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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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을 읽고 문득 첫번째 산문집을 다시 읽고 싶어져서 펼쳐들었다. 시인이 12리터의 눈물을 흘렸던 과거 썼던 일기들이 수록된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이 책을 처음 읽고 나는 나만 알고 싶은 책,이라는 짧은 리뷰를 남겼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같다. 역시 나만 읽고 싶어..



두번째-첫번째 산문집을 거꾸로 연달아 읽으니 시인이 일상을 잘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안심이 되었다. 첫번째 산문집에는 사랑과 상처와 슬픔과 우울이 있고 작은 위트들이 있다. 이미 쳤던 밑줄들을 더 진하게 그으며 다시 울고 웃었다.



시는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사랑과 실망은 동의어.

어떤 것이든 극에 달하면 그 끝은 슬픔.

희망은 희미하고 가늘고 어렴풋할때 가장 근사한 것.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먼저 보듬고 지킬줄 알았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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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최선의 롱런 - 문보영 산문집
문보영 지음 / 비사이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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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책. 문보영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지난 상반기 출간된 시인의 첫번째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에 이어 새롭게 일용할 양식이 생겼다. (이렇게 열일해주시면 너무 좋다구요!) 전작이 시인이 12리터의 눈물을 비워내던 시기의 일기라면, 이번 책은 그 이후의 일기다. 단단한 일상을 살고자 ‘준최선‘을 다하는 오늘날들의 일기다. ‘문보영의 일기 딜리버리‘의 구독자라면 미리 만나본 글들일지도 모르겠다.



6월에 시인의 첫 산문집을 읽었을 때는 나도 정말 정말 상태가 좋지 않았었는데 시인의 우울과 불안, 슬픔, 그리고 한 스푼의 위트에 나도 모르게 큰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이후에 시인이 일상의 기록으로서 올리는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찾아보기도 하고(내가 특히 좋아하는 영상은 치앙마이에서 반지를 낀 손으로 둘둘 말린 볼라뇨를 읽는 시인의 어느 날), 일기 딜리버리를 신청해서 받아보기도 했다. 점차 시인이 ‘준최선의 나날‘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었듯 나도 제대로 나 자신을 알아가는 날들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좋았다. 시인과 독자의 평행선같아서.



이번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은 묵묵한 일상에 슬픔 한 스푼 위트 한 스푼을 얹은 것 같았다. 마음에 들었다. 신간 알림이 떴을 때 앞 뒤 생각하지 않고 주문해서 다음날 바로 다 읽어버렸다. 우리들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에 너무 길들여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것은 좋지만 자기자신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우리 모두 준최선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열심히 하긴 하되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렇게 살다가 진짜 최선을 다해야 할때는 조금만 힘을 내면 되니까.



나는 일기 딜리버리가 우편으로 올 때 붙어있는 스티커들이 너무 좋다. (시집 <책기둥> 사인에 스티커도 너무 좋다.) 살아내는 나날들. 일기를 쓰듯이, 브이로그를 찍거나 보듯이 그냥 그렇게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는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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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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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하고 건조한 문체. 가볍지 않은 사건. (그래서 더 기괴하다.) 통쾌한 전개. 공포스러운 마지막 문장. 뭐지? ​

연년생 자매 경아의 죽음을 파헤치고 복수하는 수아의 이야기 <마르타의 일>. 경아가 마리아라면 수아는 마르타다. 그러나 굳이 성경속 마리아와 마르타를 몰라도 술술 읽을 수 있다. 잘 읽히는 소설이다. ​

SNS 셀럽이었던 경아의 죽음. 너무나도 달랐던 경아와 수아였지만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존재한다는(존재했었다는) 사실만큼은 동일하다. 이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끝없이 계속되는 굴레처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처럼 독자를 경악시키는 마무리(직접 확인하시기를!). 그때문인지 수아가 묵묵하게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경아의 복수를 하는 장면들은 일견 통쾌하게 느껴지지만 어딘가 찝찝한 뒷맛을 남긴다. ‘이거 현실이야.’라고 누군가 무섭게 쏘아대는 것처럼. ​

