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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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결국 죽는다는걸 감안하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 너무 모른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거라는걸 알지만, 그 언젠가는이 가까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을 사회와 일상으로부터 격리하는것이 현대의 방식이다. 


죽음과 함께 늙음도 부정하고 싶어하고 

모든걸 혼자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려 한다. 

그렇지만, 나도 죽을 거다. 실은 날마다 날마다 죽음에 가까와지고 있는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중요한 일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10만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중 최근 수백년을 제회하면 인간의 평균 수명이 항상 30세 이하였다는 것을 잊지말자. 늙기 전에 죽는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는 얘기다. 사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동안 죽음은 나이와 뚜렷한 연과성없이 날마다 남녀노소가 접하는 위헙이었다. 

인간적인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삶을 연장하는 것이고, 그리고 내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병원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병원은 병을 정복할수 있다는 신념을 만들어 낸다. 

병 뿐 아니라 죽음 또한 이길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 기댄다. 

절대 이길수 없는대 왜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울까.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노년이 많아지는 시대, 나 또한 어떻게 죽을 것인지 두려워하다가 

좀더 인간적인 노년과 죽음에 대한 여러 고민과 앞선 실험들을 보며 마음이 따듯해 졌다. 

적어도 요양원이라는 이름의 수용소에 노인들을 격리하고 가두는 것은 그만했으면 좋겠어.

완치할 수 없는 병앞에서 할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고 

얼마안되는 삶의 시간을 기계와 전기에 의지해 병원에서 죽을때까지 고생하고 싶지도 않다. 


만약 나이가 듦에 따라 무언가를 달성하고 소유하고 획득하는 것보다 일상의 기끔과 인간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쪽으로 변화한다면, 그리고 그런 것에서 더 큰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되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걸까? 왜 우리는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리는 걸까? 


질병과 노화의 공포는 단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그것은 고립과 소외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잘 죽으려면 미리미리 준비하고 비우고 살아야 할 것 같아. 

물론 이 모든것을 개인의 몫으로 남기는것도 반대다. 

세금받는 국가가 왜 필요한가. 국민들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더 행복하게 살도록 돕기 위해서 아닌가. 

노인복지에 관심이 생겼다. 

생각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인것 같아. 

우리 엄마, 아빠와 나를 위해서. 함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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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 (양장) - 리더십의 영원한 고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1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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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왕의 통치철학. 제왕학 사례발표집. 


서문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정관정요는 조직운용과 리더십의 기본원칙을 가장 충실하고도 자세하게 담고 있는 동양고전이다. 역대 중국에서 가장 큰 제국을 이룬 당나라, 그중에서도 '정관의 치'라는 으뜸의 태평성대를 이룬 태종시기의 일을 담고 있다. 세계 최강 제국을 이룬 당태종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후세에 전하기 위해 교육적 관점에서 그와 신하들이 나눈 이야기를 조목별로 재편집한 책이며 당나라 이후 역대 군주들의 필독서이기도 했다.   

제왕이 되기를 기다리는 왕자들이거나, 제왕을 꿈꾸는 자들이 읽었던 교양서이다. 

과거에 급제해 관리가 되고 싶은 선비들 또한 기본으로 읽었던 책이다. 


범인이 읽어도 좋다. 

수신. 제몸을 닦고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기본이니까.

수신이란 겸손해지는 것이다. 삶의 무게를 아는것.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일하면서 삶의 무게와 겸손을 배운다. 

제왕이라는 자들은 그것을 배울 수 없으니, 이렇게 굳이 읽어 배워야 하는거다. 

수신하여, 나라를 안 말아먹어 결국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제왕이 수신하지 않으면 자기만 망치는게 아니라 인민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나라를 말아먹으니까. 


물은 배를 둥실둥실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 

백성들은 군주를 만들수도 있고, 끌어내리 수도 있다. 

제왕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물이었다. 그래서 늘 물을 위하고 있는 척 한다. 

사실은 저만 위하면서도 입으로는 물을 위한다 하지. 무서우니까. 

