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작년 여름 출간되자마자 읽었던 <경애의 마음>. 다시 읽으며 예전 리뷰를 찾아보는데 없어서 놀랐다. (온라인상에 리뷰를 올리기 전이었지만 책 리뷰는 핸드폰 메모장이나 다이어리에 꼭 적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줄을 긋고 표시해둔 흔적이 남아있어 일 년 전의 나를 따라가며 소설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절반즈음 읽었을 때 작년의 내가 왜 리뷰를 남기지 않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상실. 당시 나는 소설 속 상실의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애와 상수는 과거 은총을 잃었다. 그보다 전에 상수는 엄마를 잃었고. 이 상실들은 김금희만의 세심하고 다정한 문체로 때로는 어렴풋하게 때로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늘고 고운 비가 촉촉하게 내려앉은 것 같은 소설 속 슬픔을, 작년의 나는 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경애의 마음>이 비단 슬픔에 대한 이야기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제목에도 쓰인 마음, 스스로의 마음, 서로의 마음, 사랑 혹은 연대 - 상수와 경애의 - 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왜인지 상수의 마음은 말랑말랑하고 경애의 마음은 단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일했던 반도미싱이라는 회사. 회사 안에서의 일이란 무엇인지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겠는지 그렇다고 이래도 저래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 않은지 - 회사와 일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단편보다 장편이 더 좋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경애의 마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금희 작가의 작품.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을 기다린다.



이번 주말에는 데이비드 린치 영화를 봐야겠다. 은총이 있기를!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달라고?

_존 밀턴 「실락원」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랑한 공간들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나는 주로 카페나 미술관, 공연장을 즐겨찾는데 특히 카페의 경우 입소문을 탄 소위 ‘핫플레이스‘들을 찾았다가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실패를 거치고 나자 나의 취향에 맞는 공간을 고르는 감이 생겼고 이제는 좋아하는 카페 몇 군데만을 계속해서 방문하는 편이다. 아무튼,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요즘의 추세인듯하다. 좋다는 공간들이 왜 좋은지, 무엇이 특별한지 느낌으로는 알겠는데 제대로 말로 풀어낼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러던 중 <내가 사랑한 공간들>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사진작가인 저자가 우리나라에 위치한 스무 군데의 공간들을 추려 그 역사와 의미, 건축적 아름다움 등을 적은 에세이다. 중간중간 저자의 뚜렷한 생각들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이를테면 일상의 공간인 지하철이 아름다워야 한다거나, 멋진 문화시설이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들 말이다. (적극 동의!)



뿌듯하게도 책에 소개된 공간들 중 절반 이상은 직접 방문해보았던 것이라 더욱 반가웠다. 내가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좋음을 정리된 글로써 읽으니 ‘그래 이거지!‘하는 마음이 든 것도 덤이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겸손하고 편안한, 과거를 껴안는 건축과 보안 1942 공간에 얽힌 역사가 인상적이었다. 역시 뭐든 알고 나면 더 재미있는 법.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나도 나만의 공간을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개인 주거 공간이든 문화 공간이든)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웬만한 열정과 취향으로는 제대로 된 공간을 만들기란 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강하게 들었다.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싶다. 매 순간 성장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내가 품어온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내가사랑한공간들 #윤광준 #공간큐레이션 #큐레이션 #미학 #안목 #공간 #핫플레이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하필 이 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항상 새로이 읽고싶은 책들이 쌓여있는 나이기에 재독은 드문 편인데, 어젯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책장에서 주섬주섬 다시 읽고싶은 책들을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쿤데라의 <불멸>을 다시 읽으며 밑줄을 덧긋는 것에 재미가 들린게 아닐까 싶다.) 그 중 가장 먼저 시작한 책은 <사랑과 잔상들>.



작년 출간 당시에 읽고 거의 일 년만에 다시 읽는다. 그때도 책의 만듦새에 반했었지만 다시 읽는 지금도 역시! 가름끈 색깔까지 완벽하다. 어여쁜 책은 가지고 다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랑의 잔상들>도 그 중 하나.



그래서 다시 읽은 것은 아니고. 이 책의 어떤 내용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지만 또 어떤 부분은 완전히 휘발되었기 때문에 다시 읽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작년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가수 이소라가 콘서트에서 했던 멘트를 언급했던데.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사랑이라고. 이번 독서에서는 초반부에 나오는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이야기가 책장을 덮을 때까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살면서 집 밖에 몇 번 나가지도 않은 여자가 고이 간직했던 단 하나의 사랑. 시 창작의 원천.



