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와 함께하는 독일 문학기행 4
부자 괴테 가난한 실러

괴테와 실러는 서로 알아주는 지인이었다.
동시대를 함께 산 뛰어난 문인 둘이 친한건 전례없다고
로쟈쌤 강의를 듣고 보니 그렇다.

더 매력적인건 실러다.
가난하고 쫓기고 늘 기침을 하며 살았다고
바이마르 근대 민주주의 헌법을 잉태한 도시와
실러는 잘 어울린다.
햇살 좋은 가을처럼 투명한 혁명을 꿈 꾸었는가.

실러하우스에서 재미있는건 친필 가계부다.
꼼꼼하게 자기 재산의 모든 내역을 정리해 놓기도 했다.
실러를 찾아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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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하는 독일 문학기행 3
헤세의 고향 아름다운 칼브

작고 아름다운 도시
공기는 너무너무 신선하고
어디로 눈을 돌려도 호강이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다리 위에 헤세가 반기고
마을 골목에 선 크눌프의 미소를 본 순간 악수하고 싶었다.

저 높은 곳에 우러러 보게 선 동상이 아니라
보도블럭 위에 실물 사람크기로 서있어서
말할수 없이 친근하고
이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숨쉬며 사는 듯이

칼브에 갔더니 헤세보다 칼브가 좋더라. 헤헤.

아래 사진은 은행앞에 서 있는 크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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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하는 독일문학기행2
여우가 잠든 숲에서 산책하기!

늘 궁금했다.
넬레 노이하우스가 엄청 자랑하는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사는 타우누스 산은 어떤 모양일까.
계획에 있던 코스는 아니고
점심을 타우누스 산 한 모퉁이 한식식당에서 먹고
잠깐 올라가 산책했다.
아! 이런 산이구나.
높지 않고 구릉이 완만하게 올라가는 느낌이다.
날카롭다기보다 포근한
덤으로 생각지 못한 대박 선물을 받아 신났어.
같이 간 일행분들은 추리소설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행운을 만난지 잘 모른다. 헤헤.

추리소설을 주제로 일본이나 북유럽 여행을 하는
패키지 상품이 있으면 좋겠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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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하는 독일문학기행 1. / 롯데의 마을 베츨라

독일문학기행 5일째 베츨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모델이 된
샤를로테하우스와 예루살렘하우스가 있는 곳
헤세의 고향 칼브처럼 시골의 조그만 도시가 예쁘다.
눈을 어디에 두어도 즐겁고
카메라를 어느방향으로 돌려도 그림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9명의 가정교사에게 교육받고
평생 돈, 명예, 여인 무엇하나 부족함 없었던 괴테는
근대 문학의 출발, 맨 앞쪽 그룹의 사람이다.
인과의 퍼즐이 부실한 책을 재미없어 하는 나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베르테르의 슬픔이 지루했었다.
왜 죽는거지?

헤세에서 출발해 괴테를 거쳐 토마스 만으로 가는 흐름의 이번 여행은 작가들에 대한 내 취향의 순서이기도 하다.
뒤로 갈수록 이해하기 쉬워
토마스 만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이맘때 독일 날씨에 대한 조언들을 듣고 걱정했었는데
날마다 더없이 화창하다.
마침 토요일이라 조그만 광장에 장이서고
시장 골목들 기웃거리다 알록달록한 가디건을 득템
여보 땡큐 ^^

저녁먹고 돌아온 호텔 바에서 어제와 다르게
토요일이라 작은 엠프와 컴으로 람바다풍의 음악이 쿵쿵
거의 20년 만에 이국땅에서 소박한 나이트를 즐겼네.
고등학교때 놀았다더니 현지인들이 엄지척하는
멋진 춤을 자랑한 김기식씨 으쓱하고
여보, 내 몸은 왜 여보처럼 안 움직이는 걸까.^^;

가을과 함께 여행이 무르 익어
오늘은 바이마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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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1. 

서문처럼 시작되는 어느 가담자의 수기는 슬프다. 

소비에트 문명, 나는 소비에트 문명의 흔적을, 소비에트의 익숙한 얼굴을 서둘러 기록한다. 

모든 인간을 호모소비에트쿠스로 만들기 위한 거대한 실험이 필연적인 실패로 끝난후 알렉시예비치는 쓴다. 


우리 세대는 자유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은 지금 우린 자유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등이 굽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것이라고는 자유를 얻기 위해 죽는 방법 밖에 없었다. 

우리도 자유를 배운적이 없다. 자유를 위해 죽는 방법도 배운 적이 없다. 늘 복종을 배웠고, 대학만 가면 된다고 했지. 


자유란 알고보니 러시아에서 줄곧 모욕당해왔던 속물근성이 회생한 것이었다. 자유란 '위대한 소비전하'의 등장이었고 '어둠의 왕'의 출현이었다. 

소비에트 붕괴후 사람들은 자유롭고 행복해지길 기대했는데, 

지금은 가난한 것도 부끄럽고 취미로 운동하나 안 하는 것도 부끄러운 시대요. 한마디로 쫓아가기가 벅차지. 

구조정으로 정리해고되고 상점에는 물건이 넘치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느 것을 알고 당혹스러워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말해주었소. 돈이 있으면 인간이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법칙을 

호모 소비에티쿠스, 그게 자본주의예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가지 이념이 있었던 세상과 자본주의만 있는 세상은 모두 비참하구나. 


