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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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생한 중국 현대사

청나라가 망한후 근현대 중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준다.

신해혁명, 항일운동, 그리고 붉은 혁명의 시대, 격변기를 드라마틱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다보니 이야기자체가 흥미롭다.

사진이 있어 더욱 좋다.

 

오래된 흑백사진들이 한페이지를 비우고 시원하게 편집되어 시대와 사람을 잘 보여준다.

신념과 야먕을 위해 시대의 풍랑을 타고 넘었던 사람들의 매력적이고 극적인 한때가 그대로 보인다.

 

책의 시작이 참새소탕전이다. 왠 참새소탕전?

마오쩌뚱의 한마디로 1958년 전국의 참새 2억 1천만 마리를 소탕한 소동이다

천적이 떼죽음을 당하니 그덕에 벌레들이 들끓었다.

책의 시작이 참새소탕전이고 뒤 이어 류 샤오치, 린바로, 캉성이 소개된다.

문화대혁명은 어쩌면 참새소탕전을 닮았다.

마오쩌뚱의 한마디로 피바람이 불고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다.

 

생각보다 더 재밌다.

가까웃 이웃나라 중국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멀리있는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보다 중국을 더 모르다니

김명호는 쉽게 이야기한다.

혁명후 중국의 사건들, 권력투쟁에 의해 바뀌는 사람들의 운명, 딱딱하지 않게 사랑방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편안한 말투로

사회주의 혁명 이후의 중국에서나 있을수 있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흥미롭다.

1950년대부터 이미 중국은 국가자본주의 상태였구나.

 

 

2.

일본과의 전쟁중에 대학교들이 이전을 한다.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닌카이 대학이 연합해 시난연합대학을 쿤밍에 세운다.

쿤밍까지 남학생 244명 교수 10여명이 보행단을 꾸려 걸어간다. 바야흐로 조국은 전쟁중.

"상아탑을 나온 우리는 처음으로 조국이 무엇인지를 인식했다. 얼마나 빈곤하고 큰 나라인지를 그제야 알았다. 평소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여겼던 아편장수나 하층민도 나라 잃은 백성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침략자에 대한 그들의 분노와 불복종의 기세는 우리를 교육시켰다. 우리는 이들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들이 있기에 중국은 망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난하고 크고 전쟁중인 국토를 걸어 도착한 쿤밍에서 메이타이치 교장은 말한다.

"대학은 큰 건물이 있는곳이 아니다. 큰 학자가 있는 곳이다."

지배계급이 되려면 이정도의 자존심과 배포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청이 망하고 새로운 세상의 질서가 만들어지는 시기 쿤밍에서 신중국의 전통과 함께 지식인들이 만들어졌다.

낭만적이고, 보수적인 사회라면 절대 지식인에 끼지 못할 사람들이 이 품에서 성장하여 중국을 풍요롭게 한다.

 

한편 마오쩌뚱은 지식인을 싫어한다.

"거지근성 강하고, 고마워 할 줄 모르고, 남 핑계대기 좋아하고,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온갖 잘난 척은 더하고 무책임하다."

하. 나는 이 말이 무슨말인지 알 것 같아.

 

마오쩌뚱과 류샤오치는 숙적이었다.

"천하를 놓고 싸울때는 한몸과 같았지만, 천하에 군림하자 남은 건 결별이었다."

 

사회주의 혁명후 불안해 하며 바리바리 싸들고 중국을 뜨려고 하는 자본가들을 착취유공론으로 붙드는 류샤오치

중국 건국이후 마오쩌뚱의 동지이자 2인자로 시대를 풍미하다 문화혁명과 함께 하루아침에 권력에서 밀려난 그가

마지막 남긴 유언도 인상적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엥겔스처럼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라. 5대양을 떠돌며 전 세계를 보고 싶다. 나는 평생을 무산계급으로 살았다. 너희들에게 남겨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권력의 핵심에서 살았던 자가 자손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물로 시대를 읽는 커셉은 재밌다.

그 사람의 개성과 시대의 문제의식, 주요사건이 교차된다.

시대를 대표할 만한 사람들이니 사연도 극적이고 다채롭다.

 

권력을 잡은 후 어제의 동지가 적이되어 서로 죽이기도 하고 뒤집히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 사람들은 좌파고 우파고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사람들이고 노동자와 농민의 해방을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해 젊은 청춘의 한때를 빛나게 보낸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처럼 친일의 앞잡이가 친미의 주역이 되어 인민을 혹사시키며 저 하나 잘먹고 잘살자고 했던 것들이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 그것들은 남긴것도 많고, 그것을 물려받은 자식들이 여전히 인민의 껍질을 벗겨 착취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다.

 

장징궈. 장제스의 아들

"15세의 치기어린 소년에서 27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학교와 군대, 공장, 농촌을 오가며 온갖 애정과 증오를 경험하고 체험했다. 멀리 보이는 크레믈린은 처음 보았을 때와 다름없다. 오후 2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추억의 모스크바를 떠났다."

국민당의 장제스가 대만의 독재자인줄만 알았는대 한때 "우리의 가장 큰 임무는 전세계 무산계급의 해방"이라고 말한 사람이었다니

그랬다가 공산당의 세력이 커지자 국공합작을 깨고 중국공산당 당원들을 색출해 씨를 말리려는듯 죽여버린 사람이구나.

