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 What's Up 1
알랭 바디우 지음, 현성환 옮김 / 새물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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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에 걸친 공산주의 독재는 금융 자본의 전 지구화와 자본의 공허한 보편성의 절대 주권은 또 다른 보편적 계획 - 비록 타락하고 피투성이이긴 하지만 - 만을 진정한 적으로 가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미덕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장은 재앙이다. 

당췌 무슨말을 하는지 알수가 없다. 그런데 책 대부분 이런 문장이다. 

프랑스 철학을 읽고 다시는 읽지 말아야지, 라고 굳게 다짐한것이 한두번이 아니건만 

이번에는 사도 바울이라서, 바울이 사상가이자 시인이고 투사라고

레닌과 볼셰비키를 있는 조직하는 투사의모습을 바울에서 본다기에 

혹해서 읽다가 울컥, 짜증난다.


바울을, 모호한 마르크스를 그리스도로 삼은 레닌에 비교하는 위태로운 시도를 행하는 것은 내가 처음이 아니다. 

무슨말인지 알겠다. 그러나 문장을 왜 이렇게 쓸까. 


파솔리니에게 바울은 사회적 불평등, 제국주의, 노예제도에 기반한 사회 모델을 혁명적으로 타파하려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창조한 것은 교회, 조직, 당이다. 그래서 레닌에 비견된다. 

알랭 바디우는 조직혁명가로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성을갖고 있는 텍스트로 바울을 읽는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이따위 엉터리 문장으로 해석되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텍스트가 보편성을 갖을수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평이한 언어의 쉬운문장이었다. 


못알아듣는 말로 짓걸이는 진리에 염증이 나서 미련없이 알랭 바디우를 덮는다. 

다시는 프랑스 철학에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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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조각상의 그림자 - 상 - 로마의 명탐정 팔코 2 밀리언셀러 클럽 23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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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실버피그에서 팔코와 헬레나의 캐릭터를 개성적으로 만드는대 성공하였다.
로마시대 뒷골목을 걷는 사람들이 현대적으로 말하고 사랑하고 음모를 꾸며도 재밌다는것을 확인하였으나,
이번에는 실패다.
명탐정 팔코를 보여주기 보다 헬레나의 연인 팔코를 보여주는데

이냥반 완전 찌질이다. 헬레나 또한 엄청 변덕스러워.
이 연인들이 뭘 오해해서 왜 삐졌다가 갑자기 뜨거워지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돈많은 귀족 헬레나가 애정표현을 안하는것도 아닌대, 복이 넘치니까 궁상떠는 남자 질색이야.

로맨스가 헐거우려면 살인사건을 따라가는 추리가 좀더 정교하든지, 구성을 쫌더 짜임새있게 하든지
첫 살인사건후 사건들이 벌려지기는 하는대 집중되지 않는다. 머니.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서브로사에 비해 유쾌하고 쿨한 로마시대 명탐정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이 크다.
시리즈 세번째 작품 베누스의 구리반지는 로마판 하드보일드를 다시 볼수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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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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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를 지배하고 경멸하는자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평가하는것은 나를 학대하는 일이다.
'조선 사람들은 맞아야 말을 잘듣는다.'
초등학교때 이런말을 하는 나이 많이 먹은 선생이 있었다. 
그는 일본사람들이 얼마나 질서를 잘지키고 청결한지,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게으른지 자주 말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맞아야 한다면서 우리를 때렸다.
그때가 1980년대, 
이미 이땅의 가난한 청년들이 베트남에가서 양민을 학살하며 외화벌이를 하고 
노동자들이 산업역군이 되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다음이었다. 
그 선생은 일본인의 시각으로 우리를 가리켰지. 
지가 무슨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이제는 미국의 시선으로 우리를 해석하는 자들이 또 많다. 
미국은 잘사는 나라이고 부자나라라고, 그러니 영어로 학교수업을 하자고. 
5000년동안 한반도를 지켜온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고 경멸하는 자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하며 학대하는 짓을 하는것은 정신분열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거다.  

미겔 스트리트는 식민지 인민들의 정신분열에 대한 고통스런 이야기다. 


