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식이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자에서 일하는 잘나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엔진공장에서 생산된 엔진을 의장라인에서 차에 장착할수있게 서브작업을 해주는 일을 했다.  

엔진서브라인은 의장공장의 가장 앞쪽에 전원 비정규직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기식이는 그 라인의 키퍼였다. 보통 사내하청업체들은 사장 밑에 소장, 반장, 조장, 키퍼 이런식의 관리체계를 운영하니까 가장 말단 관리자였던 셈이다.

지금도 가끔 소주한잔 할때면 기식이는 현대자동차가 중국 현지공장을 만들어 라인을 깔고 시운전을 할때 몇 달동안 중국에 가서 중국 노동자들에게 일을 가르쳐주며 관리자비슷한 일을 했었다며 자랑을 한다. 중국의 음식과 추위와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산업화 풍경보다는 주로 자기가 현대자동차의 그 많은 노동자들중에 뽑혀서 중국으로 파견될 정도로 성실하고 일을 잘했다는 것을 뿌듯해하며 자랑한다.

자랑할만 하다. 불량이 나면 큰일 나는 줄알고 멀리서 보고도 달려가 어떻게든 고쳐야 하고, 자기일을 손빠르게 할뿐 아니라 라인 속도에 못따라오는 사람 일까지도 하고, 그러다가 화나면 주변의 노동자들을 다그치며 일좀 잘하라고 성질 내고, 그런 날은 소주도 사고, 원청 관리자들이라도 일을 대충하는 것을 보면 못참고 한마디해서 듣는 극성스럽다는 평가를 자랑스러워 했던 노동자. 그런가하면 중국에 파견되어 일을 하고 온 뒤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주는 임금을 중간에서 하청사장이 몰래 떼먹으려는걸 며칠을 사장실로 쫓아가 “내돈 아직 입금 안됐어요?” 보채서 기어코 받아냈던 기식이.

“왜냐면, 차는 엔진이 생명이거든 그런데 엔진에 이상이 있어봐. 잘못하면 사람이 다친다니까. 그리고 일은 열심히 해야 재밌어요. 그래도 내돈은 떼먹으면 안되지. 그건 엄연히 내가 중국가서 고생한 돈인데, 받아야 할 임금이 더 있는걸 내가 계산 못할 줄 알고 글쎄 그걸 안주고 입닥을라고 그러더라니까. 그돈 주면서 사장 표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똥씹은 표정이더라고. 내, 참 지 돈 주는거야? 현대자동차에서 나한테 주는 돈인데”

노동조합이 만들어진후 한동안 기식이는 지회에 가입하지 않았었다. 초기 가입서를 썼던 조합원들이 탈퇴를 시작하는 시기 지회에 가입했고, 가입하면서는 엔진서브라인의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했다. 가장 앞에서 가장 힘차게 투쟁했던 기식이는 가끔 눈물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한꺼번에 지회에 가입하고 나니까 엔진서브장이 난리가 났었어요. 업체 사장, 정규직 관리자들이 일없이 와서 힐끗거리고, 소장은 와서 삿대질하고 욕하면서 지회조끼 벗으라그러고, 그런데 내가 제일 화가 났던게 뭔지 알아요? 2만원이예요. 2만원.”

지회를 탈퇴하지 않으면 너만 다친다는 면담을 수차례하고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일하면 징계하겠다는 말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조끼 벗길 원하면 우리 지회장한테 가서 지침을 철회하라고 말해라. 나는 조합원이기 때문에 지회장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와서 다음 타임에는 엔진서브라인의 전체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조끼를 벗기는 커녕 붉은 머리띠까지 두르고 일을 하는 바람에 원하청 회사 관리자들의 기를 질리게 했던 기식이가 눈물에 대해 말한다.

“하루는 회사에서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또 뭔 면담을 하자고 하나. 머리띠 사건 이후에 한동안 아무도 귀챦게 안했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소리를 하나 가봤죠. 그랬더니 글쎄 나보고 다른 조합원들이랑 같이 지회만 탈퇴해주면 조장시켜주고 2만원 더준데요.”

아무 대답을 못하고 사장 얼굴만 쳐다보다가 나왔단다. 
  
