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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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된 옥타비아 버틀러의 <와일드 시드>. 배경은 1690년대부터 1840년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넘나드는 SF 소설이다. 나이지리아에서 변신과 치유 능력으로 수백년간 살아온 아냥우. 어느날 그녀에게 4000년간 타인의 육체를 넘나들며 살아남은 남자 도우가 나타난다. 그는 아냥우를 설득하여 신대륙으로 데려가는데, 실상 그의 목적은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교배‘시켜 죽지 않는 아이를 탄생시키는데 있었다.



참혹하고 잔인하다. 인간을 교배시킬 종자로밖에 보지 않는 것같은 도우와 그의 행태도, 그를 믿었다가 배신당하고 무너지는 아냥우의 모습도 참 처절하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앞세워 환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 그 이면에는 당시 노예제와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폭력적인 역사가 깔려있다. 검붉은 피가 뚝뚝 흐르는 것 같다. 그의 일족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으나 실상 악마와 다름없는 도우. 폭력에 반대하는 치유자이지만 인식은 가부장제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듯한(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성이 강조됨.) 아냥우. 그런데도 이야기 속에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치밀하게 짜여진 구성과 매끄러운 문장들 덕분일 것이다. 또한, 사회의 폭력과 야만을 폭로하면서도 도무지 읽기를 그만둘 수 없도록 만드는 매혹적인 환상성!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국 이 소설은 끝없이 이어지는 아냥우와 도우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흠칫, 실제의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 소설보다 더 잔혹하면 잔혹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은,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심하게 넘어갔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내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피비린내 나는 야만의 역사 위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냐고. 아니,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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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속에서 인간적인 면은 죽어가고 있어, 도로, 거의 죽었다고 해야 하려나. 아이작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내게 일러주었지. 결혼해달라고 나를 설득할 때 그 아이가 이런 말도 했어. 결국 언젠가는 당신이 인간으로서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자신이 살아서 그날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고. 그리고 나는 계속 살아남아당신의 인간적인 면을 구해야 한다고도 했지. 하지만 그아이 말이 틀렸어. 나는 구할 수 없어. 이미 죽어버렸으니까."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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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를 조금은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 나는 왜 나를 파괴하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가. 나는 나를 조금은 더 아꼈으면 좋겠다. 내 책이 조금 더 팔리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이곳에 찾아올 이유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그렇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고아로 또 살다가 어둔 구석에서 사라질 나의 고아들에게 나는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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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하는 인간
정소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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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7년만에 출간된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 <품위 있는 삶>을 인상깊게 읽고 첫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을 찾아읽었다. <품위 있는 삶>에서는 고독과 외로움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면 <실수하는 인간>에서는 작품들마다 불우한 근원을 찾아가는 주인공들이 돋보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쓸쓸했고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종종 작품의 말미에 드러나는 환상성이 오히려 나를 더욱 침잠하게 만든 것 같다. 그것은 종종 현실에 대한 부정에서 기인한 환상들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이렇게도 실수투성이인지.



두번째 소설집과 다른 결의 작품을처럼 느껴져 새로웠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너를 닮은 사람’인데, 아무래도 이 작품 속 예술과 유학에 대한 내 관심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삼각관계나 숨겨진 탄생의 비밀 같은 것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도 취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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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삶과 죽음은 한 쌍임에도 한쪽만이 조명을 받고 다른 한쪽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 가까운 이가 혹은 자기 자신이 죽음음을 맞을 때까지 말이다. 그러나 죽음은 개개인에게 ‘단 한 번의 순간‘이기에 더욱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한 번쯤 제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인 롤란트 슐츠는 독일의 저널리스트로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발견할 수 있는 안내서‘로서 이 책, <죽음의 에티켓>을 집필했다. 그는 평범한 할머니, 청년, 아이 등 가공의 인물을 불러옴과 동시에 독자를 죽음을 향해 건너가는 이로 여기며 ‘당신‘이라고 지칭한다. 이같은 호칭은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어내려갈수록 진짜 죽음의 여정을 통과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책 전반적으로는 죽음에 앞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죽음이 찾아왔을 때 망자의 신체 안팎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아남은 사람은 어떤 애도의 과정을 겪는지가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니까 아주 적나라하게.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이 책 속의 내용들이 너무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후에 신체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혹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지워지는지가 정말 있는 그대로 서술되고 있다. 나로서는 이제껏 죽음에 대해 이런 책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기에 낯설었고, ‘당신‘이라는 호칭때문에 내가 망자로서 그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책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객관적이고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그 어디에서도 읽어볼 수 없는, 죽음에 대한 A부터 Z까지를 (거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속의 죽음을 통해 아무 상관이 없는 타인의 죽음이 아니라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일생에 한 번쯤 삶에서 고개를 돌려 죽음을 제대로 아는 것도 필요하리라. <죽음의 에티켓>이 제대로 길을 안내해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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