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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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어보지 못한 독특하고 낯설면서 신기한 소설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열네 살 소년 베니는 일본인 아버지(정확히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 주위 사물들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물의 말을 듣기 때문에 일상 생활이 힘들어진 베니는 자해를 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베니의 엄마 아나벨은 미국인이고 싱글맘이다. 엄마 역시 남편의 죽음 후 충격으로 엄청 살이 찌고 집안에 물건을 쌓아두는 '호더'가 된다. 끊임없이 쓸데없는 물건들을 사고 쌓아두며 집은 쓰레기집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에 겪는 상실감과 고통의 시간들이 지속된다. 베니와 엄마는 끊임없이 상처 받고 좌절하지만 결국에는 희망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은 줄거리나 사건을 따라가기 보다 생각의 흐름을 읽는 느낌이다. 챕터별로 주인공 베니와 책이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독특했다. 책은 전지적 시점으로 모든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베니는 그것에 답하는 형식이다.

이런 서술 방식이 꽤 낯설어서 처음에는 몰입이 쉽지 않았다. 또 중간 중간 스토리와 무관하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있어서 적응이 어려웠다. 하지만 문장은 쉬운 편이라 중반 이후부터누 읽는데 속도가 붙었다.

베니의 아버지가 일본인이라는 것과 엄마 아나벨이 구입한 책에서 선불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 책의 저자인 아이콘은 우리 나라나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곤도 마리에'가 연상되지만 선불교 승려로 나온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그 역시도 미국, 일본 혼혈에 선불교 승려라고 한다.

원제 'The book of Form and Emptiness'에서부터 보이지만 그래서인지 명상이나 불교적 인연과 같은 주제로 쓰인 내용이 많다. 어렵거나 심오하지는 않았지만 무척 독특하게 느껴졌다. 인종차별이나 도서관 노숙인, 실업, 대통령 선거 등 미국 사회를 묘사하는 내용도 이 신비로운 주제와 자연스럽게 엮여있어 기억에 남는다.

베니와 애너벨을 도운 것은 엄청난 기적이나 사건이 아니다. 알레프, 코리, 까마귀, 도서관 노숙자들과 같은 작은 인연들이 모여 서로를 도운 것인데, 이는 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듵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작은 인연들에게 귀 기울이고 서로 돕자. 결국 이 단순하고도 소중한 주제가 이 긴 이야기 끝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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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영화 특별판)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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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를 거부하며 세상과 단절된 일곱 아이들이 거울을 통해 외딴 성에 모인다.

독특한 설정의 이 소설은 이번 주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중학생 아이들이 주인공이라 십대들의 감정과 정서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묘한 분위기와 함께 초반부터 던져지는 미스터리가 소설을 계속 쫓아가게 한다.

후반의 반전도 재미있고 적절하다. 실은 수십년 장르물 독자로써 예상한 반전도 있었다. 늑대가면 소녀과 관련된 결말은 전혀 의외의 반전이라 신선했다. 결말에 퍼즐처럼 맞춰지는 구조가 마음에 든다.

애니메이션도 보고 싶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감성과 주제가 애니메이션으로 잘 표현되었을 듯 하다. 원작소설과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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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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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어떤 곳인가?' 질문하게 하는 책.

동네 이름이 들어간 '아무튼' 시리즈의 <아무튼, 망원동> (김민섭 저)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아무튼, 망원동>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추억하는 글이라면 <아무튼, 현수동>은 어른이 된 도시인의 관점으로 거주하길 바라는 동네의 모습에 대해 썼다.

'현수동'은 실재하지 않는 동네다. 하지만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꽤 여러번 등장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편인 '현수동 빵집 삼국지' 정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서 현수동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이 '현수동'이 밑도 끝도 없이 공상만으로 이루어진 유토피아 같은 곳은 아니다. 장강명 작가가 오래 거주한 광흥창, 현석동 일대를 토대로 구상된 곳이다.

실제로 작가가 조사한 동네의 역사, 인물 등에 대한 내용이 재미있었다. 특히 밤섬에 대한 역사는 거의 평생을 서울에 살고 있는데도 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한 번쯤 찾아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최근 몇 년 들어 나도 '살고 싶은 동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생을 순전히 내 의지대로 거주할 곳을 정한 적이 없다. 그래서 여건이 주어진다면 어디에서 살지 가끔 파트너와 얘기하곤 한다.

이 때 나눈 조건의 많은 점이 장강명 작가의 생각과 겹쳐서 반가웠다. 특히 상권과 도서관, 걷기 좋은 길에 대한 내용에 공감한다. 여기에 굳이 나만의 조건을 더한다면 클래식 공연장과 가까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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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간 -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수전 톰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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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라는 악기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여정을 100곡으로 소개하는 책.

저자인 수전 톰스는 영국의 피아니스트다. 유튜브에서 이 분을 찾아보니 꽤 연세가 있으신 분이었다. 서문에 나오듯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기간 동안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집에 갇혀 있는 동안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디지털 피아노 가격이 상승했을 정도다. 이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나다. 집에 있는 동안 애들이 치다 방치해 둔 디지털 피아노를 30년 만에 다시 치게 되었다. 스스로의 어설픈 연주에 좌절하고 있지만 피아노 곡을 듣는 것은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피아노는 다른 클래식 악기들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짧다. 바흐의 말년에서야 피아노가 등장했지만 이 책은 바흐부터 시작한다. 그가 작곡한 건반악기 곡들의 영향력은 아직까지 절대적이라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첫곡으로 나온다.