장제스가 학살을 하고 있을때 장징궈는 소련에 있었고 그는 아버지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소련 공산당 입당원서를 내지만

군대, 공장, 농촌으로 돌려지며 당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12년만에 귀국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주변에서 받았을 냉대와 조소가 소년을 지치게 했겠지.

다른듯 하지만 묘하게 닮은 부자지간이다.

 

마오쩌뚱의 딸들은 아버지 생전에 특권을 누린 적이 없고 사후에도 물려받을 만한 유산이 없었다. 마오는 두 딸이 과학자나 정치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문학가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노동자가 되어 자력 갱생하기를 희망했다.

중국공산당의 류샤오치와 마오쩌뚱은 숙적이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자신이 말한 신념대로 노동자계급으로서

자식들에게 특권을 물려주지 않았다.

김일성이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시키는 수준의 사회주의와 근본적으로 달라 보인다.

정치고 경제고 북이고 남이고, 대한민국은 자식에게 모든것을 세습한다.

부와 권력을 세습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난 또한 세습된다.

있는 놈의 자식은 군이 면제되고 특권으로 취업하고 재산은 불법으로 상속한다.

중국의 힘은 큰땅이 아니라 저 비범한 신념, 무산계급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부럽다.

 

중공의 청춘, 궁펑. 매력적인 여성이다.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의 사진, 자긍심이 빛나는 얼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표정이다.

외교는 선전이다. 천편일률적이어서는 안된다. 좌와 우를 구별해야 하지만 가릴 필요는 없다.

중국 사람들 말도 참 잘해.

 

공산당과 국민당의 항일전선과 혁명을 중심으로 온갖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국의 20세기는 성공한 반역자들의 시대였다.

명문가의 자제였든지, 촌동네 이름없는 한의사의 아들이든지, 부모가 일찍 죽어 팔려갔든지

성공한 반역자의 시대는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고

항일과 혁명을 위해 젊은날을 보내 성공하지, 청춘이 빛난다.

미남미녀도 많고 애정행각도 재밌다.

 

예친위는 말년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치바이스, 숴베이홍, 장다첸 등 대가들의 작품 100여점과 함께 <푸춘산거신도>를 고향에 기증했다. 이유가 분명했다.

"예술은 사회와 인민의 것이다. 나를 키워준 고향에 보답할 것이라곤 이것 밖에 없다. 미술 작품을 놓고 불량한 상황이 발생할 날이 머지 않았다. 경고가 필요하다."

다시한번 중국의 힘은 큰땅이 아니라 비범한 신념, 무산계급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부럽다.

다음편의 중국 사람들을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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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이은상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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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8년 현암사에서 나온 이은상의 역주해본을 지식공작소에서 2014년 다시 펴낸 책이다. 

세로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도록 편집되어있는대, 불편하지 않고 잘 읽힌다. 

편집이 시원하고 예쁘게 공들여 편집된 책을 읽는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임진년 정월초하루 부터 날마다 날짜를 적고 날씨를 적고 그날그날 주요한 일들을 적어놓았다. 

전라좌수사로서 공무로 무엇을 했고, 누가 방문했는지, 어떤 보고가 있었는지 뿐 아니라 

쉬는날은 왜 쉬었는지, 집안대소사와 친했던 동료들, 아끼는 벗들이 누군지, 그리고 누구를 싫어하는지도 보인다. 

길지 않지만, 기록이 근면성실하고 담백하여 공무원이란 자고로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임진년은 1592년, 지금부터 423년전 이순신이 48살이던 때다. 

400여년전 내 또래의 한남자가 국가의 녹을 받아 먹으며 날마다 쓴 일기를, 본다.   



2. 

월화수목금토일의 1주일 개념이 없던 때, 쉬는 일요일이 없고 주로 나라제삿날 쉰다. 

대략 보름에 한번정도 일종의 공식 휴일처럼, 선대 임금이나 왕비들의 제삿날 쉬고, 명절에 쉰다. 재밌네.


그가 주로하는 공무는 점검과 관리다. 

새로뽑은 군사들을 점검하고, 훈련을 시키고, 본인도 자주 활쏘기를 한다. 

특히 화가 나는 일이 있거나 마음이 불편할때는 꼭 활을 쏜다. 

수군의 방비가 잘되었는지, 군량미는 새지 않고 잘 관리되는지, 무기들은 녹슬지 않고 정비되고 있는지 

망가진것은 보수하고 관리가 부족하면 담당자에게 곤장을 치며 벌한다. 

전쟁시기에는 군량미를 훔친 관리를 잡아오면 사형에 처해 목을 내다 걸기도 한다. 


중국의 사신에게 아부하며 큰소리치는 통역들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르고

가끔 관할지역을 순시할때는 지방의 수화 관리들이 기생과 함께 술을 들고 마중을 나오기도 한다.

순시를 마친후 좋은 경치 구경도 하고 밤늦도록 술을 마실때는 하인들에게 술을 나눠 먹이기도 한다. 

이순신과 그의 측근 여필, 조이립, 우후 등의 사람들이 의기투합해서 손발이 되어 공무를 본다. 

팩트를 중심으로 일을 중심으로 씌어진 일기이다. 

동료들과 술을 자주 마셨고, 어머님 안부말고 가족의 얘기가 나올때는 크게 아파서 걱정할때 뿐이다.  

그가 이렇게 공무에 열중할때, 그의 아내는 노모와 아이들을 돌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3. 

