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고 나니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가 생각났습니다. 마지막 엘렌 올랜스카의 집앞에서 발길을 돌리던 뉴랜드 아처의 모습이 채리티 로얄과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느 여름과는 다르게 화려한 날씨를 느끼게 했던 루시어스 허니의 등장은 채리티에게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큼이나 달콤했던 그와의 시간은 너무나도 짧게 끝나 버렸고 결국 그녀는 현실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녀는 그 후에 안정적이고 편안한 여생을 살게 되었겠지요. 마치 메이와 결혼했던 뉴랜드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작은 도서관이라면 직접 책을 찾아보는 게 훨씬 더 즐거운 일일 테니까요・・・・・・ 도서관 사서의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죠.‘

이글군에서 지금까지 이런 6월 날씨는처음이었다. 보통 6월은 갑자기 뒤늦은 서리가 내리고 한여름의 무더위가 교차하는 종잡을 수 없는 달이었다. 올해는 온화하고 아름다운 날씨가 날마다 계속되었다.

채리티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니에게 주었다. 그러나 삶이 그에게 줄 수 있는다른 선물과 비교한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채리티는 이런 일을 겪은 다른 젊은 여자들의 경우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갖고 있던 것을 모두 주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것 가지고는 짧은 순간밖에 살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보여 주려고 어둠 속에서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
대니엘 오프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수는 인간보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프로노보스트는 <모든병원에서 환자들이 서열 때문에 죽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관행을 바꾼다는 것은 점검 목록의 확인란에 체크 표시를 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상호작용에 관한 사회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양한 분야와 직급의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질책당하거나 무시당할 두려움 없이 문제와 실수를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행위가 갖는 고위험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환자의 안전을 개선하는 일에 전념하려면 의료 기관은 진정한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투입되어야 한다즉 적절한 시간과공간, 직원이 필요하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주어진 업무조차 겨우겨우 해나가는 직원은 협업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다.) 아울러 헌신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 위에서부터 비판을 장려하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으며, 서열과 이기주의를 타파하는 모범을 보여야한다.

진단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의료계의 문화를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뿐 아니라 우리를생각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싱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변화는 <진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영웅적인행동을 보이기보다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과 관련 있다. ‘의료계 종사자들만큼 지적으로 겸손하지 못한 사람도 드물다. 또한 의사들만큼 불확실성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없다.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다른 의견을 듣기 위해 동료 의사와 함께 환자의 사례를 검토하거나,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전화하여 더 저렴한 초음파 검사로 충분할지 논의하는 행위는 전혀 돈이 되지 않는다. 진료가 끝난 뒤에 더 명확한 정보를 이끌어 낼 목적으로 환자에게 따로 전화를 거는 행위에대해서도 전혀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보상에 관한 이야기는 의사들이 돈만밝힌다는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런 일들은 아무런 보상이 없다면 해내기가 정말 어려운 일들이다.

비록 <실수>를 저지른 것은 인간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실수를 가능하게 만든 무수한 시스템의 실패가 존재한다.

수많은 기술적 혁신에도 불구하고 의료는 여전히 지극히 인간적인 분야로 남아 있다. 즉 질병을 앓는 것도 인간이며 질병을 치료하는 것도 인간이다. 우리 인간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졌지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동시에 서로 소통하고 듣는 능력도 갖췄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과소통하거나 치료하는 부분에서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아무리모든 사람을 공정하고 성실하게 대하겠노라 다짐해도 항상부족할 때가 있다. 그런데도 시간을 할애해서 진심으로 다른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적어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고 가능한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될 수는 없어도 슬며시 그들옆에 앉아서 그들의 시선을 따라갈 수는 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노력해서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보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은 비록 첨단 기술은 아니지만 의료 서비스를 위협하는 뿌리 깊은 편견을 잘라내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의료 실수를 둘러싼 덴마크의 전반적인 접근법은 내게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덴마크인답게 매우냉철하고, 매우 합리적이며, 매우 철저한 듯 보였다. 「덴마크식 접근법이 성공한 것은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라뵐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고소하지 않습니다.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요. 비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세금이 잘 사용될 것을 알기에 흔쾌히 세금을 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와 그 가족들의 다양한 반응을 내 생각에는, 마땅히 용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질병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스트레스 요인이다. 공황과 무력감, 걱정과 고통은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볼수 있는 문제들이며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미치광이처럼 폭주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것이 폭주하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지독한 공포와 극한의 취약성임을 안다 또는 알아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는 자신이 담당할 고객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의료진은 자신이 그들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모든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돌보아야 한다. 의료란 그런 직업이다.

