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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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사직을 거부하고 계속 회사에 남아 일을 계속하는 남자의 이야기 <9번의 일>. 한 회사에서 26년간 근무한 남자는 권고사직 권유을 거절한 이후 지방에서 전혀 다른 업무를 맡게 되는 등 온갖 사건을 거쳐 결국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을 하게 된다. 주민들에게 온갖 멸시를 받으면서 통신탑을 설치하는 것이 그 일이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는 어떻게든 그에게 일을 주지 않으려는 회사와 맞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일. 일이 뭐길래?



출판사 서평에서 언급되었듯 집요하고 고집스러운 남자의 모습은 어딘가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를 생각나게 한다. ‘자신의 일부이자 전부였던‘ 회사는 이미 과거의 유령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남자.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 실체 없는 회사를 상대로 자신을 소진시킬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은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지만 일견 미련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회사와 일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소설이었지만 내게는 크게 와닿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 속 남자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는 내가 같은 회사에 20여년 이상 근무하는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 회사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며 일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끊임없이 정체성을 변화하며 살아가는 멀티페르소나 시대에 말이다. <9번의 일>속 주인공은 이미 50대. 동시대성을 획득하기에는 아쉬운점이 분명히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소설의 완결성과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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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 단련 - 이슬아 산문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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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수필집 <심신 단련>. 작년에 출간된 <일간 이슬아>를 읽고 시즌2를 기다렸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주목하면 되겠다. 이 책에는 ‘일간 이슬아 시즌2‘로 연재된 글들 일부와 저자가 채널예스 등에 기고한 글들이 실려있다. 그나저나 ‘심신 단련‘이라니! 제목에서부터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겠다는 저자의 다부진 결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일간 이슬아 연재가 시작되기 전, 매일매일 철봉과의 사투를 인스타그램에 기록했던 저자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이후 일 년간의 꾸준한 일간 구독 서비스를 마친 저자는 오래, 꾸준히, 건강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자신만의 루틴을 다진 듯하다. 저자의 글을 오래오래 읽고 싶은 독자로서 두 팔 벌려 환영할만한 일이다.



<심신 단련>은 크게 네 챕터로 나뉘어있는데, 작년 <일간 이슬아>에 이어 더욱 확장된 저자의 글쓰기를 만나볼 수 있다. 첫번째 산문집에는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려진, 저자와 가까운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면 이번 두번째 산문집에서는 집, 몸, 마음, 돈, 출판 등 저자가 글로써 다루어내는 세계가 한층 더 넓어졌다.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환호하며 읽었던 부분은 단연 돈과 출판 이야기가 실린 ‘일과 돈‘ 챕터다.



‘일과 돈‘ 챕터에는 저자가 어떻게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왜 친구 코너를 개설하게 되었는지부터 <일간 이슬아>를 독립 출판하며 겪은 우여곡절까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특히 저자가 청탁 메일에 답장하며 아주 명료한 언어로 고료를 언급하는 글에서는 엄청난 통쾌함을 느꼈다. 그래 이거지. 노동에는 정당한 대가를. 사실 돈 얘기야말로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이후 맨 마지막에 실린 금정연 작가의 추천사에 따르면 원고를 받기도 전에 고료를 입금했다는 헤엄 출판사 이슬아 대표님의 배포에 박수를 쳤다.) 또한 저자가 독립 출판을 통해 어마어마한 책더미를 집으로 옮겼다는 일화, 헤엄 출판사를 세우며 부모님 복희와 웅이를 고용했다는 일화를 읽고서는 그 행동력에 놀람과 존경이 동시에 일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울린 것은 책의 말미에 실린 에필로그였다. ‘계속해서 겸손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다짐, 사랑이 심어준 용기로 ‘어떤 일에서 더 이상 물러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담담한 회고, 그리고 ‘서로를 놓치더라도 서로에게서 배운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성숙된 마음.



