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술관을 걷다 - 13개 도시 31개 미술관
이현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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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그로피우스를 제외하면, 이 책에서 주목한 예술가들은 나치에게 이른바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힌 이들이다. 나치는 요시찰 인물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으나, 하나의 이름표로 싸잡이 부르기에 그들의 삶과 예술은 구름처럼 다양했다. 그 각양각색을 보여주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독일 미술가를 처음 만나며 나치에게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힌 이들을 보는 것은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첫번째 소개되는 화가는 여자는 아직 미술학교에도 갈수없던 시절의 자의식 강한 파울라 

파울라는 다작을 남겼지만, 생전에 고작 석점을 팔았다. 구매자는 전부 친구나 지인이었다. 그중에는 이러한 말을 남긴 릴케가 있었다. "모든 예술작품과 더불어 새로운 것이 나온다. 세상에 한 가지가 더 나온다." 

파울라 편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페이지를 넘기면 두번째 소개되는 조각가 렘브루크 편의 제목이 보인다. 


정확한 자세로 좌절하기 

이현애의 책을 처음 읽는데, 인문학척 기본소양이 탄탄해 보이는 문장이다. 신뢰가 생긴다. 

1차세계대전 당시 그는 감독관이 제안한 것처럼 전투를 마친 군인이 비장한 자세로 칼집에 칼을 집어넣는 형상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전몰장병 묘지가 애국심과 영웅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1916년 그는 <목락한 사람>을 제작한다. 

그는 무릎과 팔이 꺽이고 고개를 땅에 처박고 넘어져 있다. 

상승과 몰락 사이에서 정확하게 좌절하기 

그리고 독일 언론은 혹평한다. 


뜨거운 열정과 병적인 몰입은 구분이 힘들다. 그는 손이 잘려서 그림을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환각에 빠졌으며, 군인들이 스위스 산골 마을까지 쫓아와 자기를 잡아갈 거라는 망상에 시달렸다. 그는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과 함병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화창한 6월 어느날 들판으로 달려나가 가슴에 총을 겨누었다. 향년 58세였다. 

키르히너의 청년시절 공동체 다리파는 1906년 첫 단독 전시를 드레스덴의 전기램프 공장을 빌려 열며 

지역 신문에 프로그램을 발표한다. 

우리는 창작하고 향유하는 신세대가 발전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청년을 부른다. 우리는 미래를 짊어질 청년으로서, 안락함을 추구하는 앍은 힘들에 대항하여, 가난과 삶의 자유를 얻고자 한다. 창작의 욕구를 격정적이고 거짓없이 표현하는 자라면 누구나 우리 편이다. 

패기있는 선언이다. 이 소박한 모임은 그러나 다리파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작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모더존-베커와 콜비츠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마땅한 해석을 해주어 편안하다. 

여성, 노동자를 주로 배제하는 남성들의 책에서 좀처럼 얻기 힘든 편안함이다. 

콜비츠이전에 누가 이토록 세심하게 여성노동자가 처한 현실에 형태를 부여했던가? 노동하는 남성은 콜비츠이전에 다수 그려졌지만 노동한느 여성은 타자 중의 타자였다. 


그는 하고 싶은데로 했고, 되고 싶은 대로 되었으며, 하고싶은 것과 되고싶은 것을 일치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삶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가족과 국가는 한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함부로 펼칠까봐 온갖 저항을 아끼지 않는다. 에른스트는 이와 같은 저항을 반기듯 즐기며 마찰을 일으켰으니, 그에게 마찰은 예술이요, 예술은 마찰이었다. 


그렇다면 다다는 뭇엇을 했을까? 다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했다. 규율, 관행, 도덕, 질서, 합리가 시키는 것이라면 아무것도. 다다이스트들은 시인과 미치광이가 되어서 떠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했다. 그들은 카페나 주점에 모여서 떠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전쟁과 군대와 경찰을 저주했고, 작시법에 해방된 시를 주절 댔고, 이것도 예술가인가 싶은 음악과 그림을 지어냈다. 그것이 다다.

몇명 안되는 청년들이 전쟁을 경험한 후 카페나 주점에서 떠들었을 뿐인데, 백년이상 화자되는 이야기가 되었다. 

전후 시대정신을 외쳤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그런것이다.  


나찌시대에 퇴폐미술로 찍혀 탄압받았던 미술가들이 

전후 <카셀 도쿠멘타> 전시를 통해 나찌를 반성하며 부활하지만 

건강과 퇴폐의 이분법이 냉전시대에 추상과 구상의 이분법으로 바뀌엇을 뿐 

이를테면 추상표현주의는 반공 및 자유이데올로기를, 리얼리즘은 전체주의와 계획경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뭘 반성한거니. 


