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 개정판 이상의 도서관 34
최정태 글.사진 / 한길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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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는 많은 도서관이 있는데, 세계를 지배했던 경험이 있는 지역애는 반드시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기 마련인가봐. 

인간의 욕망중에 학습하고, 길을 찾기위해 공부하는 즐거움 또한 뻬놓을수 없으니 

도서관을 산책하는 것이 취미이자 휴식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부럽고 부러운일이다. 

지상의 아름다운 도사관들과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좋은 책은 영혼에 피를 돌게한다. 

이 말은 영혼에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지 못해 답답하고 답답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내 영혼에 피를 돌게 해주라. 


그림을 찾아다니며 감동하여 소개하는 이주헌이 부럽더니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아름답고 기능적이며 어떻게 효율적으로 설계되고 건축되었는지 

살펴온 최정식도 부럽네. 


도서관 때문에 맨하튼에서 이사를 갈수가 없다. 고 말하는 펜들을 거느린 뉴욕공공도서관 

우리집과 담장 사이로 아산도서관이 있어서 행복하기는 하지. 

우리집과 담장 사이로 뉴욕도서관이 아니라서 쫌 유감스럽네. 

우리집과 담장 사이 아니라도 되니까, 도서관때문에 이사갈수 없는 도시가 우리도 이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에다 우겨서 다 넣지말고. 


뉴욕시 전체의 도서관 이용자 수는 연간 4,100만 명이다. 이 숫자는 시내의 모든 문화시설 이용자와 메이저 스포츠 경기 관전자를 합친것을 능가한 것이며, 뉴욕 시민의 서비스 평가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도서관은 시민 서비스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으아~~ 부러워라.


영혼의 쉼터. 하늘로 이르는 순례

맞다. 도서관은 영혼이 쉬는 곳이다. 

소개되는 도서관이 언제 처음 만들어지고 어떤 사람들의 어떤 생각에 의해 변화되고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지 

현제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설명은 도서관, 지식, 공공의 지식관리, 학문에 대한 포괄적인 철학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미국 의회도서관이 개관하던날 신문들의 예찬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비싸며, 가장 신뢰할수 있고, 전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이라는 거였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도둑질하여 세워진 땅의 시민들이 폭력을 은폐하는 방식이다. 

가장 거대하고, 비싸고. 이 기준은 여전히 미국의 대표적인 가치기준이니까. 


천명이 넘는 사서가 일하는 도서관은 아니라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사서가 한시간씩, 두시간씩 설명하며 안내할만한 도서관이 있으면 좋을것 같다. 

뭐, 우리동네 도서관은 실제 사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2.

최정태는 대한민국에서 도서관학을 연구하며 선구자이기도 하고, 그래서 외로웠겠다. 

남들은 책을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데, 그래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아두고 전시하고자 중세의 궁전을 여는데 

우리는 도서관이 문을 연지 20년이 지나면 책을 버리기 시작한다니, 

더이상 신간을 놓을 곳이 없으니 도서관을 확장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오래된 책은 버린다네. 하. 

최청태는 외로웠겠다. 

천박한 엘리트, 지식인 집단을 그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행간에서 가끔 보인다. 

고집세고 실용적인 학자다. 

편안하고 안정된 문장으로 군더더기 없으며 불필요한 허세가 없어 신뢰가 간다. 


한길사는 책에 대한 애정표현을 잘하는 출판사이니 최정태와 잘 어울린다. 



3. 

중세의 카톨릭은 재물과 지식을 독점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무릇 모든 권력의 핵심은 돈과 지식이다. 


미국의 대통령 도서관들은 꼴불견이다. 

조선의 왕조실록과 비슷하지만 철학은 오히려 천박하고. 

실록은 사관들이 객관을 유지하려는 문제의식의 시스템이지만 대통령도서관은 자랑질과 과시의 시스템이니까.