역시 나는 불멸의 사랑이 좋다. 그냥 그런 사랑이 좋아. 사랑의 원형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일생에 거쳐가는 모든 사랑은 단 하나의 사랑을 변주한 것들.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투영.



겨울과 무척 잘 어울리는 에세이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국이 내려오다 -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
김동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계실 바로 그 분, 김동영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천국이 내려오다>. 10여년 전 돌풍을 몰고 왔던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될거야>를 시작으로 이미 다수의 책을 낸 저자. 신간 소식을 들었을 때 ‘또 여행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생각에 기대가 반 걱정이 반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간 저자의 모든 책들을 다 읽었지만 꽤 괜찮았던 책도 그렇지 않았던 책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국이 내려오다>는 전자다. 이 책, 꽤 괜찮은 책이다!



저자가 31개의 도시에서 겪었던 천국같은 순간들을 모아 엮은 에세이다. 군더더기없고 담백하다. 그러면서도 저자 특유의 감성과 문체는 여전하고. 글 한 편 한 편을 읽는 내내 무겁지 않아 좋았고 저자가 잠시 누렸던 천국같은 순간을 잠시 엿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이 책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로 가득한 책도 아니고, 스스로의 자아와 감정에 도취되어 마구 휘갈긴 책도 아니다. 무수히 떠나고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 뒤 어떤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써낼 수 있는, 덜어낼 것도 더할 것도 없는 깔끔한 글들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저자의 첫 책 다음으로 이 책이 좋다.



책 속에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들어있는데 가장 좋았던 장면을 꼽자면 아무래도 맨 첫 장의 인도 바라나시 이야기다. 하루에도 200구씩 시체를 태우는 도시. 인도 사람들에게는 천국에 가기 위한 최고의 죽음. ‘천국은 무(無) 로 돌아가 다시는 이 생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라는 뱃사공의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지금 이 생을, 오늘을 잘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주기도 하니까. 로마에서 재회한 그녀와의 이야기, 포틀랜드에서 자유롭게 글을 썼다는 이야기,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space oddity>를 나눠들었던 이야기도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모든 장면들이 무언가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보고 느꼈던 그 순간을 전달하기 위해서 쓰여졌다는 점이 좋았다. 매일의 일상이 지루하게 여겨질 때 펼쳐보고 싶을 것 같다.



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이 있고 어디로든 떠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머물러야 하고 어느 순간에는 떠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나든 떠나지 않든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지만 역시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진다. 나만의 천국같은 순간을 찾아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깨끗한 존경 - 이슬아 인터뷰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지인이 이슬아 작가의 신간 3권 중 한 권만 추천한다면 무엇을 고르겠냐고 물어왔다.(물론 그녀는 세 권 다 읽을 계획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 나는 아무래도 일간 이슬아의 시즌2 메인인 산문집 <심신 단련>이 좋은 선택일 것 같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무조건 <깨끗한 존경>이다. 어차피 이 책을 읽고 나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모든 책들을 읽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정혜윤, 김한민, 유진목, 김원영 네 사람과 함께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네 편의 인터뷰들은 올 상반기 일간 연재의 한 코너로 선보여졌었는데, 당시에도 꽤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주로 저자의 일간 연재 메일을 익일 아침에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읽어내려가는 편인데, 유독 이 인터뷰들을 읽을 때만큼은 자세를 바로 하고 눈을 크게 뜬 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되었다. 이는 네 편의 글들이 전부 나를 크게 일깨우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네 편의 인터뷰들은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평소에도 인터뷰를 즐겨 읽는다. 특히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상호작용이 제대로 일어나는(본 책,59p) 인터뷰를 읽을 때의 희열이란! 이는 그렇지 못한 의례적인 인터뷰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인터뷰들은 단연 전자다. 인터뷰어인 저자가 겸손하고 배려깊은 자세로, 섬세하고 꼼꼼하게 인터뷰를 이끌어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따라 인터뷰이들이 마음을 열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주었기 때문일 것이고. 값지고 귀한 기록들이다. 정말로.



페이지가 줄어가는게 아까워 계속 앞으로 돌아가 다시, 또 다시 읽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그리하여 더 나은 확장된 글쓰기 속으로 기꺼이 전진하는 저자의 행보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그의 글을 읽는 나도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변화가 조금씩 계속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오겠지. 여러분들도 어서 동참하시기를.





* 연대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타인은 최대한 덜 겪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 가끔씩 실패하더라도 더 많은 동물을 살리는 - 더 낮게, 더 낫게 실패하는 비건

* 사랑과 용기로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는 것

* 더 선명하게 나와 타인의 몸을 인지하는 것 - 장애와 비장애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