1966년 [뉴욕 타임스]지가 마침내 미 중앙정보국이 벌인 첩보 활동을 폭로했다. 이로써 자유주의 진영의 자유 이데올로기가 '선전선동을 위한 엔진' 이었음이 만천하에 그러났다. 추상 미술이 보편적인 예술언어이며, 정치에 관해서 침묵한다는 믿음은 주입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햇다. 

마치 사회주의 국가의 미술과문학만 선전선동의 도구였던 것처럼 주장하는 저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횡횡한다. 

순수문학은 정치에 침묵 한다는 주입된 믿음 말이다. 

최근에는 좀 바뀌는 것 같아 다행이다. 

광화문에서 우리가 든 촛불이 혁명이었다면, 이제 시작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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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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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진 자들은 더 높은 곳으로 집을 올렸다. 없는 자들은 바다가 내어준 땅에 집을 지었다. 법은 금했지만 돈이 없었고 살곳이 없었다. 몇년만에 질척거리는 작은 구역이 만들어졌다. 편의상, 아랫동네라 불렀다. 부유한 자들이 사는 구역은 윗동네가 되었다. 이도시에 '부산'아닌 새로운 이름이 붙여지진 않았다. 10년후, 또한번의 쓰나미가 아랫동네를 삼켰다. 많은 사람이 죽고 산 사람은 모든걸 잃었다. 


쓰내미가 지나간 후로 매번 조류독감이 끊이지 않았다. 구제역이 잇달았다. 사람들은 살기위해 가축을 죽였다. 죽여도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모든 가축을 죽여 멸종시켰다. 그리고 새로이 먹을 동물을 만들어냈다.....쥐의 얼굴에 돼지같은 피부, 소를 닮은 거라곤 노린내 밖에 없었다. 


아랫동네 사는 이우환은 목숨건 시간 여행을 해서 2019년으로 온다. 

곰탕 끓이는 법을 배워 아롱사태를 사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이름도 참 우환이 뭐니.슬픈일 안좋은일을 우환이라고 하잖아. 

여기에도 역시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이 많다. 

양창근, 이순희, 이종인 캐릭터들이 좋다. 튀지않고, 순한 인물들 


처음 곰탕을 먹은 우환 

맛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붙드는 맛이었다.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진  않은데, 풍부했다. 한가지 맛으로 깊었다. 

곰탕을 소재로, 곰탕을 변주하여 추리소설을 쓰다니 

먹방이 풍미하는 요즘, 시류에 딱 맛을 뿐 아니라 스피디한 스토리, 군더더기 없이 짧게 끊어지는 문장 

인물들이 모두 남성인데 과묵하고 우울하고 사람들과 관계에 서툴러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들이다. 


곰탕만드는 법을 배워 2063년으로 돌아가 큰돈을 벌어 윗동네로 이사가서 살아야 할텐데 

진국 곰탕맛을 본 부산에는 레이저 총들고 사람을 죽이는 놈이 나타나고 심상치 않다. 

재밌다. 휘리릭 한호흡에 끝까지 읽힌다. 

우리 장르문학은 영화의 스크린을 먼저 탐색하고 이제 여기까지 왔구나. 

흠잡을 데 없이, 이만하면 딱 좋다. 

김영탁이 다른 작품이 있는지 검색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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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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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케플러가 여기서 "소리의 화음"이라 한것은 행성마다 그 움직이는 속도에 대응되는 음이 있다고 행각해서이다. 그는 행성들에 당시 유행하던 라틴 음계인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를 대응시켰다. 행성 구들이 이루는 조화 속에서 지구의 음정은 파와 미였다. 케플러는 지구는 끊임없이 파와 미를 웅얼거리니 라틴어로 '파민' 즉 '굶주림'을 연상케 한다면서 이 서글픈 단어 하나로 지구를 제대로 묘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보잘것 없는 시골학교의 수학 선생이며 평민 출신이던 케플러가,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들의 운동의 법칙을 발견하여 정리한후 스스로 '비록 적게나마 지극히 높으신 신의 환희를 맛보게 됐다.'고 썼다.

지구에 대한 묘사로 굶주림을 떠올리는 천체물리학자다. 이 책은 이런 재미가 있다.

비록 케플러의 법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수고로 그는 벌견의 환희를 맛보핬고 우리는 우주의 이정표를 얻었다. 