“하여튼 일이 끝나고 혼자 술을 왕창 먹었어요. 술을 먹고 집에 가서 마누라 얼굴을 봤는데 눈물이 막 나와요. 마누라 끌어안고 울었어요. 내가 2만원짜리다. 내가 2만원짜리야. 이말만 계속 하면서 울었어요.”

5년이 흐른후, 지금 동희오토에는 3만원짜리 노동자들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조장 대우해준다고 3만원씩 더받는 키퍼들.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동료들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사장과 약속을 한 키퍼들이 그 댓가로 받는 몸값이 3만원이다.

작년 한해 880억의 매출을 올린 기아자동차 모닝을 만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영혼의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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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동희오토 해복투 최진일 사무국장은 조용히 모자를 눌러쓰고 침착하게 집을 나섰다. 작업복을 입은채 출근하는 조합원들 틈에 섞여 아직 어두운 공장으로 몰래 들어간 후 화장실에서 4시간을 숨어 있었다.

점심시간, 조합원들이 밥먹고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라인으로 들어가기 위해 4시간 동안 춥고 냄새나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무슨생각을 했을까. 시계를 몇 번이나 보다 깜빡 선잠이든 꿈결에, 어쩌면 동희오토 하청노동자 수백명이 조끼를 입고 붉은머리띠를 두른채 화장실 앞으로 달려와 문을 벌컥 열며,
“최진일 거기서 뭐해. 우리 모두 싸우고 있는데, 겨우 화장실에서 이렇게 졸고 있을거야?”
뜨거운 손잡고 일으켜주는 꿈이라도 꾸었을까?

4시간을 기다려 12시 50분쯤, 밥먹고 난 조합원들이 늘 쉬는 불꺼진 라인의 한쪽, 불과 80일전까지 함께 일하고 함께 쉬던 기계냄새 익숙한 어두움 뚫고 통로를 걸어가는 발걸음 밑에 심장은 얼마나 뛰었을까.

딱 15분이지만 라인에서 반갑게 만난 조합원들과 인사하고 얘기하니 배불렀다. 당연하게도경비들과 정규직, 비정규직 관리자들이 호들갑을 떨며 출동을 했고 라인에서 몸싸움이 붙었다. 그리고 10분쯤 후 의장공장 밖으로 끌려나왔다.

의장공장 앞에서 정문까지 한참을 걸어 나오는 길, 힘으로 안되는줄 알면서도 허리를 부등켜 안고, 발목을 잡고 경비 팔뚝을 잡고 멱살을 잡고 서로서로 한덩어리로 뭉쳐 라인 빈공간으로 휩쓸려 넘어지며 지켜주려 애쓰던 조합원들의 손길이 옷깃을 잡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자꾸만 정문 아닌 공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려 나오며 어쩌면 가슴이 시리지 않았을까. 

최진일 사무국장이 숨어서라도 기를 쓰고 들어간 라인은 ‘대왕기업’이라는 하청업체다. 얼마전 대왕기업에서는 어용노조 위원장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다. 그 선거에서 유영애씨는 사측이 밀어주던 상대편 후보를 두배로 따돌리고 54표를 얻어 당선 되었다. 54표라는 숫자는 대왕기업에서 회사쪽 관리자편과 과거 어용노조 집행부를 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주노동자까지를 포함하는 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유영애를 지지했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다음날 유영애 위원장은 회사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1. 항상 베풀어주신 호의에 감사드리오며 귀 노동조합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본인의 건강상의 이유로 대왕기업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려워 2008년 12월 31일부로 폐업코져 통보하오니 업무참조 바랍니다.

동희오토에 있는 9개의 한국노총 소속 어용 기업별 노조중에 처음으로 민주집행부가 당선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유영애위원장은 간부를 인선하고 내년 사업을 계획하기도 전에 숨가쁜 폐업투쟁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눈앞으로 닥친 상황은 가파른데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는 사업을 하려하면 어김없이 동희오토 정규직관리자, 경비들에게 막혀 쉽지않았고 결국 최진일 사무국장은 직접 현장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은 정직하다. 살아보니 감옥에서 징역을 사는 침묵의 시간도, 찬바람부는 국회앞 타워크레인에 조합원을 올려보내고 답답한 가슴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던 시간도, 공장정문 앞에서 출입이 막혀 13시간을 공장만 노려보며 서있던 시간도 그냥 그렇게 흘러만 가는것은 아니더라.