한국의 정치인들은 물이 무서운줄 모른다.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지의 기본베이스. 

제왕의 도리, 신하들과의 관계 인대 계속해서 들을것을 강조한다. 소통하라는 거다. 

신하의 말을 듣는 것이 결국은 왕인 너에게 도움이 되니, 제발 니맘대로 하지 말라는 거다. 

박근혜를 비롯한 대한민국 정치한다는 것들은 이런 것도 안 읽나봐. 물이 무서운줄 모르는거지. 거 참. 


첫번째가 소통, 그다음이 후계자 교육이고  

이어서 위계질서에 대한 이데올로기 즉 철학과 풍속으로 상하간에 기강을 잡으라는 거고, 그것을 위해서 법이 있고 

다음은 영토확장과 정벌이고 마지막이 위기론과 경계론이다. 

제왕학. 일국을 운영하거나 한 조직을 운영할려면 이정도의 비전을 갖추라는 말이다. 

동양철학은 의외로 지배자의 철학까지 매우 인간적으로 깊이있어 놀랍다. 


군주가 천하의 주인이라도 지만대로 하는것이 아니라 신하들과 토론하여 공평하게, 백성들을 편안케 다스려야 

신하와 백성이 잘 살 뿐 아니라 왕조도 잘 산다는 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닮았다. 

비록 평등이 아니라 계급사회를 위기관리하기 위한 차원이라해도 이런 내용과 방식의 편집은 

동양의 정치철학이 서구의 정치철학보다 훨씬 세련되고 인문학적인 사고의 깊이가 깊다는 느낌이다. 


 

2. 

문장이 좋다. 김원중의 번역이 안정감있고 편안하다. 


당태종과 함께 정관의 치를 함께 일구었던 신하들이 여럿 등장하는대 

인물들에 대한 개성을 살린 서술이 생생하여 재밌다. 

읽어보면 아! 이런 사람이군. 이런 느낌이 든다. 


사마천의 열전도 그렇더니 

길지 않은 글에 한사람의 특징을 잘 요약하여 기록하는 재주가 중국 학자들에게 오래전부터 전통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우세남은 옷의 무게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외양이 허약해 보였지만, 의리와 성격만은 매우 곧고 강렬했다. 

이런 표현들 말이다. 딱 한문장인대 우세남이 어떤 사람인지 눈에 보일것 같아 감탄한다. 


신하들의 공로중에 왕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왕이 하고 싶은걸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거란다. 

특히 거짓말로 사기를 처서 1만군사를 죽이고 돌궐을 제압한 이정을 엄청 치하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 

서로 죽이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니 잘난 사람이 왕이되어 못난 이들을 앞세워 전쟁을 하는것도 당연하고 

그걸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권력있는 것들끼리 자자손손 전수하고 


한사람의 권력이 너무 커지면 오바하고 막나가서 결국 인민들의 저항에 나라가 망하니

여러 신하들의 말을 잘들어서 어리석은 백성을 잘 다스리라는 말이렸다. 


후대의 자손들은 봉토와 작위를 세습받아 대부분 태평성세를 만나 깊은 궁궐 안에서 태어나 부녀자의 손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지위가 높으면 위험과 근심이 있음을 몰랐으니, 또 어찌 농민들이 경작하고 수확하는 어려움을 분명히 알 수 있었겠습니까?

소위 금숟가락 물고 태어나는 재벌3세들이 여기에 속한다. 

처음 재벌이 되는 자들은 철학이 천박하거나 말거나 실용으로 뭔가 잘하는게 있는대, 나름 노력도 하고 

재벌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2세나 3세는 제일 잘하는것이 사람을 깔보는 거다. 

땅콩회항 사건의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조모가 그렇고, 한화그룹의 애들은 잊을만하면 사고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황당한 싸가지들 말고도 

삼성이나 현대의 자식들이라고 별 다르겠어. 

어찌 노동자가 일해서 월급받는 어려움을 알겠는가. 모르는 것도 죄다. 