칼세이건이 케플러에게 바치는 문장 

우주의 이정표를 만든 거인, 너무 일찍 태어난 비운의 천체 물리학자, 마녀사냥이 횡횡하던 시대 

미신과 폭력, 약탈과 고문살해의 시대를 살다간 케플러가 죽고 12년후 뉴턴이 태어났다. 


1666년 스물세살의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학생이 됐을때 흑사병이 돌았다. 그래서 뉴턴은 자신이 태어난 외딴 고향마을 울즈소프에 내려가서 어떤 의무에도 얽매이지 않고 1년의 세우러을 편히 보낼수 있었다. 뉴턴은 그 1년동안에 미분과 적분을 발명했고 빛의 기본 성질을 알아냈으며 만유인력 법칙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거참. 천재는 이런 사람인가봐. 


죽기 바로 전 뉴턴은 이렇게 썼다.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우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히 미지로 내 앞에 그래도 펼쳐져 있다. 

거참. 천재라니.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로마 카톨릭의 철하자 조르디노 부루노는 1600년에 말뚝에 묶여 화형에 처해진 비운의 인물이다. 브루노는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세상들이 존재하며 그 중에는 생명이 사는 곳도 많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과 또 다른 몇가지의 죄목이 추가되어 그는 화형을 당했다.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던 시대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대한민국은 아직도 사상을 처벌한다. 우주를 읽으며 인간을 읽는다. 


인류사상사에서 위대한 혁명이 기원전 600년과 400년 사이에 일어났다. 혁명의 열쇠는 손이었다. 이오니아의 뛰어난 사상가들 중에는 항해사, 농부, 직조공의 자식들이 있었다. 그들은 손을 써서 물건을 고치고 만드는 일에 익숙했다. 다른 나라의 사제들이나 서기들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치 속에 자라서 손을 더럽히기를 싫어했지만, 이오니아 인들은 그 근원부터 그들과 달았다. 그들은 미신을 배척하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들을 해냈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히포크라테스, 엠페도클레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 


데모크리토스에게 있어 삶은 세상을 즐기고 온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는 '축제 없는 인생은 여관이 없는 긴 여정과 같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주를 탐구하는 뛰어난 인문학자인 칼 세이건에게 놀란다. 



2. 

대뇌 피질이 사람을 동물적 인간에서 해방시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비나 도마뱀의 유전적 행동양식에 더이상 묶여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대신 자신이 뇌 속에 집어넣은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각자는 한사람의 성숙한 인격체로서 누구를 아끼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하지, 파충류 수준의 두뇌가 명령하는 대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자기 자시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를 관찰하고 인간을 탐구하여, 나를 성찰한다. 


지구에서 살아오는 동안 인류는 못된 진화적 습성을 많이 길러 왔다. 호전성, 그릇된 관습,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이방인에 대한이유없는 적개심같이 오랫동안 유전돼 온 못된 요소들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을 측은히 여길 줄 아는 좋은 천성도 갖고 있다. 

우주에서 보면 국경이 보이지 않는 푸른 점,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르 죽이고 파괴하는 것에 골몰하고 있다는것. 

수천년동안,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니까. 


과연 누가 우리 지구의 편이란 말인가?


우리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우리의 이웃이 지구의 어디에서 살든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저멀리 지구가 아직 새내기 별이었을 때부터, 우주의 바다로 항해하는 시대까지. 

세이건의 인문학 



3.

앤 드루얀에게 바친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책을 열면 첫장에 아내에게 바치는 유명한 헌사가 있다.

우주적 성찰을 하는자의 낭만적 사랑고백이다. 부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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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누아르 2 : 창백한 범죄자 베를린 누아르 3부작 2
필립 커 지음, 박진세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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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새벽 네시. 단잠을 깨우는 초인종 소리. 게슈타포가 방문했다. 

나는 주의 깊게 옷을 골랐다. 내가 가진 옷중에 가장 싸구려인 저면 포레스트 정장을 입고 낡은 구두를 신었다. 주머니에는 담배를 쑤셔 넣었다. <베를린 일러스트레이티드 뉴스> 한부도 챙겼다. 하이드리히의 아침 식사 초대란 것은 불유쾌한 방문이라는 것과 경우에 따라서는 장시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오후 네시, 옛친구의 방문을 쓰듯이, 마치 일상을 쓰듯이 담담한 필체다. 

공포스런 게슈타포의 방문을 공포의 경악없이 쓰는 것이 뭘 의미하는 걸까. 거짓말 처럼 느껴진다. 


파트너 브루너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바로 죽여 버리네. 

