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나를 흔들다 - 붓다를 만나 삶이 바뀐 사람들, 2006 올해의 불서
법륜 지음 / 샨티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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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년전 인도에서 계급을 나누는 카스트제도를 넘어 평등한 승가 공동체를 만든 붓다는 혁명적이다.
평등한 세상을 현실에서 만들고자 노력한 것이 또한 매우 혁명적이다.
소유하지 않는것의 가치를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도 혁명적이다.
부처님의 제자를 비구라하는데, 비구는 걸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래.  
부처님과 제자들은 남들이 입다 버린 낡은 옷을 입고 구걸해서 주는대로 먹었다.

정토라는 것이 어떤 완성된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을 수행의 과제로 삼을때 바로 이 세상이 정토가 되는 겁니다. 지장보살에게는 지옥이 정토고, 관세음보살에게는 이 사바세계가 정토입니다.

지장보살에게는 지옥이 정토라는 말이 마음에 닿는다.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싸우는 전선이 나의 정토인가. 

소개되는 몇몇 일화들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정토는 먼 미래에 오는 것도 아니고, 죽어서야 가는 세상도 아니예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 바로 정토가 실현될 수 있고, 지금 여기에 정토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런 실천 철학이 좋다.
지금, 살아서 여기에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행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래. 

불교, 깨달음을 위한 수행. 부처님의 삶이 절에서 수행하는 중들에게 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모든 살아숨쉬는 자를 위해 불교가 있다는 것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2. 뱀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처님도 참 너무한다.
자식이 '락'이고 '고'의 씨앗이라 해도 아들 이름이 '라훌라', 장애가 뭐야. 
아이가 부처님의 장애이지 스스로의 장애는 아닐것 아녀.
자기는 부모님의 뜻을 거슬러 맘대로 부처가 되어 놓고, 라훌라는 또 자기 뜻대로 출가시키고.
ㅎㅎㅎㅎ 
부처님의 아내, 라훌라의 엄마가 불쌍해. 그녀도 나중에는 비구니가 되었다는데
여성해방을 일찌감치 깨우쳤다는 부처님이 그다지 아내를 배려하거나 존중하지는 않은 것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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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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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마다 편차는 있는데 대체로 경험에 근거하여 진솔하고 소탈하게 쓴것이 장점
다양한 처지와 상황에서 다양한 고민을 털어놓는데
대체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여성들의 고민들이다.
성폭력에 노출되어 당황스러워 보지 않은 여성들은 거의 없을 것이고
직장안에서 여성이라고 차별받은 경험 또한 일반적이다.
그래서 공감하기 매우 쉽다.
나도 이런 생각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느낌
나혼자가 아니니까, 우리가 함께 있으니까 든든한 느낌
뒤로갈수록 더 재밌고 씩씩하다.


2.
공중화장실의 에티켓벨에 대한 글은 정말 공감 백배다.
남자들은 소변이 마려우면 아무데나 서서 오줌을 누면서
여자들은 오줌누는 '소리'만 화장실 밖으로 새나가도 에티켓이 아니라는거지.
어처구니 없다. 정말.

2006년 3월 27일 1쇄발행이다.
그때보다 금기가 많이 깨졌을까, 자신없는데

나는 그때보다 많이 달라졌다. 확실히.
동성애에 대한것도, 성폭력에 대응하는 방식도, 차별에 분노를 조직하는것도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까지.
여성으로서 나는 많이 변했고 침착하고 담담해졌다.
그리고 나에게 차례가 오면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며 문제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니네같은 소통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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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고요 문학과지성 시인선 312
황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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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행때부터 풍장때부터 나는 황동규가 좋았다.
몰운대와 풍장을 말하는 이유는 그맘때 나는 마야코프스키와 브페히트의 선동에 심장이 뛰던
기형도와 김수영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무치고 분노하는 박노해와 백무산조차 풍족하지 않았어. 
이유를 알수 없었지.
왜 황동규가 좋은지.

긴장과 이완, 삶과 죽음, 열정의 뜨거움과 해탈의 초연함이 묘하게 하나로 섞이어 막연하게
경계에서 외줄타는 듯이 아슬아슬 경쾌한 떨림

이번 시집을 만든 지난 3년여는 '유마경'을 읽고가 아니라, 읽을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엮은 기간이었다. 자아를 긍정해서 자아를 긍정하는 타인을 만나는 선(禪), 타인을 긍정해서 자아를 비우는 유마경, 이 속사정은 내가 때늦게 유마를 만났기 때문에 체득하게 된 것이다.

