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의 효용 - 노동자계급의 삶과 문화에 관한 연구 질문의 책 5
리처드 호가트 지음, 이규탁 옮김 / 오월의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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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급과는 관계없이 진지한 태도를 가진 '평범한 일반 독자' 혹은 '지적인 비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이 이야기를 전한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집필했다. 


현재의 문화적인 상황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불길한 모습 중 하나가 바로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언어와 엄청나게 수준 낮은 대중매체 사이의 괴리이기 때문이다. 


1952년 영국의 인문사회학자 호가트가 쓴다. 

전문적인 언어와 엄청나게 수준낮은 대중매체 사이의 괴리는 가속화되어 지금은 2017년 대한민국은 엄청나다. 

영국의 BBC는 가끔 보면 그래도 우리 수준보다는 높아 보이던데, 영국사람이 보기에는 답답할 수도. 


이러한 특성들의 근거는 주로 영국 북부 도시지역에서 내가 겪은 경험, 1920-1930년대에 내가 보낸 어린시절 그리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진 해당 계습과의 접촉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한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읽었다. 

1) 호가트는 1950년대에 영국노동자계급의 문화에 대해, 자신의 어린시절의 경험과 현재를 비교하며 망라했다. 

그 결과를 떠나서 그 과정이 부럽다. 

2017년이면 이제 대한민국도 이런 수준의 한국노동자계급의 문화에 대한 서술이 있어야 하는것 아닐까. 


2) 호가트는 계급이라는 말을 편안하게 쓴다. 

대한민국에서 계급이라는 말은 전문적인 언어거나, 빨갱이라는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평범한 일반독자를 상대로 쓰기에 불편한 단어라는 말이다. 이것도 영국이 부럽다. 

계급을 계급이라고 쓰지 못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계급에게 유리하거든. 


3) 호가트는 노동자계급 출신이다. 

그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 노동자계급의 가정에서 유독 책을 좋아하는 이상한 꼬마 였다가, 마침내 인텔리 지식인이 되었다. 

자기 출신 계급을 애정하면서도 자기 존재에 대한 인텔리 특유의 불안함을 느낀다. 

그런 예민함이 행간에 느껴질 때마다, 뭔지 알 것 같았어. 

이것은 노동자계급 출신 호가트의 자기 고백, 혹은 자기 분석이기도 하구나. 


4) 그래서 그는 노동자계급의 문화가 점점 긍정적인 활력과 비범함을 잃고 

대중문화를 생산하는 값싼 자본의 의도대로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 걱정스럽다. 

문화비평으로의 걱정이라기 보다 자기 존재가 이용당하고 길바닥에 내팽겨쳐지는 듯이 안타까운 것 같아. 



1970-1980년대 한국의 광산촌, 내 어린시절이 자꾸 생각나더라. 

그때 1세대 노동자였던 내 아버지 세대 광부들에게는 어떤, 문화가, 있었던가. 

2017년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문화가, 있나.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계급, 이었던 적이 있나. 


스베틀라나를 읽고 전쟁을 경험한 러시아의 성찰이 부럽더니 

호가트를 읽고 노동자계급의 문화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영국의 지성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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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승리자 박열 인문의 숲 나무 5
후세 다쓰지.나카니시 이노스케 지음, 박현석 옮김 / 현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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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박열을 보고 와서 박열과 후미코에 대해 읽어보기로 했다.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저는 저주하기 시작한 천황을 끝까지 저주하고 싶다, 있는 힘껏 옥사하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저주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저주해서 죽이고 싶다, 천황을 저주해서 죽일 힘을 끝까지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1926년 4월 6일, 지바 형무소에 투옥된 첫날부터 살아 나오기 전 아키타 형무소에서 보냈던 마지막 날까지 냉수마찰을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그 건강법이 저를 살아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너무 너무 억울한대, 나를 억압하고 내 삶을 망가뜨린 거대한 권력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때, 분노가 넘칠때

내 비록 힘이 없으나 너의 저주로 죽이고 싶다는, 그럴수 있을 거라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중에 저주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박열과 후미코의 재판 기록 르뽀

후세 다쓰지는 인권 변호사였다. 

전쟁으로 미친듯이 질주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이 횡횡할때 인권변호사를 했으니, 이 양반도 참 보통사람은 아니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무기징역을 살다 일본의 패망후 22년만에 출옥한 박열에 대해 변호사스럽게 썼다. 

사실관계의 정확성을 지키며, 꼼꼼하게, 하나하나, 모두, 후미코까지 


엄격하게 사실에 기반해 의미를 밝히면서도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 누가 경찰 관헌의 음험함과 비겁함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문장. 

