ペスト (新潮文庫) (改版, 文庫)
Albert Camus / 新潮社 / 196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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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뮈의 󰡔페스트(전염병, 역병)󰡕를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절정에 달할 때쯤 외신인가 어딘가를 통해서 코로나 때문에 카뮈의 󰡔페스트󰡕가 독서 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나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학창 시절 아무런 절실함도 없이 읽었던 󰡔페스트󰡕란 소설을 떠올리게 됐다.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스토리를 읽어야 한다면, 이 소설만큼 절실한 심정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달리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어학 공부를 겸해서 일어 번역본을 선택하게 됐다. 책을 받았을 때 쪽 수가 상당하다는 걸 알고선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코로나도 끝났으면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코로나는 여전한데 소설은 다 읽어버렸다.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작품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이 지금 내가 직간접으로 접하고 있는 코로나 상황이랑 상당히 유사한 데 놀랐다. ‘격리봉쇄라는, 코로나 이전에는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은 용어들이 페스트가 만연한 소설 속 도시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의료진은 밀려드는 환자와 사망자들로 고생을 하고 있었고, 시민들은 감염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었다.

 

소설 속 알제리의 한 도시는 완전히 봉쇄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그 도시의 이름은 오랑이다. 나는 그 이름이 왠지 코로나의 발원지로 추정되는 우한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카뮈의 예언력인 걸까? 그는 이 스토리를 자신이 지켜본 어떤 상황을 기반으로 쓴 것이라고는 하지만, 후세대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는 픽션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고, 앞으로도 반복될 이야기란 생각마저 들었다.

 

카뮈의 작품 스타일이 그러하듯, 특별한 갈등도 극적 긴장의 고조나 해소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지속된다. 도시가 봉쇄되자 사람들은 숨고 의료진을 비롯한 몇몇은 턱없이 부족한 의료 인력으로 자원해서 봉사 활동을 벌인다. 그리고 누군가를 이 도시를 몰래 빠져나가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의사 리외는 시종일관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한다는 듯이 하루 종일 녹초가 될 때까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때로는 노인 환자의 집으로 왕진을 다닌다. 그에게는 병을 앓아 어딘가로 요양 가 있는 아내가 있다.

 

무겁게 가라앉은 전염병의 도시 오랑의 일상을 마치 나 역시 리외와 동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무서웠다.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전염병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하루하루가 계속된다는 사실이. 그런 하루하루 속에서 리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거나 의문의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요양을 하고 있던 아내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기도 한다.

 

그러던 중 어떤 맥락도 없이 전염병의 기세가 진정된다. 그리고 오랑의 봉쇄가 풀리고 사람들은 전처럼 그 봉쇄가 풀릴 때까지 감춰뒀던 열정을 배출하는 데 열을 올리며 생의 승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환호한다. 봉쇄 해제와 아내의 사망이라는 극단적 소식 속에서도 주인공 리외는 별다른 감정의 기복 없이 의사로서의 생활을 지속한다. 사람들이 축포를 터뜨리는 속에서도 그는 냉정히 페스트 속의 삶의 양태들에 대해서 기록하던 그는 작품의 마지막 즈음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속옷 속에 잠들어 생존할 수 있다. 방이나 창고나 트렁크나 손수건, 휴지 속에 참을성 있게 계속 기다리다가 아마 언젠가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다시 그 쥐들을 깨워서 어딘가 불행한 도시에 그 시민들을 죽이러 향하는 날이 올 것이다.”

고강도 사회적 격리가 조만간 끝나리라는 희망에 살짝 부풀어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리우가 적은 마지막 이 말은 비수처럼 다가온다.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부본부장이 한 말처럼, 코로나 이전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같다. 󰡔페스트󰡕를 읽으면서 난 리외란 의사의 캐릭터를 머릿속에 계속 떠올려보곤 했다. 그러던 중 나는 권준욱 부본부장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혼돈과 고통 속에서 힘이 되는 건 정치인들의 열정적이고 굵직한 목소리가 아니라 냉정하고 차분한 방역 당국자들의 목소리가 아닐까.

