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세트] 그림자 정원의 마리오네트 (총3권/완결)
유미엘 / Muse / 2018년 1월
평점 :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사랑하고야 말았다는 피그말리온의 신화처럼, 희대의 인형사인 워렌은 본인이 만든 인형에 깃든 영혼 헤이젤을 사랑하게 됩니다. 유령인 헤이젤이 자신의 이름 외의 모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영혼의 기본 속성은 변하질 않겠죠. 그녀의 다정함은 인형의 몸 안에서도 저절로 빛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그 빛나는 영혼이 깃든 덕에 인형이 인간화되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인간혐오와 불신에 시달리는 잘생긴 공작 워렌에게 있어서는 순수하고 다정한 이 유령 아가씨야말로 자신에게 꼭 맞춤한 애정의 상대일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유령 인형 소녀와 인형사의 결말은 어떻게 보면 뻔한 수순이겠습니다. 헤어짐을 전제로 한 사랑은 얼마나 애달픈지요. 헤이젤은 언젠가 낡아가는 인형의 몸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래 있던 영혼의 세계를 떠돌아야 하겠고, 워렌은 헤이젤이 없는 현실의 세계에 남아있어야 하니 둘이서 같이 행복해질 길이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이 없는 세계에서 헤이젤의 영혼이 환생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환생했다 하더라도 워렌은 그녀를 찾을 수 없고, 찾는다 하더라도 워렌과 함께 했던 기억을 모두 잊은 헤이젤은 그가 사랑했던 그녀가 아닐 겁니다. 둘이 해피엔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죽음밖에는 없습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한 죽음인 셈이죠.
눈물이 나도록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었어요. 유미엘 작가님은 전작 <잠든 새들의 노래>를 읽을 때에도 느꼈지만, 귀신과 영혼을 소재로 해서 굉장히 서정적인 감성을 불어넣을 줄 아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그 장점이 <그림자 정원의 마리오네트>에서 극대화됩니다. 사소하고 구체적인 사건들을 하나씩 배치해서 두 사람이 투닥투닥, 때론 장난스럽게 때론 가슴 찡하게 서로에게 빠지게 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그려, 독자들의 감정이입과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스토리를 다 말할 수 없어서 이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만. 인형과 인형사,유령과 기억상실, 신이 없는 세계에 대한 좌절과 순응 등, 메르헨적인 분위기를 토대로 수채화 같은 감성을 풀어놓는 작가님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3권이나 되는 분량을 금세 읽어치우게끔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