유럽같은 왕족의 전통이 없는 신생국가의 지배자들이 자격지심으로 돈지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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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의 바다 문예중앙시선 20
문정희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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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속에 악공이 살고 있다


선착장에 나가니 뱃사공들이 모두 파업이다

베네치아 건달들이 휘파람을 부는 날이다

강바람에 머리카락 휘날리던 곤돌리에들이 

짐승 털 냄새를 풍기는 강가에

노를 세워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님이여, 저 강을 건너지 마오

고조선 땅 백수광부 아내처럼 

나는 한없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술병을 들고 바다로 뛰어든 신랑이 그리워 

홀로 발 뻗고 앉아 있다

아내의 흰 치마가 물결에 떠내려간다


베네치아 바람 속에 악공이 살고 있다

악공이 돌아오면 어디로 데려다 달라고 할까

저 강을 건너 진정 내가 닿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휘파람인가, 신랑의 흰 머리카락인가

바람 속에 슬픈 악공이 살고 있다 


문정희가 늙는다. 이럴수가. 

그녀는 아무리 나이들고 몸이 축나고 병으로 모두 벗고 알몸으로 수술실을 들락거린다해도 

그녀는 늙지 않을 줄 알았다. 

그녀는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뜨겁게 빛나길 바랬다. 


노 젓는 일


침묵의 물결 위로 노 젓는 일 가혹도 하지

흰나비처럼 물 위를 걷는 일 장엄도 하지


건너편 섬에는 

죽은 자들이 벗어놓은

뱀 허물 섬


시간이라는 수갑 속으로 자라는

소톱을 바라보다

홀로 돌아간 탈주병들이 잠든 

비로소 영원한 허공


누구도 왕복표는 가질 수 없어

편도표뿐이야


침묵을 저어 저어

시를 쓰고 

고통을 저어 저어

촛불을 켜고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알 수 없는 시간의 수갑을 차고 


그녀는 아마도 이제 더 미루지 못하고 삶과 죽음을 느끼고 있나부다. 

밀리고 밀려 그러니 공허한것 말고는 사랑밖에 할말이 없나부다.  

더운 열기가 확확 오르도록 머리채를 휘날리며 바람처럼 달리며 

오만한 눈빛으로 세상을 곁눈질 했었다.  

이제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늘 그랬듯이 슬픔과 눈물 뿐 이라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뭐 다른게 있냐고 


신과 짐승사이

이리도 슬픈 온기를 가진 떠돌이 

나는 어느 혈족인가


나는 또 길을 나선다

(유랑 일기 中)


화산의 기억을 담은

시집 한 권 머리맡에 두고

불면을 독배처럼 끌어안고

피를 찍어 석 달 열흘 상소문을 쓴다 

(유배 선물 中) 


이런 언어가 내가 아는 문정희 다운 언어다.

그녀가 나이들어 어쩔수 없이 성숙하고 노련하고 심지어 초월하고 해탈하고 비워서 득도한듯이 

이제 삶과의 불화란 더이상 없이 누구나 그러하듯이 살다가 죽음을 준비하는 

그러나 어찌하여 이것은 문정희 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어찌하여 명민한 시인은 요절하거나 특히 여시인은 정신병원이라도 들락거려야 어울린다는 것이냐. 

번개처럼 번쩍이고 날카롭게 살아냈으니 

언제까지 화산처럼 폭발하기 직전의 부글거림으로 뜨거울건가. 

그녀도 이제 서서히 식어 흙어로 돌아가지 않겠나. 


이것이 슬픔이고 눈물이고, 그리고 누구에게나 평등하여 식싱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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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 1 - 가난한 내가, 사슴을 안고 시인백석 1
송준 지음 / 흰당나귀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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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흰당나귀 출판사는 무슨뜻일까.
느낌이 좋다.
하얀색과 당나귀의 착하고 성실한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
쫑끗 속은 귀를 한 작고 순한 당나귀 모양이 떠오른다.