맞다. 느와르의 탐정에게 외로움은 정체성인데, 한쌍이면 안어울린 다는 거지. 



2. 

그렇다고 해도 일번적으로 지포라고 불리는 보안 방첩부와 게슈타포의 차이는, 이두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들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 차이를 보크부르스트 소시지와 프랑크푸르터 소시지의 차이 정도로 이해한다. 두 소시지는 각자 특정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모양도 맛도 정확히 똑같다. 

이런 유머를 첫시리즈 부터 줄곧 유지한다. 장점이다. 


공포의 황태자 하이드리히가 말한다. 

"어떤 미치광이가 베를린 거리를 배회하고 있소. 귄터씨."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걸 아시다니 놀랍군요." 내가 말핶다. 하이드리히가 성급하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난 돌격대원이 어떤 늙은 유대인을 두들겨 패는걸 말하는게 아니오. 살인자를 말하는 거지. 그놈은 몇달동안 네 명의 젊은 독일 여자를 강간하고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소."

하이드리히와 이런식으로 말장난 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새벽네시 게슈타포의 방문을 담담하게 쓴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듯이 


게슈타포, SS보안방첩부의 지휘자 하이드리히, 홀로코스트 계획의 입안자. 

악명높은 다하우의 강제수용소가 그의 관할구역이었고, 히틀러의 후계자로 불리던 인물.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젖은 사형집행인'으로 불리던 사내 

1942년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땅스의 공격을 받고 입은 부상으로 사망 

인간의 상상으로 소설에서 만들 수 있는 어떤 가공의 인물보다 악마에 가까운 사람이 현실에 있다는 거다. 

소설과 별개로 하이드리히 이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던 걸까, 공금해 진다. 



3. 

귄터는 하이드리히의 제안으로 다시 경찰이 되었고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팀이 구성된다. 

그는 동료들에게 냉소적이고 혐오한다. 

그는 이시기 독일국민들에게도 냉소적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열하고, 교활하고, 소녀들은 창녀같다. 

팀원중 유일한 여성인 정신의학박사는 브라우스가 터질듯이 가슴이 빵빵하고, 동료들은 뱀같이 사악하다. 

누구에게도 감정이입하기 어려워 읽기 매우 불편한 소설이다. 


가슴이 패인 가운 위로는 풍만한 젖가슴이 분홍색 바다 괴물의 쌍둥이 혹처럼 드러나 보였다. 낡은 깃털 목도리처럼 랑게 부인의 몸을 휘감은 라벤더 향에 코를 찡그린 채 굳은살이 박힌 그녀의 뒤꿈치께에 묵묵히 서 있었다. 

인간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문장은 불편하다. 

필립커는 가학적인 경찰과 게슈타포, 동성애를  혐오하더니 여성혐오도 빠트리지 않는다. 

느와르에서 여성혐오는 필수항목인듯이 서술되는 이런 문장은 맘에 안들고 

근본적으로 독일인들을 혐오하는 소설을 영국사람이 쓴거다.

독일 사람들이 이런 소설을 좋아할 수가 없겠다. 

왜 이시기의 독일을 배경으로 쓴걸까. 굳이, 영국사람이. 


그런 내 번뇌와 상관없이 길고 뜨거운 1938년의 여름, 아리안 르네상스라는 이름 하에 짐승같은 일이 태연히 자행되었다.

체계적으로 가스실에서 사람을 죽여 태워버렸던 수용소를 운영하여 인종청소를 했던 

나찌들의 세상에 동조하고 침묵하며 살았던 독일 사람들의 입장에서 씌어진 작품이 있기는 있다. 

그 유명한 책읽어주는 남자는 나찌의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침묵과 동조를 합리화해서 불쾌했었지. 

승전국 영국의 작가가 나찌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혐오하면서 쓰니, 이것도 불쾌하네. 

아직까지는 나찌에 저항했던 사람들, 피해자의 기록으로 만족해야 할 모양.


인간에 대한 신뢰를 찾기 어려운 문학은 읽기 어렵다. 

챈들러의 탈을 쓴 커에게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도 시리즈 마지막이라는 독일장속곡은 읽어볼 생각이다. 

낭만적인 느와르로 회귀하는지 끝까지 독일인 혐오를 밀고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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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죽은 것 찰리 파커 시리즈 (오픈하우스) 1
존 코널리 지음, 강수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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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찰리 파커 시리즈의 첫작품이고 코널리의 데뷔작이다. 

아주 유명한 시리즈라도 첫번째 작품의 문체는 아직 어설프거나 욕심이 과해 스토리가 엉킬때가 종종있다. 