저자의 전작 <채공녀 강주룡>을 인상깊게 읽었던 독자라면 <마르타의 일> 또한 제법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전작보다 아쉽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저자의 다음 소설이 궁금해진다.) 일단 한 번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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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 전경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6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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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다. 스물 한 살에 만난 효경과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만이 일생의 행복이라 여겼던 미흔. 그녀는 효경의 외도를 알게 되고 무너져내린다. 끝없는 우울과 두통. 특단의 조치로 그들 가족은 시골로 내려가게되고, 그곳에서 미흔은 한 남자, 규를 만나 그와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을 시작한다. 네 달동안 관계를 지속하되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쪽이 지는 게임. 미흔은 지기 위해 그 게임에 뛰어든다. 그리고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지나, 그녀 자신이 된다. ​

사랑, 결혼, 인생 그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무수한 나와 타인의 가면들. 가면들을 전부 집어던졌을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란 생이란 진정 무엇일까? 오랜만에 읽는 전경린의 소설이었다. ‘욕망과 불온함을 다루는 귀기의 작가‘라는 설명은 차치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굽이굽이 흐르는 표현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댔다. 이런 기쁨은 2010년대의 작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상당부분 필사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필사한 부분의 거의 대부분이 미흔의 게임 상대였던 규의 말이었다. 사랑을 하지 않는다던 그의 말. 외로움과 상처를 가진, 그래서 미흔과 서로를 단번에 알아본 그 남자의 말. ​

상당히 에로틱한 장면들도 많아서 불륜소설인가 싶겠지만 이 소설을 꼭 그렇게 볼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규의 존재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지워지고 미흔만이 남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 도입부에서처럼, 미흔과 효경만이. 이 소설은 그들 둘이, 특히 미흔이 질척거리는 생을 지나오며 자기 자신을 탐구해나가는 이야기다. 흔들림 없는 사랑, 평온한 가정이라는 환상, 은밀하게 들끓는 욕망, 관능적인 제스쳐들…. 변영주 감독의 <밀애(2003)>로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영화 속의 미흔은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하다. ​

왜인지 생이 참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어떤 결과가 도래하든 책임질 수만 있다면. 혹은 잘 도망갈 수 있다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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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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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하면 웃긴 일화가 있다. 그의 첫 산문집 <끌림>이 한창 인기였던 10여년 전. 그 때의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책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았고(...) 남들 다 <끌림>을 읽길래 고집스럽게 그 책을 피해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에서 검은 표지를 한 정체불명의 책을 발견했고, 집어들었고,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 제목도 확인 안하고 본문을 읽었나 싶은데, 그 책이 바로 겉표지를 벗긴 <끌림>이었다. 그 도서관에서는 책의 겉표지를 벗기고 정리해두는터라 흰색 표지의 <끌림>만을 염두에 두었던 나는 미처 피하지 못했던 것. 기억이 다소 낭만적으로 왜곡된 것 같기는 하지만, 여하튼 그게 저자의 책과의 첫 만남이었다. <끌림> 이후에는 저자의 책이 출간되면 그냥 공손히 읽고 있다.



<혼자가 혼자에게>는 5년만에 출간된 저자의 네번째 산문집이다. 시인의 글, 사진, 여행. 그동안 저자의 산문집을 읽어온 이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이 책은 그 기대를 충실히 이행하는 책일것이다. 요즘 갖은 이유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 책을 읽을 때 만큼은 걱정 없이 편안했다.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든 이들은 각자의 외로움과 고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으로도 해갈될 수 없는. 순간 잊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스스로 다스릴 수밖에 없는 그런 외로움과 고독 말이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기도 해서 ‘혼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번 산문집이 특히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저자가 생일때마다 혼자 여행간다는 대목에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는데 왜냐하면 내가 딱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일날 축하를 기대하는 것도 싫고 특별한 날이 되는 것도 싫어서 그냥 혼자 떠난다. (이승우의 <생의 이면>과 함께…) 성인이 된 이후 매년 그래왔다. 그런데 이게 하나의 의식처럼 되어서 참 곤란해졌다. 생일을 아무것도 아닌 날로 여기려 한 것인데 오히려 더 특별하게 챙기는 셈이 되어버렸으니. 문득 저자의 생일들이 궁금하다. 어떤 생일들을 보내왔을지.



아무튼. 결국 모두가 혼자일수밖에 없으니 혼자여도, 혼자여서 괜찮은 날들이 계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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