백석의 시는 '예술'이다.
평안도 사투리와 어우러진 인간의 영혼이 투명하고 애틋하다.
백석 평전 세권중 첫번째. 소제목이 '가난한 내가 사슴을 안고' 다.
백석은 가난하다는 표현을 잘 하는데 그것이 담백하고 솔직한 느낌으로 좋다. 
일부러 꾸며 찬란하게 만드는것이 아니라 있는그대로의 가난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란듯이

백석의 시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정신을 사로잡는다. 하늘 아래 이만한 마력을 지닌 시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시인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송준의 흐뭇함에 한 흐뭇함을 더한다. 맞다.
모국어로 백석을 읽을수 있는것은 행복한 일이다.

백석은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잘 안다. 고단한 삶의 슬픔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것을 자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잘나고 뛰어난 자들의 삶이 아니라 아프고 힘들고 가난한 자들의 삶이 이렇게 슬프고 아름답다고.

송준이 백석을 얼마나 아끼고 몰두해서 사랑하는지.
1912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자란 백석을 2000년대 남한에서 사는 작가가 알기는 매우 어려운것이 현실인데
어떻게 이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는지 꼼꼼이 실사구시하여 생생하고 친절하게 보여준다.
백석을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스스로 알고 있는 자의 성실함이 느껴진다.
송준의 진지함에 동의해준다.


2.
백석을 알려주기 위해 부모 양가의 계보와 내력을 훑어 주고
백석의 청년시대를 알려주기 위해 그가 어울렸던 인물들의 면면을 일러준다.
일제시대 엘리트들의 인맥상이다. 
그가 청년이 되어 일본유학하고 돌아온 후에는 당대를 함께 살았던 지인들, 문단의 경향,
일제시대 일본으로 유학갔다온 엘리트 문인들의 처세와 놀이와 밥벌이가 어떠했는지까지 모두 보여주니 흥미롭다. 

특히 일제시대의 평론이 재밌네. 매우 공격적이다. 
요즘도 평론은 먼 소린지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고 잘난척하며 비웃음이 나올정도로 추켜 세우는것이 보통인데 
1930년 평론가들은 격렬했다. 재밌어.  
1936년 '평단파괴의 긴급성' 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김문집은 호를 꽃돼지라는 뜻의 '화돈'으로 썼다.
화돈은 논문에서 평론한다는 자들이 어느나라 말인지 알수 없는 말로 쓰니 그 의미는 나중 문제고 그 뜻을 알수가 없고
글을 쓴자가 자기 글의 뜻을 안다면 겁내지 않고 명백하게 '정신병자'라고 비판해주겠다고 호기롭게 썼다.
ㅍㅎㅎㅎㅎ
2013년 대한민국 평단에도 정신병자들이 많다.
화돈과 백석이 어울려 술먹고 밤을 새며 시와 문학을 논하는 밤은 또한 취해볼만 했겠지.

백석이 펴낸 33수의 시집 사슴은 말하자면 대히트를 쳤다.
당대 문단의 흐름을 흔든다.
서양의 시를 대충 흉내내며 있는척하는 시들과 비교가 될수 없었을 터.
지금도 백석은 영혼을 울리거늘.


3.
백석의 시를 그때시대 맞춤법에서 거의 바꾸지않고 혹은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
워낙 백석의 시는 그 문체,평안도 사투리와 고향의 정경이 중요하니 그랬겠지만
해석이 잘안되어 독서를 방해한다.
사투리의 맛을 살리는 한도에서 쉽게 번역을 해주는것이 독자들이 알아듣기 쉬웠을 것이다.

뱀발을 덧붙이자면, 백석 이냥반 참 잘 생겼다.
일제시대 예민한 감수성의 자의식 강한 모던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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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전의 너는 무엇이었나 - 서암(西庵) 큰스님 평전
이청 지음 / 북마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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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서암스님 평전이다. 잘 씌어진 평전을 오래간만에 읽는다.
큰스님이라는 호칭에 어울리게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정도 지냈던 스님이지만 그보다는
봉암사를 속인들에게 개방하지 않아 청정도량으로 지킨것이 더 큰 업적으로 보인다. 
단지 문을 닫아 관광객을 물리친것이 아니라 
바위를 개발하겠다고 지게차로 밀고들어오는 토목공사를 물리치고 
케이블카 만들어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려는 자본을 물리쳤으니 멋지다. 
이름난 절들이 물건 장사도 하고 영가 천도하며 장사하느라 돈냄새 풀풀 풍기는것에 비하니 더욱이 그렇다. 

