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픽처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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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 재활 중인 멜러리는 얼마 전 바르셀로나에서 귀국했다는 중산층 가정의 입주 보모로 일하게 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5살 테디와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던 멜러리는 테디의 그림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 나이 또래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단순하던 그림은 점점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섬뜩한 살인사건의 전말을 그린 그림으로까지 발전한다.
얼떨결에 테디의 부모에게 그림을 숨기고 진실을 찾기위해 동분서주하게 되면서 알 수 없는 존재가 주는 섬뜩하고 오싹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통해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에 접근해 간다는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문가처럼 변하는 그림에서 더 큰 공포를 느끼게 된다.
초자연적인 현상과 빙의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정말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이 결합한 소설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끝까지 팽팽하게 이어진다.
마지막 권선징악의 결말이 더위를 잊을만큼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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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을 말하다
장강명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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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제목 그대로 소설로 현재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소설집이다.
작가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을 “지금 한국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그리고 ‘계속’ ‘쓰는’ 작가들이어야 한다.”로 둔 까닭에 필진들 면면은 살필 필요도 없을 듯하다.

소설들은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봄까지 문화일보에 먼저 연재된 것들로 매주 새로운 작가들의 소설이 지면을 통해 한 편씩 공개되었다.
매체의 특성상 4000자 안팎의 짧은 소설이 탄생했고 짧아서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명징하게 작가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단시간에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장강명 작가의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21명의 작가가 AI, 거지방, 사교육, 번아웃, 고물가, 새벽배송, 다문화 가족, 오픈런, 반려동물……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핼프미시스터 라는 장편소설로 먼저 만났던 이서수 작가의 ”우리들의 방“에서는 <지출을 줄이려는 청년들이 모여 서로를 지지해주는 단체 채팅방>인 거지방의 일원인 ‘나’의 이야기로 폭우가 쏟아지지만 우산값을 아끼기 위해 그냥 빗속을 뛰어든다.

손원평 작가의 ‘그 아이’는 오픈 런에 관한 이야기로 돈이 돈을 부른다는 만고의 진리와 함께 명품의리셀 판매가 수월해지지 않자 그 알량한 알바마저도 끊겨버린 주인공에게 마음이 쓰인다.
천선란 작가의 새벽배송의 이면에 숨은 이야기인 ‘새벽 속’은 돈 몇 푼에 인간성마저 사라져 버리는 현실 속에 놓인 우리들이 참 가엽게 느껴진다.

이경란 작가의 ‘덕질 삼대’나 섹리리스 부부 이야기인 정진영 작가의 ‘가족끼리 왜 이래’, 구효서 작가의 ’산도깨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맛깔나게 그리고 있어 읽다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흔히 여러 작가가 함께 한 소설집을 종합선물세트 같다고 하는 데 이 표현이 이 소설집에 가장 적확한 표현일 것 같다.
아무 장이나 펼쳐 어떤 소설가의 이야기를 읽어도 좋아 마치 맛있는 종합선물세트 속 과자처럼 마음에 쏙 든다.
특히 이 소설집은 인기 없는 과자가 덤핑으로 섞여 있는 선물세트가 아닌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 가득한 선물상자같아 더 좋다.

소설을 모두 읽고 다시 장강명 작가의 ‘소설 2034’를 읽었다.
2034년에 다시 기획된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34>의 대한민국의 문제가 2023년인 10년 전과 똑같다는 이야기가 우습고도 슬프다.
어쩜 우리는 2034년, 2044년, 2054년, 2064년에도 여전히 소설집에서 이야기하는 문제를 안고 살아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은행나무 출판사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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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부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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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은 그의 소설을 읽지않았더라도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익숙할 것이다.
나 역시 에도가와 란포 상으로 먼저 알게 된 작가로 아서 코난 도일,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세계 3대 추리 소설 작가로 손꼽힌다고 한다.

모두 16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벨벳코팅된 표지의 촉감만큼이나 특별하고 기이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소설집은 어느 사형수가 교도원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쌍생아’로 시작하는데 강도 살인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남자가 쌍둥이 형을 살해하고 형의 행세를 했다는 여죄를 자백하는 사연이다.

아픈 남편과 전쟁 중 부상으로 장애를 가진 남편에게 가하는 여성들의 공격성을 전면에 내세운 ‘오세이의 등장’과 ‘애벌레’는 공포를 넘어 불편함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죽는 순간 궤 속에 이름을 새겼던 남자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꿈틀거리며 우물을 찾아가는 남자의 고행이 처절하고도 기괴하다.

인형을 사랑한 남자, 거울과 유리에 미친 남자, 그리고 쌍안경으로 찾은 이상형 여인에게 집착하는 남자, 아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영원히 곁에 두고 싶었던 남자의 선택은 그 집착과 욕망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나름 지식인이라 말하는 이들이 권태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아내 앞에서 ‘1인 2역’의 역할을 하고 ‘가면 무도회’에서 친구의 아내를 탐하기도 하는 이야기는 어른들의 매운 이야기이다.

