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리
후지모토 타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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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란 보는 이, 듣는 이가안고 있는 문제에깊이 파고들어서웃기거나 울리는일이잖니? 그럼,만드는 이도 상처를 받아야 공평하지.안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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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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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려온 구병모작가님의 신작이라니!!! 게다가 장편소설이라니!! 너무 반갑습니다. 사실 작가님의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비하여 장황한 문체라서 가독성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문장의 아름다움에 취해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책속에 빠져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그 순간의 저에게 반하고 맙니다. (저를 반하게 만들어 주는 작가님들이 몇 분 계신 덕분에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지요.)

이번 책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있을 법한 이야기로 전해주시면서 등장시키는 매력적인 인물과 수려한 문장에 헤어나오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주인공은 ‘파과‘의 조각과 비슷한 인물이었으나 독서지도사라는 직업이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녀를 통해 듣는 독서의 무용함과 유용함에 무척 공감하였습니다.

그런데 한번 쓰고 나면 되돌릴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은, 비단 딜리트도 리부트도 없던 시절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겁니다.

무언가를 초과하고자 하는 마음, 잉여를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듭니다.

음악을 듣고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게 절대적인 사실이라면, 학살은 일어날 수없었을 겁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스포츠 경기 종목에서 몸도 마음도 망가뜨리는 약물을 복용하는선수들이 꾸준히 적발되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유독 책을 읽는 자, 책을 읽고 감명받은 자는 으레 극적인 변화를 겪고 거듭나서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감이 마땅하다는믿음은 꽤 오랜 시간 이어져온 듯합니다. 책을 읽고 감명은 감명대로 받고 그것은 그 순간의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자 진실이며, 책을 덮은 뒤 돌아서서 이루어지는 방화 약탈 폭행은 별개인데 말입니다.

독서가 무용하다고 하여 그것을 하지않을 이유는 없다고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대학에 진학할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모든 학생이 중고등학교를 때려치우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책을 읽었다 하여 훌륭한 인간이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때로는 뱀의 몸통을 손으로 붙잡는 식으로 책을 이상하게 읽고서 오히려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인간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보통은 책을 읽고 난 뒤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그게 가장 일어나기 쉬운 일입니다. 무용하면 무용한 대로 다만 이어가는 것, 그것이 읽기 아닐까요. 읽기의 자리에 살기를 넣으면 어떻습니까.

공감? 그저 옳지 옳아 끄덕끄덕하려면 책 같은 거 왜 읽는데. 그러니 네가 이상하다고 느끼는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 이상함을 제공하는 것이 책의 일이며, 이상함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때론 원인 따위 결국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이상해지지 않겠다는 마음에 이르는 것이 읽는 사람의 일이야. 한 권의 책을 펼칠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세상의 코어를 이루는 것이 반드시희망 내지 사랑만은 아니며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인간들과혹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나 자신과 필연적으로 상종하거나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태초부터 운명지어진 비극이라는 사실이지. 그리고 그 비극을 견디는 게 인생의 거의 전부야. 그렇다면 인생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인생의 목표라는게 다 무슨 소용인지 되물을 필요는 없다. 자연은 우리에게 목표를 부여하지 않았고, 우주는 우리의 의미 따위 알지도 못할뿐더러, 신은 우리에게 별 관심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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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집을 어둡게 하고 지냈다. 시각장애인이 보는 캄캄한 어둠 이 아니라 어둠침침하고 안전한 곳이었다. 그는 자신을 그 안에 조 심스럽게 넣어두고 있었다.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개조 된 몸뚱이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심장이 거기 있었다

그는 성인의 삶이란 꼭 모래시계 같다고 생각했다.
한쪽이 다 흘러내면 뒤집어 다시 흘러내리게 하고 그것을 반복한 다. 모래시계 안에 갇힌 고운 모래는 한 톨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세상에 정해진 규칙이 얼마나 많은데 누가 그걸 다 지킬 수 있 겠어? 사람은 자신의 진심을 회피하면 안 돼. 그 마음 앞에 자기 자 신을 놓아야 해."

책임은 때론 거래와 같죠. 비록 모든 거래가 이해득실을 따지 지만 좋은 거래는 의리를 중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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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불평등하다는페미니스트들의 비판과 달리 여성을 모욕하는 일에서는 남녀가평등해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다. 여성도 둘째가라면 서러웠다.

진화론이라는 것이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점점 똑똑해졌다고 장담하지 않았던가?
적자생존을 통해서 살아남은 이들이 이렇게 폭력적이면서도 우둔하다고?

