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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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레슨>은 '롤런드 베인스'라는 남자의 칠십 평생을 통해 인생의 근원적인 물음에 차분히 답하는 소설이다.

<레슨>은 거대한 역사 속의 한낱 비루한 개인일 뿐인 인물들의 삶을 통해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자연스럽게 논한다. 인생의 순간마다 치고 들어오는 변수와 위기들.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했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살아남은 대부분의 우리들을 위로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명성답게 깊이있으면서 가슴에 박히는 문장이 돋보였다. 뿐만 아니라 700 페이지의 분량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 구성을 갖추었다. 짜임새가 좋고 에피소드들이 완결성을 갖춘 것도 마음에 든다. 체르노빌 폭발, 쿠바 미사일, 베를린 장벽 붕괴 그리고 코로나19까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역사의 흐름도 나온다.

7개월 짜리 아들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진 아내 앨리사를 찾는 롤런드의 이야기부터 어린 시절,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한 피아노 선생 미리엄과의 이야기가 흡인력 있다. 묘사의 디테일과 전개, 그 밖의 캐릭터들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롤런드라는 인물이 느끼는 상실감과 복잡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앨리사'라는 인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얻게되는 성공과 명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다른 것은 버려야 하는 것이 삶의 규칙일지도 모르겠다.

롤런드와 미리엄이 포핸즈로 치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판타지가 나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슈베르트 판타지가 주는 묘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좋은 문장이 너무나 많다. 인덱스로 표시한 곳이 너무 많아 옮길 엄두가 안날 정도다.

이언 매큐언에게 빠져들었다.






#레슨 #이언매큐언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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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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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의 디자인이 미쳤다. 양장본으로 된 표지에 박힌 금빛 글씨부터 고급스럽다. 내지의 디자인이나 편집도 나무랄데 없는데 책을 읽어가며 디자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암전들>은 실제로 1941년 발행된 연구서 '성적 변종들: 동성애 패턴 연구'를 토대로 쓰인 소설이다. 불과 백년도 채 안된 과거에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인식했고 퀴어 연구를 병리학적 자료로 폄하했다. 책 중간에 등장하는 보고서 이미지 속의 텍스트는 군데군데 삭제되어 있다. 마치 검열당한 신문 기사처럼.

소설의 화자는 '네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게이 청년으로, 그가 '팰리스'라는 시설에서 임종을 앞둔 '후안 게이'와 나누는 긴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자의 퀴어적 경험을 밝히기도 하고 후안이 겪은 옛 퀴어 세대 이야기를 증언하기도 한다.

후안이 증언하는 인물 중 '잰 게이'가 있다. 그는 실존 인물로 레즈비언인 자신의 정체성을 토대로 다양한 연구와 활동을 한 업적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후안이 네네에게 건넨 '성적 변종들'인데 이는 당대의 300여 명의 동성애자들을 인터뷰한 연구 보고서다. 하지만 이 급진적인 자료는 왜곡되고 폄하되었고 후안은 이를 네네에게 증언한다.

책 속의 텍스트 뿐만 아니라 수록된 이미지와 형식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일관된 스토리나 익숙한 구성이 없어서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또한 퀴어와 관련된 역사, 문화적 코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어렵게 느낀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네네와 후안의 대화가 이어지고 책의 끝을 향할수록 강렬하게 다가오는 감정들이 있었다. 결국 <암전들>은 연대와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암전들 #저스틴토레스 #열린책들 #미국소설 #퀴어문학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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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이소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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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근무하며 비정기적으로 네팔어 법정 통역을 하는 도화는 어느 변호사로부터 이상한 제안을 받는다. 끔찍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네팔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의 말을 '거짓으로 통역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 암수술 직후인데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지친 도화는 거액이 걸린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법정에서 필사적으로 결백을 주장하는 네팔 여성의 모습에, 이 사건 뒤에 큰 음모가 있음을 알게된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이주노동자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그들이 이루어 놓은 커뮤니티나 상업시설도 다양하다. 그래서 이제는 주류 대중문화에서 이주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이 더 다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들도 결국 오늘의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니까.

작가는 우리에게 낯선 네팔어와 문화를 끌어와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미스터리 소설을 탄생시켰다. 설정과 소재가 좋아서 초반에 몰입감이 있었다.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문제, 환경문제 등을 스토리 안에 녹인 점도 괜찮았다. 다만 네팔의 쿠마리, 신화 등이 많이 낯설어서 더 자세한 설명이나 안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영상화가 확정된 작품이라고 한다.



#통역사 #이소영장편소설 #네팔 #이주노동자 #미스터리 #래빗홀 #래빗홀미스터리앰배서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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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말은 독고독락
낸시 풀다 지음, 백초윤 그림, 정소연 옮김 / 사계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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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독고독락 시리즈. 우선은 얇은 분량에 놀라고 큰 크기의 활자에 또 놀랐다. 독자들과 책을 조금이라도 가깝게 하려는 출판사의 열의가 보였다.

첫번째 작품 '움직임'은 자폐 스펙트럼을, 두번째 작품 '다시, 기억'은 알츠하이머를 다루었다. 두 소재 모두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힘들게 하는 장애들이다. 정상성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오히려 힘들어지는 상황을 다루었다.

특히 첫번째 소설인 '움직임'은 자폐 스펙트럼의 주인공이 화자라 그만의 시간의 흐름과 방식을 따라가게 된다. 수술로 자신을 '정상화' 시키려는 엄마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하는데 이것이 주인공다워서 기억에 남는다.

오래 전 읽은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도 생각났다. 자폐 스펙트럼인 자신의 아들로 인해 자폐인 주인공을 화자로 한 소설이다. 이 책을 쓴 낸시 풀다 역시 자폐인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 자식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엄마가 쓴 소설이라니 멋지고 아름답다.

우리집 청소년들에게도 읽어보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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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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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은 <개미>,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등 초창기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챙겨 읽지 못했는데 이번 신간은 궁금했다.

세계 3차 대전으로 인류는 거의 사라지고 핵폭탄으로 인해 지구는 방사능으로 오염된다. 마침 우주선에서 인간과 동물의 혼종을 만들어 온 과학자 알리스는 이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지구로 귀환한 알리스는 박쥐. 두더쥐, 돌고래와 사피엔스를 결합시킨 세 종류의 혼종, '키메라'들을 탄생시킨다.

키메라들은 방사능이나 오염 물질에 강하고 각기 특화된 신체적 기능이 있다. 또 사피엔스보다 임신 기간이나 성장기가 빨라 금세 번식하여 개체 수를 늘린다. 그리고 급기야 사피엔스를 위협하기도 한다.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펼쳐낸 흥미로운 가정이다. 이야기는 계속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지루할 틈없이 진행된다. 세계 3차 대전은 어어 없게 발발해서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 씁쓸하기도 했다.

알리스가 키메라들을 창조한 의도와 그들을 향해 느끼는 애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 후기를 보니 현실에서도 인간과 동물의 혼종을 연구하는 사례가 많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도들이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만약 소설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모두 다 멸종하는 수밖에.

베르베르는 혼종을 옹호한다기보다 현재를 경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 혐오, 정치 등 현실이 가져올 위험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어쩌면 작가의 경고대로 5년 뒤 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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