사회주의는 강제노동수용소, 밀고, 철의 장막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에요. 그 안에는 자기 주머니만 채우는 데 여념이 없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정의롭고 밝은 세상, 즉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약자를 불쌍히 여기고, 함께 고통을 이겨나가는 그런 세상이 있던 말이에요...... 삶은 돈과 어음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일 뿐이고, 자유가 곤 돈이고 돈이 곧 자유라는 말들을 하지요. 그리고 우리의 삶은 10원짜리 한개의 값어치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공산주의자였고 앞으로도 공산주의자로 남을 겁니다. 


그러면 제가 공산주의를 믿었냐고요? 거짓말 안하고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정의로운 삶의 방식을 구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었어요. 이미 말씀그렸지만, 지금도 그러게 믿고 있어요. 


한 곳에서 어떤 물건을 산뒤 다른 곳에서 3코페이카 더 비싸게 파는 사람이 영웅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다고요. 지금 사람들은 그런 생각들로 세뇌하고 있잖아요. 

이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정말 정확하게 표현한다. 

소비에트 붕괴이후 태어나서 수십년을 맑시즘을 학습하고, 변증법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 대신에 정글의 법칙이 들어왔어. '너부다 약한 자를 물어뜯고 너보다 강한 자에게는 무릎을 꿇어라.'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 법칙이......


평범한 춤조차 우리는 저급하다고 생각했어. 춤을 춘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재판도 열렸고, 춤을 추고 여자친구에게 꽃을 선물한 콤소몰들에게 벌을 줬어, 심지어 난 춤 관련 재판위원회 위원장도 했다니까. 난 내가 가졌던 그 마르크스적 신념 때문에 결국 지금까지도 춤을 못 춰. 나중에는 후회를 했지. 아름다운 여성과 한번도 춤을 추질 못했다니까. 미련 곰탱이!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들이다.  

내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읽고 번개를 맞은 느낌일때 1990년대 초, 소비에트는 이미 망한 후였다. 

그것이 내게 충격은 아니었지만, 내내 궁금했다. 

이 빛나는 사상을 태어나면서부터 배우고, 숨쉬어온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며, 어떻게 살까. 

유물론과 계급론으로 무장하고 역사발전의 법칙, 그이상을 신념화한 사람들이 정말 있었을까. 

모두들 독재자가 지긋지긋하고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불평등한 체제 따위는 쉽게 받아들여 졌을까. 

그 궁금증이 풀렸다. 

고통이었구나. 호모 소비에티쿠스, 이제 멸종을 강요한단 사람들. 


'모스크바는 말그대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쿠즈네초프 교수가 트로츠키에게 한 말에 대해)

'그 정도로는 배가 고픈 것이라고 할 수 없소.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을 함락했을때 유대인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을 먹었다오. 내가 당신들의 어머니들로 하여금 자기 자식들을 먹게 하거든, 그때 내게와서 배고프다 하시오.' 트로츠키, 1919

망할 인텔리겐챠같으니라고. 트로츠키.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니.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들을 먹게 되는 때에 너에게 간다면 배고프다고 말하러가는게 아니란다. 

네 목을 치러 가는 것이지. 


소비에트연방시절 수용소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얘기가 가장 슬프다. 

이제 막 태어난 꼬마 아이들부터 3살까지는 엄마와 살고, 4살에는 기숙사에서 산다. 5살이되면 고아원으로 보낸다. 

엄마와 떨어진 4살아이를 어쩌면 좋으냐.  

소비에트, 어떻게 이런 짓을 한거야.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2. 

세르게이 표도르비치 아흐로메예프. 소련 대통령 군사고문이었던 최고위층 

크렘인에 있을때도 그는 어색해 했습니다. '고고한 학'. '뼛속까지 군인' 이었던 그는 크렘림의 삶에 길들여지지 않았어요. "사욕없는 진정한 동지애는 군대에만 있다."라고 말했었죠...... 그는 17년 동안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흐로메예프가 크렘림으로 거처를 옮긴 후, 몇매나 많아진 월급을 거절했어요. 그때까지 받아왔던 월급이면 충분하다면서요. 이쯤되면 누가 돈키호테인가요?...... 500루블 ㅇ상의 외국 선물의 경우 의무적으로 국가에 제출해야한다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법령이 발표되었을때, 아흐로메예프 원수는 제일 처음 그 명령을 수행한 사람이자, 그 명령을 수행했던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소련이 무너지자, 아흐로메예프는 사무실에서 목메어 자살한다. 

1923년 태어나 소비에트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그는 소비에트가 아닌 나라에서 살수 없었던 것이다. 

평생을 이념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그 이념이 사라지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배운적이 없으니까. 

돈, 속물적인 삶을 경멸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돈을 벌기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회에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탱크와 로켓에 의해 정복당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제일 강하다고 자부했던 것, 바로 우리 영혼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무너진 겁니다. 체제가 썩었고 당이 부패했던 겁니다. 어쩌면 이것도 아흐로메예프가 삶을 포기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군요. 


그는 사관생도에서 시작해 군의 최고봉까지 올랐습니다. 소비에트 정권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최고 칭호인 소련군 원수, 영웅별 훈장, 레닌상...... 부유한 상속자가 아닌 어느 지방 벽촌,평범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에게 말입니다. 소련은 그와 같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가난하고 작은 사람들에게요. 그래서 그들은 소련을 사랑했습니다. 



3. 

유대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강한 바람이 불때 가장 높이 떠오르는 건 쓰레기다.'

맞네. 사회가 불안하고 변화가 많을때, 가장 높이 떠오르는 것. 

강한 바람이 불어도 떠오르지 않고 묵묵히 바닥을 지키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나는 실패한 소비에트의 꿈이 아직도 가치있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자본주의 사회 고통속에서 살며 사회주의를 꿈꾸는데, 아직도, 

나는 한번도 본적없는 호모소비에티쿠스 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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