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
이사카 고타로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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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조금만 읽어볼까 했다가 그만 끝까지 읽어버렸다. 한여름에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을 연상케하는 소설. 환상 미스테리물을 연상케하는 연작 단편집이다.



호수를 배경으로, 마이크로 세계의 스파이 이야기와 이쪽 세계 의 신입사원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저자가 7년간 매년 한 편씩 이어쓴 작품이라고. 무척 독특한 컨셉의 책. 한편씩 짧은 호흡으로 읽히면서도 책 전체를 다 읽었을 때 비로소 ‘아!’하고 알아차려지는 지점들이 있어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쾌감이 있다.



1년차부터 7년차까지 두 주인공의 성장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나도 모르게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마이크로 세계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던 소년이 우연히 한 요원에게 구해지며 스파이로서의 삶을, 이쪽 세계에서는 취준생이었던 청년이 비로소 신입사원으로서 발자국을 내딛는다. 저자가 숨겨둔 디정하고 따스한 메시지도 좋았던 포인트. ‘그저 열린 마음으로,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와 ‘자존심은 그저 단어일 뿐’이라는 메시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매 이야기마다 노래 가사가 테마로 나오다보니, 자연스레 한여름 호숫가에서 벌어지는 음악 페스티벌이 떠올랐다. 실제로 저자가 페스티벌을 위해 작품 집필을 시작했던 것이 이 책의 시발점이라고.



어딘가 몽글몽글하고 애틋한 소설이다. 어느 여름날 호숫가에 누워 음악을 들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비일상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가 합쳐진다는 것이 유독 환상적으로 와닿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애프터썬>에서 ‘Under Pressure‘가 흘러나오던 시퀀스가 자꾸만 떠오르기도 했다. 성장담이자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여서일까.



오랜만에 산뜻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은 책. 여름날의 소설책으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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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
테일러 젠킨스 레이드 지음, 박미경 옮김 / 베리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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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 원서로 1/3쯤 읽었는데 번역본이 나왔다는 소식에 냉큼 구매해 읽어보았다. 명실상부 최고의 셀럽, 쿠바 출신 미모의 여배우 에블린 휴고가 그의 말년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기 인생의 진실들을 털어놓는 이야기. 일곱 명의 결혼 상대 중 그녀의 진정한 사랑은 누구였을까? 무명의 기자 모니크가 한 인간의 가감없는 진실을 받아 적는다.

일단, 스토리가 재미있다. 진정 매운맛.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셀럽, 일곱 번의 결혼이라는 키워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기가막힌 이야기였다. 반전과 반전이 거듭된. 타인의 삶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일까? 그것도 화려한 연예인의 삶이라면, 단연 호기심이 인다. 이 부분을 아주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작품이다. 진심이었거나, 위장이었거나, 어리석었거나. 에블린 휴고가 굴곡진 삶을 지나며 내린 선택들을 따라가노라면 그녀를 이해하게 될 수밖에. 스포일러이기에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에블린의 생 자체가 진짜 사랑을 향한 여정이었다.

또, 에블린 휴고라는 캐릭터가 참 매력적이었다. 마냥 선한 것은 아닌 입체적인 캐릭터. 그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무기를 이용하는데 거리낌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대중 앞에 숨겨왔던 진실을 드러낸 자의 당당한 태도 또한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에블린의 이야기가 모니크라는 젊은 여성에 의해 기록된다는 구성 또한 좋았다. 왜 에블린이 자신의 자서전을 기록해줄 이로 모니크를 선택했는지 그 답은 책의 마지막에 나온다. 이야기의 처음과 마지막에 질문을 던지고 기대감을 준다는 면에서, 또 그 기대감을 정확히 충족시킨다는 면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유일한 흠이라면 오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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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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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심 있는 주제. 현대인의 집중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콘텐츠 소비 방식도 그렇다. 요즘 누가 TV로 드라마를 보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나. OTT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속도로 본다. 이 책에서는 OTT시대가 도래하면서 출현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 대하여, 더 나아가 요즘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콘텐츠 소비 방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책의 출발점이 된 기사가 2021년 3월에 쓰였고, 원서가 2022년 2월에 출간되었으니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소비 방식의 변화는 이미 깊게 뿌리내렸다고 봐야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예능이든 OTT로 보면 나도 모르게 ‘10초 뒤’ 버튼을 연타하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 과정은 잘 모르겠고 결말이 궁금하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장면을 마구 뛰어넘게 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 책을 읽고 지인들과 대화하면서 빨리 감기 시청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만연함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시간 가성비를 추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즉각적인 쾌락과 보장된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특징에서 그 원인을 찾아낸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구독 소비로 인한 작품 하나하나의 가치 하락, sns 알고리즘의 필터 버블 등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즉,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맞다.