 

 

이 시절에 가장 절실하게 와 닿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감기, 컨테이젼같은 영화에서 찾는다. 난 아직 이 영화들을 못봤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카뮈의 󰡔페스트󰡕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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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津安二郞的反電影 (平裝, 第1版)
吉田 喜重 / 世界圖书出版公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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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누가 갑자기 책을 선물했을 때가 가장 흔한 경우다. 내 기호에 맞지 않는 책이라면 그냥 훑어보기라도 하는데, 그래야만 책을 선물한 사람과 또 그 책의 저자나 출판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차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 선물이 아니라면 우연한 독서는 가끔 이렇게도 시작된다. 나는 보통 한 권씩 사는 편인데, 가끔은 쿠폰을 쓰기 위해서 자투리 금액을 맞추기 위한 책을 찾게 된다. 보통 몇 천 원 정도인데, 아무래도 책이란 게 최소 금액이 있다 보니 2~3천원 맞추기는 정말 어렵다.

 

물론 그 이상을 사도 되지만 금액 맞추기란 목적이 크기 때문에 가급적 그 금액 대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책이 잘 안 보인다. 내가 출판사를 해도 그런 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같다.

 

그런데 최근에 도저히 그 금액이라고 믿기 힘든 가격의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아마 2,400원인가 였던 것 같은데 무려 정가가 24,320원인 책을 2,400원 정도 거의 90% 할인된 가격에 구입했다. 이 책은 전부터 보관함에 담아뒀던 책으로, 가격이 비싸서, 그리고 주문하면 한 달 이상 걸리거나 기다렸다가도 정작 품절 통지를 받기 쉬워서 방치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일 배송이라는 문구를 달고... 아마도 이 책은 누군가의 주문으로 이미 국내에 도착해 있었다가, 정작 주문자가 취소를 했거나 하는 사정으로 미아 상태로 머물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여하튼 말도 안 되는 가격과 배송 속도에 만족하며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일본 저자의 책을 중국인이 번역한 것이다. 국내에는 아직 번역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 관한 책이다. 이제 한국영화하면 세계가 ~~!”라고 하는 상황이 돼버렸지만, 이미 일본은 그런 세계적 영화감독을 배출한지가 꽤 됐고 그중 가장 유명한 감독이 오즈 야스지로다. 그의 <동경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고 비교적 최근에 리메이크도 됐을 정도다.

 

주로 가족의 일상적 모습을 담고 가족이 결혼이나 죽음으로 이별할 때 느끼는 고독감을 차분한 구도로 잘 잡아낸다. 현란한 할리우드영화와는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뭔가 심심한 듯 그런데 지루하지 않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마음이 정화되고 서서히 고조되는 감정 속에서 마지막 장면까지 보게 되는 그 힘을 처음 느꼈을 때, 이 감독의 영화들이 가진 독특한 맛과 멋과 힘을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들여서 그의 dvd를 하나씩 봐나가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고 때로는 그의 영화에 관한 책도 한두 권정도 읽었던 기억도 있다.

 

수십 편의 영화 중 주로 <만춘>, <동경이야기> 중심으로 책의 내용이 구성돼 있다. 저자에 따르면 오즈 야스지로는 은은한 해학과 풍자를 가지고 있고, ‘사물의 시선을 활용해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 감독이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건 관객의 미소를 자아내는 감독의 솜씨 덕분이란 점을 생각하면 해학은 이해가 가지만 풍자는 선뜻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아마도 풍자란 당대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물의 시선대목은 마치 라캉식 독법같아서 낯설지만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적어도 위의 두 편은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뭐랄까, 평소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뭔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만날 건수를 찾지 못하다가 뭔가 하나가 생겨서 만나게 되는 상황이랄까. dvd 책꽂이 안쪽에 묻혀 있던 이 두 편의 dvd를 찾아냈다. 조만간 오랜만에 만나게 되리라.

 

오즈 영화는 두고두고 일정한 주기로 보면 좋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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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시대정신 - 한국영화 100년, 나의 영화평론 60년
김종원 지음 / 작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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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넷플릭스다 왓챠다 해서 개인이 소유한 휴대형 미디어를 통해서 영화를 보는 게 일상이 됐다. 나 역시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같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이와 더불어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를 포함한 영상 감상의 기회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실제로 많은 시간을 영상물 감상에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영화에 관한 글, 범박하게 영화비평이나 영화평론이라고 할 글을 읽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 초창기만 하더라도 영화평론가들이 적잖이 활동했고 그들의 평론에 주목하는 때도 있었다. 한데 요즘은 그 흔한 별점 서비스같은 걸 신경 써서 보는 사람조차 없어진 듯하다. 영화는 살고 영화평론은 죽어버린 시대같다. 영화는 감각 체험이고 영화평론은 이론적 성찰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바삐 돌아가는 이 시대에 보통 사람들이 뭔가에 대해서 성찰할 여유같은 걸 논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한데 우리의 감각적, 미적 체험의 대상이 되는 것의 성격을 요모조모 따져보는 비평이라는 영역은 우리가 앞으로 더 좋은 체험을 할 수 있기 위해서도 누군가는 맡아줘야 하는 게 아닌가.