팩트를 기반으로 하지만, 팩트의 나열로 멈추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쓰기도 하니 문장에 활력이 있다. 

박열과 후미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느껴지고, 후세 다쓰지 이 사람도 매력적이다. 

변호사였기 때문에 갖고 있는 재판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해석하며 

박열과 후미코의 편에서 분노하고 시원해하며 온전하게 기록하여 그들을 되살린 것은 후세의 공이다. 


후세 스스로 밝히듯이 박열에 대한 평전도 전기도 아니고 대역사건을 중심으로 한 박열의 단편을 쓴다고 했는대 

그 단면이 박열의 정체성이다. 

젊은 아나키스트, 속시원히 천황 암살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나를 죽이라고 법정에서 덤비는 깡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랬다가 22년후 마침내 출옥하니, 정말 운명의 승리자 박열이다. 

해방후 답답한 한반도 정세에서 어지러운 일들을 겪기 전이니 그야말로 빛나는 박열과 더불어 후미코동지와의 사랑까지.



2. 

재판결과 사형이 선고된 박열에게 천황의 은사로 무기징역으로 감한다는 은사장을 들고온 형무소 소장이 찾아 왔다. 

"...... 일본의 천황으로 부터 은사네 뭐네 하는 은혜를 입을 입장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다네. 단지 나는 내가 저주하고 싶은 대로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영이되어, 죽으면 죽은 영이 되어 천황을 저주 할 뿐, 그런 은사령 따위는 관심없다네."

관심없다며 받지않는 천황의 은사장을 들고 어쩔줄 몰라하는 소장이 가엾어진 박열 

"천황이 보낸 은사장은 받을 생각이 없지만, 자네가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자네를 위해서 그 은사장을 맡아두기로 하겠네."

소장은 기뻐하며 감사인사를 했다 하고, 이에 대한 후세의 평 

여기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명가 박열 군의 기백과인간 박열 군의 순정이 나타나 있어 흐뭇한 마음이 든다. 


이런 대목이 딱 묘하다. 

죽음을 각오한 박열의 기백은 황제 따위의 은사장으로 죽지 않게 되었다한들 관심없다고 한다. 

보통 이정도 견결함이면 황제의 명령에 복무하는 소장이 난처하건 말건 알게 뭐냐 싶은데

은사장들고 어쩔줄 모르는 소장을 보면 또, 그래 까잇거 너를 위해 내 큰맘먹고 맡아 둘께, 이러는 거다. 

유연하고 배짱이 있어. 자유로와 발랄한 영혼, 박열의 특징이다. 


박열처럼 강렬한 삶을 살았던 사람 조차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것은 그의 사상때문이고, 해방후 북으로 간 거취때문이겠지. 

산자가 기록하는 역사는 늘 이렇게 비열하다. 

배신자들이 쓰는 역사에 정의로운 싸움을 했던 사람들은 지워버리는 거지.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 전문이 한 장으로 처리되어 실려 있다. 인상적이다. 

1920년대부터 이미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했던 지식인들은 일본의 식민지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대체로 전향했다. 

남아서 무장독립운동을 주장하고 실천했던 사람들은 좌익, 사회주의 계열이고 

의열단도 무정부주의라고는 하지만 사회주의에 가깝다. 

폭력혁명론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폭력을 내세우니, 신선하네. 

뭘해도 비폭력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인 요즘 보면 파격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다. 우리들은 민중 속에서 민중과 제휴하여 끊임없이 폭력, 암살 등의 파괴를 행해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겠다. 그들 생활의 불합리한 모든제도를 타도하여 모든 인류를 해방하겠다.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하지 못하고, 사회로써 사회를 고정하지 못하는 이상적인 조선의 건설을 촉진하자. 


박열 뿐 아니라 후미코의 성장과 천황관도 흥미롭다. 

1923년, 지금보다 100년전을 산 박열과 후미코가 2017년의 사람들보다 더 급진적으고 패기 있다. 

매력적이라고 할 밖에. 

도덕이라는 것은 언제나 강자에게 유리한 대로 다듭어지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강자는 자기 행동의 자유를 옹호하면서 약자에게 복종을 가르칩니다. 이것은 약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강자에 대한 굴종의 약속이 이른바 도덕인 것입니다. 

맞아요. 후미코. 정말 그래. 


박열은 모르겠고, 후미코는 더 읽어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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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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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경쾌하다. 짧게 짧게. 늘어지거나 질척거리지 않고 깔끔하다. 


