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안에서 겨울도 거의 다 보낸 어느 날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동지가 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면회를 왔다. 진아, 예린이 모두 아주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밖에서 같으면 일단 안아주고 뭐든 웃으며 말했을 텐데, 장소가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말을 잘 안한다.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던 진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이모, 정말 콩밥먹어요?”
ㅎㅎㅎㅎ
“아니, 쌀이랑 보리랑 섞여있는 밥 먹어. 궁금하니?”
“네. 사람들이 그러는데 콩밥 준데요. 저는 콩 싫어하거든요.”

징역 산다는 말을 콩밥 먹는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 사는 일이야 어디서나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인 법이다. 감옥에서도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먹는 일이다. 요즘은 콩밥을 주지는 않는다.

아침은 6시 40분경, 점심은 11시 30분경, 저녁은 17시 30분경에 배식을 한다. 1식 3찬이고 소지들이 손수레에 음식을 담아 싣고 다니며 방마다 배식을 한다. 식사시간이 되면 방안에 상을 펴고 둘러앉아 플라스틱으로 된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들을 펼쳐놓고 식구통을 통해 배식을 받는다.

수용자들이 스스로 가장 짐승처럼 느껴지는 시간 중 하나가 배식시간이다. 밥과 물, 반찬을 받는 방식이 그렇다. 방과 복도 사이의 벽 아래쪽에 뚫린 가로, 세로 20cm 정도의 구멍을 식구통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나무문으로 막혀있고 배식을 할 때는 작은 문을 열고 그릇을 내주고 받으며 음식을 받는다. 뜨거운 물을 받을 때는 손에 물통을 들고 내밀면 밖에서 주전자의 물을 손에 들고 있는 통으로 부어주는데 잘못하면 화상을 입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배식을 받는 것도 요령이고, 그래서 보통 방에서 고참들이 담당한다.

식구통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릇을 구멍으로 내주고 담아주는 밥을 받고, 다시 다른 그릇을 내주어 차례차례 국과 반찬과 물을 받는 것은 참 모욕적이다. 식당에서 식탁에 앉아 먹는 것도 아니고, 배식을 받을 때 문을 열고 주는 것도 아니다. 식구통은 편지를 전해 받거나 다른 온갖 필요물품을 살 때마다 적어서 내주고 받는 통로이기도 하고 심지어 아침마다 쓰레기를 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쓰레기를 내주는 구멍과 밥을 받는 구멍이 같아서야 되겠냐고 항의했더니 쓰레기를 버릴 때 방문을 열더군. 거 참.

3찬이라고 하지만 김치와 국을 빼면 다른 반찬은 한가지이다. 한 달이 시작되는 날 소지가 방마다 이번 달의 식단이 복사된 종이를 돌리면 그것을 보고 식단표를 만들어 벽에 붙여놓는다. 반찬은 요즘 유행하는 웰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체로 채식이고 가끔 닭고기나 돼지고기가 나오는데 그럴 때는 항상 모자란다. 그냥 넘어갈 때도 있고 더 달라고 싸울 때도 있다. 밖에서라면 줘도 안 먹을 형편없는 음식을 식구통으로 소여물 주듯이 주면서 그나마도 부족해서 싸울 때면 참 기가 찬다.

관에서 배식을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영치금으로 사먹기도 하는데 파는 반찬 또한 다른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이 만든 제품들이 많다. 김, 김치, 무말랭이, 고추장, 간장, 마아가린, 참기름, 훈제 닭고기, 과일 두 종류, 우유와 유제품, 커피, 빵, 오징어. 그 외에 과자 몇 가지.

먹고 난 그릇은 방에서 돌아가며 설거지를 한다. 보통 한방의 성원들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어떤 방은 영치금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담당해서 하기도 한다. 사람을 구속시켜 가두어 놓았으면 최소한의 생필품은 지급되어야 하는데 속옷 두벌이 지급되는 것의 전부다.
나머지 예를 들면 비누, 퐁퐁, 샴푸, 양말, 면티, 치약, 칫솔, 생리대, 휴지, 볼펜, 진통제, 노트, 편지지, 편지봉투……. 이런 것들은 영치금으로 개인이 사야한다.

문제는 영치금이 부족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하나도 없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치금 없는 사람의 생필품을 다른 사람이 대신 사주면서 대가로 설거지와 청소를 요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교도소 안에서 돈 좀 있다고 생색내는 인간들처럼 재수없는 경우도 없고, 반대로 교도소 안에서 돈 없어서 쩔쩔매는 것처럼 불쌍한 것도 없다.

노동운동 하다 구속되는 경우야 함께 일했던 주위 사람들이 워낙 잘 챙겨주니까. 나 같은 사람이 돈 많은 사람 축에 끼며 남들에게 베풀 수 있는 곳도 교도소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해고되어 수입이 없는 내가 언제 물질적인 것으로 남에게 베풀어 보겠는가 말이다. 거기가 교도소가 아니라면 어림없는 소리다.

배식되는 밥이나 반찬의 질, 숫자, 그리고 영치금으로 살 수 있는 물품들은 계속 더 좋아지는 과정 중에 있다. 커피, 샴푸가 허가된 것이 2004년부터이다. 반찬의 질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들 한다. 다만 아직 담배는 허가되지 않고 있고, 그래서 온갖 교도소 관련 비리 중 으뜸은 교도소 안에 돌아다니는 담배가 주종이다. 그 비리의 중요한 역할을 교도관들이 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확인되고 있는데 왜 담배를 금지하는지 모르겠다. 교도관들에게 몰래 숨겨서 들여보내주는 대가로 한몫 챙길 수 있는 길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 배식되는 음식들 맛은 어떠냐고? 조리를 하는 것도 수용자들인데 내 생각에는 최고의 요리사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대전교도소의 경우 5000명이 넘는 수용자가 있다는데, 형편없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 맛은 좋았다. 그러나 맛있다고 먹는 내 옆에서 언니들이 “수정아, 너는 참 뭐든 잘 먹는구나.” 웃으며 감탄했던 걸 보면, 모든 사람에게 맛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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