날마다 날마다 아침먹고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쏘고 저녁에는 일기를 쓰고 그렇게 하루하루 일상을 보내던 4월 15일

부산에서 영남우수사 원균이 보낸 통첩을 받는다. 

왜선 구십여 척이 와서 부산앞 절영도에 대었다. 

곧이어 경상좌수사 박홍의 공문이 도착한다. 

왜선 삼백오십여 척이 벌써 부산포 건너편에 와 대었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것이다. 


초반 조선의 군인들을 참으로 오합지졸이다. 

대체로 일본 군인들은 저항없이 무혈입성한다.

왜적이 처들어왔는대 변변히 싸우는 놈이 없다. 

지방관졸들은 도망가기 바쁘고 혹은 부하들을 이끌고 왜적 근처까지 갔다가 먼발치서 보고 도망간다. 

이런 소식들을 들으며 이순신은 원통하다.  


그리하여 20일. 이순신이 최초의 공문을 받은날로부터 5일이 지난후 영남관찰사가 이순신에게 도와달라는 공문을 보내온다. 

거센 적들이 몰아치므로 그 앞을 당적해 낼 도리가 없고, 승리한 기세를 타고 마구 치달리는 품이 마치 무아지경에 들어온 것 같다. 

이 와중에도 이순신은 원통하다고 쓰면서도 늘 하던대로 쉼없이 공무를 본다. 머릿속은 엄청 복잡했을 터이다. 


5월 1일 수군들이 본영 앞바다에 모두 모였다. 

그사이 장수들은 도망가고, 심지어 무기고를 털어서 튀는 놈도있다. 

5월 29일 사천에서 이순신이 거느리는 군사가 처음으로 상륙해 산위에 진을 치고 있는 왜적을 물리치고 

산밑에 벌여놓은 적선 13척을 불태운다. 이순신의 첫승리다. 

6월 2일 당포앞 선창에서 첫번째 해전이고 여기서도 적들을 섬멸시키고 왜선 이십여척이 부산으로부터 오다가 이를 보고 도망간다. 

이날 이후 이순신 밑으로 장수들이 더욱 모이고 뭐랄까 여태 도망가서 짱보던 것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세를 회복한 조선의 수군이 바다를 돌다가 일본군과 마주치면 번번이 승리한다. 

마침내 왜군의 배들이 바다에서 이순신을 만나면 기냥 내빼기 바쁘다. 


그후 6월 11일부터 8월 23일까지 일기가 없다.

날마다 바다를 돌며 왜적을 찾아 싸우고 밤에는 장수들과 회의하며 배에서 자고, 아마도 정신없이 바빴겠지. 

그많은 군사들을 어떻게 먹이고, 비오듯 쏘았다는 화살을 모두 어떻게 공수했을까. 

8월 27일 좀처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이 과묵한 사내가 

저물녁에 제포, 서원포를 건너니 밤이 벌써 이경인대 서풍이 세차게 불어 나그네 마음이 산란했으며 이날 밤에는 꿈자리도 어지러웠다. 고백한다. 

그래. 왜 안그랬겠어.

심란하고 긴장되고 한숨나고 피곤하고, 그랬겠지. 


모처럼 삼도 장수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싸움의 결의를 했는대 끝나고 뒤풀이 술들이 너무 과한 모양이다. 

다만 우후가 술주정으로 망령된 말을 하였다. 기막힌 꼴을 어찌다 말하랴. 어란도 만호 정담수와 남포도만호 강응표도 역시 마찬가지 였다. 이같이 큰 적을 무찌르는 일로 약속하는 마당에서 이렇게까지 술들을 함부로 마시니 그들의 사람됨에 통분함을 이길 길이 없다. 

빵 터졌다. ㅎㅎㅎㅎㅎ 

예나 지금이나 술이 문제다. 술이. 



4. 

갑오년 정월 열아흐레 

흐리다가 늦게 맑아졌다. 바람이 크게 불었는대 해가 진 뒤에 더 거세어졌다. 아침에 떠나 당포 바깥 바다에 이르러 바람을 따라 반 돛을 달고 순식간에 어느덧 한산도에 이르렀다. 사정에 올라 앉아 여러 장수들과 이야기 하였다. 소비포에서 영남 여러 배의 사부와 격군들이 거의 다 굶어죽게 되었다는 말은 참혹하여 차마 들을수가 없었다. 원 수사와 공연연수와 이극함이 서로 눈독들인 여자들을 모두 다 관계하였다고 한다. 


왜적의 침입으로 전쟁중. 

바람부는 겨울날 장수들이 한산도 정자에 보여 앉아 전황을 서로 보고하고 술을 먹는 장면은 자주 나온다. 

겨울이라 추운대 식량도 부족해 병사들이 굶어 죽는 지경인대 

원균과 몇몇 장수들이 여자들과 놀고 있다는 말들이 오간다. 

이순인은 원균과 전술에서도 다른 판단을 할 뿐 아니라 

싸움을 방해하고 약속을 어기고, 거짓 장계를 올리고 그러면서 남의 공을 가로채거나 시기하므로 

음흉하고 고약하고 심지어 가소롭다고 쓴다. 

싸움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아 흉게를 꾸미는 음흉한 자라고 쓴다. 

적들과 싸우는것보다 내부의 적과 다투는 것이 더 피곤한 법이다. 