끝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춤추는 난쟁이‘는 읽는 내내 서커스 천막 안에 함께 있는 느낌이 들어 오스스하다.
가난한 가장인 회전 목마 나팔수의 작은 일탈과 뜻밖의 횡재를 다룬 이야기 ’목마는 돌아간다‘는 우리나라 근대 소설 속 민초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기담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야기 속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인간의 내면에 누구나 있는 악의를 표출해 내며 공포를 안겨준다.
100년의 세월을 건너온 이야기는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의 가졌던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해 기괴하고 괴이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읽고나면 썩 유쾌하거나 통쾌하지는 않지만 이야기가 풍기는 분위기에 빠져 읽게 되는 기담집은 인간이 가진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범죄가 만연하고 있으니 지금의 우리가 소설 속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내면 어딘가에 그들이 숨기지 못하고 표출했던 욕망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기에 소설은 불편하고 불쾌하고 기괴하고 괴기스럽고 오싹하지만 재미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이벤트에당첨되어 부커(책들의정원)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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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인간 위픽
김성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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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물론 주위에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없는 ‘나‘,
언니는 일찌감치 가출해 소식이 끊기고
고3여름방학에 어머니가 불을 냈고 그 화재로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나’는 어찌어찌 이단인 교회에 의탁해 대학을 다니게 된다.
교회마저 붕괴되자 휴학계를 내고 여행을 떠난
그 곳에서 ‘탈리아’를 만나게 된다.

봄이 되어 이별이 임박해지자 탈리아는 함께 여행을 제안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고 변덕스러운 세상과 달리 항상 일정”(p25)한
지하 캠프로 들어가게 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나’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겹쳐보여 마음이 아파온다.

미덥지 못한 어른과 암울한 미래, 그리고 어지러운 세상……..
두더지 굴로 찾아가 무모해 보이는 땅파기에
열중하는 그들이 모습이
모두 어른들의 잘못에서 기인한 듯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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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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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권으로 완결될 줄 알았던 가가 형사 시리즈가 <희망의 끈>으로 다시 이어졌지만 ‘희망의 끈’에서는 가가 형사의 사촌 동생인 마쓰미야 형사가 주인공이라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는 가 싶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작가의 초창기인 1986년 <졸업>을 시작으로 장장 38년째 이어지고 있는 데 작가의 101번 째 작품으로 만날 수 있어 더 의미가 새롭다.

호화 별장지로 여름 휴가를 온 다섯 가족은 연례 행사처럼 진행되는 바베큐 파티가 끝나고 각자의 별장으로 돌아간 늦은 밤 파티 참석자 중 다섯 명이 살해되고 한 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전통있는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에 젊은 남자가 고급 음식과 와인을 시켜 먹은 후 자신이 별장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말하며 경찰을 불러줄 것을 부탁한다.
스물 여덟살의 범인 히카와 다이시는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지만 가족에게도 외면 받는 히키코모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단지 사형을 받고 싶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할뿐 살인의 구체적인 방법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범인이 사형을 당할 경우 사건의 진실이 영원히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족들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범인이 머물렀던 호텔에서 ‘검증회’를 열기로 한다.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여도 도움될 사람을 데려와도 된다는 조건의 검증회에 가가 형사는 남편을 잃은 하루나와 동행하게 된다.
부모를 모두 잃은 도모카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기숙사 사감과 함께 참석하고 부인을 잃은 다카쓰카 회장은 지역경찰로 사건을 직접 조사한 사카키 형사과장과 함께 온다.

가가 형사의 사회로 시작된 검증회는 파티에 참석한 가족 모두에게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 가며 사건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나가기 시작한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된 검증회는 다음 날 사건 현장에 나가 범인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진행되면서 빈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모카와 함께 온 기숙사 사감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참석자들은 큰 혼란에 빠진다.

범인을 찾는 수사가 아닌 사형을 당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만 남기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범인이 진짜 살인을 저지른 이유를 알기 위해 유가족이 모여 함께 추리해 나간다는 형식의 이야기다.
그러니 범인의 뒤를 쫓기 위해 급박하게 행동할 필요도 없고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첫째 날의 검증회는 다소 지루하게 흐르는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완벽해 보이는 가족의 이면에는 비밀이 있고 더없이 친절한 이웃은 웃는 낯으로 대하지만 뒤돌아서서는 서로를 깍아내리고 자기들과 경제적 형편이 다른이를 보며 수근거리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검증회가 진행될 수록 부유하고 행복하게만 보이던 가족들의 비밀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고 모든 사실이 밝혀져 안도하는 순간 허를 찌르는 반전은 아침 드라마급이라 더 놀랍다.
특별할 것 없는 질문들과 참석자들의 사소한 태도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가가 형사의 실력을 보며 앞으로 가가 형사 시리즈는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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