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문학의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에밀 졸라의 단편은 고전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재미있다.<독한 사랑>에 수록된 10편의 콩트와 누벨은 150여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현실의 삶의 고단함과 부조리를 느끼게 한다.자신을 팔다시피 한 가난한 남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후 어떤 것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당혹함과 낭패를 그린 <낭타>는 사랑의 정념을 숨김없이 그리고 있다.우리 안이 있던 맹수가 탈출 후 인간들의 잔인함을 목도한 이야기 <우리를 탈출한 맹수들>은 인간이 미처 보지 못한 인간의 잔혹함을 돌아보게 한다.표제작 <독한 사랑>은 에밀 졸라가 쓴 최초의 장편 소설 <테레즈 라캥>의 모티브가 된 소설로 남편을 죽인 정부와 간통녀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결혼했다는 상상으로 시작한 이야기다.<테레즈 라캥>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모티브가 된 소설이기도 하다.죄의식 때문에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진부하기까지 한 소설은 여전히 여러 형태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것을 보며 이것이 고전이 힘이 아닌가 싶다.어리숙한 젊은 시골 귀족을 절망에 빠트리는 <네죵 부인>과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지만 나태의 늪에 빠져 끝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화가의 이야기 <수르디 부인>은 여러모로 뛰어나지만, 항상 남편의 뒤에 서 있어야 하는 부인들의 사연으로 그 시대 여성의 지위를 짐작게 한다.수록작은 그 시대를 살았던 여러 계층 인간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더 놀라운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이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광고의 피해자>를 읽으며 집안을 둘러보게 되고 나란히 실린 <후작 부인의 어깨>와 <가난한 소녀들은 무슨 꿈을 꿀까>는 지금 어딘가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기에 슬프기까지 하다.졸라가 소설을 쓴 시대와는 다르게 소설을 읽는 지금은 표면적으로는 계급이 사라진 시대이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은 존재하고 세상은 부당하고 부조리하게 굴러가고 있다.<결혼의 방식: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과 <죽음의 방식: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농민>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계층 간 서로 달랐던 결혼과 죽음의 방식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지위고하와 빈부귀천에 따라 전혀 다른 결혼과 죽음을 맞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아 인류가 과연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시대를 뛰어넘어 사회의 문지를 고민해 보게 하는 까닭에 우리는 에밀 졸라를 읽어야 하고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망했다. 실수로 박은해를 토마토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미워하는 누군가를 토마토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마윤이 박은해를 토마토로 만드는 장면을 애증의 관계인 유미도에게 들키고 만다.하등에 쓸모없는 능력을 유미도는 부러워하며 자신의 과외 선생님을 토마토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초등학교 5학년 때 남동생과 자신을 차별하는 할머니를 토마토로 만들면서 그 능력을 알게 된 도마윤은 혹시나 다른 사람을 토마토로 만들까 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았다.그런데 자신이 숨기고 있던 마음을 박은해가 알아채 버린 것이다.조예은 작가 특유의 기발한 설정과 청소년기에 느끼는 친구를 향한 시기와 질투 뒤에 숨겨진 동경과 부러움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펼쳐간다. 어린 시절을 이미 지나온 어른들이 잊고 있던 아이들의 고민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하다.나와 다른 누군가를 한없이 부러워하다 종내에는 미워하기도 하는 마음이 꼭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마음이 아니기에 아이들의 애증 관계가 이해된다.그래도 아이들은 스스로 그 관계를 풀었으니 영영 멀어지는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소설의 첫 만남-동화에서 소설로 가는 징검다리인 시리즈는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간간이 삽입된 그림이 있어 동화에서 소설로 가는 징검다리로 충분할 것 같다.
조예은 작가의 신작 소설집 <치즈 이야기>는 입맛을 쓰게 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듯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2022년에서 2024년에 발표된 단편을 모은 단편집 속에는 7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나는 이미 3편의 소설을 다른 지면을 통해 읽었으니 나름 부지런히 조예은 작가를 찾아 읽었다고 할만하다.“자고로 음식은 나눌수록 더 맛있어지는 법이죠. 이 황홀한 맛을 저 혼자만 알기 아까워 당신을 불렀답니다.”(33쪽)표제작 <치즈 이야기>는 아주 밝은 톤으로 그 참혹함과 끔찍함을 나긋나긋하게 독자에게 속삭인다.어린 시절 함께 살던 엄마에게 방치돼 죽을 고민를 넘기고 어른이 된 아이는 십오 년 후 전신마비인 엄마를 자신이 어린 시절 갇혀 지낸 방에 방치한다.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보증금 돌려받기>는 실제로 어디선가 진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공포스럽다.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안하무인 집주인과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세입자의 공포가 그대로 전해지는 소설이다.7편의 소설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 현실이라고 하기엔 환상적인 이야기와 먼 미래와 우주에서 펼쳐지는 sf소설까지 읽으며 역시 ‘조예은’답다고 되뇌게 된다.<치즈 이야기>로 작가를 각인시키고 마지막으로 <안락의 섬>으로 작가 특유의 공포는 놓치지 않으면서 삶의 따듯한 희망을 던져준다.지금까지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여름에 읽었다.출간 시기가 여름이어서인지 아니면 여름이면 생각나는 작가인지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더운 여름, 읽기에 딱 좋다.아! 그나저나 아마도 얼마간은 치즈는 멀리할 듯하다.