그러나 가장 큰 업적은 종정을 그만두며 조계종 종단을 뛰쳐 나온것이다. 
노인이 다되어 평생 놀던 물에서 나와 더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출가하여 다만 절집에서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깨쳤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하물며 그런 사람들이 도인 행세를 하고 나아가 그것으로 가풍을 감하 문중을 형성하고 당파를 만들고, 그렇게 생긴 당파의 덩치가 커지니 서로 부딪쳐 이해관계로 싸우게 되니 이는 불교 집안 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우환이 된다.  

어느 문중에도 속하지 않았고 따로 제자를 키우지도 않았고 그래서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종정으로 추대되고
얼굴마담만 잘하면 되는대 진짜 개혁을 하려하니 문중들이 다 못마땅하여 종정직을 내놓고 나오며 조계종에서도 나와
홀로 갈곳없는 노인이 되어 인연이 되는대로 떠돌다 80고개를 넘어 집을 마련하였다.

어릴때부터 집도 없이 남의 집 곁방살이로 연명해왔고, 자라서는 절집을 돌며 '내 것' 이라고는 잿물 들인 바랑 하나가 전부였던 노인이 80고개를 넘어서서 비로소 '내 집' 하나를 마련한 것이었다. 조립식 건물로 암자라고 이름 붙이기도 어려운 임시 건물이었으나 비바람을 피하고 겨울에는 따듯한 온기가, 여름에는 서늘한 봉창과 구들장을 가졌으니 이만하몀 더 바랄것이 없는 살림이었다.


2.
지금까지 읽어온 스님들의 이야기는 보통 현대사와 맥락이 잘 안 닿았었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듯 모를듯 한채 대체로 바람부는 중생들의 땅과는 멀었다.

이청이 쓴 서암스님의 평전은 출가하여 중으로 사는 기록을 남기면서 한국 현대사, 그 질곡과 격동의 시간속에
한국불교는 어떤길을 어떻게 걸어왔고 변화되어 왔는지를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식민지 조선의 불교를 제압하여 친일불교로 만들려는 계획에 의해 대처승들이 판을처 비구승들이 뒷방으로 밀려나고
해방되자 이번에는 비구승들이 국가권력의 힘을 얻어 대처승들을 쫓아내며 숫적으로 열세이니 깡패까지 동원하여 밀어낸다.
그리하여 비구승들이 조계종으로 한국불교계를 평정했는대
이번에는 조계종 안에서 집안싸움 밥그릇 싸움으로 진흙탕 개싸움을 수십년 한다.
한번 들어온 깡패가 어딜가겠는가.

이와중에 서암스님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다 진흙탕 싸움의 한복판으로 초대되기도 하고 밀려나기도하고
그러나 스스로는 문중도 제자도 말년에는 종단도 없이 홀로 수행하였다.

이모든 것이 소박한 문장으로 편안하게 서술된다.
문장조차 손톱만큼도 잘난척이 없이 겸손하니, 이청이 서암스님을 잘 읽어낸것이고 그럴줄 서암스님이 알았던 게다.
기본 가닥은 소설가가 노인과 나누는 대화인대
소설가는 적절한 때에 결정적인 장면들에거 역사적 배경 설명을 친절하게 한다.
서암스님의 판단과 행보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런 맥락이 좋다.
중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속을 떠나 용맹정진하고 수행한들 세상의 흐름이든, 역사의 흐름이든, 인민의 삶이든
불교 집안 내부의 일들이든, 어찌 이세상과의 연을 다 끊고 홀로 청정할수 있단 말인가.
시대의 고통과 아픔이 있고 시대의 화두가 있는 법이다.
그 속에 한사람의 중으로 선택이 있고 삶이 있다.
서암스님은 견결하고 담백하다. 

