉁이 한 두 군데를 돌면 나타나는 성소, 그 안에서 잠시 서서 묵상하고 다시 나설 수 있는 그런 성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8/pimg_713937146513734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302383</link></image></item><item><author>weekly</author><category>Weekly Me</category><title>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weekly/17300403</link><pubDate>Wed, 27 May 2026 2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weekly/17300403</guid><description><![CDATA[이걸 보려고 네플릭스를 한 달 결제했다. 초반 에피소드 세 편 정도를 보고는 아내에게 말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되나? 너무 엉망인데... 6편이 감동적이라는 얘기도 있으니 좀 나아지면 알려줘.<br>나아졌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궁금함을 참다 못해 마지막 두 세 에피소드를 찾아보았다. 여전히 엉망이었다. 최종적으로, 아내는 졸작이라 말했고 나는 방송 사고 수준이라고 말했다.<br>나의 가장 커다란 문제 제기는 이렇다. 이 작품은 작가 노트 속의 기록들이 충분한 육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본으로 납품된 것 같다는 것. 에피소드의 대부분의 시간이 지지부진, 중언부언, 별 영양가없는 대사들과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즉, 각 에피소드의 상당한 시간이 그저 낭비되고 있다는 것.<br>취향상 나는 박해영 스타일의 작가들에게 별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나의 아저씨"나 "나의 해방일지"가 수작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들에 내가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더라도 이 작품들이 이뤄낸 성과들을 전부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닌 작품, 나오지 말았어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br>이 작품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가 없다. 한 사람이 길고 길게 얘기하고 다른 사람은 듣는다. 역할을 바꾸어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nbsp;<br>이 작품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관계도 없다. 언제나 황동만 옆에서 사람 좋은 미소만 짓는 그 사람은 황동만의 친구인가? 변은아와 황동만은 연인 관계인가? 그들은 키스하고 섹스를 나누는 그런 관계인가? 작가는 그런 진정한 관계를 그리는데 많이 서툰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서툼이 이 작가의 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다. 만일 황동만과 변은아가 키스하고 섹스하는 연인 관계, 아마도 진정한 쏘울 메이트 관계로 그려졌다면 사람들이 이 작품에 그토록 감정이입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br>황동만은 탁월한 독설가다. 드디어 그의 첫 작품이 나온다. 어떤 작품일까? 황동만의 독설의 희생자들은 이 작품에 어떤 독설을 쏟아낼까? 잔뜩 기대하고 마지막 장면들을 본다. 그리고 작가가 급하게 메가폰을 들고 "평가 중지!"를 외치는 꼴을 보게 된다. 극중 인물들은 황동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감격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고, 황동만 독설의 가장 큰 희생자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급기야 황동만은 신인감독상을 탄다. 평가하려 들지 말고 그저 보고 듣고, 그리고 추앙하라!<br>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진정한 관계도, 진정한 대화도, 진정한 열림도 없이, 저마다 자신들의 고뇌, 상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러므로 단지 위로받기를 원하는 사람들, 그것을 극화하고 이상화한 작품에 제대로 된 비평 한 줄 발견하기 힘든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다.<br>철학도로서 말하건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라는 제목은 폭력적이다. 나는 나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지 않다. 왜 나를 그 싸움에 끌어들이는가? 나의 존재가, 세계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은 사실성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존재와 세계의 존재에 대한 하나의 이해,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nbsp;<br>지금 논의되고 있는 관점에서 보자면 세계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내가 카푸치노보다는 에스프레소 마시는 것을 선택했다면 나는 에스프레소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내가 나의 삶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나의 삶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사실성에 속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나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황동만의 형이 술로 세월을 보내는 것은 삶이 원초적으로 무가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술 마시며 세월을 보내는 것을 다른 방식의 삶보다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br>원초적 사실성은 인간 존재가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유한자라는 데 있다. 가치와 의미도 인간이 유한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나의 삶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술 마시는데 쓸지 시를 쓰는데 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삶의 조건이 원초적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이라면 삶의 자원을 술을 마시는데 쓰든 시를 쓰는데 쓰든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삶의 조건이 유한한 자원을 사용하는 데 있다면, '잘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삶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잘 사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선험적 기준은 없다. 그 기준, 그 가치는 우리가 삶을 살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nbsp;<br>그런데 삶을 산다는 것은 실재와 만난다는 것을 뜻한다. 실재란 나의 의도, 기획 등이 실현을 보기 위해 뚫고 지나가야 할 나 아닌 어떤 타자를 뜻한다. 내가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냉장고까지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꺼내 마셔야 한다. 이런 일은 머리 속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실재는 불투명하며 저항값을 갖는다. 산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인데 행동에는 항상 실재라는 저항체가 개입한다. 우리는 실재라는 저항체, 인간 타자라는 또 다른 종류의 저항체를 무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느낀다. 그 욕망은 삶은 무가치하다, 사람은 무의미하다 라는 말로, 추상적으로나마 실현을 본다. 열려 있음은 실재를 개입시킨다. 그러므로 관계를 닫고, 대화를 닫아야 한다. 인간 타자는 나에게 나 자신의 사실성을 직면하게 하고 그것은 종종 고통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타자성도 무화시키자. 그러면 남는 것은 완전한 고립 또는 추앙 밖에 없다. 나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 진절머리나는 자폐성에 답답함을 느낀다. &nbsp;&nbsp;<br>철학도로서 한 마디만 더 하자. 철학자는 눈이 없다. 철학자는 개념으로 사고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자, 몸으로 사는 자, 온몸으로 현실에 육박해들어가는 자를 일러 예술가라고 한다. 예술가는 개념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관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이다. 철학자는 논리에 따라 운동하지만 예술가는 그 논리 자체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것이 철학자의 근원적 결핍성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예술 영역을 기웃거리며 뭔가 쉰 밥 남은 것은 없는가 하며 살핀다. 이런 것이 철학자의 운명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온몸으로 현실을 살아낼 자신이 없으면서도 예술가를 자처하는 무리 중의 일부가 철학자들의 서재를 뒤져본다. 거기에서 좀 있어 보이는 귀절을 자신의 작가 노트에 옮겨 적고는 그것을 그대로 대본이라며 연기자, 연출자에게 건네준다. 이 뻔뻔함이란! 이보다 더 부조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예술가여, 한국의 예술가여, 그대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nbsp;&nbsp;&nbsp; &nbsp;&nbsp;<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