맑으나 큰 바람이 불었다. 살을 에듯 추워 여러배에 옷 없는 사람들이 목을 움츠리고 추워떠는 소리가 차마 듣기 어려웠다. 

전쟁 난지 2년째인 갑오년 정월의 일기에는 많은 병사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병들어 죽는 보고를 듣는 장면이 많다. 

민생들이 주려서 서로 잡아먹는다고 하니 장차 어떻게 살 것인가 물었다. 

병사들이 굶주리고 춥고 병이난다면, 인민들 또한 그렇지 않았겠는가. 


장기간 계속된 전쟁으로 고통이 더해가는대 

원균의 일당들은 싸움보다 공기든 여자든 술이든 젯밥에 더 관심이 많다. 

이 와중에 아전들은 문서를 거짓으로 꾸며 횡령을 일삼고 왜적에게 끌려갔다가 도망나온 사람들도 있고 

한편 횃불을 든 강도떼. 화적떼가 횡횡한다. 

난세라는 말이 뭔지 알겠다. 어떻게 살까. 


왜적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유린하여 음식을 빼앗아가고 민간인들을 잡아가고 

나라의 관리들은 이 와중에도 제살길만 찾아 도망가거나 횡령하거나 

그러니 먹고 살 길이 없는 백성들이 화적떼가 된다. 


이순신은 배를 만들고 화살을 준비하고 옷을 마련하고 부패한 관리들을 찾아 처벌하고 

장수들을 불러 전황을 더듬고 논의하고 공문을 써서 왕과 세자에게 올리고, 그리고 자주 아프다. 


갑오년. 이 와중에 전쟁을 도와주러 왔다는 명나라 도사부 당종인의 '적을 치지 말라는 패문'을 받고 나는 몸이 봅시 괴로워 앉고 눕기조차 불편했다. 

이순신은 아프다. 

적과 싸우러 온것이 아니라, 적과 화해하기위해 왔으니, 분해서 몸이 아프다. 

비. 비. 종일 빈 정자에 홀로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을 치밀어 회포가 산란했다. 무슨 말로 형언하랴. 가슴이 먹먹하기 취한듯, 꿈속인 듯, 멍청이가 된 것도 같고 미친것 같기도 했다. 



5. 

전쟁이 치열한대 대책이 없어 답답할때는 

꿈에서도 유성룡을 비롯한 지인들, 장수들과 정세를 논하고 작전을 짜는 회의를 한다. 

그래. 이런 상태를 알고 있다. 

꿈에서도 회의를 하고 전술을 다투고, 집회를 하고 전경을 밀치고, 그리고 두려워했었지. 

무쇠같은 이순신도 긴장과 스트레스로 자주 아프다. 


난중일기 내내. 그러니까 임진왜란 내내 이순신을 가장 성가시게 괴롭히는 것은 왜적이 아니라 원균이다. 

예나 지금이나 더 응하기 어렵고 더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내부의 적이다. 


정유년의 일기가 인상적이다. 

정유전 정월초하루부터의 일기가 없고, 사월 초하루날 옥 문 밖으로 나오면서 시작된다. 

병신년 기록이 시월 열하루 까지 있으니, 그 6개월 사이에 관직을 박탈당하고 옥에 갇혔다가 나온 것이다. 

옥에서 나와 성밖 윤간의 집에서 잠시 쉴 때부터 소식을 들은 온갖 사람들이 술과 보내고 떡과 음식을 보내온다. 

혹은 노자를 주기도 하고 혹은 벼루와 붓을 주기도 한다. 

직접 찾아온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며 술을 엄청 먹기도하고 일종의 출소환영식에 마음들이 모여 풍요롭다.

백의종군하러 남으러 내려가는 여정역시 그렇다. 

머무는 곳마다 주변 사람들이 소문듣고 찾아와 환영하며 대접한다. 

대역죄인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여전히 삼도수군통제사인듯이 마땅히 왜적으로 부터 나라를 구해낸 영웅에 대한 대접이다. 

임진왜란 내내 조선 수군이 왜군에게 패한 전투가 딱 한번인대, 그것이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던 시기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전투를 지휘하던 시기의 전투다. 원균은 이 전투에서 죽는다. 

원균이 죽은 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수군의 지휘부가 있는 쪽으로 부임하러 가는길 

동네마다 마을이 텅 비었다. 

관아의 물건들을 모두 챙겨서 왜적이 몰려 온다면서 관리들이 먼저 도망가고 

수군들고 군량미까지 훔쳐서 도망간다. 

이순신이 돌아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군량미를 훔쳐 도망가는 놈을 잡아다 효수해서 목을 내 거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외롭고, 아프다. 


정유년 팔월 초아흐레 

일찍 떠나 낙안에 이르니 관청과 창고와 병기가 모두 타 버렸다. 관리와 백성들도 눈물 흘리지 않고 말하는 이가없었다. 이윽고 순천 부사 우치적, 김제 군수 고봉상이 산골로부터 내려와서 병사의 처사가 뒤죽박죽인 것을 말하면서 하는 짓을 보면 패망할 것이 뻔하다고 했다. 점심후 길을 떠나 십리쯤 오니 늙은이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다투어 술병을 가져다 바치는대 받지않으면 울면서 강권하는 것이었다. 