작자가 첫 작품을 쓸때 그것이 성공하여 이름을 날리는 시리즈가 될거라 확인하지는 못할테니까. 

그런면에서 모든 죽은 것 역시 수작이지만 욕심이 많아, 너무 길고 마무리는 서투르다. 

특히 떠돌이는 쫓는 파커의 후반부는 군더더기 많고 중언부언 긴장을 떨어뜨린다. 



2. 

FBI는 워낙 도청을 좋아했다. 법무부 산하의 소규모 수사국이었던 BOI시절인 1928년에 대법원에서는 거의 무제한적인 도청을 허락했다. 1940년에는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앤드루 잭슨이 도청을 금지하려 했지만, 루스벨트가 압력을 행사해서 '국가전복행위'수사에 고청을 할 수 있도록 오히려 범위를 확대했다. '국가전복행위'는 후버의 자의적인 해석을 거치면서 중국인의 세탁소운영부터 남의집 부인과 바람을 피우는 것까지 모든것을 포함하게 됐다. 후버는 도청의 신이었다.


폰차트레인 북쪽으로 쇼핑센터와 패스트푸드점과 중국음식점이 즐비한 슬리델이라는 곳에서 보호구역으로 들어갔다. 민주당 상원의원을 지낸 존 스리델의 이름을 붙인 마을이었는데, 그는 1844년도 연방선거 때 아일랜드와 독일 유권자들을 증기선 두척에 태워 뉴올리언즈에서 플래스마인스 군으로 데려와 투표를 하게 했다. 물론 그건 불법이 아니었다. 그가 자행한 불법은 오는 길에 있는 모든 투표소에서 전부 투표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ㅎㅎㅎ 빵 터졌다.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해주는 소설책은 재밌다. 

이 책에서 뿐 아니라 문학작품에서 미국 뉴올리언즈는 뜨겁고 원색적인 야만의 이미지다.  


뉴올리언스 경찰청은 '배당'의 원칙위에 세워졌다. 남부의 다른 도시들 - 사바나, 리치몬드, 찰스턴과 모바일 - 처럼 이곳의 경찰도 노예를 통제하고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18세기에 창설됐고, 도망친 노예를 체포하면 보상금의 일부를 챙겼다. 19세기에는 경찰이 강간과 살인, 린치와 절도, 도박과 매춘을 할 수 있도록 뒤를 봐주고 뇌물을 챙긴다는 비난이 거셌다.


캐서린 드미터를 찾던 찰리는 아동강간연쇄살인 사건을 뒤쫒게 괴고, 한트럭쯤 되는 사람이 죽은 후 마무리된다. 

그리고 아내와 딸을 죽인 떠돌이가 찰리를 찾아와 추적하게 되는데, 요 뒤부분은 좀 지루하다. 

다만 코널리는 캐릭터를 잘 만드는 구나. 

처음 등장하는 인물을 소개할때 외모와 눈빛, 개성 뿐 아니라 짧막하게 알려주는 사연들이 독특하고 재밌다. 

다행이다. 지루함을 건넌다. 


그는 내가 아는 유일한 게이 흑인 공화당 범법자였다.

어림없는 일이지만 킬러 루이스는 의젓하면서 동시에 귀엽게 보인다. 

게이, 흑인이 공화당이면서 동시에 킬러라니. 하!

게다가 그는 앙헬과 알콩달콩 연애도 한다. 매우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커플이다. 

찰리파커 시리즈를 또 본다면 저 커플의 애정행각을 보기 위해서가 30%쯤 된다. 


그리고 월터 콜은 독서광이기도 했다. 더 용감해지고 싶은 마음에 적의 심장을 먹었던 원시부족 같은 열정으로 지식을 탐독했다. 

코널리가 애정하는 경찰들은 독서를 즐긴다. 

윌터는 아예 광적인 독서가이고 울리치의 아담한 아파트 벽에는 시집이 빼곡하다. 

책을 좋아하는 경찰, 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하드보일드 경찰과 잘 어울린다. 


찰리는 겨우 34살인데 말투는 쉰은 넘은 노인네 같다. 

하드보일드 탐정의 자격을 모두 갖추었다고나 할까. 

가족을 잃었고 알콜중독이고 이제는 경찰이 아니며 집요하고 직관이 뛰어나다.

그럴려니 적어도 마흔은 넘은 줄 알았는데 34살인걸 알고 웃었다. 젊은 분이 왜 이렇게 다 산 노인네처럼 구니. ^^; 


후속작품이 기대되는 시리즈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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