정관정요는 왕의 자리가 세습되니, 태자를 비롯한 왕의 아이들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그들의 품성과 학문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엄청 강조한다. 당연하지 .

그의 자질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니, 싸가지 없는 애들이 태자가 되면 대신들은 전전긍긍했겠다.

사실 권력의 자리가 세습으로 결정되면 이런 병패는 사라질 수가 없지만 

적어도 이런 주제로 세습되는 자식들의 수신과 학문을 끝없이 강조하며 이런 책을 편찬한것 자체가 놀랍다. 

왕들이 패악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랬을까, 싶기도 하고. 


맹자가 '군주가 신하를 대함에 있어 손발처럼 친하게 하면 신하는 군주를 자기의 심장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군주가 신하를 대함에 있어 개나 말처럼 한다면, 신하는 군주를 보통 사람으로 간주할 것이다. 만일 군주가 신하를 똥처럼 본다면, 신하는 군주를 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제왕의 철학이지만 어찌 제황들만 보겠는가. 

내 비록 평민에 비정규직 노동자이지만 가까이두고 마땅히 익혀 국민을 똥처럼 보는 것들의 배를 뒤집으리라. ^^


공자는 '물고기는 물을 떠나면죽지만, 물은 물고기가 떠나도 여전히 물이다'라고 했습니다. 

제왕 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들도 들어야 하는 말이다. 

물은 물고기가 떠나도 여전히 물이다.   


군자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덮어주고 장점을 칭찬하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구차하게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여 인의를 이룹니다. 그러나 소인은 어질지 못한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의롭지 못한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오직 이익만을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 자신의 편안함을 구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어질지 못한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고, 의롭지 못한것을 두려워 않으며 오직 이익만을 구하는 소인들의 패악을 

해를 거듭하며 감당하고 있다. 

배를 뒤집어도 물은 여전히 물이다. 

정관정요를 보니 배가 뒤집힐 때가 멀지 않았음을 알겠다.  


김원중의 번역이 안정감있고 편안하다. 

이런 비교가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리스 고전은 천병희의 번역으로 읽고 중국의 고전은 김원중의 번역으로 읽으면 

풍요로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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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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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토니오의 스토리에 킴의 그림이 참 잘어울린다. 

고지식한 스토리에 생명을 불어넣은 킴의 펜이랄까. 

소박하고, 리얼하고, 정직한 그림체다. 아껴서 읽었다. 


스페인발 무정부주의 노동자의 고백 



2. 

스페인 내전당시 좌파 그룹의 민병대 쪽은 아나키스트들이 맣다.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 

구호를 외치며 손을 잡은 형제같은 그들과의 생활을 안토니오는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전쟁터에 있는건지, 아니면 동화속에 있는건지 아리송했다... 하지만 마법은 계속됐다... 


계급질서와 가난. 

어릴때 부모에게 두들겨 맞으며 자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던 젊은이가.

모두가 나누어 먹고, 자유롭게 결정하는 평등한 세상을 향한 빛나는 꿈에 취한다. 

인간과 인간의 연대, 낡은 옷을 입고 거친 빵을 나누어 먹어도 서로 존중하며 사는 동화속 같은 세상이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이상을 포기하니, 삶은 예전처럼 불안하고 누추해 졌다.  

그 때부터 안토니오의 삶은 마치 부록 같다. 


혁명의 열정에 빛나는 젊은 시절은 금방 지나갔다. 

결혼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죽음과 같았다... 그동안 지켜왔던 자존심과 사상을 매장시키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많은 스페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시체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고도 삶은 오래 지속되었다. 

자신의 이상을 버리고 살아야하는 삶이 스스로 시체같다고 표현한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 

전쟁과 독재.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시체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던 

그래서 박정희를 찬양했듯이 습관처럼 박근혜를 찬양하지 않고는 살수 가 없는 

노인들을 많이 알고 있다. 



3. 

그런대 희안하지. 

안토니오의 전쟁에는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없다. 