2.
트리니다드가 어디있는 섬나라인지 알지 못하는데 미켈 스트리트, 이동네 남성들은 삶을 포기하고 산다.
어쩌다 의욕적으로 뭔가를 하면 영락없이 실패한다.
16사람의 16가지 실패에 대한 이야기 인대, 실패의 이유는 딱 하나. 트리니다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심한 놈팽이에 한량들이다.
늘 거리에서 빈둥대는 이 남자들을 대신해서 아내들은 집 안팎으로 분주하다.
이 남자들은 자주 아내와 아이들에게 화풀이 한다. 때리고 폭행하는것이 일상이다. 
아이들은 놀다가 누가 한번에 가장 많이 맞은 기록이 있는지 경쟁한다.

"내가 결혼하게 될 여자가 그렇게 굴어 보라지. 한번 죽도록 때려주면 대번에 대나무처럼 쭉 곧은 인간이 될걸."
이런 문장은 자주 나온다.

나는 바쿠가 자기 아내를 때리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가지 매를 시험해 보았다고 생각한다. 크리켓 방망이로 때려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사람은 해트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 제안이야 누가 했든 간에 하여간 바쿠는 퀸즈 파크 오발 구장의 운동장지기 중의 한 사람으로부터 중고품 크리킷 방망이를 하나 구입한 후 기름을 먹여서 바쿠 부인을 때리는 데 사용했다. 
해트는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저런 방망이로 맞아야 비로소 바쿠 부인이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가장 이상한 것은 바쿠 부인 자신이 그 방망이에 기름을 잘 먹여서 깨끗하게 간직해 둔다는 점이었다.

가난한 섬나라의 예민한 아이가 자라서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내가 화가 나는것은 이 이야기에 여자는 없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성공한 에피소드인 '나'가 트리니다드를 탈출하듯이 떠나는데 성공하는 마지막 이야기말고
16가지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남자이고 나이폴은 가난하고 바보스럽지만 낙천적이기도 한 그들을 애정을 가지고 회상한다.
그들이 어떤 몽둥이로 때리는것이 더 좋을지 궁리했던 그들의 아내들에 대해서 나이폴은 말하지 않는다.
영국인들의 이야기에 트리니다드가 없고 백인의 이야기에 흑인이 주인공이 될수 없듯이
나이폴의 이야기에 여성은 없다.
주인인 남성들에게 매맞고, 심지어 맞는걸 즐기고,  젖소처럼 암캐처럼 아이를 낳을 뿐이다.
그녀들은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고 식탁이고 길이고 꽃이다. 단지 배경일 뿐이다.
나이폴은 매우 잔잔하고 진지하게 폭행당하는 여성을 조롱한다.
 
실제로 1940년대 트리니다드의 미겔스트리트가 그랬다고 말하겠지. 그래 그랬겠지.
그런데 나이폴.
남편들이 아내에 대한 구타를 밥먹듯이 그렇게 일상적으로 하는것을 이렇게 세심하게 표현해 놓고
어쩌면 무능력한 알콜중독자 남편에게 매맞는 아내의 고통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언급이 없니.
로라나 이름보차 몰라서 남편의 이름에 부인이라고 갖다붙인 바쿠부인이나 모건부인이 썼다면 
이따위 소설이 되지는 않았겠지.  

기도안차. 다른 작품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나이폴을 다시 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미국사람의 눈으로 자기들을 판단하며 크리니다드 사람은 안된다고 생각하는 식민지의 정신분열
조선 사람은 맞아야 한다는 그 정신불열의 너덜너덜한 영혼을 가진 식민지인이 아니다.
나는 가학적인 남성의 눈으로 나를 평가하며 스스로 암캐이고 젖소가 되어 남자에게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신분열 여성이 아니다.
이자는 노벨문학상도 받았군.
잘난 마초들의 휴머니즘 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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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데이즈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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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를 재미없게 본 이후 제임스 패터슨은 안보기로 해놓고
우먼스 머더 클럽이라고, 여성의 살인클럽이나니 혹해서 봤다가 왕창 실망했다.
재미없다.

이렇게 짧게 장을 끊어 전환하는 것은 영화의 영향이다.
코넬리는 매우 잘 이용하지. 단지 장면이 전환되는것이 아니라 숨가쁘게 사건을 밀어가는대
패터슨은 산만하다.