사람들은 점점 더 ‘소비’하기 쉬운 이야기, 즉각적인 재미와 만족을 주는 이야기를 원하는 것 같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드라마나 웹툰, 웹소설처럼 회차 구성을 지닌 콘텐츠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조금의 ‘고구마’도 견디기 어려워하며 ‘먼치킨 주인공’과 ‘해피엔딩’만을 바라는 소비자들. 사실 나조차도 콘텐츠를 소비하면서까지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이 눈 앞에 보이는데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싶지는 않다. 바로 뒤로가기를 눌러 쾌락적인 콘텐츠를 클릭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이러다 점점 갈등을 회피하며, 모험을 두려워하고, 실패를 꺼려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두려워진다. 이미 그렇게 되어가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특히나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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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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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연극을 보려고 찾아보다가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네. 집중할 수 있을까?’하고 망설이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종이책을 읽을 때도 고전 소설보다는 사건 위주의 장르 소설에 먼저 손이 간다. 나는 이걸 집중력 저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되지 않고 ‘산만하다’. 업무 중 몇 분에 한 번씩 인터넷 창을 넘나드는 것과 하루에도 몇 시간씩 유튜브나 인스타를 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이게 내 삶을 갉아먹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시대의 흐름이라면 따라야하지 않나? 스크린 타임 좀 줄이고, 명상과 요가를 더 하는 식으로. 흐름에 편승하되 내가 더 노력하는 식으로 절충하는 수밖에는 없지 않나?

<도둑맞은 집중력>은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개인 차원에서의 노력 또한 유의미하지만, 결국 그 너머에 있는 우리의 집중력을 앗아가는 ‘진짜 원인’을 바꿔야한다고 말한다. 그 원인은 당연히 감시 자본주의다. 우리를 잠 못들게하는 스크린 속 sns와 각종 광고, 알고리즘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저자는 아동기 시절에 충분한 창의성을 배우지 못하고 정해진 틀에 갇혀 학습을 반복하는 양상 또한 주의력 결핍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맞지 맞는 말이다. ‘이렇게 하면 당신의 집중력을 지킬 수 있습니다’류의 위풍당당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좋았다. 할 수 있는 건 하되 다같이 근본 원인을 바꿔내야만 한다는 행동의 촉구.

문제 의식에는 공감하지만 해결 방법에는 회의적이었던 내가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은 저자가 몇 주간 인터넷과 단절된 곳에서 보낸 일화 때문이었다. 충분히 사유하고, 걷고, 자연을 보고, 미뤄뒀던 장편 소설을 읽고, 미뤄뒀던 글을 쓰는 하루하루. 내가 바라는 가장 완벽한 하루가 아닌가. 잠깐의 금단현상을 지나 성공적으로 집중력을 되찾았다는 저자의 셀프 실험 결과는, 솔직히 고무적이었다. 2시간이 넘는 영화는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것만 같고, 심지어 이 책을 읽는 와중에도 여러 번 핸드폰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던 나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니.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이 오로지 개인의 노력에만 집중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방향이 아니라, 훨씬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알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나아가는 것이어서 더욱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원인이 ’나약한 나’가 아니라 ‘환경’이라면 스스로에게 다정해질 수 있고, 그 환경을 바꾸기 위해 다른 이들과 힘을 합칠 수 있을테니.

결국 회의적인 태도보다는 긍정적인 태도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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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포옹
박연준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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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시인의 에세이 <고요한 포옹>.



얼른 읽고 싶어서 내달리는 마음과 천천히 읽고 싶어서 자꾸만 멈추게 되는 마음 사이를 가누느라 읽는 내내 어쩔 줄 몰랐다. 시인의 고유한 목소리가 여전하다는 것도, 다만 한층 더 깊고 따뜻해졌다는 점도 참 좋았다.



반려묘를 향한 시인의 어쩔 줄 모르는 사랑 앞에서는 나도 언젠가 내 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까 꿈꿔보았고, 100권의 책만 곁에 두고 싶다는 소망과 도처에 책이 널려있는 현실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더없이 공감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가차없이 미니멀리즘의 세계로 떠날 것입니다.. 곧.) 일상의 일들을 가만가만 세심하게 살펴보고 어루만지고 보듬어 보여주는 시인의 문장들 앞에 나도 조심스럽게 상냥해지는 기분.



‘딱 나만큼 쓰겠다’는 문장을 읽고는 끊임없이 미지의 타인과 비교하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지금껏 성취 지향적인 삶을 살아왔으니 자동으로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스스로의 어깨를 돌려세울 뿐. ‘어떻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태어나도록.’(70p) 내가 나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일은 한순간 마음을 툭 내려놓으면 그처럼 새롭고 설레일수가 없다. 내가 나일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동료의 시와 소설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 폭죽처럼 우수수 쏟아져내린다. 이런 마음, 이런 표현은 읽기와 쓰기를 성실하게 해온 사람만이 내보일 수 있는 것이겠지. 박연준 시인의 책을 유독 아끼는 이유.



너무 빨리 읽어버려 아쉽지만, 아껴둔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난다 출판사에서 나온 박연준, 장석주 시인의 공저인데, 반씩 거꾸로 뒤집으면서 읽는(?) 놀랍고 신기한 책이에요!)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덧. 시인님 이번 책도 잘 읽었어요 오래오래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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