조합원들을 라인에서 만나고 싶어서 화장실에서 쪼그려 기다린 4시간은 40일도 되고 400일도 되고 4000일도 될 수있다. 그 멀미나는 시간동안 아무렴 4시간처럼 쉼없이 긴장할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다만, 그렇게 만난 조합원들이 몰려온 경비에 맞서 함께 싸워주던 손길을 잊지말기를. 그 손길을 알기 위해 화장실에 쪼그려 기다린 4시간의 기다림을 잊지 말기를.

절망의 공장은 동희오토만이 아니다.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깊이를 가늠할수 없는 늪처럼 구조조정이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기는 싸움을 할지 누구하나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 비록 지금은 위축되어 있다해도 조합원들을 믿고 숨죽여 기다린 4시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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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들 그렇지 않았을까. 봄부터 여름까지 광화문에 서면 우리가 얼마나 싱싱하게 저항할수 있는지 확인하는 모르는 얼굴들이 정겨웠다. 입시학원과 서열화에 찌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10대들의 거침없는 발언은 어찌나 상쾌하던지. 어깨도 안아주고 싶고 손도 잡아보고 싶었다. 유모차를 끌고나온 어머니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줌마의 힘으로 경찰의 폭력을 무력화 시켰고 청와대로 가는 길이 막혀 밤새도록 싸우는 새벽이면 경찰이 퍼부어대는 물대포에 “더운물”을 달라고 외치며 군중들은 권력의 폭력을 조롱했다.

도대체 청와대에 가서 뭘하려고 이렇게 아우성인 걸까? 옆에선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일단 명박이 보고 나오라고 해서, 얘길 해봐야지.”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물어보냐고 큰소리치는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상상을 해보면 우리가 모두 청와대 안뜰에 가서 이명박 대통령보고 나오라고 하고, 잠옷을 입고 나온 이명박 대통령이 졸린 눈을 비비면 “광우병 걸린 미친소는 너나 먹어!” 이렇게 말하고 나온다는 건가?

그렇게 온 몸의 에너지를 자유롭고 발랄하게 표현하는 군중을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다. 마땅히 춤추며 기꺼이 그 군중의 한명이 되어야 할 나는 그러나 그럴수 없었다. 
나는 발랄하지 않았고, 나는 즐겁지도 않았다.

광화문 그 뜨거운 광장에서 발랄한 군중들이 너무너무 부러워서, 슬펐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초라한 농성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너무 많은 사업장에서 올라간 크레인과 철탑과 굴뚝의 외로움이 몸에서 떠나질 않았다. 단식을 하는 동지에게 밥을 먹으라고, 우리가 싸움에서 패했으니 그만하자고 말할수가 없어 입 다물고 가슴을 치는 억울함이 돌덩이처럼 징징 울었다. 
비정규직 싸움을 하는 우리는 왜 외로울까? 그리고 심지어 불쌍할까?

광화문 촛불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이후 마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좌파에게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허기지다.
그동안 상상력이 없어서 비정규직 투쟁이 고립되어 외로웠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동안 가장 좌파적인 상상력으로 투쟁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발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는 것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면 주는대로 받고, 해고되면 찍소리없이 나가라고,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숨죽여 살아도 아무 때나 해고되고,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싸워도 아무 때나 해고되어 길고 지루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반복해서 살아낸 후에도 여전히 길거리 천막에서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밖에 살수 없어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물론 발랄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무엇인지 알지못했고 비정규보호법이 어떻게 현실에서 비정규직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았던 가난한 사람들이 해고될 위협에 처해 할수 없이 만든 노동조합. 하루이틀은 아니지만 한달두달이면 싸움이 끝날거라고 생각했던 가난한 노동자들이 설마 쉽게 끝나지 않아도 내년여름까지 싸우기야 할까 상상도 하지 못했던 끈질긴 투쟁을 서로의 야윈어깨에 기대어 지난 몇 년처럼 오늘도 싸운다. 어째서 경찰은 거짓말하지 않고 도둑질 하지 않은 우리에게 그토록 성내며 위협하는지, 어째서 법은 늘 회사의 편인지, 알고보니 우리는 사람도 아니었구나!