열반에 들기전 시봉하던 제자들은 스님으로 부터 열반송같은 게송 한마디를 얻어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던 것 같다. 제자들이 집요하게 묻자 귀찮아진 스님이 한마디 했다. 
"그 노인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죽는 순간 까지 눈물겹게 견결하고 담백하다.  


3.
서암스님의 평전을 쓰기 위해 조계종에서 결코 반기지 않을 치부들을 솔직하게 담담하게 써내려간 것이 큰 장점이다.
세속의 다툼이든 욕망이든 업이든, 그런것에서 자유롭게 수행하기위해 중이되는 것이 아닌가.
중들은 마치 그런 모든 인간적인 다툼과 욕망에서 물러나 면벽수행하는것이 다인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부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고, 그것을 위해 권력과의 밀착과 음모가 치열하고, 이름있는 절마다 장사도 치열하다.
서암스님의 평전속에 자연스럽게 훌륭한 여러 스님들이 자연스레 소개되지만
이청이 기록하는 절집들의 현대사는 권력과 이권다툼으로 개판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실명을 모두 공개하며 써주니 신뢰가 간다.

서암스님의 삶을 더듬으며 한국 불교의 지나온 현대사를 예찬하기만 했다면 그것을 사기였을 테지.
절집의 천박한 수준과 속물스러움과 누추함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장점이다.
이렇게 솔직한 절이야기를 본적이 없다.

절집의 '문중'은 좌파 운동권의 '정파'와 생리가 많이 비슷해 보여.
혈연의 업조차 끊고 가볍게, 무겁게 절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안에서 다시 문중을 만들어 권력다툼에 날이 새는것은 말이 안된다.
그러나 어쩌면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들어간 절이기 때문에
그안에서 만난 스승과 벗들은 혈육보다 더 가깝고 더 애틋해질수도 있겠지.
아무것도 필요없고 모두 버린 자들이 모여 집단적으로 욕망하니 그 욕망의 힘이 더욱 끈적끈적 할수도 있는 것 같아.
운동권도 비슷하다.
기득권을 스스로 버린자, 처음부터 가진것이 없는 자들이 정의의 이름을 앞세워 그 이름에 자신의 삶을 종속시키고
권력을 획득하겠다는 욕망으로 뜨거울때, 진흙탕 개싸움이 되는거다.
정파는 그렇게 움직이기도 한다.

절집도 운동권도 인민의 삶과 멀리 저혼자 청정하려고 속살을 은폐하면, 그곳에 비리와 욕망이 천박하다.
중생을 구원해야 할 수행자들인 중도, 평등한 세상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회주의자들도 
그 삶을 인민들의 눈앞에서 드러내 검증받지 않은채 인민들의 머리위에서 노는듯 잘난척 해봐야, 헛방이다.


4.
서암스님은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갔는대
나도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고 싶다하면, 세상에 부처가 저마다의 마음에 있어 사람마다 다 부처인대
어찌 네 마음을 따라 살지않고 서암의 마음을 따라 살려고 하느냐 타박하실 듯하다.

달마 스님도 일찍이 "너에게 마음이 없으면 나에게 묻지도 못하고 내가 마음이 없으면 너에게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 그대가 나에게 묻고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면 이것이 곧 부처다. 그밖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나의 부처,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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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 - 러시아 예술기행 이상의 도서관 6
이병훈 지음 / 한길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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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의 서사와 그림이 서로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병훈은 모스끄바 인문학 기행을 하며 미술과 문학이 어떻게 교류하는지
그리고 삶과 고통을 표현하는 진보적 전통이 당대에 어떻게 평론으로 남겨지는지, 인용하며 보여준다.

보면 볼수록 더욱, 모스끄바 거리에 서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다른건 다 참더라도 저 그림들은 참으로 매혹적이다.