<일간 이슬아>에서 <심신 단련>에 이르기까지 한층 깊어지고 확장된 저자의 글쓰기 세계를 독자로서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앞으로도 이슬아 작가의 건강하고 꾸준한 글쓰기와 헤엄 출판사의 도약을(!) 응원한다. 정말, 팬이 아니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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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한/영 각본집
필리스 나지 지음, 박예하 옮김 / 플레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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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아름다움이 아닌 영화 캐롤 각본집. 캐롤은 내가 영화관에서 9번 관람한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개봉 이후 매년 크리스마스에 관람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플레인 아카이브에서 나온 캐롤 DVD, Bluray는 당연히 종류별로 소장하고 있지만 이렇게 각본집을 내주시다니! 각본집은 또 다르니까 당연히 구매! 박스세트에도 각본집은 있지만 이건 무려 한영각본집에 윤기가 촤르륵 흐르는 실키한 표지와 금박..✨ 세심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는 플레인 아카이브.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 올 겨울도 역시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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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 strange girl you are, flung out of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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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방문객 오늘의 젊은 작가 22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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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일을 위해 귀국한 손경애는 뜻밖의 손님을 집에 들이게 된다. 아들의 친구라는 세현과 수연. 그녀는 서글서글한 그들의 행동에 조금씩 긴장을 풀다가도 미심쩍음을 숨기지 못한다. 북두칠성 모양의 반지, 언뜻 듣게된 세현과 수연의 말다툼…. 그녀의 아들과 이 두 방문객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아들의 죽음에 그녀가 모르는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다.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가 과하지 않으면서도 생동감있게 그려져 읽는 재미가 있었다.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독일문학을 번역하며 상실감을 삼키는 손경애, 요리와 궂은 일을 척척 해내며 친구 대신 아들 노릇을 톡톡히 하는 세현, 새침떼기 같지만 세현을 향한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 수연. 캐릭터마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고 사건의 전개도 빠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메인이 되는 상운의 죽음이나 상현과 세현, 수연의 관계(‘다름‘에서 기인한 관계들)는 다소 예상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나도 모르게 더 복잡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아무래도 이미 ‘정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물어져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보니 오늘날 가장 최신의 문학에서라면 ‘다름‘에 대해 더 급진적이거나 더 첨예하게 다뤄낼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손경애가 세현과 수연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넷에서 다섯으로 가족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결말 자체는 희망적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고 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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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 이슬아 서평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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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열렸던 언리미티드에디션에서 처음 공개된 이슬아 작가의 신작 3권. 텅 빈 통장을 사수하느라 현장에서 구매하지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꽁돈이 생겨 인터넷 서점을 통해 잽싸게 구매했다. 3권 중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은 이슬아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는 제목을 가진 이 책에는 저자가 책을 읽고 쓴 서평 열일곱편이 실려있다. 유진목, 정혜윤, 양다울, 제임스 설터 등 다양한 이들의 책들에 대한 서평들이다. 앞에 실린 여섯편의 글은 저자가 지인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져있는데 나의 눈길이 유독 오래 머물렀던 글들이기도 하다. 수신인을 향한 저자의 애정어린 마음이 더해져서였을까? 마치 누군가의 사랑 편지를 몰래 읽는 것처럼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박완서의 말>에 대한 서평글을 읽고는 책장에서 그 책을 다시 뽑아와 들춰봤을 정도였다.



책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찬 서평집. 이 책을 읽고 나니 미친듯이 책을 읽고 아무렇게나 글을 휘적이는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나로서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아 떨쳐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저자의 다른 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서평집에서도 삶에 대한 유연한 태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자세,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내가 저자의 글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항상 저자의 다음 글이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미 읽었던 글들이 대다수였음에도 단단히 책으로 묶인 글들을 쓰다듬고 연필로 표시하며 읽으니 쾌감이 상당했다. 이제서야 진짜로 글을 읽고 있구나 하는 생각! 역시 책은 직접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는 종이책이 최고다. 그리고 류한경 작가님의 사진도 최고다. 해엄출판사 최고다. 책이 너무 아름다워서 보고만 있어도 황홀하다. 그런데 펼쳐서 읽으면 더 황홀하다. (남은 두 권은 아껴읽고 싶은데 이미 시작해버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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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핀 2019-12-03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꼼꼼 다정한 서평 감사드려요~🙏❄️🌈

2019-12-04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