하지만 삽을 들어 올리자 녀석의 몸은 죽은 듯이 축 늘어졌고 갑자기 악취가 코를 찔렀다. 고양이가 죽을 때 저절로 분사된 배변 냄새였다. 나는 피를 볼 거라고만 생각했지 똥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악취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이 역겨운 고양이를 죽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역겨운 사람도 죽이기로 한다 


피터는 디테일한 표현을 잘한다. 

잠에서 깨면 온몸이 끈끈해 곧장 찬물로 샤워를 하지만 욕실에서 나오는 순간 다시 땀이 흐르는 그런 날씨였다. 

이런 더위를 이제는 안다. 

예전에는 여름에도 찬물로 샤워하면 한동안은 시원했는데, 요즘은 정말 수건으로 닦고 옷입으면 도로 끈적인다. 


죽여 마땅한 사람을 고르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모두 여자들이다. 

변변찮은 남자들 같으니라고, 그러나 왜 모두 여자일까? 석연치 않다. 


릴리가 처음으로 죽이는 고양이는 집 없는 떠돌이 고양이였고 

처음으로 죽이는 사람 역시 집 없는 떠돌이 화가다. 

물론 그고양이와 화가는 릴리의 삶에 침입해서 성가시게 하고 위협하기도 했지만 

하필이면 왜 가장 취약한 사람을 죽일뿐이면서 '죽여 마땅하다' 고 표현할까. 

게다가 애인이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는 것이 죽여 마땅한 일인가? 헤어질 일이지. 

피터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보스턴의 집에서 눈을 뜬 어느날 아침, 침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테드를 내려다봤다. 그는 아직 깊이 잠들어 있었고 얼굴에는 베개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의 탁 밑에 조금 남아 있는 거뭇한 수염을 보았다. 분명 전날 면도할 때 빠뜨렸을 것이다. 그는 코를 골고 있었다. 아주 살짝 

마리안은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고 앞으로 점점 더 거슬릴 것이라는 걸 알았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여자는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여자는 참을 수 없느 지루함과 실증을 느낀다. 

마리안의 이유는 차라리 신선하다.  


그나마 경괘한 문장으로 휘리릭 읽히던 스토리가 테드의 죽음 다음 부터는 막장이다. 

치밀하고 냉정한 캐릭터 릴리는 그녀답지 않게 별다른 설명없이 폭주한다. 

그녀가 서툴고 경황없이 감정적인 위험을 무릎쓰며 서두르는 것이 바보같다. 

이 여자 경험많은 살인자 맞아? 


릴리아 마리안의 이러식의 교차와 폭주는 인과의 설명도 없고, 마지만 반전은 막장드라마다.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릴리다. 

그녀의 선택도 방식도 마지막 오바도, 거슬린다. 


깔끔하고 경쾌한 문체로 지루하지 않은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책을 손에 들고 한 호흡에 휘리릭 읽기에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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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역사 - 최초의 아내 이브부터 <인형의 집> 노라까지, 역사 속 아내들의 은밀한 내면 읽기
매릴린 옐롬 지음, 이호영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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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사회를 사원에 새겨진 부조나 정부 문서에 기록된 공식적인 얼굴로 판단하는 것과, 여성들이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바를 주관적으로 기록한 시, 편지, 일기, 회고록 등에 나타난 그 사회의 맨 얼굴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매릴린은 방대한 기록을 확인하고 인용한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미망인이 남편의 집을 떠나게 됐을 경우 결혼 했을때 받은 옷가지와 보석, 혹은 지참금과 혼수를 챙기지 못한 채 몸만 나가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자식들은 이 물건들을 어머니에게 돌려줄 때 종종 늑장을 부렸다. 피렌체의 고문서 보관소에는 지참금을 돌려주지 않는 자녀들을 상대로 미망인이 벌인 재판 기록이 잔뜩 쌓여 있다. 

여성의 위치는 가정안에만 있었다. 공적인 영역에 그녀의 지위는 없었다. 

오로지 집안에서 딸이고 아내고 어머니라는 역할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마음대로 이혼 할 수 없을 뿐더러 이혼당하면 쫓겨나고, 미망인이 되어도 자식들이 재산을 다 가져갔다. 

남편은 그녀를 소유했고 처벌 할 수 있어서, 그녀는 매 맞으며 살았다. 

참, 집요하게 가혹하다. 

그러니 여성의 역사가 아니라 아내의 역사다. 


종교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에서 탈피한 계몽 사상의 시대인 18세기에도 사람들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을 조금도의심하지 않았다. 


"남자는 강하고 적극적이어야 하며, 여성은 약하고 수동적이어야 한다. 여성이 지녀야 할 가장 바람직한 덕성은 친절함이다. 여성은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부당한 일과 잘못을 불평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일찌감치 배워야 한다."

루소의 <에밀> 내용중 일부를 옐롬이 인용한다. 