'중생이 앓으면 나도 앓는다'는 그 유명한 유마경을 마음두고 있었더니
읽을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따로 엮어야 하는
'때늦게'야 읽을수 있다고 황동규가 일러주네. 넵.

마음을 엮는 것은 누구에게나 삶의 숙제로구나.
고통으로 숨찬 인민의 마음을 엮으려니 어찌 떨리지 않을까.
사는 것이 두고두고 마음 아프다.
 

만항재
 
하늘 한가운데가 깊어져
대낮에도 은하(銀河) 가 강물처럼 흐르는
만항재 늦가을
저 밑 침엽수림들이 물속처럼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바람에 손을 씻었다.
은하 가운데 머뭇대던 구름 한 장 씻은 듯 사라지고
열 받은 차가 하나 서 있다.
얼마나 높은 데 길들이면
자신의 신열(身熱) 들키지 않고
삶의 고비들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넘을 수 있는 삶의 고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이다.
아, 누구나 삶의 고비란 바람에 손씻어도 가리기 힘든 신열이구나.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가슴속에 찬바람이 펄럭이는 것은
길을 가다 주저앉아 울고싶은 마음은


연어의 꿈

새 부리 곰 발톱 인간 작살 간발로 피해
하염없이 물줄기 오르는 꿈을 꾸었다.
모래 속에 파고들고 자갈 사이로 재빨리 기고
상처투성이로
폭포 위로 뛰어오르려다 몇번 떨어지고
숨 고르다 드디어 치고 올라
삶의 처음 시절로 돌아간다면,
청소년 적 갱도(坑道) 막장 같은 짝사랑 새로하고
십육년 전 곡성, 차 몰고 논으로 들어가
땡볕 속에 퀭하니 서서 레커차 기다리고
내린 눈 채 녹지 않고 버티는 길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며 회현동 옛집으로 올라가
몸과 마음의 상처 연탄난로에 쪼이며
성에가 그려주는 환한 속삭임  다시 들을수 있다면,
지금까지 끄적거려온 글 가운데
마음 한가운데 뿌리박고 있는 것 더러 뽑아버리고
숨통 좀 트인다면,
끝장 연어처럼 몸 안팎 사이의 막 터지고
속에 있던 녹색 적색 찬란한 색깔들 밖으로 헤집고 나와
삶의 끄트머리 한번 겁나게 달궈주지 않을까?
물강에 널브러져 새들에게 속 다 보이고
물속의 맹물이 되기 전.

삶이란 마지막 숨까지 찬란한 것이다.
침묵하고 움츠리고 취해 있을 때조차 삶이란
벼랑끝 허공으로 팔뻗은 풀처럼, 잘도 뚝 끊기는 풀잎처럼
황동규의 시가 좋다.

고통일까 환희일까?

'요즘 멜 깁슨이라는 자가 만든
그대의 수난 영화가 가히 엽기적이라던데.
지금꺽 나는 그대가 고통보다는
환희의 존재라고 생각했지.'
불타가 입을 열자 예수가 말했다.
'이른 봄 복수초가 막 깨어나
눈 속에 첫 꽃잎 비벼 넣을 때
그건 고통일까 환희일까?'
'막 시리겠지.'

참 이상하지.
고통일까 환희일까, 막 시리겠지. 설레임이고 서러움인데 더 날것의 에너지,
막 시리다는 말에는 성적인 욕망의 느낌이 있다.
불타와 예수의 대화가 젊어 뜨겁다.
안타까워라.
황동규의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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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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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소제에 재한 없이 편안한 대화로 그의삶과 사상을 들려주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얘기를 하되 깊이가 제한되기도 한다.
사전 지식이 없는 것보다는 예수전과 B급좌파와 나는 왜 불온한가를 이미 아는 사람이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삐딱한 유머를 놓치지 않으며 차한잔 앞에두고 여유있게 한국사회를 말한다.

지승호, 이사람은 처음인데, 넓은 폭으로 상대를 존중하며 듣는다.
듣기위한 사상과 문화의 깊이가 전제되어 있는 점은 미덕이다.
걸림이 없구나.
김규항을 잘 아는 사람이다.
김규항이 하고 싶은 말을 물어준다. ㅎㅎ 그런 느낌. 김규항을 많이 아끼고 존중하는 인터뷰어다.
김규항을 발랄하고 귀엽다고 표현해주는 지승호가 예쁘다.