철학을 담아낼 만한 역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빈부격차와 금융자본의 문제, 다국적기업의 횡포, 착취당하는 어린노동자들, 성폭력에 대해 아무런 이해없이
단지 테러리스트들이 떠드는 말로만 흥미롭게 이용하려니 그게 돼나.
정의로운 주장을 하는 자들이 실은 멍청이 바보라고 하려면 그만한 개연성을 갖추든가.
글로벌 기업들의 횡포에 죽어나가는 희생자들이야 내 알바 없고 나는 경찰로서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눈에 불을켜고
FBI와 전용기 타고 댕기면서 연애나 하면 장땡이라는거지.

차라리 질과 스티브 정도의 문제로 리얼리티를 살려야지. 성폭력 또한 쉬운 문제는 아니거든.

결국에는 이런 무책임한 스토리가 된다.
- 테러리스트들이 주장하는 바는 모두 정당하다. 
- 그 방식은 엄청 폭력적이다. 
- 맥락없이 질이 죽더니 사건은 갑자기 개인적인것인 복수가 된다. 
- 뛰어난 범인들이 순식간에 멍청이가 된다. 개연성이 없으니까.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의 제목을 따와서 뒤섞어 잘난척하며 지루한 소설을 만들어 놨다. 
제임스 패터슨, 심하게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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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공화국에서 - 내가 만난 시대의 현인들, 책만들기 희망만들기
김언호 지음 / 한길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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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급한 책읽기를 위해 고급스럽게 인문학 책을 내는 한길사다.
책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잘 느껴지기도 하지.
처음으로 김언호를 읽는다.
좋아하는 책을 만들며 산 사람이라면, 그 책의 작자들과 고급의 지식을 나누고 산 삶이라면
무조건 행복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정한 선생에 대한 이야기로 서문을 연다.
20여년전에 읽은 김정한의 펜은 압박받는자의 슬픈 현실을 손톱반큼도 외면함없이 똑바로 응시하며 써서 읽기 힘들었다.
'현실' 이라는 것이 위로받을곳 하나없이 비참하게 아프기도 하다는 것을
가난한 자에게 '낙관'이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무살 무렵 김정한을 읽으며 알아버렸다.
아닌척 하고 싶었어.
열심히 열심히 노력하면 희망이란 늘 있는것이라고 굳게게 주먹쥐고 달리고 달려도
22명의 노동자가 죽음에 이른 쌍차의 참담한 현실을 보며 23번째 죽음이 또 있을까봐 다리가 떨리는 마흔
"착취당하는 인민의 고통을 보라. 이것을 외면하고도 네가 사람이냐."
여전히 나에게 호소하는지, 김정한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


2.
함석헌 선생을 시작으로 윤이상, 리영희, 이오덕, 박현채.
독재의 칼날이 횡횡하던 시절, 정의와 진리를 위해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해낸 지식인들.
그들과 함께 시대를 밝히고 책을 만들어 행복했다는 김언호의 자랑이다.
자랑할 만 하다.
2012년에도 여전히 그들의 작업이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이제 기독교인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다. 그들이 불신자라는 사람도 꼭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게는 이제 믿는 자만이 뽑혀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 혹은 극락세계에 가서 한편 캄캄한 지옥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보다 많은 중생을 굽어보면서 즐거워하는 그런 따위 종교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나는 적어도 예수나 석가의 종교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주는 함석헌.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찬양하는 군중의 입을 막으려는 바리새인들에게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라고 했다. 너무나 확신에 찬 무서운 말이다. 드러내야 할 참은 드러나고야 만다. 그 어떤 압력도 참을 막을 수 없다. 비록 인간들이 비겁해서 압력 앞에 굴복해서 입을 다무는 한이 있더라도 드러내야 할 것은 드러나고야 만다는 이 확인! 이런 확신 앞에 돌인들 소리를 안 지를 수 있으랴."
나에게 가장 낮선 사람은 안병무인대 문장이 좋다.
안병무를 찾아 읽어봐야 겠다.


3.
시대가 책을 선택한다고 김언호는 말한다.
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은책, 혹은 시대의 독자들이 요구하는 책이 있다는것이다.
그것이 시오노 나나미라는 것에 동의할수 없다. 많은 사람이 본것이 곧 독자들에 의한 시대의 요구는 아니거든.

이 시대의 독자들이 글로벌 세계화를 위한 제국을 우아하게 꿈꾼다는것에도 동의할수 없다.
변방의 섬나라 대한민국이 일본에 의한 식민지와 내전과 독재의 답답한 그늘을 벗어나 세계의 시민이 되고자 할때
우리의 열망이 카이사르처럼 뛰어난 지도자의 영도에 따른 제국주의라고 팍스 코리아를 말하고 싶은가, 저 빛나는 로마제국처럼
동의할수 없다.
 