새벽 2시 고급 주택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고 사망자는 집주인인 현역 도의원과 전직 배우인 부인임이 밝혀진다.화재는 사고가 아닌 인위적 화재로 보이고 아내가 거실에서 남편을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으로 추정된다.수사가 진행되면서 강제 동반자살인 줄 알았던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전환되고 특별 수사본부가 설치된다.피해자의 인간관계를 조사하는 참고인 조사반에 포함된 고다이 쓰토무는 생활안전과의 야마오와 한 조가 돼 수사를 시작한다.#가공범 이 고다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면, #백조와박쥐 는 그를 세상에 탄생시키기 위한 인큐베이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_옮긴이의 글히가시노 게이고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시리즈가 탄생했다.<가공범> 속 형사는 사건의 참고인 조사반에 소속돼 피해자의 주변인들을 만나 피해자에 대해 질문하고 청취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어떤 사소한 이야기도 절대 흘려듣지 않는 성실한 고다이의 모습은 사건의 중심에 있지만 고요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사건을 파고들수록 40여 년 전의 어떤 사건과 맞닿아 있음을 알아채고 그 사건에 희생된 학생의 어머니에게 마지막까지 마음을 쓰는 고다이의 모습이 인간적이다.달리는 형사보다는 찬찬히 걸으며 살피는 형사 느낌의 고다이는 무엇이든 다 아는 명탐정이 아닌 발로 뛰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작가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닮은 고다이가 다음 사건에는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지 벌써 기대된다.
<본 도서는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소명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막부를 열어 통치하기 시작하여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정권을 돌려주기까지의 시대(1603~1867년)“-(다음 어학사전에서)를 말한다.법과 질서에 근거한 평화를 사람들이 받아들였고, 대중문화가 발달해 오락용 읽을거리를 비롯해 여러 출판물이 성행하던 시기이기도 하다.그렇지만 사회적으로는 철저한 신분제도가 지켜졌기에 막부의 지배를 받던 서민들에게는 복종과 억압이 가해졌고 특히 여성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유교적 도덕이 강조되던 시기였다.<에도괴담걸작선>은 에도시대의 억울한 죽음을 맞은 이들의 목소리를 단순한 심심풀이 괴담이 아닌 시대를 대변한 민중의 이야기로 풀어 간다.모두 다섯 가지 테마로 나누어진 괴담집은 사회적 약자였던 여자들이 살아가기 위해 남자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이 잘 드러난 ‘무서운 것은 여자의 질투’에 관한 괴담으로 시작해 신분제도가 있던 시대의 억울하게 죽은 약자들의 분노를 그린 ‘연쇄되는 불행‘으로 이어진다.다음으로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슬픈 사랑 이야기‘ , 그리고 괴이와 인간이 만나는 여러 장소에 얽힌 이야기인 ’인간이 이계와 만날 때‘ 그리고 귀신의 복수담을 엮은 ‘인과응보’로 끝을 맺는다.에도시대의 이야기야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소설로 이미 접해왔지만, 짧은 이야기가 전하는 명료함은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죽어서까지 아이를 지키는 어미의 사랑을 그린 ‘무덤 속 어미와 자식’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잘린 머리와 여행한 남자’의 괴담은 어떤 게 진짜 사랑인지 저절로 느끼게 한다.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이 무서웠던 건 귀신이 나와 혼을 쏙 빼놓는 공포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나레이션으로 어느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구체적인 지명과 남아있는 유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소개된 에도시대의 괴담 역시 괴담의 중심이 된 가문이 멸문했다는 이야기와 괴이한 일이 벌어졌던 실제 지명이 나와 괴담인 줄 알면서도 더 공포스럽게 느껴진다.역대 최고로 덥다는 여름밤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해 줬던 괴담은 사악한 마음이 생길 때마다 충격요법으로 읽는다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거기다 괴담을 그린 그림이 중간중간 소개돼 상상이 아닌 더 큰 공포를, 그림을 통해 실현해 주고 있어 실감 나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