억울한 옥살이하고 돌아오는 이순신이 인민들은 반가웠겠지.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와 쓰는 일기들은 전투를 더 실감나게 다듬어 쓰기도 하고 

마지막 전투 전까지 여전히 성실하게 공무를 보는것이 변함없으나, 무거웠겠지. 

자주 아프다.  


한심한 왕과 관료들, 헐벗은 인민들, 약탈하러 오는 왜적들, 

외롭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의 주변에 좋은 동지와 부하들, 지인들이 또한 많이 있었다. 

자주 술을 먹고, 술보다 더 자주 활을쏘며 성실한 이순인이다. 명장의 자질이란 이런것인가봐. 

성실함과 담백함. 그리고 인민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임감. 용기란 여기서 나오는것 아닐까. 

명장이고 늘 승리한 장수인대도 호연지기보다 아픔이 더 앞서 느껴지니, 

역시 한심한 관료들의 나라 조선의 장수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완역본을 읽어보자 했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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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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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의 초상을 보며 참 독특한 감성의 작가구나, 했는대. 

이번에는 훨씬 감정이입이 쉬웠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그럴걸. 


73년생 스웨덴 여성 오사가 29살때 디자인 대학교를 졸업하며 제작한 졸업작품이다. 

속지 표지가 인상적이다. 

다소곳이 무릎꿇고 앉은 여성의 목에 줄을 묶어 옆에 선 남자가 들고있다. 

그의 강아지같은 자세의 그녀다. 

이 그림이 어떤 느낌인지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알 것이다. 

모든 남자들은 여자를 저렇게 하고 싶어해. 

끈으로 묶어서 애완용 개처럼 관리하고 싶어한다. 

나쁜 남자들은 애완용 개에게 폭력적이고, 착한 마초들은 웃으며 목줄을 걸어줄 뿐 


7층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를 함께 읽으면 좋을것 같다. 



2. 

단순하고 선이 굵은 그림이 맘에 든다. 

소박하지만 또렷하게 끝까지 자신을 들여다보며 솔직한것이 오사의 힘이다.

그 힘을 잘 표현해 주는 그림이다. 



3. 

닐과 연애하며 행복하던 오사가 처음으로 황당한 사건 

닐이 불같이 화를 내며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고 가버린다.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이런 남자들 많다. 

화가나면 소통을 중단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통제하는 것으로 힘을 확인하는 방식

화가 나면 왜 화가 나는지 말을 해야지. 뭘 어쩌라고 단절로 힘을 확인하려드는지 원. 쪼잔한 것들.

어쩌면 저렇게 소통하는 방식조차도 자기중심적인지. 


그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 사랑이고 생각하며, 

끝없이 그에게 맞추느라 상처받는 사랑을 한번쯤 해보지 않은 여성도 거의 없을 걸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대 왜 그녀는 바뀌어야 하고, 왜 그녀가 그를 만나기전의 삶을 모두 지워야 하는걸까.  

왜 그는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이 첫경험이길 바라고 왜 심지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것이 싫고 

왜 그녀가 똑똑한 것이 싫을까. 

그녀가 애완용 강아지 이어야 하니까. 

핵심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마침내 그가 그녀를 때리고 

규정1 ; 그가 날 때린다면 그를 떠날 것

규정2 ; 그가 날 때린다면 그를 떠날 것

이미 때리기 이전에 감성적인 사회적인 모든 폭력이 있었지만, 그것이 말로 이루어졌을뿐 

그 모든 것을 참더라도, 물리적으로 그가 때린다면 떠나야 한다는 규정1과 규정2는 참 슬프다. 

때리기 전에는 떠날 생각을 못하다보니, 맞아도 떠나기 힘들어지는거다. 

그에게 맞추어지지 않는다면 모든 잘못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익숙해진 그녀는 떠나지 못한다. 

세상의 많은 그녀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런데 이대로 무너저버리고 만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떤 형벌이 닥칠까? 

그녀는 두렵다. 


마침내 그녀는 밤길을 달려 떠나고 

그녀가 전화로 학교에 신고하자, 학교는 그녀가 위협이나 두려움에 노출되지 않고 학교에 다닐수 있는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병원에 가서 그의 폭력의 근거를 증거로 남기고 고소하라고 조언한다. 

요 대목이 한국과 스웨덴의 차이다. 


얼마전 조선대에서 방생한 일 

폭행한 선배를 조선대는 오히려 감싸고, 피해자는 무서워서 학교다니지 못하고 

심지어 녹취록부터 근거가 정확한대도 가해자의 의사질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앞날을 위해 법원은 처벌을 약하게 하고 

정말 미친것들이다. 

조선대 의대의 성폭력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한국사회가 힘있는 놈의 폭력을 권장하는 사회라는 것 

피해자에게 그냥 맞고 살으라고, 고소하고 문제제기하면 너만 피해본다고 협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이 저렇게도 당당한

피해자를 묻어버리고 밟아버리는 것이 저렇게도 쉬운 

천박한 것들이 더럽다. 


다행히 스웨덴에 사는 오사는 가족과 학교과 법으로 부터 보호받는다. 

그리고 그녀가 한때 그렇게도 사랑했던 닐은 처벌받는다. 

이제 오사는 앞으로도 살면서 여지저기에서 닐같은 남자를 만날것이라는 것을 안다.


용기를 내서 다행이야. 힘내렴, 오사. 

