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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6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1.
토마스 만과 친해지기 쉽지 않았다.
10년쯤 전에, 도서관에서 겁도없이 요셉과 그형제들을 빌려왔다가 몇차례 졸려서 실패하고
마의산도 사놓고 지루해서 안읽은지 한참되었다.
로쟈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겨 읽었는대
아, 이번에는 굿. 만의 작품중 대중적인 소설인가봐.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아 재밌게 읽었네.
2.
안토니 캐릭터 때문에 토마스만이 좋아졌다.
물론 그의 성실한 문체도 좋지만, 안토니는 매우 현대적인 여성이다.
보통 근대의 인물들을 쓰는 작가들도 유독 여성에게는 가혹한 경우가 많거든
부르주아들이 새로운 시대이념을 만드는 대략 1800년대부터 1차세계 대전 전까지
돈만흔 부자집 상인 계급의 여성이 그륀리히와 결혼하기전 휴양지에서 만난 젊고 매력적인
그러나 계급이 다르고 가난한 토니와 풋사랑에 빠지는 경우
1) 사랑에 올인해서 겁없이 집을 나와 현실을 깨달았을때는 가난함에 치어 온갖고생을 하거나
2) 집안의 추천으로 배경을 보고 결혼한 그륀리히는, 그가 사기꾼인것을 알아차린 후에도 그놈의 모성애 땜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덧이나, 멍애인듯이 짊어지고 배신당한 삶을 받아들여 버리는대
그녀는
1) 사랑에 올인하지 않을 만큼 계산을 하고
2) 그륀리히의 파산을 알고 가난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미련없이 단 한순간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선언하고
딸과 함께 부모의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명랑하다.
하. 참으로 적당한 영악함이 아닐수 없는대, 밉지 않다.
운명적 사랑에 속지도 않고, 결혼의 숙명도 걷어차니, 시원하다.
유독 여성에게만 가혹하게 순종적을 요구하거나 폭력적인 남편을 참아내며 지지리 궁상맞게 사는 것이 당연한 듯이
그것이 여자의 일생이라는 스토리를 참 한심하고 답답하거든.
안토니는 적당히 예쁘고, 쿨하고, 결정적으로 이기적이며, 너무 똑똑하거나 바보도 아니다.
이런 현대적인 캐릭터가 1901년에 씌어지다니.
2000년대 막장으로 달리는 대한민국 드라마의 여성캐릭터들보다 앞선다.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소유권이 옮겨지고, 이혼하고 돌아오니
죽은 아버지대신 오빠에게서 다시 남편에게로 이번에는 재혼이니 가격이 한참 후려쳐져서 그에 걸맞는 남자에게로 옮겨진다.
이 시스템이 어떻게 온화하고 합리적이란 이름으로 시행되는지 매우 설득력 있는
왜냐하면 시시콜콜 성실하게 리얼하니까.
돈 많아 세련된 합리적인 부르주아 가문의 깔끔한 계산으로 그녀의 결혼을 본다.
그런대 안토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두번째 남편과 이혼하려는 안토니에게 토마스는 추문을 일으키지 말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토마스! 추문이라고? 내 인격에 먹칠을 당하는 치욕적인 일을 당했는데도 추문을 일으키지 말라고 명령하는 거야? 그게 오빠로서 할 말이야? 그래, 이런 질문을 내가 꼭 해야겠느냐 말이야! 체면과 사리분별이 좋은 것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거야. 톰. 나도 오빠만큼은 인생을 알고 있어. 추문을 두려워하는 곳에는 비겁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거야! 바보 멍청이에 불과한 내가 이런 말을 해야 하다니. 내 참 기가 막혀서......"
집안의 명예를 위해 참고 살라는 오빠의 요구에 불같이 화내는 안토니
부르조아 집안의 바보 멍청이가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안토니의 저 분노는 지금도 유효하다.
집안의 명예를 위해 살해되는 강간피해자처럼
회사의 명예를 위해 덮어지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처럼
토마스 만은 매우 현대적이고 지적인 작가다. 남자가 어떻게 이런걸 이렇게 잘 알았을까.
"...... 이곳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남들한테 <극상>으로 보이고 싶은 우리 부덴브로크가 사람들이니까 남들이 안 보는 집안에서는 굴욕을 꾹 참고 지내자는 거야? 톰, 난 오빠한테 실망을 금할 수 없어! 난 하느님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어. 난 하나도 두렵지 않아! 율렌 묄렌도르프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나한테 인사하지 않아도 좋아! 그리고 피피 부덴브로크가 목요일에 여기와서 고소해하며 <어쩜 벌써 두번째 아니야. 물론 두번 다 남자 책임이긴 하지만 말이야!> 하면서 호들갑을 떨어도 좋아. 난 그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연해......"
그녀는 오빠의 손을 잡고 말한다.
자기는 망했고, 끝장이고, 이제 부덴브로크가의 명예는 오로지 오빠의 어깨에 달렸다며
두번이나 가문의 명예를 위해 결혼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그녀는 톰에게 얹혀사는 신세가 되어 오빠를 위로한다.
그전에는 없던 계급, 귀족도 아니고 농노도 아니고
새롭게 세상을 지배하게될 부르주아 가문의 흥망성쇄
지금도 여전히 부르주아 가문들에 의해, 그들을 위해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난 세련된 부르주아 계급의 흥망성쇄를, 우리도 이제 서사로 쓸 수 있을때가 된것 아닐까.
대한민국의 삼성가니, 현대가니 재벌들 가문 잘 모르지만, 세련된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느낌보다
봉건적 귀족 흉내도 잘 못내서 촌스럽고 천박해 보여.
많이 가졌으면서 더 가질려는 것에만 악착같아서, 시민사회의 기본의무인 세금내는 것 조차 회피하기만 하고
그러면서 막강한 권한을 힘없는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수준이 떨어진다.
3.
토마스 만이 유서에 동성애자라고 밝힌것이 사후 20년 후에 공개되었다고, 책을 읽은 다음에 들었다.
그렇구나.
평생 사람들을 속이며 그의 영혼도 불안했구나.
마의산은 어쩌면 다르게 보일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