김언호가 어떤 책을 기획해서 내는지야 자유다. 한길사 사장이니 자기 맘이지.
70년대와 80년대 독재의 시대를 진리를 탐구하며 양심적인 학자들과 치열하게 책을 만들며 살아온 경험도 존중한다.
그 프라임에 시오노 나나미를 담는것 또한 김언호의 자유다.
다만 시오노 나나미를 내는 순간 진보는 아니다.
김언호는 스스로 진보이길 바라지도 않고 다만 인문학적인 탐미를 원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정의에 대한 치열함을 앞세우지 말아야지.

'리영희, 박현채, 송건호,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 라니.
당신들의 치열했던 민족주의 그 양심과 정의가 다다른곳이 제국주의란 말인가.
비록 과거에 잠시 진보의 역할을 했으나 결국 민족주의란 힘있는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
태어날때부터 고귀한 인간들이 인민의 피땀을 발판삼아 비단옷입고 우아하게 통치하는것을 말함인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판금시킨자들의 주장이 '그래, 친일 좀 한게 뭐가 문제야?' 였다고 김언호는 말한다.
이제 시오노 나나미를 내면서 '그래, 제국의 식민지 정복이 뭐가 문제야. 뛰어나쟎아.' 라고 김언호는 말한다. 
그러면서 시오노를 현실주의자라고 한다. 내 참, 말장난은. 
현실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보통 진보적인 이상과 꿈을 철없는 망상의 허튼짓으로 후려칠때 쓰는 보수주의자들의 영악한 표현일뿐이다.  

참으로 영악하게 팍스 로마나와 팍스 아메리카나는 다르다고 말한다. 정말? 
팍스로마나에 반대한 인민들의 저항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 나사렛의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사건아닌가. 
로마가 아메리카와 다르게 무엇을 포용하는가?
지가 허용하는것, 저에게 순종하는 자들을 발밑에 두는것을 허용할 뿐이다. 
미국도 이런 방식으로 포용한다. 

김언호의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칭송은 특히 우습다. 
시오노가 대한민국에 왔을때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기자들을 만날때 옷을 계속 바꿔입는 다고 '역시 프로'라고 감탄한다. 
김언호의 책의 공화국이 저렴해지는 순간이다.
값싼 철학에 인문학적으로 자랑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김언호도 알았던 것 아닌가 싶다. 
여기에 SK에너지 까지 가면 노골적으로 글로벌 세계제국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않으며 자랑한다. 


4.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에서 김선주가 양지바른 쪽에 사는 중산층 지식인으로서 한겨레 신문과 함께한 자신의 삶을
자랑하고 반성하고, 그러더니.
김언호는 한길사에서 책만들며 만난 현인들과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자랑하고 돌아본다.
김언호가 만나 교감한 인물들이 더 뛰어난지 모르겠으나 김선주 쪽이 더 호감이 간다.
그녀는 스스로 반성도 하거든.
김언호는 자랑만 한다. 김언호의 자부심을 알겠는데,
그 시대에 지식인들이 책만드는것도 안했으면 그게 지식인인가. 
이만한 학문적 성과조차 없으면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하겠다.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고서 반복되는 자랑이 800페이지. 지루하다. 
 

5. 
마침내 인문학의 숲에서 탐미주의에 다다른 김언호에게 그가 책에서 인용하여 칭송한 안병무박사의 문장을 돌려준다. 

"예수는 가난하고 눌린 자와 자기를 일치시키는 데 삶의 뜻을 제시했다. 나도 나의 생의 의미를 이런 대서 찾으려고 한다. 눈앞에 있는 형제의 수난을 외면하고 천국으로 향하는 직통로는 없다. 남이야 어떻든 내 영혼의 구원만을 위해 발버둥치는 자들이 만일 종교인이라면 그건 종교적 이기주의자다. 이런 이기적인 자들이 수용되는 곳이 천국이라면 나는 거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겠다, 그런 곳에 예수가 있지는 않을 터이니까."

남이야 어떻든 내 인문학의 아름다움만을 기꺼이 추구하는 자들이 출판인이라면 그건 책만드는 이기주의자다. 
그곳의 인문학이 아름다울 턱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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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상대 2013-12-1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