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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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해 평소에 시집을 잘 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작가의 책을 검색하다 시집을 발견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시집을 여러 날 읽다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찰나의 무언가를 잡고 싶어 졌습니다.


거리 한가운데에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

모르겠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는지
거리 거리, 골목 골목으로 흘러갔는지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일부)


시인의 시는 어려운 언어로 나를 사로잡기도 하고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 밑줄 그어가며 공부하던 시 말고는 외울 수 있는 시가 한 편도 없는 데 작가의 시를 외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곁에 두고 오래오래 읽고 싶어 집니다.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서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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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퍼레이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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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 중 아홉 번째로 번역된 작품이다.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 마나부가 등장하는 시리즈로 경시청 엘리트 형사 구사나기가 사건의 대한 조언을 구할 때면 유가와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준다.

지방의 소도시 기쿠노에 위치한 작은 식당의 딸인 ‘사오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부모의 일을 도울만큼 성실하고 착하다.
노래에도 재능이 있어 곧 가수 데뷔를 앞두고 있던 사오리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진다.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3년 후 쓰레기집 화재 현장에서 집주인인 노인과 사오리의 시신이 발견되고 노인의 양아들인 하스누마가 수사선상에 오르게 된다.
하스누마는 20여 년 전에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되지만 증거불충분과 묵비권으로 풀려난 적이 있다.

정황 증거는 하스누마가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지만 계속되는 묵비권으로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되고 구사나기는 유가와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이번에도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된 하스누마는 마을의 퍼레이드 행사가 있던 날 시신으로 발견된다.

단골손님만으로도 유지되는 작은 식당의 딸 사오리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유가와의 활약으로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유가와는 단숨에 범인을 지목하지 않고 경찰이 사건의 숨겨진 비밀에 다가갈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진범이 스스로 경찰을 찾아가도록 설득할 뿐이다.

살인자가 분명한 남자의 죽음이 자살이나 질병이 아닌 타살로 밝혀지는 순간 마을 사람 모두가 의심을 사게 되고 경찰은 증거를 찾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법의 테두리로는 범인에게 죄를 물을 수 없을 경우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함께 사적 복수의 정당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범인이 사석에서 범행을 자백하기까지 했다면 가족들은 어떤 수단으로든 죗값을 치르게 해 주고 싶을 것이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하스누마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생기지 않았던 소설은 살인의 진실 함께 숨겨진 반전까지 즐길 수 있어 재미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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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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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2005년에 첫 출간돼 2023년에 재판됐다.
모두 9편이 수록된 소설집은 한 번에 쉬지 않고 읽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괴하고 불쾌한 이야기들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물론 마지막 문장까지 속을 뒤틀리게 한다.
<저수지> 근처의 방갈로에 아이들만 남기고 엄마는 문을 잠근 체 도시로 떠나고 역병으로 봉쇄된 <아오이가든>에는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낳기만 하고 자식을 방치한 부모를 떠난 아이들은 <맨홀> 안에서 살아가고 남편은 계곡에서 실종된 아내로 추정된 시체의 신체 일부가 발견될 때마다 <시체들>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는다.
놀이방 이용료조차 낼 수 없는 아이는 단백질이 제안된 실험실의 쥐처럼 가벼워져 등에 업혀 휘파람 소리를 <마술피리> 소리를 인 듯 따르는 쥐들과 함께 걷는다.

”시체, 개구리, 구더기, 쓰레기, 쥐, 고양이, 피,…” 읽는 내내 속이 불편하고 불쾌하고 두려운 것 투성인 소설은 문장들이 장면을 떠오르게 하고 그 장면 속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극한의 이야기들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분명 있다는 걸 알기에 현실이 아님을 애써 더 부정하고 싶어진다.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들은 자라 폭력을 대물림하고 어른들에 의해 버려지고 숨겨진 아이들이 분명 존재하고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들이 숨죽이며 사는 세상이 있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사회가 불안할 때 가장 위태로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는 재독 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만큼 괴롭지만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게 하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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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풀은 자란다 인생그림책 42
이수연 지음 / 길벗어린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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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 싫은 나는 학교가 끝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반 친구 중 키가 가장 커서 눈에 띄었지만 학기 초부터 내내 혼자 앉아 있던 조용한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 애는 재미있는 곳을 함께 가자며 우산도 없이 빗속을 뛰어갑니다.
어른들이 ‘귀신이 나오는 곳‘이라고 말하는 불이 난 뒤 오랫동안 버려진 맥주 공장으로 나를 데려간 아이는 나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답니다.