이렇게 바흐부터 연대기 순으로 주요 피아노곡들이 소개되어 있다. 절대 빠질 수 없는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등 주요 클래식 작곡가들 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도 많다. 이를테면 존 필드나 발라키레프, 야나체크, 그라나도스, 스크랴빈, 풀랑크 등과 같은 다소 생소한 곡들도 고르게 나와있다. 워낙 피아노 곡이 방대하기 때문에 저자도 어떤 곡을 넣을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너무 유명한 곡들만 소개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곡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이 중 생상스의 <피아노 3중주 2번>은 새로운 발견이다. 피아노 독주곡이나 협주곡이 아닌 실내악은 그 동안 별로 관심이 없었다. 피아노의 역할이 현악기의 보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곡은 피아노와 현악기의 조합이 정말 좋았다. 이 책 덕분에 실내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모든 곡에 QR코드가 있어서 읽으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작곡가 소개, 작곡 배경 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인 저자가 실제 연주하면서 느꼈던 감상과 의견이 있어 더 특별하다.

요즘 시대 정신에 맞게 저자가 여성 작곡가들을 소개한 점이 눈에 띈다.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이 어떻게 남성들만의 리그에서 소외되고 폄하당했는지 알려준다. 처음 들어본 여성 작곡가 마리아 시마노프스카나 에이미 비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주디스 위어의 존재를 알게 해준 이 책이 고맙다.

현대 음악가들과 재즈도 나와 있어서 공부가 된다. 피아노는 과거의 악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덕분에 낯선 현대 음악 뿐만 아니라 클래식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재즈와 조금은 친숙해졌다.

저자가 직접 전망하는 피아노 곡의 미래에 대한 맺음글도 기억에 남는다. 피아노 곡이 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여 계속 사랑받을 것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독자라면 이 책은 지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래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나 피아노 곡을 좀 알고 있다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 동안 피아노 곡과 클래식 작곡가들에 대해 산발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각 조각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이 책을 통해 총정리된 것 같다.

곁에 두고 자주 펼쳐 볼 책이다. 물론 피아노 곡을 들으면서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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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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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정통 추리, 범죄, 스릴러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영국 컴브리아 지역. 구글링을 해보니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고향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피터 래빗 관광 패키지 상품안내가 많더라.)

또 컴브리아는 '환상열석'이라는 돌로된 고대 유적이 많은 곳이다. 소설은 이곳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피해자들은 컴브리아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남자 노인들로 모두 끔찍하게 거세되어 불탄 채로 환상열석 주위에서 발견된다.

영국 경찰 중범죄 수사국의 '틸리 브레드쇼'는 불탄 시체를 정밀 조사하던 과정에서 한 피해자의 가슴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한다. '워싱턴 포'. 불미스러운 일로 정직 중인 형사의 이름이었고 이 발견으로 인해 워싱턴 포는 복직하여 사건에 투입된다.

집요하고 냉정한 형사 워싱턴 포와 천재적이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틸리 브레드쇼가 콤비를 이루며 사건을 해결한다. 마치 홈즈와 왓슨처럼. 이 중 '틸리 브레드쇼'의 캐릭터가 새로웠다. 수학과 통계에 천재적이지만 눈치 없고 순진하며 직업 정신이 투철한 '여성'이라는 점이 돋보였다.

추리는 사건의 외곽에서 중심으로 서서히 파고드는 형식이다. 여러겹의 결이 차곡 차곡 쌓이는 것 처럼 단서가 하나씩 풀리고 종국에는 범인을 밝혀낸다.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설 속 연쇄살인마의 범행 수법이 잔인하다. 그리고 피해자 중 하나에 주인공의 이름을 새겼기 때문에 이 미스터리가 결말까지 긴장감을 준다. 범행의 동기는 조금씩 밝혀지는데 '대체 나는 왜 끌어들이는거지?' 이 질문이 주인공을 끝까지 파고들게 한다.

훌륭한 추리소설이 대개 그렇듯이 역시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범인이 밝혀지고 주인공은 살아나지만 끝끝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남겨 두는 영리함도 있다. 주인공이 안고 있던 트라우마도 일부 해소된다.(물론 충격적인 다른 사실도 알게 되지만) 한편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지만 그것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 때문에 진실이 묻히는 엔딩은 씁쓸했다.

<퍼핏 쇼>는 추리 소설의 전형적인 패턴과 클리셰에 충실하다. 그렇다고 식상하다거나 거슬리지는 않는다. 익숙한 장치와 구성이지만 탄탄하게 잘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의 장르적 특징을 완전히 꿰고 있고 잘 활용할 줄 아는 작가다.

이 작품 이후로 작가는 '워싱턴 포'와 '틸리 브레드쇼'의 캐릭터를 시리즈로 하여 벌써 5권까지 출판했고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작가 M.W. 크레이븐의 이력을 보니 컴브리아 출신이고 보호감찰관, 군인 등으로 살다 전업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사에 디테일이 좋고 특히 사건의 공간이 되는 컴브리아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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