그렇지만 상상한다. 어제까지 단식하던 동지가 작업복을 입고 라인에서 일하면 그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경쾌할지 상상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 자동차를 만드는 모든 공장의 노동자들이 어깨걸고 싸우는 것을 상상하고 배 만드는 노동자들, 전기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화물연대 트럭을 타고 시민들과 함께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로 질주하는 상상을 한다. 청와대 안뜰에 모여앉아 이명박을 세워놓고 술을 마신들 어떠랴!

그런날은 없다고 하겠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위해 유연화된 노동위에서 더많은 이익을 얻는 것들이 술잔을 들며 계란으로는 절대 바위를 깰수없다고 잘난척하며 코웃음치겠지.

그러나 우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배고픈 비정규직 투쟁은 전복의 상상력이다. 우리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고 싶다. 발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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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독일인들은 합리적으로 유태인들을 ‘청소’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인다고 표현하지 않았고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고 학대한다고 표현하지도 않았다. 장애인들과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유태인들을 모아서 합리적으로 소모되도록 하기 위해 공장에 가두어 일을 시키며 체력이 극한으로 떨어지면 마지막에는 가스실로 보냈다. 합리적으로 옷을 벗기고 체계적으로 안경과 겉옷과 속옷을 분리하고 정연하게 줄 세워 머리를 삭발시키고 죽음의 공장으로 보내 연기로 소멸시켰다.

내가 경험한 경찰과 감옥은 여러 면에서 아우슈비츠를 닮았다.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경찰과 감옥이 비인간적이고 파렴치한 아우슈비츠를 닮았다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어도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아우슈비츠 보다 느리게 천천히 소모시킬 뿐, 직접 가스실로 보내지만 않을 뿐 감옥은 사람을 죽인다.

처음 감옥으로 옮겨지면 신체검사를 한다. 옷을 다 벗으라고 요구한다. 폭력이나 마약의 혐의가 아니라도 모든 수용자에게 옷을 벗고 알몸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이미 폭력이고 모욕이다. 나의 신체를 타인이 마음대로 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몸으로 익히도록 하는 것은 이후 벌어질 감옥 안에서의 모든 불합리함을 너는 그저 참고 견뎌야한다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물론 벗으라고 할 때 거부하면 된다. 내가 갇혀있다고 해서 나의 몸을 교도관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나에게 없다는 것을 말하면 된다.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아무도 수용자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며 단지 “벗어” 라고 명령하니 몰라서 당할 뿐이다.

방을 배정받으면 하루 종일 그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잘 때를 빼고는 누워있지도 못하게 한다. 방안에서 앉아있건 서있건 그것도 내 마음이다. 배식을 할 때는 서있지 말라고 소지들이 소리 지른다. 이것도 이해할 수 없다. 방에서 앉는 것, 눕는 것, 서는 것을 일일이 허락받길 요구하는 것도 할 짓이 아니다. 그게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교도관이나 소지는 없다. 불편할 때마다 내가 싸워야 할 뿐이다.

지금 일어나서 걸어보라. 가로 다섯 걸음 세로 여섯 걸음이다. 그만한 네모 안 한구석에는 이불이 개켜져 자리를 차지하고 한쪽에는 작은 싱크대가 자리를 차지한다. 가로 다섯 걸음, 세로 여섯 걸음 그 안에 다섯 사람이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한다. 누가 면회를 오거나 일이있어 방밖으로 나가려면 적어도 세 사람은 허리를 숙이거니 엉덩이를 틀어 길을 내주어야 한다. 잠잘 때는 네 사람이 세로로 누우면 한사람은 머리위에 가로로 누워야 한다. 많은 사람을 거쳐 간 이불을 뒤척이는 겨울이면 갈 곳 없는 먼지가 코를 통해 기관지와 폐에 쌓이는 느낌이 든다. 일 년 내내 꺼지지 않는 전등 밑에서 그렇게 자고 일어나는 아침이면 등이 아프다. 자는 내내 긴장한 근육이 풀어지지 않는다. 소모된다. 재판을 하는 내내 3개월이든 6개월이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소모된다.