그녀를 위로하며, 나를 위로하고,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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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책 -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들
존 코널리 외 엮음, 김용언 옮김 / 책세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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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 세계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그들이 사랑하는 소설에 대해 열변을 토할 기회를 주기로 한 기획이 재밌다.

추리소설에 대한 베스트 리스트들은 대체로 내 취향과 잘 안맞는대  

미스터리 작가들이 사랑하는 소설이라니, 당연히 주관적일 것이고 그래서 더욱 기대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사랑하는 소설이 어떤 작품일지 궁금하고 

내 리뷰와 그들의 사랑하는 이유가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하다. 

미스터리 소설을 잘 쓰는 소설가가 좋아하는 미스터리 소설은 어떤 작품들일까. 


읽어보니 작가들이 무엇에 집중하며 소설을 쓰는지 저절로 알아진다. 

맛있는 책이다. 



2. 

리타 매 브라운이 두도시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쓰며 미스터리는 보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진실의 발견이 언제나 범인이 국가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걸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진실을 찾음으로써 균형, 혹은 균형의 형태가 어떻게든 재구축된다. 존재는 다시 한번 질서 정연해진다. 이것이 바로 보수성이다. 미스터리의 결말에서 독자가 갈곳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디킨스가 이천년간 이어온 관습을 거꾸로 뒤집었다는 점 또한 인정할 만하다. 진실은, 정체성은 어떤 정의의 형태는 언제나 밝혀지고 만다는 관습 말이다. 

디킨스는 정확히 그 반대의 이야기를 썼다. 

그래서 두도시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는 리타의 말에 동의한다. 

관습과 다르게 현실은 선과 악, 진실과 정의가 늘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늘 흐리멍텅 하거나, 안개처럼 뿌옇거나 진실이 있어도 힘이 무서워 밝히지 못하거나 


린다 반스는 셜록 홈즈의 모험을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내놓으며 회상한다. 

아마도 열살 정도의 초등학생 때 처음 읽은 걸로 기억한다. 어쩌면 열한 살이었을지도 모른다. 지칠줄 모르는 독자였던 나는 책을번개처럼 순식간에 읽어치웠고, 학교 도서관 사서는 소설에 대한 내 욕구를 만족시키느라 동분서주했다. 

이 문장을 읽고 어찌나 부럽든지. 

내가 열살 초등학생일때 우리학교 도서관은 늘 문이 잠겨있었고, 

아무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다는걸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사서도 없었다. 

지칠줄 모르는 독자였던 나에게도 소설에 대한 내 욕구를 만족시키느라 동분서주하는 사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늘 책이 고팠거든. 


작가와 소설의 인연, 그 사적인 애정고백도 좋으네. 역시 린다의 고백이다. 

내가 선택과목으로 펜싱을 고른 건 홈즈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홈즈의 부추김으로 펜싱을 선택과목으로 고를 수 있는 학교에 다닌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린다는 알까.  


살인사건을 베네치아풍의 꽃병 속에서 뽑아내어 뒷골목에 떨어뜨려놓은 사람이 바로 해밋이다. 

이런 문장 재밌다. 무슨 말인지 알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 

영국의 부르주아 신사 탐정이 미국으로 건너와 뒷골목의 노동자와 비슷해졌지. 

신분이 바뀌니 문장도 바뀌고 감성도 바뀌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연기 속의 호랑이>를 새로 구하려 했지만, 유통되는 판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다른 걸작이 절판된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범죄가 아닌가. 

이런 문장 좋다. 어떤 느낌인지 알아 이야말로 범죄라고 성토하는 미스터리 독자들 많을 걸. ^^


또한 이야기를 거듭 비틀다가 결국 의미가 사라지고 이야기가 스스로의 방향을 무시하며 모든 것이 뒤집어지고 결국 아무것도 중요해지지 않는 지경에 이르는, 광기의 정점까지 플롯과 등장인물을 밀어붙이는 한물간 현대 스릴러의 유행과 아주 신선한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현기증 나는 굵직한 한번의 반전만을 스스로에게 허락할 만큼 숙련된 작가다. 

글쎄, 그렇다니까. 한물간 현대 스릴러의 유행은 정말 저렇다. 

자꾸 비틀다 결국 모든 것이 뒤집어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지경의 허탈함, 작자에게 사기당한 느낌에 비하면 

크리스티의 맛이야 당근 깔끔하고 깊지. 아무렴. 

죽이는 책과 대화하며 읽었다. 


죽이는 책,은 미스터리 명예의 전당이다. 

후배 추리소설가들의 추앙받는, 사랑받고 존경받는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는 위대한 범죄소설가들이 몇몇 존재하지만, 덱스터만큼 - 또는 마이클 코넬리 만큼 - 실제 삶의 만화경같은 양상을 유능하게 포착한 작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도시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는 도시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명도가 조금씩 다른 핏빛이었다. 대실 해밋은 그 도시 최고의 인기인이었다.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찬사. 

짧지만 명쾌하거나 강렬하고, 탁월하거나 따뜻하다. 


하지만 날렵하게 구축된 플롯은, 그리고 세인트의 트레이드마크인 살기등등한 이상주의는 지금도 우리가 사는 세계와 놀라울 만치 밀착되어 있다. 


챈들러는 좌파 쪽으로 경도된 하드보일드 산문을 술 취한 낭만주의에 빠뜨렸다가, 결국에는 패러디의 막다른 골목에 떨궜다. 