 

 

어린 시절 토요명화던가. 그 프로 할 때면 화면에 나타나 영화 소개를 간단하게 해주던 정영일이라는 영화평론가가 있었다. 그때는 그가 영화의 하느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20대 때는 약간 현학적이긴 했지만 정성일을 뭔가 있는자로 믿었다. 그리고 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동진같은 편안해서 이웃같은 느낌의 평론가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엔 누가 있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정영일보단 밑이지만 팔순을 넘긴 지금까지 현역에서 뛰고 있는 김종원이라는 평론가가 생각난다. 노년에 들어 얼굴엔 살도 없고 목소리도 약간 떨리지만 항상 다정한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영화 관련 인터뷰를 하는 그 모습을 볼 때면, “, 나도 저렇게 늙어서도 미소를 지으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이 시대가 자신의 시대인 것마냥 어떤 위축감 없이 말하는 김종원은 주로 영상을 통해서 봤을 뿐, 글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에 그동안 쓴 영화평론을 모은 책이 출판됐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영화와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는 대략 2000년 이후 쓴 글들이 수록돼 있다. 영화와 역사란 제목의 1부에는 한국영화사와 관련된 글들이, 영화작가 배우론이라는 제목의 2부에는 저자가 주목한 감독이나 배우에 관한 글이, 영화일반론이라는 제목의 3부에는 1, 2부에 묶기 어려운 이러저러한 글들이 수록돼 있다.

 

 

어떤 글이든 본격적인 의미의 학술적 글은 아니고 대상을 자기식으로 소개하는 글들이 많다. 그리고 이 글들은 주로 어딘가 매체에 기고하거나 DVD 발간 시 해설로 쓴 것들이 많다. 영화평론이다, 영화 글이다 하면 손사래부터 치면서 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게 통상적일 텐데, 내 느낌으로는 그렇게 지루하거나 재미없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것보다 좀 더 긴 글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렇게 긴 호흡으로 읽지 않아도 되는 분량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소위 노친네글이니 요즘 감각에 맞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필자가 생각보다 젊은 감각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문체라는 측면에서도 매력은 있다. 약간 늘어지는 형태의 문체이지만 원래 시인으로 출발한 분이라 그런지 언어의 긴장감을 잘 살리는 문체여서 문학 작품적 품격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담백하고 세련된 운치를 느끼게 한다.

 

 

전체 글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글은 이창동의 밀양에 관한 글 빛의 알레고리, 소외된 피해자의 용서란 글이다. 왜 하필이면 밀양인가, 이 영화를 본 누구나 한 번쯤 자문해보는 문제일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번뜩이는 해석을 접하는 대목에서 방만한 독서 자세를 가다듬어야 했다.

 

 

부록으로 저자가 선정한 한국영화 100편 리스트가 있어 표시를 해보니, 대략 84편 정도를 본 것같다. 제작순 1번은 나운규의 아리랑이고 100번은 봉준호의 기생충이다. 과연 1번을 볼 날이 있을까.

 

 

이 책을 굳이 찾아 읽은 건 어떤 허전함, 아쉬움 때문이었다. 가늠하기 힘든 속도와 양상으로 변하는 삶 속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한 어떤 변화, 어떤 흐름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1937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84세다. 올해도 노익장을 유감없이 발휘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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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박정희 모더니즘 - 유신에서 선데이서울까지
권보드래 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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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 글은 󰡔경향신문󰡕 연재물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이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6여 년 전이 아닌가 싶다. 북한이나 미국이나 대만처럼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대권을 쥔 예는 있었지만, 아버지에서 딸로 대권이 주어진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였다. 그런 탓인지 몰라도 박근혜 대통령 통치 시기를 살면서 그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 건 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신문 연재라는 포맷 상 한눈에 잘 들어오지도 머리에 오랫동안 안착하지도 못하는 내용이라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보고 지나치고 말았다. 이 연재물을 맡은 이들은 한국 현대사와 문학 전공자들로서 그중에서도 명민하고 글솜씨 좋기로 소문난 사람들인지라 그들의 손으로 타고 넘어오는 역사적 사실들과 그에 대한 해석들을 흡수하는 시간은 꽤 흐뭇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연재물들은 시세의 흐름에 따라 곧바로 책의 형태로 묶였던 것같다. 어쩌면 연재하기 전부터 출판 계약이 돼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내는 쪽의 염원과는 달리 독자들은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나 역시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 미루다 올 초에 사서 정독을 하게 됐다.