처음 교소도에 들어갈 때 알몸 신체검사를 하는 것과 함께 가장 많이 아우슈비츠를 닮은 것은 사람을 번호로 부르는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소모되어 청소되어야 할 사람에게 번호를 매기고 그 번호를 몸에 낙인으로 찍었다.
나는 70번이었다.
“70번 면회”
“70번 편지”

감옥에 들어가면 제일먼저 옷을 벗고 지급되는 수의로 갈아입는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하지 못하는 알몸 신체검사를 당하고 아직 남은 수치심을 미쳐 수습하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가면 번호표를 주며 왼쪽 옷 위에 바늘로 꿰매라고 한다. 70번을 내 가슴에 달게 하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너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힘 있는 교도관들의 명령에 따를 의무만 있는 ‘70번’ 일뿐이라는 것을 당연한 것인 냥 관철시킨다.

권수정이 아니라 70번으로 불리는 것은 수갑과 포승에 묶이는 것만큼 모욕적이다.
내가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결정하고 부르면 나의 동의여부와 무관하게 나는 70번이 된다.

반대로 먹고, 자고, 싸고, 씻고 모든 것을 감시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자들에게 그들이 감시해야 할 사람의 번호를 부르도록 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아우슈비츠에서 가장 먼저 사람에게 이름을 뺏고 번호를 주어 통제하고 죽이는 것을 ‘청소’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이유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면서 "나는 죽이는 일을 한다."고 말하기 싫은 것이다. 사람을 가두어 폭력을 행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일을 교도관들이 한다고 말하기 싫은 것이다. 번호 붙인 죄인을 교화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웃긴다.

정말로 수용자를 교화하려면 70번이 아니라 ‘권수정씨’ 라고 불러야 한다. 그래야 나와 니가 인간으로 존중하는 관계라는 신뢰가 생긴다. 나를 70번이라고 부르며 사람취급하지 않는 교도관을 왜 내가 사람으로 보겠는가? 내가 아니라 나를 가두고 사람취급하지 않는 일을 하며 밥 벌어 먹고살며 부끄러운 줄 모르는 니가 짐승이다.
나는 70번이 아니라 권수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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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안에서 겨울도 거의 다 보낸 어느 날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동지가 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면회를 왔다. 진아, 예린이 모두 아주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밖에서 같으면 일단 안아주고 뭐든 웃으며 말했을 텐데, 장소가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말을 잘 안한다.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던 진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이모, 정말 콩밥먹어요?”
ㅎㅎㅎㅎ
“아니, 쌀이랑 보리랑 섞여있는 밥 먹어. 궁금하니?”
“네. 사람들이 그러는데 콩밥 준데요. 저는 콩 싫어하거든요.”

징역 산다는 말을 콩밥 먹는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 사는 일이야 어디서나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인 법이다. 감옥에서도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먹는 일이다. 요즘은 콩밥을 주지는 않는다.

아침은 6시 40분경, 점심은 11시 30분경, 저녁은 17시 30분경에 배식을 한다. 1식 3찬이고 소지들이 손수레에 음식을 담아 싣고 다니며 방마다 배식을 한다. 식사시간이 되면 방안에 상을 펴고 둘러앉아 플라스틱으로 된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들을 펼쳐놓고 식구통을 통해 배식을 받는다.

수용자들이 스스로 가장 짐승처럼 느껴지는 시간 중 하나가 배식시간이다. 밥과 물, 반찬을 받는 방식이 그렇다. 방과 복도 사이의 벽 아래쪽에 뚫린 가로, 세로 20cm 정도의 구멍을 식구통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나무문으로 막혀있고 배식을 할 때는 작은 문을 열고 그릇을 내주고 받으며 음식을 받는다. 뜨거운 물을 받을 때는 손에 물통을 들고 내밀면 밖에서 주전자의 물을 손에 들고 있는 통으로 부어주는데 잘못하면 화상을 입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배식을 받는 것도 요령이고, 그래서 보통 방에서 고참들이 담당한다.

