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김정희 기념관에서 산 세한도 다포. 애초부터 다포로 쓸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종이보다는 오래 가겠지 싶어 그냥 다포로 샀다. 어디다 쓸까 하다가 책장에 휘장처럼 걸어놓고 있다. 글쎄... 나의 정신 세계(그런 것이 있다면!)의 어떤 상태같은 것을 이 그림이 반영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왜 샀을까... 이 위화감을 어찌 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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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이었고, 아마 이만한 기간 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이 아니라 나 자신일 것이다. 어느 곳을 가든 누추한 곳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에... 흠 이렇게 말해도 될런지... 나는 어느새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송광사에서 지눌의 '진심직설'을 샀고, 제주 김정희 유배관에서 세한도 다포도 샀지만... 영국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런 고도로 형식화한 물건들에 살짝 정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형식화에 이미 지쳐버렸는데 고도로 형식화한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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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기상이 번역한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펴보았는데 그 안에 책갈피처럼, 대학 때 들었던 김태경 교수님의 플라톤, 혹은 그리스 철학에 대한 강의 노트 한 페이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도 처음 보는 것인데, 어쨌든 내용이 나쁘지 않아 기록 삼아 올려 놓는다. (저기 노트된 것이 진짜로 다 강의된 것인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의심을 하는 이유는, 아랫 부분의 내용은 내가 기억하기로 거스리의 <희랍 철학사>에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김태경 교수님의 강의를 노트하다가, 내가 그 책에서 읽은 부분을 함부로 (즉, 출전 표시 없이) 뒤섞어 놓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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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마르크스가 그랬다던가,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이 유해진다고 하던데, 그게 맞는 소리인가?" 마르크스가 자신의 말을 긍정하고 있는 것인지, 부정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그것에 당혹해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어제 아내에게 비슷한 소리를 했다가, 내가 나이가 들면서 유해진 것인지 어떤지 확정할 수 없어서 작은 당혹에 빠졌었으니까... 어쨌든 내 말의 의도는 이랬다. 예컨대, 나는 예전에 뮤지컬을 가장 저열한 예술 쟝르라고 생각했다. 스펙타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예술이므로. 그래서 그동안 보았던 위키드, 레미제라블, 파우스트 등등은 내게 죄다 시간 낭비이자 돈낭비에 불과했다. 지금 나는 내가 그런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아쉬워 한다. 그냥 마음을 열어 놓고 즐기면 되었을 일을... 이런 강박을 찾으려면, 슬프게도, 너무 많다. 예를 들면, 모로코 여행 같을 때, 그곳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너무 꽁꽁 싸맸었다든지 등등... 


하이데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철학의 희화화를 경계한다. 즉, 그 말장난을. 나는 하이데거를 서양 철학사에 대한 가장 탁월한 교사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후기 저작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말장난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사르트르적 의미에서 말하는 코기토를, 혹은 어떤 경험적 기초를, 혹은 여하한의 검증 방법을 떠나 있는 영역(흔히, transcendental하다고 하는) 주변에선 무성한 말들이 자유방임적으로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름 꼼꼼하게 하이데거를 읽으면서(<예술 작품의 기원>),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사실 <존재와 시간>과 단절적으로 놓여 있지 않다. 똑같은 관점에서 보면서 다른 강조점을 주고 있을 뿐이다. 그 둘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하이데거의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고 느낀다. 내가 배운 것은 기술description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 것이 우둔한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고집하던 또 하나의 편견이 스그러져 가는 것 같다. 


경험의 확장은 시간 속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서... 라는 말과, 좀 더 경험을 해보니... 라는 말이 비슷한 용례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관건은, 이런 평균적인 의미에서의 시간과 전혀 다른 데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열려있음'이라는 말로 잘 표현될 것이다. 아이는 가장 잘 열려있다. 그러므로, 어쩌면 나이가 듦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아이의 시간성으로의 회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운명이라는 것은 (내가 과거의 나에 대해 한탄하는 것은 운명의 흔한 에피소드이다), 바로 그 열림과 닫힘의 변증법적 운동을 지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마 그 상대적으로 견고한 닫힘 속에 놓여있음을, 생물학적 죽음 등과 상관없이,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까뮈는 <패스트>라는 책에서, 아침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어떤 노인에 대해 기술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는 성인일까? 이 질문은 까뮈를 당혹케 하고 독자를 당혹케 한다. 아마 우리는 이제 이렇게 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 않아, 성인은 살아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지금 객관적인, 평균적인 시간성과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시간성이라는 개념 위에서 이런 잡담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쉽게 영원에 대한 논의로 이끌어져 들어가게 된다. 영원이란 삶이고 열려있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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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BBC를 시청할 수 있는 앱인 BBC iPlayer 영화 섹션에 한국 영화 세 편이 올라와 있다. (아마 한국에서 iPlayer를 이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악인전, 공작, 그리고 버닝. 이 섹션에 올라와 있는 외국어 영화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한국 영화가 세 편이나 올라와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왜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다.


악인전은 그렇고 그런 깡패 영화다. 마동석의 캐릭터 때문에 선택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마동석은 기존의 동양계 남성 배우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배우이다. 서구권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공작은 매우 우아한 첩보물이다. "팅커, 테일러..." 같이, 총격씬이나 추격씬을 필요로 하지 않는 스타일의 첩보물. 르 카레 원작의 작품들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실화에 기반한 것이니 만큼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매우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보인다. 많은 한국의 작품들에는 서구권 작품들에서 찾기 힘든 매력이 있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버닝.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보면서 까뮈의 이방인을 떠올렸다. 이방인은 형이상학적 소설이다. 그런 고로 주인공 뫼르소가 소설의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인격적 전변을 겪는 것도, 납득은 안되지만 그냥 넘어가준다. 어차피 우화 아닌가, 하면서. 그러나 버닝에서의 종수의 인격적 전변은 그런 식으로 양해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이 작품의 핵심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벤이라는 인물의 성공적 형상화가 이 영화의 주제에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감독이 만든 훌륭한 영화다.


악인전을 제하고 나 나름대로 평가해 보자면 역시나 한국의 작품들, 한국의 영화들의 장점은 리얼리즘에 있는 것 같다. 리얼리즘은 쉬운 쟝르이기도 하고 쉽지 않은 쟝르이기도 하다. 한국의 문화가 고도화될수록 리얼리즘에서 탈피하려는 유혹이 커질 것이다. 즉, 그러할수록 리얼리즘은 고수하기 어려운 것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여정일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한국은 일반 문화 대중과 문화 창작 집단 사이의 괴리가 크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이반이 필연적일 것 같지는 않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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