다양하고 상대적인 스펙트럼속에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냐, 반대하는 사람이냐"로 구분된다고 말하는 김규항은 "한줌의 지배계급이 차지하던 것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남보다 잘먹고 잘사는 일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꿈꾼다. 나두. 

좌파와 영성, 진보와 개혁에 대한 김규항의 판단을 이미알고 동의하고 있는
지승호의 애정어린 인터뷰를 편안하게 즐겼다.
김규항이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때문에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며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잘난척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편안하게 거침없이 물흐르듯이 날카롭고 행간이 넓은

진지하게 두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며 읽다가 푸하하 웃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거대하고 추악한 위선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위선까지 콕 찍어서 웃어준다.
이런 여유가 좋다.

책을 읽으며 술한잔 먹고 싶은 사람은 가끔 있는데
김규항은 차한잔 나누어먹고 함께 밭두렁길 걸어며 수다떨어 좋을 것 같은 사람이다.
지승호는, 술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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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내용이 재미있어서 지승호님 팬까페에 간단히 소개 하였습니다. :)
http://cafe.naver.com/jifan/509

팥쥐만세 2010-11-08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승호님이 팬까페도 있는 분이군요.
음---, 감사함다.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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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 법륜에 대한 소개가 없다.
오직 붓다에게 집중하라는 말처럼 보인다
책의 편집은 소탈하고 재활용종이를 이용했다.
말과 실천이 하나되는 것이 좋아보인다.


2.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아래 계급
수드라를 위해 정해진 유일한 업은 원망과 슬픔없이 이들 삼종성에게 봉사하는 일이다. / 리그베다 문헌 中

2600년전 왕자 싯다르타는 고통받는 중생이없는 세상을 위해, 그 방편을 얻기 위해 출가한다.
빈부의 격차와 왕족과 노예, 힘있는 자들을 위한 계급을 정당화하는 제도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것도 없구나.

카스트제도의 고통속에서 하루하루 삶이 고통인 하층계급에게 구원이되는 가치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은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고타마는 현실의 고통을 피해 세상을 버리고 떠난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받는 천민의 모습으로 그들의 고통과 하나가 되기 위해 모든 기득권을 버린 것입니다.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편안케 하겠다는
그 방법을 얻고자하는 고타마의 서원은 젊고 신선하다.  
인간세상에서 착취와 야만적인 폭력을 없애겠다는 나의 목표가 큰줄 알았는데
어찌 모든 중생의 고통을 없애고 편안케 하겠다는 서원을 낼수 있었을까.
그것이 가능할것이라고 그 방법을 반드시 찾겠다고 나선 그의 결심이 용감하다.
시적이 반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 말인가봐.
'고통' 이없는, '사람' 이라니.

진정한 깨달음은 중생의 삶과 유리되어 존재할수 없다.
모든 사문은 누더기를 스스로 빨아 입는다.
모든 욕망을 버려 공중의 바람처럼 자유로우니
불교는 알수록 매력적이다.

붓다의 역사는 인간해방의 역사
불국정토를 선취하고자 하는
인욕과 헌신, 보살행의 역사입니다.

불국정토, 부처님의 눈으로 보는 세상.
실천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중생이 고통스러운데 홀로청정해서 어찌 자유롭게 행복할수 있겠는가.

수메다의 서원
'고통받는 중생이 끝없이 많으니 나는 부처가 되어 마지막 한 생명까지 기필코 건지리라.'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며 인간해방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바라밀이란 인도어로 파라미타를 음역한 것으로 '저 피안의 세계에 이르는길' 이라는 뜻입니다.
보살행이란 이 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 피안의 세계에 이르는 길을 실천한다니.
청정한 자부심이 넘치는 자들일것이다. 보살행을 하는 사람들은.

자비는 자신의욕망을 먼저 충족시키고 남는 것을 바푸는 식의 동정이나 일반적인 사회봉사 활동과는 구별됩니다. 자비는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아 자신과 한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어려운것이 하나도 없이 쉽다. 논리가 어려워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지 못하는 것일 뿐인데

수메다 행자가 발심한 이래 수천억겁 동안 무수히 몸을 던져 보살행을 한 끝에 부처를 이루었듯이, 미륵보살은 그의 서원 이래 지금도 이 땅에서 무수한 화현으로 나타나 보살행을 닦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버림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장차 부처가 되리라 약속받은 미륵보살입니다.

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행. 멋지다.
법륜스님과 정토회 수행자들의 보살행이 행복하시길.
저 피안의 세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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