100페이지가 넘는 그림책은 비 오는 날의 숲 속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 어른들 몰래 금지된 장소인 맥주 공장의 담장을 넘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맑은 날엔 느낄 수 없던 감정들과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빠 이야기를 하고 번개를 맞은 나무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두렵기만 하던 풍경은 전혀 새롭게 보이고 서먹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속마음을 전합니다.

“14년 전의 습작”을 엮어 만들었다는 그림책은 두 아이의 성장과 우정은 물론 그림에서는 비 냄새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선 듯한 맥주 공장은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을 떠오르게 하고 잊고 지내던 친구를 기억하게 합니다.

“쪼개지고 쓰러지고 들풀에 덮여 있지만
번개 치는 날, 그때 내 옆에 있었던 그 나무인 건 변하지 않는 거잖아.”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변하고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늙어가지만 서로에게 품었던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큰 비에 누워있던 풀들이 날이 개면 훌쩍 자라 꼿꼿하게 서듯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이 아무리 커도 나를 믿고 곁에서 함께 해주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나뭇잎에 걸려있는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그림은 함께 여서 두렵지 않은 아이들의 천진함과 어울려 비 오는 날의 어느 날을 떠오르게 합니다.
꿈속 같은 숲 속을 무사히 지나 무지개를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웃음 짓게 되는 그림책입니다.


<길벗어린이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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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가는 날
전혜진 지음 / 래빗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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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대로변에서 흔히 보이던 분식집 ‘김밥천국’이 근래에는 검색을 해야만 찾을 수 있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고 가게 수도 현저히 줄었다.
예전처럼 만원 짜리 한 장이면 두 세 가지 메뉴를 시킬 수는 없지만 그곳은 여전히 저렴함 가격으로 한 끼를 배불리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2007년 데뷔 이래 SF, 스릴러, 사회파 추리 소설부터 논픽션, 만화 스토리까지 전방위 매체와 장르에서 독보적인 활동”(인터넷 서점 책소개 중)을 해온 전혜진 작가의 신작 <김밥천국 가는 날>은 연작 단편소설집이다.
모두 음식 메뉴가 제목인 단편 10편은 김밥천국에서 허기는 물론 마음의 헛헛함까지 채우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20년 넘게 학습지 교사를 하는 ‘은심‘은 항암 치료 중에도 일어 학습지를 열심히 하던 회원 ‘진수’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장을 찾아간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진수‘는 항암치료 중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김치만두를 그리워한다.

베트남에서 대학까지 졸업했고 남편을 사랑해서 한국으로 시집온 ‘리엔’은 현재 다문화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늘 불편하다.
계약직으로 시청에서 근무하는 ‘아람’은 상사들의 말도 안 되는 억지와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다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다.

가정에 충실하고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직원인 황상식은 수연에게는 성폭행을 저지른 파렴치한일 뿐인데 어느 날 그의 부고가 전해진다.
이혼 후 전남편에게 양육비 한 푼 못 받고 홀로 딸을 키우는 희우는 매번 어린이집에 가장 늦게 아이를 데리러 가는 엄마다.

열 가지의 음식이 함께 한 이야기는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인천광역시청 근처의 김밥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곳에 들러 식사를 하는 이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지만 각자 크고 작은 걱정과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특수고용직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 죽음을 앞둔 남성, 그리고 성폭행 피해자,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라 여전히 가족의 끼니를 챙기는 여성, 한부모가정의 여성, 출산, 육아 휴직으로 고민하는 계약직 여성 등등 모두 부당한 대우 속에서 고단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김밥천국에서 식사를 하고 난 후 기운을 차리고 툭툭 일어나 남은 하루를 살아간다.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메뉴지만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한 끼를 든든히 채운 이들은 앞으로 나갈 힘을 얻고 내일로 나아간다.
10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한 다리 건너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이라 다음 이야기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기대하며 읽게 된다.

혼자 가도 어색하지 않고 여럿이 가도 부담 없는 “김밥천국”에 들른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삶이 내일도 여전히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건 알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라 인상 깊이 남는다.
맛깔난 음식 이야기는 읽는 내내 군침을 돌게 하는 것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겹쳐 보여 그곳에 가면 나 역시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본 도서는 래빗홀클럽 활동 중 래빗홀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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