조세핀 테이라는 이름으로는 장편 미스터리 소설을 여덟편 남겼다. 무척 근사한 그 여덟 편은 나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덜어내야 더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또한 공포를 암시하는 편이 자세한 묘사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 역시 가르쳐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루이즈 페니가, 좋아하는 조세핀 테이를 표현한 말이다. 

루이즈가 좋아하는 조세핀, 마이클 코넬리가 좋아하는 챈들러에 대한 고백을 읽는것은 즐거운 일이다. 


<A는 알리바이>는 고전적인 '누가 범인인가' 공식을 쇄신하고 깊이를 더하며 유머를 적절하게 가미한다. 이 소설은 인도적이고 따뜻하며, 자의식이 깃들어 있다. 고급 미스터리 소설도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할 뿐아니라, 미스터리의 기준 자체를 아예 높여버렸다. 

맥 가디너가 수그래프턴의 A는 알리바이에 대한 칭송이다. 

이런 칭송을 들은 책이라면 읽어보고 싶어지는게 당연하다. 


흑인이라는 것, 노동계급 지역에서 성장했다는 것, 그것은 내 가슴에 와 닿는 문젯거리를 넘어 지금의 나라는 성인을 형성한 뼈대와도 같다. 

나도 그렇다. 여성이라는 것, 노동계급 지역에서 성장했다는 것이 나의 뼈대다. 


헤밍웨이는 쿨한 태도란 엄청난 압박하에서도 우아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최고의 글은 당신이 등장인물들과 함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장담하건대, 위대한 범죄소설을 읽을 때의 즐거움은 명백하게 이질적인 사건과 캐릭터와 단서들을 내보이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숙고하게끔 한다는 데 있다. 

동의한다. 반전이란 저 연결의 생각지 못한 절묘함을 말한다. 


어떤 범죄소설들은 내안에 미칠 듯한 호기심의 불을 댕긴다. 나는 거의 숨막히는 상태에서 빨리 결말을 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책장을 마구 넘기며 광기어린 질주를 벌인다. 하지만 진정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책이라면, 나는 그 욕망을억제하고자 한다. 어서 결말로 달려가고 싶다는 유혹에 맞서면서 대신 천천히, 세부를 구석구석 음미함으로써 나의 호기심과 즐거움은 둘다 오래 지속된다. 얼마다 행복한 순간인지!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추리소설에 대한 소메르의 이런 애정고백은 정말로 적절하다. 딱 내맘같아.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수많은 누아르 소설은 여성의 고문과 살인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팜 파탈 같은 여성의 악마화는 여성에게 닥치는 그 어떤 운명도 근복적 의미에서는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인 것처럼 형상화 한다. 여성 혐오는 범죄소설 문법의 일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가 마리 오퍼드의 의견에 공감한다. 

하지만 범죄 소설은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나 여성의 이야기도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유연한 장르이기도 하다. 

그녀의 말에 모두 동의해. 



3.

범죄를 해결하는 경찰이 등장하는 소설은 국가 차원의 독재를 강화하는 것으로 독해될 수 있다. 이 시기는 아파르트헤이트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다. 국가가 혼란에 질서를 가져온다면, 고문이나 실종, 죽음은 말할것도 없고 착취와 분리, 학대를 용인하는 법으로 강화되어온 인종차별을 기반으로 한 국가에 대해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진보적이고 자존감 있는 작가하면 경찰소설을 집필함으로써 경찰 편을 드는 행동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은 적이었다. 그들은 국민들을 침공하는 군대였다. 

이 문단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헤닝 망켈을 처음 읽었을때 내가 놀란것은 그가 상상하는 발란더라는 매우 인간적이고 성실한 경찰의 존재였다. 

이떻게 이렇게 사색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사람을 경찰로 상상할 수 있는거지?

한국 추리소설 작가들은 여전히 경찰이 적이라고 느껴지는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상상력이 제한될 뿐 아니라 

한국 추리소설 독자들은 권력의 횡포가 비인간적이라 그것을 소설로 즐기기 어렵다.

심지어 가장 큰 범죄는 법을 집행하는 경찰과 검찰, 판사들이 저지른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대 

소설에서 모범적인 착한 경찰이 나오면 그 소설역시 권력의 눈치를 보는 소설이니 또한 폭력일뿐 재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가공의 범죄와 폭력을 즐기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와 법과질서, 희망과 번영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무수한 아르헨티나인들은 여전히 한밤중에 문을 쾅 열어젖히고 들이닥치는 군대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는 코지 마스터리 따위가 필요없다. 그리고 케냐는 소말리아에 바로 인접한 나라다. 어떤 상상속 위법행위도 상대적으로 황량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실제하는 사건에 너무 가깝게 붙어 있다면, 개인을 죽이는 행위에 탐닉하는 오락적 욕구는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동의한다. 독재의 나라에서 대중은 미스터리를 즐길수 없다. 

일제의 식민지와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를 연속해서 100년을 겪은 대한민국은 추리소설을 즐기기 어려운 나라였던 거다. 

국가권력의 살인이 일상에서 느껴진다면, 살인은 오락거리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이 미스터리나 SF 장르가 척박했던 이유는 오랜 억압의 원인이 있었던 셈이다. 



4. 

아주 많은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딱한권의 미스터리 소설을 뽑아 왜 좋은지 설명한다. 