그는 운전사인대, 난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거나 병사들에게 편지를 전해 줄 뿐

심지어 내전에서 패한 후 난민이 되어 강제노동에 동원될 때도 그는 늘 낙천적이다. 

여느 노동자들처럼 스스로의 몸을 감각적으로 믿는다. 


도망친 안토니오를 받아주는 프랑스 시골 농민들이 순박하기도 하고 

물론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자유로운 무정부주의자로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비록 안토니오가 오래도록 이상을 포기한채 시체처럼 살았을지라도 

그의 죽음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여

이런 만화책을 남겼으니, 

어쩌면 그는 죽었어도 위로받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삶에 대해 애정과 존중을 표하는 아들의 마음이 행간에 느껴져 더 따듯한 마음이 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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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을유세계문학전집 71
알라 알아스와니 지음, 김능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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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라는 이집트과 시카고, 두개의 조국을 갖은듯이 보인다. 모두 사랑한다. 

오래간만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깊은 낙관적인 소설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강대국 미국 앞에선 식민지 이집트 지식인들의 정신분열도 

누구보다 완고한 이집트인이지만, 기를 쓰고 노력해 미국인으로 성공해 이집트를 경멸하는 사비트와

이국땅 시카고에서 품위있게 성공했지만 예순이 넘어 결국 이집트에 대한 향수병이 걸린 무함마드 

미국을 찬양하고 부러워하고 경멸하고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식민지 청년의 순진함과 교활함 

그 모든 애증에 대해   

또다른 동방의 식민지 한반도의 여성이 읽어도 너무나 잘 공감이 된다. 


사실 이슬람, 이집트는 잘 모르는 동네다. 

먼 옛날 피라미드를 건축할 만큼 앞선 수학적 재능과 

노동력을 응집시킬수 있는 중앙집권의 힘이 있던 이집트에 대한 이미지외에는

클레오파트라 이후 그들의 역사도, 예언자 알라를 믿는 그들의 종교도 잘 모른다. 

여성들의 얼굴을 가리게 하는 답답한 종교와 독재자들의 악수하여 극심한 남성우월주의에 자살폭탄테러 

그래서 이슬람을 알고 싶어 시도했던 몇몇 역사책은 매우 지루해서 모두 실패했다. 

오히려 시카고는 이집트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음.... 대한민국이랑 비슷해. 

미국에 기댄 권력자들, 의 독재. 미국 대학을 유학하고 온 자들끼리 인맥으로 고급관료가 되어 지들끼리 부패하고  

무능력한 경찰들은 비대하게 오만하고, 인민들에게 무뢰하며 잔인한 것 까지 

이집트 여성들이랑 만나면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9.11테러 이후 편견이 더욱 강해져 미국인들이 혐오하고 싫어하는 당사자 이방인의 눈으로

보아야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보여준다. 

비열하고 강하고 유연하고 소박하고 속물들이 많은 미국


많은 사람들이 '시카고'가 영어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것은 인디언들이 쓰는 언어 중 하나인 알칸킨족 언어에 속하는 던어이다. 그 언어에서 시카고의 의미는 '강한향기'인데, 지명의 유래는 오늘날 그 도시가 점하고 있는 장소가 원래는 드넓은 평원으로 인디언들이 거기서 양파를 재배했고, 코를 찌르는 듯한 양파 냄새 때문에 이 명칭이 생겨난 데 있다. 

시카고의 시작을 미국인이 아닌 알라가 알려준다.

왜냐하면 미국의 시작이 곧 인디언들에 대한 학살의 역사라는 것 

원주민 인디언들의 종을 말살하고 세워진 탐욕의 땅이라는 것을, 미국인 스스로 쓰는 문학을 나는 아직 못봤다. 


이어진 백년동안 백인 이주민들은 가공할 인종 말살 전쟁을 벌여 미국 전역에서 5백만에서 1천2백만 명에 달하는 인디언들을 죽였다. 


그들이 낮동안 저지른 살육이 아무리 잔인했다 하더라도 그런 행동은 그들이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드리는 기도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았다. 