식구통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릇을 구멍으로 내주고 담아주는 밥을 받고, 다시 다른 그릇을 내주어 차례차례 국과 반찬과 물을 받는 것은 참 모욕적이다. 식당에서 식탁에 앉아 먹는 것도 아니고, 배식을 받을 때 문을 열고 주는 것도 아니다. 식구통은 편지를 전해 받거나 다른 온갖 필요물품을 살 때마다 적어서 내주고 받는 통로이기도 하고 심지어 아침마다 쓰레기를 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쓰레기를 내주는 구멍과 밥을 받는 구멍이 같아서야 되겠냐고 항의했더니 쓰레기를 버릴 때 방문을 열더군. 거 참.

3찬이라고 하지만 김치와 국을 빼면 다른 반찬은 한가지이다. 한 달이 시작되는 날 소지가 방마다 이번 달의 식단이 복사된 종이를 돌리면 그것을 보고 식단표를 만들어 벽에 붙여놓는다. 반찬은 요즘 유행하는 웰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체로 채식이고 가끔 닭고기나 돼지고기가 나오는데 그럴 때는 항상 모자란다. 그냥 넘어갈 때도 있고 더 달라고 싸울 때도 있다. 밖에서라면 줘도 안 먹을 형편없는 음식을 식구통으로 소여물 주듯이 주면서 그나마도 부족해서 싸울 때면 참 기가 찬다.

관에서 배식을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영치금으로 사먹기도 하는데 파는 반찬 또한 다른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이 만든 제품들이 많다. 김, 김치, 무말랭이, 고추장, 간장, 마아가린, 참기름, 훈제 닭고기, 과일 두 종류, 우유와 유제품, 커피, 빵, 오징어. 그 외에 과자 몇 가지.

먹고 난 그릇은 방에서 돌아가며 설거지를 한다. 보통 한방의 성원들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어떤 방은 영치금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담당해서 하기도 한다. 사람을 구속시켜 가두어 놓았으면 최소한의 생필품은 지급되어야 하는데 속옷 두벌이 지급되는 것의 전부다.
나머지 예를 들면 비누, 퐁퐁, 샴푸, 양말, 면티, 치약, 칫솔, 생리대, 휴지, 볼펜, 진통제, 노트, 편지지, 편지봉투……. 이런 것들은 영치금으로 개인이 사야한다.

문제는 영치금이 부족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하나도 없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치금 없는 사람의 생필품을 다른 사람이 대신 사주면서 대가로 설거지와 청소를 요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교도소 안에서 돈 좀 있다고 생색내는 인간들처럼 재수없는 경우도 없고, 반대로 교도소 안에서 돈 없어서 쩔쩔매는 것처럼 불쌍한 것도 없다.

노동운동 하다 구속되는 경우야 함께 일했던 주위 사람들이 워낙 잘 챙겨주니까. 나 같은 사람이 돈 많은 사람 축에 끼며 남들에게 베풀 수 있는 곳도 교도소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해고되어 수입이 없는 내가 언제 물질적인 것으로 남에게 베풀어 보겠는가 말이다. 거기가 교도소가 아니라면 어림없는 소리다.

배식되는 밥이나 반찬의 질, 숫자, 그리고 영치금으로 살 수 있는 물품들은 계속 더 좋아지는 과정 중에 있다. 커피, 샴푸가 허가된 것이 2004년부터이다. 반찬의 질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들 한다. 다만 아직 담배는 허가되지 않고 있고, 그래서 온갖 교도소 관련 비리 중 으뜸은 교도소 안에 돌아다니는 담배가 주종이다. 그 비리의 중요한 역할을 교도관들이 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확인되고 있는데 왜 담배를 금지하는지 모르겠다. 교도관들에게 몰래 숨겨서 들여보내주는 대가로 한몫 챙길 수 있는 길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 배식되는 음식들 맛은 어떠냐고? 조리를 하는 것도 수용자들인데 내 생각에는 최고의 요리사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대전교도소의 경우 5000명이 넘는 수용자가 있다는데, 형편없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 맛은 좋았다. 그러나 맛있다고 먹는 내 옆에서 언니들이 “수정아, 너는 참 뭐든 잘 먹는구나.” 웃으며 감탄했던 걸 보면, 모든 사람에게 맛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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