 

1970년대 하면 유신독재와 산업화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아마도 관제 교육이 심어놓은 불가피한 선입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기의 면모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총체적인 측면에서 사회 세력 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고려하여 시종일관 객관적인 태도로 그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자신의 정치적인 시각이나 이해를 떠나 1970년대의 삶을 바라보는 소중한 하나의 시각으로 삼을 수 있을 것같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이해하게 된 점이 많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vod 서비스를 통해서 󰡔그땐 그랬지󰡕라는, 이 책이 조명하고 있는 시대와 거의 일치하는 시대의 삶을 담아낸 tv 다큐멘터리를 퍽 흥미롭게 보았다. 물론 정치적인 관점을 의도적으로 제거한 흔적이 뚜렷하지만, 기록으로서의 가치는 매우 큰 영상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은 무수한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 무수한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무수한 과거를 돌이켜보게 된다. 단지 회고적 감상에 젖기 위해서 과거를 들여다보는 건 아니다. 만약 그게 가능한 때가 있다면, 아마 그건 생을 다 살고 정리할 때쯤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내 생은 여전히 정리할 때는 아닌 것같고, 지금 현재의 삶과 1970년대, 1980년대는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가까운 과거임에는 분명한 것같다. 그럴 때마다 좋은 친구나 선생을 만나는 건 무척 중요한 경험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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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우 김성환의 편편상
김성환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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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나 동경으로 헤매던 때가 있었다. 책이든 음반이든 영화든 화제가 되는 것들이면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열정으로 보고 듣고 했다.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이렇게 끝없이 따라잡기에만 골몰하는 게 무척 힘든 일이란 걸 느끼게 됐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비육체적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탓일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남들의 시선과 관심이 모이는 것으로부터 한발 떨어져 있으면서도 자못 태연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대신 일종의 반복하기나 다시 보기같은 걸 하게 됐다. 한번은 스쳐갔거나 미쳐 스쳐가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보는 일들.


그렇게 해본 결과, 의외로 놓친 부분이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 그래서 사람들이 같은 책이나 영화를 몇 번씩이나 보는구나 싶었다. 어차피 현대문명의 압도적 물량공세를 당해낼 순 없는 게 유한한 인생이라면, 눈을 뒤로 돌려 과거를 음미하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좋고 유익한 게 지난 간 것에는 없다는 보장도 없을 테니. 아마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 새로움에 대한 부당한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같고, 그래서 나이 든 자들의 표정이 그토록 편할 수 있는가 보다.

 

오랜만에 책 한 권 읽었다. 󰡔고바우 김성환의 편편상󰡕이라고, 그렇게 두껍지 않다. ‘고바우 영감이라면 실제로 본 적은 없어도 한번쯤 누구나 들어봤음직하다. 네 컷 시사만화의 대명사니까. 옛날 만화들 중에서도 이런 시사만화는 요즘 시선에서 보면 큰 임팩트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아 보면 지나간 하루하루 사람들의 관심사나 생활상 등이 읽혀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시사만화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시사만화야 말로 민중의 생활 감각을 잘 알아야만 그릴 수 있고 호응도 받을 수 있어 항상 세상만물에 대한 예리한 비판적 촉수를 요구하는 영역일 것이다.

 

이 책을 구입할 때는 그런 예전 시사만화 모음집이겠거니 했다. 한데 받고 보니 김성환 화백의 글이 주가 되는 책이었다. 물론 글 사이에 만화풍 그림이 하나씩 들어 있기는 했으나... 동양 삼국의 사화(史話)나 역사적 사실에서 취재한 내용들에다 화백 자신의 생각을 가볍게 덧붙인 것인데, 그림쟁이가 글을 쓰면 얼마나 쓸까, 하는 얕보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깊은 공부가 깔린 글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내용들이 꽤 거론하고 있는데, 비록 얄따란 책일지라도 틈틈이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동영상 보기에 너도나도 바쁘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책 읽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또 길게 이어지는 두꺼운 책은 더더군다나. 하지만, 이 정도 책은 넣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어보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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