어째서 세상은 ‘화나다‘, ‘차분하다‘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나누는 걸까. 인류의 감정이 그렇게 단순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화를 내는 사람은 차분하지 않고, 차분한사람은 반드시 옳다. 심지어 정의롭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류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여성이 늘 이것저것 걱정하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걱정이 많다는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걱정하는 것에만 불과하다는 게 얼마나좋은 일인지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떤 생각을하고 어떤 생각을 하지 않을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고, 이들이 할일과 하지 않을 일을 고려해야 했다. 어쩌면 그 모든 일이 순간의선택으로 결정되는 일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우리의 안전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은 걸 고려하면 사람들에게비웃음을 살 수 있지만, 대신 그날만큼은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아니, 물론 그들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아주 좋은 사람들이니까. 여성을 강간하지도, 성희롱하지도 않았다. 그건 나도 알았다. 문제는 그들 중 누가 그러하고 누가 그러하지 않은지를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어제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오늘도 그러지 않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가장 큰 억압이 평등권 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쟁 게임에서벗어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각각의 세부 항목마다별 다섯 개짜리 호평을 얻으려고 어쩔 수 없이 애를 쓰다니. 그리고 가장 우스운 건 이거였다.

"아니지. 성적인 농담을 한다거나 사업적으로 성공했다거나 성격이 단호하다는 건 내 개인적인 특징이잖아. 이런 게 대장부랑무슨 상관이야. 그럼 성적인 농담을 안 하는 좋은 남자들이 너무억울해하지 않겠어?"

인생이라는 게 있잖아, 사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저들은 성희롱도 못 본 척하는 놈들이거든. 아줌마 욕도 대놓고는못해서 멀리서 속삭이는 놈들이라고. 저딴 놈들의 생각 같은 건신경 쓸 필요도 없어.

자기 아이를 픽업해 오라고 하거나 생활용품을 사 오라고 하거나 전처의 전화를 대신 받으라고 하는 대머리 배불뚝이 전 상사에게 사실은 온화함과 인내심, 인정이라는 또 다른 면모가 있었다면? 그러한 면모들을 정말로 알고 싶을까?

"아, 주인공 배우라는 그 딸이구나? 어쩜 이렇게 예쁠까. 엄마따라 시장에도 왔네. 자상하기도 해라. 친정에 자주 와서 엄마랑시간도 보내 주고 그래."
(아, 며느리구나. 요즘 통 얼굴을 못 봤네. 며느리가 집안일을 좀 더도와야지. 시어머니 연세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젊다고 너무 자기놀 생각만 하면 안 된다고.)

저는 제가 타이완 여성에게서 보았던 보이지 않는 족쇄‘들을『여신 뷔페』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엄청난 죄악처럼 보이는 족쇄는 아니지요. 가끔은 달콤한 설탕물이 입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족쇄들을 정확히 짚어 낼 수 있어야만 다음에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더는 가부장제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고자기 자신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는데도 이를 잊게 되었다면, 혹은 아직은그렇게 할 수 없는 거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인류 사회에 수천 년이나 심어진 독소인걸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다음에 안 되면 그다음에 하면 되는걸요. 우리 계속 함께 노력해요.


2025년 6월
류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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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과 갈등없이 마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듯한 소설이었습니다. (마침 책에서도 터너를 언급했더라고요.)책을 읽는 동안 유튜브로 iss에서 보여주는 지구를 한참이나 보았습니다. 수시로 해가 지는 광경이 비현실적이기는 했지만 그 아래 어딘가에 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먹먹해 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 이미 죽어서 사후 세계로 온 게 아닐까. 죽어서 가는 곳. 이 비현실적이고 믿기 힘든 세상이라면, 저 멀리 아름답고도 외로이 빛을 발하는 유리구슬 구체야말로 그런 곳이 아닌가.

지구는 주변부도 중심도 아니다. 전부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보통은 아닌 듯 보인다. 돌로 만들어졌지만 여기서는 어슴푸레한 빛이자 에테르처럼 보인다. 지구는 세 가지 방식으로 움직이는 민첩한 행성이다.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그 축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으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이 행성은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부로 좌천되어 무언가를 따라 도는 존재다. 작은 혹 같은 달을 빼면 무엇도 지구를 따라돌지 않는다. 이런 존재가 우리 인간을 품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계속해서 알려 주는, 나날이 커지는 망원경 렌즈를 닦는 우리를. 우리는 멍하게 거기 서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주변에 있을 뿐 아니라 우주가 주변일 뿐임을. 중심은 없고 그저 어지러이 왈츠를 추는 것들의 무리뿐임을 깨닫는다.

이제 인류는 자해와 허무주의에 빠져 닥치는 대로 깨부수는 10대 후반기에 접어든 게 아닐까. 살게 해 달라고 한 적도, 돌봐야 할 지구를 물려받게 해 달라고 청한 적도, 이토록 혼자 억울하고암울하게 살게 해 달라고 바란 적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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