진단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환자와 의료진의 대화는 단 하나뿐인 가장 중요한 진단 도구이기 때문에 환자는 대화가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 의사가 진료 시간 내내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확인란을 채우고 있을때 환자가 정중하게 이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권리다. 환자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이 모든 것을 컴퓨터에 기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1분만 내게 온전히 집중해 준다면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중요한내용을 말할게요.」 환자는 의사와 세세하고 진지한 대화를나누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증상이 적절히 탐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타라와 멀리사, 낸시가 몸소 보여 주었듯이 의료 실수에 대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론상으로는 해야 할 일들이 명백히 보임에도 현실은 느리고 고통스러우며 좀처럼만족스럽지 않다. 게다가 시인과 사과, 때에 따라서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의료 실수 자체는 돌이킬 수없다. 그로 인한 육체적, 정서적 피해는 안타깝게도 영원히남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 의료인들이 책임져야 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료 행위가 때때로 위해를 초래하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도 위해를 최소화하고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지만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마땅히 환자들의 호된 심판을 감수해야한다.

의료는 팀 스포츠이며, 그 팀에는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환자와 가족, 지인들도 포함된다. 너무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반대 팀처럼 또는 같은 팀이지만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팀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다. 환자를 도와서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환자의 회복을 돕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기계 장치가 존재하지만 그 모든 기계 장치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 책임은결국 인간에게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출산이든, 부동산 투기든, 입시 과열이든, 수도권 집중이든,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다수가 느꼈기에 거대
한 사회 현상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는 게 합리적이었기에, 그렇게 사는 한국인이 탄생했고, 그런 한국인이 다수가되었을 때 그런 한국 사회가 출현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지금과 다르게 사는 게 합리적이라고 느껴질 때 비로소 미래의 한국인이 출현하고, 그런 한국인이 다수가 될 때 한국의 새로운 미래가 출현하겠지. 그렇다면 개혁가는 강제나 계몽보다는 합리성의 조건을 바꾸는 데 더 부심해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문학의 쓸모 - 21세기 프랑스 대표적 지성의 문학을 대하는 현대적 방식
앙투안 콩파뇽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독서에 투자해서 어떤 수익, 어떤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가?

작가는 본질상 독자이며, 책은 다른 책들과 독서를 통해 만들어진다

나는 작가란 뭔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미적 감동만 일깨워줄 게 아니란 겁니다.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아니,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긴 하죠. 소파에 앉아, 이를테면 프루스트의 책을 펼쳐 들고서 말입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프루스트를 좋아합니다. 아름답죠, 한데 그게 지금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없어요, 프루스트는 내가 길 건너가는 걸 도와주지 않아요. 오늘날의 작가는 여러분이 길 건너가는 걸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길을 건너간다는 것, 그 말의 의미는 당신이 어떤 작가의 책을 읽은 후에는, 길을 건너갈 때, 프루스트만 읽는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건너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먹고 자기만 하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더는 생리적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라 할 수 없는 일들을 그리고, 빚고, 바라보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원시인’(우리가 흔히 그렇게 부르는)은 어디에나 늘 있었다.

정신적 경제와 별개로, 예술의 신체적 경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술은 따분함에 대한 신체의 반응이니 말이다.