모스끄바에서 태어나 주말이면 전찰타고 붉은광장과 짜리찌노를 산책하고
연인과 함께 뜨레찌야꼬프 미술관과 볼쇼이 극장, 푸쉬킨과 마야꼬프스키 박물관에서 데이트하면서 산다면
뭔가 영혼이 풍요로울것 같아.
자본주의 러시아 이후 마피아 천국이 되었다고 흉흉한 소문이 들리지만
그래도, 러시아 인걸. ^^

책을 읽다가 이병훈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눈물을 흘린밤에 대해 말하길래
유투브로 검색해 들어보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귀에 익은 피아노 소리.
음---, 이병훈이 말하는 러시아의 소리가 뭔지 알것같어.
좋은 세상이다.
그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으로 영혼을 세척한다며 절대자유를 향한 인간의 염원이라고 말하네.
음---, 음악이 좋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읽고 싶네.


2.
부르벨리의 악마는 외롭고 슬퍼보인다.
악마라면 더 심술궂고 더 거대하고 더 힘이 세보여야 하는것 아닌가.
관객들을 정면으로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방어적인 자세로 앉아
최소한의 허세와 허영도 없이 고개조차 외면하여 돌리고
저 악마가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아름답다.
누군들 외롭지 않은가 말이다.

뻬뜨로프-보드낀의 붉은말은 샤갈과 피카소의 느낌이 난다.
더 강렬하고 무엇보다 섹쉬하다.
뜨겁고 차가운 욕망을 그렸나봐.

브이소쯔끼의 동상은 매력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양의 동상은 말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은 탄압당하느라 감히 동상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살아서 탄압받은 브이소쯔끼는 러시아 인민의 사랑을 받아 죽어서라도 그의 영혼에 걸맞는 동상이 만들어지지만
대한민국은 영혼이 자유로운 자는 고사하고 아직도 일해공원에 전두환 동상을 만든다고 지랄이다.
총칼로 사람죽여 대통령 된자의 목을 쳐도 시원챦은대 동상이라니.
물론 총칼로 대통령이 된자는 총에 죽었으나 그의 딸자식이 지아버지 죄를사과도 않고 대통령 되겠다고 나선 마당이다.
천박한 것들.
모스끄바로 떠나고 싶다.

영화 백야에서 처음 브이소쯔끼의 목소리를 듣고 심장이 뛰었었다.
저 깊은 곳에서 퍼울로리는 영혼의 절규. 고통의 소리. 그러나 단호하게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고함소리.
그가 기타를 칼처럼 등에 가로질러 차고 양팔을 벌려 하늘을 보고 있다. 멋지다.

똘스또이에 따르면 인간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느냐?"다. 즉 그는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그의 삶과 가치를 결정짓는다고 보았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삶이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지.
속일수도 없고 외면해서 피할수도 없이 내 영혼의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겠지.
미리 미리 비우며 준비해야 한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인민을 쓰고 그리는 것은 우연도 아니고 한두사람의 노력도 아닐 것이다.
전제 군주의 폭정아래 수백년 인민의 고통소리가 지식인 예술가들의 양심을 흔들었을 터이다.
이런 전통이 부럽다. 인민의 삶에 가치를 두는 전통.


3.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스끄바는
황제들의 화려한 절대권력의 도시였고
한때는 소비에트,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혁명의 도시였는데
이제는 세계에서 벤츠가 가장 많이 팔리는 도시가 되었고 기자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암살당하는 도시가 되었다.

러시아 사람들처럼 이병훈은 모스끄바를 사랑한다.
그 마음을 듬뿍담아 원고를 썻고 한길사는 고급스럽게 꾸몄다.

2006년에 이주헌의 눈과피의나라 러시아미술이 나왔고
2007년에 이병훈의 모스끄바를 사랑한 예술가들이 나왔다.
한때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원서로 읽기 위해 러시아말을 배워볼까, 택도없는 꿈을 꾸었지만
2012년 나는 러시아에 가고 싶다.
끌레믈리 광장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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