인종말살 전쟁은 이민자들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 시카고는 1837년 최초로 미국의 도시로 선포되었다.  


이집트인들에게 미국은 한국인들에게 미국과 비슷하구나.


진지한 알라 알이스와니에게 공감하며 지지한다. 소박하고 담백한 문장도 좋다. 

솔직한것.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쓰는 것이 알라의 장점이다. 


"나는 우리나라 여러 주에서 10년동안 경찰로 일하며 여러 마을과 촌락과 부락을 돌아더녔지. 나는 이집트 사회의 밑바닥을 알고 있어. 자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이집트인들은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고 또 그들은 민주주의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이런 비슷한 논리의 얘기 어릴적에 많이 들었다. 

한국인들은 맞아야 하고, 민주주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나 어울리며 우리에게는 그저 독재가 딱이라고. 

특히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이런말 자주 했어. 

아이들에게 자긍심이 아니라 비굴함을 가르키는 천박한 자들이 선생이라니.  



2. 

존 그레이엄. 

68혁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통계학과 교수. 

여전히 혁명을 믿는 좌파 교수. 여전히 거리, 투쟁의 현장에서 연설을 하고

뒤늦게 만난 젊은 흑인여성과 사랑하여 함께 사는

60대 미국남성과 30대 흑인여성의 사랑이 필연적으로 만나는 편견의 벽앞에 고민할때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둘은 인종 차별적인 상황을 겪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 열정적인 관계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벌컥벌컥 사랑의 잔을 들이마셨고 그런 뒤 여유를 갖고 차분하고 맛깔나게 마셨다. 


나지는 존 그레이엄 교수를 찾아가 석사학위 논문의 지도교수가 되어 줄 것을 청한다. 

존은 내게 학생의 품성은 그의 지식보다 중요 하다며 토요일 저녁을 함께 먹자고 집으로 초대한다. 

토요일. 둘은 죽이 맞아 술을 진탕먹고 늦게 찾아온 카람에게 나지를 내 친구 라고 소개한다. 


인디언 학살로 시작한 미국이란 나라를 좋아하지 않지만 

자신의 지도를 받는 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보다 품성이 중요하다는 교수가 학생을 친구하고 소개하는 이런 풍경은 부럽다. 


한국에서 교수는 꼰대, 게으르고, 남의 논문을 표절하고, 제자들을 착취하고 성폭행하는 자들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레이엄 같은 교수가 있었으면 나의 대학시절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다가 

그레이엄 같은 사람은 한국에서 절대 교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유대인 웬디와 연애하는 아랍운동권학생 나지의 어려움도 설득력있다. 

나지와 웬디의 연애는 같은 학교다니는 유대인들의 분노를 일으켜 

그들은 나지를 모욕하고 조롱한다.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어려운 연애처럼 보여. 


자이납이 그에게 "미안하지만 너는 겁쟁이야."라고 말한 그날로 부터 30년 후, 미국에서 성공한 교수가된 무함마드는 

향수병에 걸려 고통스러워 한다. 

평범하고 소심한 그가 성명서를 읽는 장면은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슬프게 마무리 된다. 

음.... 이런 장면들에서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알라의 실력이 보인다. 


사비트와 살라흐, 

촌스러운 독재국가 이집트를 떠나 미국에서 성공한 후 두 교수는 열심히 살았는대 스스로의 삶이 자신을 배신한 느낌이다.

젊은 유학생들은 여전히 앞선 세대의 고통을 반복하고 있고 

여전히 나지는 걱정스럽고, 다나나는 역겹다. 

다만 타리크와 샤이마의 사랑을 응원한다. 

저 바보같은 마초대마왕 타리크를 어쩌면 좋을까. 

샤이마. 힘내라. 타리크 따위 뻥 차버리라고 말하고 싶지만, 남자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 

나쁜 마초 아니면 착한 마초 둘중 하나니까. 타리크는 착하고 순진하쟎아. 바보라 그렇지. 

해피 엔딩이라고 믿고 싶어.   