프루스트가 지적한 것은, 자아실현은 사교계의 삶이 아니라 문학으로, 문학 덕택에, 문학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만이 아니라 독자, 문학에 사로잡혀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프루스트는 문학이라는 현대(혹은 반현대)종교를, 어쩌면 문학의 신성화를 설파한 대사제였고, 혹자는 그것이 지나치다고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우리는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이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다른 누군가가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세계의 풍경은 우리에겐 달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처럼 생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가 말하는 건 분명 자기에게서 빠져나와 타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 타자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길을 건너가서, 엠마누엘 마크롱이 말하듯 일자리만 찾는 게 아니라, 엠마누엘 레비나스가 말하듯 타자의 얼굴을 만나는 것), 그리하여 타자를 알고, 타자에 이르고, 타자를 이해하는 것이다. 문학은 타자他者를 인식하는 수단이자, 여기 이 세상, 이 세계, 진부하고 보잘것없는 하루하루의 삶을 인식하는 수단으로서, 잘난 체하는 독아론이나 상아탑의 엘리트주의, 예술의 신비주의와 대조된다.

학생들은 소비자로서 우리 학교에 들어와 제품이 되어 학교를 떠납니다

이탈로 칼비노는 이렇게 썼다.

 문학이 탐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는 않으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가까운 이웃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크고 작은 사물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 삶의 균형을, 삶에서 사랑의 자리라든가, 그 힘과 리듬을, 또한 죽음의 자리를 찾는 그 방식, 그밖에 다른 일들, 냉혹함, 연민, 슬픔, 아이러니, 유머 등, 필요하지만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그 방식 등.

차별성을 하나의 상속된 특권에 불과한 것으로 볼지, 아니면 독서라든가 모든 형태의 학식, 즉 뛰어난 작품들과의 접촉을 통해 기를 수 있는 ‘충분한 문학적 소양’으로 볼지 말이다.

문화(문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예술, 영화 및 오늘날 스크린용으로 만들어지는 많은 것들)는 지금 하는 일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일하는 자신을 관찰할 수 있게 하고, 거리에 있음과 동시에 창문에 있을 수 있게 하고, 자신의 사는 모습을 보고, 삶의 흐름을 바꿀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그것은 자신이 받은 원래 교육의 한계를 넘어, 길을 바꾸고, 다른 직업 쪽으로 나아가, 새로운 기회(지금부터 우리가 ‘호기好機’라고 부르는)를 잡는 데 꼭 필요하다.

일반 문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 그것은 다른 지능이다. 말하자면 영리한 개나 여우에게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이나 침투력, 직감 같은 것이다. 직감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여러 가지 다른 경험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독서를 통해 길러진다. 문화는 우리에게 코를 준다. 난관을 헤쳐나가고 궁지를 벗어나는 데에 이보다 더 필수적인 것은 없다.

철학에서의 윤리적 전환은 문학적 전환이었다. 심리학·사회학·철학 등 오늘날의 학과 대부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주체 이론은 정체성과 서사성을, 따라서 주체성과 문학을 하나로 묶고 있으며, 그 여파가 마케팅과 광고에도 미친다. 이 이론은 우리가 자전적 서사, 다시 말해 자기 삶의 이야기를 구성함으로써 주체성, 즉 ‘자아’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이유에서든 그런 삶의 서사를 갖지 못하면, 잘 살지 못하고 불행해지며 여러 장애를 겪게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서사적 관점이 없으면, 자신의 삶을 기억으로 재구성하지 못하면, 도덕적 경험도 불가능하다.

잘 살기 위해서는 다시 자기 삶의 저자가 되어야 하고, 자기의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산다는 건 곧 자기 삶을 쓰는 거라는 얘기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무신론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철학을 조금 공부하면 신에게서 멀어지나, 철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면 다시 신에게로 기울어진다." 우리도 이렇게 말하자. 얄팍한 기술은 문학에서 멀어지게 하지만 많은 기술은 다시 문학으로 데려간다고. 법·의학·공학·상업 등 직업 학교들에서 이루어지는 문학 교육은 해롭기는커녕 대단히 유익한 거라고.

문학과 독서, 둘의 응집체인 문학적 소양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늘 보상을 안겨준다. "그것은 이득을 늦게 보는, 하지만 아주 큰 이득을 보게 해주는 투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음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붙잡는 행위란다. 하지만 확신은 진실이 우리를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