참 잘나셨다. 루소. 저 책이 아직도 필독서 중 하나다. 


18세기 미국 여성 세라 캔트웰의 신문광고

존 캔트웰은 나를 신용했던 모든 사람들을 향해 경고하는 내용의 광고를 신문에 내는 후안무치한 짓을 저질렀다. 그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 돈 한푼 없던 사람이다. 그가 언급한 침대와 식탁은 내가 결혼 할 때 가져간 것이다. 그는 결혼할 당시 침대도 식탁도 없었다. 나는 가출한 게 아니라 그가 때리자 그를 피해 도망쳤을 뿐이다. 


이 광고들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로 한편의 소설을 써도 될 정도다. 

21세기 한국에 사는 여성도 저 광고뒤에 숨어 있는 한편의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다. 

신문광고를 내며 부부 싸움을 했구나. 캔트웰에게 저것은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을 거다. 

저런 신문광고를 내기까지, 아니 저 집을 뛰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번민이 밤이 있었을까. 


지금부터 70년 전인 1851년에 남부에는 흑인 노예제가 있었고, 미국 전역에는 마누라 노예제가 있었다. 열네살짜리 계집애가 대부분의 시간을 술 마시는데 보내는 마흔네 살의 남편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지금도 그런 남편과 살아야 했던 소녀 시절을 떠올릴 때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는 술에 취하면 자주 나를 죽이려고 했고 내가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느낄 때까지 매질을 하곤 했다. 


1800년대 부터는 특히 여성들의 일기, 편지의 직접 인용이 많다. 

이런 개인적인 기록들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부럽네. 


전쟁전 1919년에 조선 산업 전체 피고용자의 겨우 2퍼센트만이 여성이었다. 과감하게 작업장에 나온 여성들은 휘파람과 야유 세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조선소에 많은 여성이 고용되면서 통계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급변했다. 1944년에는 조선소 노동자의 10~20퍼센트가 여성이었으며, 대부분의 남성들은 어쩔 수없이 여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모든 기득권 있는 자들이 힘없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배울때는 '어쩔 수 없을' 때 이다. 

스스로 알아서 존중해주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어쩔 수 없을때 조차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남자들을 아직도 많이 본다. 



2.

여성이 성공하는데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그녀가 절대로 아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앤 레아 메리트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 나에게도 마누라가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편한 삶을 살겠지. 

물론 나는 노예를 갖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마누라도 갖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갖고 싶지 않은 것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다른것이다. 


생생한 인용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매릴린이 방대한 원자료를 검토하며 큰 일을 했구나. 


영국과 미국 아내의 역사를 보았다. 

아시아 아내의 역사를 보고 싶다. 


매릴린이 들어가는 글에서 한말을 옮기며 마무리 한다. 

불행히도 아내는 남편에게 봉사하고 복종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때리고 들볶아도 괜찮다는 낡은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 뉴스를 보면 아직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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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2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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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웨디렐. 이 여자 재밌다. 

드레스의 박음질 솔기마다 금가루를 감추고 있는 여인. 

모든 남자들에게 연민을 불러 일으키고 돌봐주고 싶게 만드는 창녀 

모든 남자들이 안나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심지어 그녀에게 이용당하고 사기 당했다는 걸 알아도 분노는  잠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역대급 미스터리 여주인공이다. 


1월 14일밤에 무슨일이 있었을까. 

카버가 웰스를 오두막에서 만나고 떠나고 배가 뜨고, 로더백의 사라진 화물상자 안에는 밀수품이 들어있고 

때를 같이하여 사라진 스테인스

안나의 드레스 솔기에 있는 금가루는 누구의 것이고, 어떤 방법으로 빼돌려져 밀매되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는 무디는 누굴까. 

금궤는 어디 있냐고. 


모든 인물들이 개성적이다. 

은행원, 법원서기, 교도관, 목사, 마약굴 주인, 선장, 신문사 사장, 약사 여기에 중국인과 마오리족 남자까지 

이 모든 사람을 편견없이 딱 그사람답게 등장시켜 머리를 굴리고, 화를 내고, 불안한 눈빛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직조된다. 

퍼즐처럼 전체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맞춰지는 가운데 서로 속이거나 속으니, 이야기는 더욱 정교해 진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모두 조금씩 진실을 알고 있다. 

저 많은 인물들이 모두 금과 관련해 자기 속셈이 있고 조금씩은 악당인데, 귀엽다. 


다만 행성과 인물을 맞추는, 점성술인지, 여튼 별 의미 없어 보인다. 

그게, 뭐, 그다지. 효과적인 장치로 느껴지지 않아. 신경쓰지 않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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