대체로 한사람이 다섯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 

1840년대 에드거 앨런 포에서 시작해서 2000년대의 마크 히메네즈까지 

보통 이렇게 모아놓으면 잘써진 글과 대충 쓴 글의 편차가 있는 법인대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 쓴 모든 작가들이 매우 열정적으로 

자기가 왜 추리소설가가 되었는지를 고백하듯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듯이, 혹은 오랜 연인을 소개하듯이 썼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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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투쟁의지 삶창시선 38
조성웅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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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세대는 현대중공업 해고자 조돈희 동지처럼 

대중파업의 정점에 서보지도 못하고 

'하층민', 비정규직노동자의 외롭고 고립된 절규로 한 시기를 다 채워야 했다.  

 

그의 외롭고 고립된 절규의 한 때에 내 절규가 함께 있었고 

나의 외롭고 고립된 절규의 한 시절에 그의 응원이 함께 있었다. 

그러게, 나도 가끔 조돈희동지가 서 보았던 대중파업의 정점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에게 조성웅은 시인이라기보다 동지이니 

시와 혁명이 분리되지 않는 삶을 꿈꾸는 그에게 시인과 동지가 분리되지 않음으로 답한다.

아직은 동지의 시보다 동지의 어눌한 목소리가 더 익숙하지만 ^^;

그래도 참 조성웅처럼 바보같고 우직한 시이니, 시가 그를 닮았네. 

지금도, 시와 혁명이 분리되비 않는 삶을 꿈꾸다니. 

우리는 참 바보같어. 약아빠진 배신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말이야.  


어느새 사십대가 된 지금, 난 더 절박하게 싸우고 싶고 더 잘 싸우고 싶다 

그와 더불어 사십대가 된 나는 더 절박하게 싸우고 싶지도 않고 더 잘 싸우고 싶지도 않다. 

그냥 더 혁명처럼 싸우고 싶다. 더 붉고, 더 빛나고, 더 따뜻하게, 더 넉넉하고, 더 평등하게 

나는 이제 절박이라거나, 벼랑끝이라거나, 견결이라거나 이런 말들이 싫다.

우리가 옳기 때문에 마땅히 더 너르고 넉넉한 땅에서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좀더 인간적이고 보다 민주적이고 더욱 문화적인 것이 혁명적이다. 

조성웅의 시, 서사를 읽는다.   


자정 지나 관리자들도 어느정도 빠져나가고 

술기운도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졸고 있는 관리자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오는 하청노동자들

몇마디나 했을까

힘없이 내 멱살을 잡고 서럽게 운다

"하청들 다 죽어가는데 위원장이라는 놈이 뭐하고 있냐"고 엉엉 운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에게 단결은 너무 멀고 

피업은 꿈만 같은데 

우는것도 용기가 필요했던 사람들이 

내 멱살을 잡고 운다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우는것이 

죽음에 대한 예의였던 

현장 추모 집회였던 

작업중지권 쟁취를 위한 하청노동자 현장파업이었던 

울산대학병원 영안실에서 보낸 120일!


울산대학병원 영안실에서 보낸 120일 中 일부


가슴에 묻은 죽음이 너무 많으면 가슴이 묘지가 된다. 

지난 10년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조 위원장의 세월이 눈물이었다고, 고통이었다고 그래, 그랬지. 



2. 

조성웅동지가 서명해서 주었으나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쓴 시를 보는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시집의 페이지를 넘기며 

남루한 일상을 넘어 연대하고 투쟁하는 삶이 아름답다해도 우리는 너무 아프다는 생각을, 억울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다만 이제는 나도 시를 한번 써볼까, 싶었네. 

어린 짐승의 착하고 슬픈 눈빛 같은 날에


조성웅동지와 내가 대공장 사내하청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비슷비슷 10년을 보낸 후 이맘때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구나.


난 화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더욱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것이지만 

조금은 더 즐겁게 웃으면서 투쟁하고 싶다

자본주의의 수탈과 폭력 앞에서도 

춤과 노래와 시와 함께 웃고 율동 한다는 것

이것은 충분히 혁명의 내부라고 이야기해도 좋다 


혁명의 내부 中


2003년 조성웅이 이해남 열사에게 한 약속은 

집에 돌아와 자기 전에는 투쟁조끼를 벗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고

그래 그때 나는 다시는 동지를 외롭게 하지 않겠다, 했었어. 

그리고 10년이 흘러 다시 박정식열사에게 이제는 행복하게 투쟁하겠다 약속을 했네 


한시대를 비정규직 노동조합운동을 하며, 그 운동이 혁명의 주체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며 달려온 

그와 내가 마흔넘어 웃으면서 행복하게 투쟁하고 싶다고 우리의 불혹을 성찰한다. 

함께 싸웠고, 함께 웃으며 늙어가도 좋을 동지의 시집 

아직도 혁명의 내부를 탐색하고 있는, 그래 우리는 10년 넘게 너무 많이 울었다. 

아직 포기하지 못하는 빛나는 혁명, 햇살처럼 따뜻한 그 온기에 대하여 


사십 무렵,

스스로를 가꿔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이 다행스럽고

조금은 더 부드러워진 내 모습에 만족한다

아름다워지지 않고서는 혁명적인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자기 전이 아니라도 투쟁조끼를 벗는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까지 

스스로를 괴롭히며 비난하지 않고 용서하기 까지 

그리고 이제 더 아름다워져 혁명적인, 사십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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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0-1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확.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