 


3.   

그런 자들도 우리처럼 인간이란 말인가? 그들에게도 순진한 어린애였던 지난날이 있었던가? 사람들을 때리고 고문하는 일이 어떻게 인간의 직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고문하는 자가 어떻게 먹고 자고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자기 아이들과 장난을 칠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한 점은, 국가 보안국의 모든 장교들이 똑같은 얼굴 생김새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에서 체포되었을때 나를 고문한 장교는 사프와트 샤키르를 닮았다. 피부는 끈적거리고 차가운 빛도 같고, 그 죽어 있는 듯한 두눈도 그렇고, 모질고 냉혹함이 넘치는 그 잔뜩 찌푸린 잿빛 감도는 얼굴도 같다. 


철학적으로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에 대한 고찰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을 때리고 고문하는 일이 어떻게 인간의 직업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은 모두 뱀의 눈에 이미 비인간적인 특징을 몸에 지녀 한눈에 봐도 알수 있는 징그러운 자들일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고 싶다. 

사실은 고문을 하는게 직업인 사람조차, 교회 열심히 다니는 이웃의 모습이라는 것이 더 두려운 진실이다. 

인간은 그래서 무서워. 

속을 알수 없기 때문에 무섭고, 고문하는 직업도 좋은거라고 스스로를 속일수 있는 재주가 무서워. 


고문기술자였던 이근안이 목사가 되는 놀라움 말이야. 

그가 정말 반성하고 사죄한다면 그걸왜 지가 믿는 신에게 사죄받냐고. 

지가 고문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영혼과 그 가족들의 고통에게 사죄받아야 하고, 

고문의 협박을 함께 감당하여 주눅들게한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모든 평범한 이들에게 사죄해야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감히 목사가 될 생각을 했을까. 악의 뻔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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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소년
아메바피쉬 지음 / 씨엔씨레볼루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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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꺄아~~~~~~~~!!!

어떻게 이런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처음 본 아메바피쉬에게 매료됨. 경의를 표함. 

대한민국에도 이런 만화가 나오는 구나. 

외로운 전위 사이버의 느낌이다. 하!



2. 

누추하고 남루한. 다 쓰러져가는 철거촌. 여유가 조금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사가고 빈집이 더 많은 아파트 벽에

"불안해서 못살겠다! 철거반대!!" "서민죽이는 재개발 정책"

검은색 현수막이 붙어있다. 

아이는 텅빈 공터에서 혼자 그네를 탄다.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도록 진동을 만드는 엄마의 고함소리에 쫓겨 학교가는길 

온통 검은색 어두움속을 책가방 매고 고개숙인 아이가 걷는다.

절대적인 어두움. 

분명 학교에 가는 아침, 어딘가에 해가 빛나고 있을텐대 

아이가 걷는 세상이 온통 어둡다. 적막한 세상에 한치의 빈틈없는 어두움. 

저 검은 세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꼬마 아이의 절대적인 어두움에 마음에 움직여,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다. 


시끄러운 소음들에거 격리되어 의자에 앉아 만화를 그리는 꼬마아이의 교실장면 

거지라고 놀리는 같은반 아니들이 꼬마의 눈에는 모두 괴물처럼 보인다. 


반 친구들도 날 괴롭혀...

선생님도 공부 못하는 나에겐...관심이 없으셔...

아빠는 술만 먹으면 엄마랑 나를 때려...

엄마는... 내가 아... 아빠를 닮아서 싫어해...


그래서 사라지고 싶은 아이, 에게 나타난 꿈의 쾌변신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만화책을 준다. 

만화책 속 물고기를 타고 우주를 날아다니고 


단순한 그림이지만 평면을 입체적으로 활용하고, 테크노의 느낌을 살려서 

빨강, 노랑, 파랑, 검은색, 흰색 원색들의 강렬함이 외롭고 차가움을 잘 표현한다. 

손잡을 친구가 생기는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지만, 슬프다. 


이런 종류의 작품은 일단 봐야한다. 직접 내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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