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 <해가 지는 곳으로>를 읽고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져서 첫 소설집 <팽이>를 찾았다. 총 열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에는 저자의 등단작인 ‘팽이‘가 실려있다. 그동안 장편소설로만 저자의 소설을 만나본터라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채로 책을 집어들었다. (사실 신간 <겨울방학>을 읽고 싶었던 건 안비밀..)



사회적 약자가 집중 조명된 이야기들, 고통과 결핍의 서사, 슬픔과 지지부진한 현실. 첫번째 소설집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팽이>는 그보다 더 고요하고 채도가 낮은 소설집처럼 느껴졌다. 앞쪽에 실린 작품들이 대체로 신선하게 느껴졌고 잘 읽혔다. 3억이 든 돈가방을 발견하고 형제 부부 사이에 논쟁이 오가는 ‘돈가방‘이라던지 성폭행 혐의로 유치장에 갇힌 남편을 뒤로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아내의 이야기가 담긴 ‘남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뒤로 갈수록 집중도가 떨어져 끝내는데 꽤 애를 먹었다.



점점 더 견고해져가는 저자의 소설 세계를 뒤로하고 잠시 시간을 돌려 그 처음을 만나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새로 나온 <겨울방학>에는 어떤 소설들이 실려있을지 궁금해지는데, 새 단편들을 아직 만나보지 못한 지금으로서는 저자의 장편소설들이 훨씬 흥미로웠다고 평하고 싶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립하고자 하는 여성 다이버의 이야기‘라는 설명만 듣고 잔뜩 기대했던 소설이다. 제니퍼 이건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맨해튼 비치>. 배경은 세계 2차 대전 무렵의 뉴욕. 남성 중심 사회에서 다이버가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여성 애너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당대 혼란스러웠던 미국 사회와 갱스터 집단, 그에 휘말려 실종된 애너의 아버지는 소설의 중요한 축이다. 애너 이야기가 중심이기는 한데 그 못지않게 갱스터인 덱스터, 애너의 아버지 에디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모비딕>의 구절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기도 하고, 분량도 670쪽 정도로 만만치 않게 길다.



솔직히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작품이었다. 일단 작중 배경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또, 소설 자체가 인물들의 심리나 관계보다는 더 큰 그림, 그러니까 사회상이나 상징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감정적으로 이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읽은 건 오기였다. 다 읽고 나니 굳이 다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아닌 것 같으면 일찍 덮는 게 최고.



제니퍼 이건의 다른 책들, 세계 2차 대전, 대공황, 누와르, 갱스터, 당대의 뉴욕, 모비딕 등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시대상이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어 저자가 레퍼런스 조사에 공을 들였다는 게 느껴진다. 광활한 바다와 세 인물을 주축으로 소용돌이치는 이야기는 멋진 표지와도 잘 어울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실 난 얇고 작은 판형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시집 제외).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에. 그렇지만 휴대성과 가독성이 좋은 작은 판형 시리즈들이 대세는 대세인 모양이다. (핀시리즈, 미메시스, 쏜살문고 등)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급하게 읽을게 필요할 때 나도 작은 책들을 자주 찾는다. 이번에 읽은 책은 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로 나온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뒤라스의 에세이들이 담긴 이 책의 원제는 ‘Écrire’(쓰다)다. 다섯 편의 에세이가 실려있는데 주목할만한 작품은 단연 표제작 ‘글’이다.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쓰는지와 더불어 글 쓰는 일의 충만함과 고독이 가감없이 적혀있다. 작가의 내밀한 속마음을 엿본 것 같아 살짝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글, 고독, 광기. 뒤라스의 작품은 <부영사>와 <연인>을 읽은 것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글을 대하고 쓰는 방식을 알게되니 그녀의 작품세계가 어렴풋이 그려지는 듯했다. 글과 고독, 광기가 동의어라는 말에 공감이 가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는 ‘대체 고독을 어떻게 이겨나가야하는 건가요!’하고 묻고싶었다. 이 책에서 뒤라스는 고독의 중심에 서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써두기는 했지만. 사실 고독은 이겨야하는게 아니라 충분히 느끼고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나는 미숙하여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내 삶을 매혹시킨 유일한 것 - 쓰기’ 뒤라스의 작품을 읽고 그녀의 작품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그녀가 글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 모든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스칼릿 커티스 지음, 김수진 옮김 / 윌북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모든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원제 Feminists Don’t Wear Pink and other lies)는 55명의 여성들이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각각의 글들은 깨달음, 분노, 기쁨, 행동, 교육 다섯가지 챕터로 나뉘어 소개되는데, 반가운 이름들도 여럿 눈에 띈다. 시얼샤 로넌, 키이라 나이틀리를 비롯한 배우들부터 장수연 PD와 은하선 작가까지! 각기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연령층의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한다. 소개만 봐도 벌써 멋지지 않나. ​

동시대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항상 궁금한 나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책이었다. 사회의 변화는 더디게만 느껴진다. 최근에는 그야말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지경이었다. 왜 여성들이 죽어나가야 하나? 게다가 가부장제의 벽이 어찌나 견고한지는 일상에서 뉴스에서 사방에서 매일 매순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

그럼에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세계 각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용기를 내어 크게 말하고 나서서 연대하는 여성들은 우리의 곁에 있다. 이 책의 아무페이지나 펼쳐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

사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때때로, 아니 자주, 깊은 무력감에 휩싸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내고 찾아내야한다. 그것이 책장을 덮으며 내가 한 생각이다. 더이상 단 한 명의 여성도 잃을 수 없다. ​

이 책은 페미니즘은 이런 것이다!라고 단정짓지 않는다. 오히려 개개인의 수만큼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당신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둘 다 아니든간에.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재 오늘의 젊은 작가 23
황현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당신의 알리바이가 아닙니다.’



케이블 방송의 작가로 일하는 호재는 고모부가 칼에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모 두이와 고모부는 부모의 이혼 후 호재를 맡아 키워준 이들이다. 소설은 호재의 이야기와 장례식장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두이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진행된다.



호재. ‘갈피을 잡을 수 없는 복잡한 길 위에서 행운을 불러들이는 이름’이자 ‘혼자의 비표준어’. 삶과 죽음에 무심한 듯 보이는 그의 아버지 두오가 지어준 이름이다. 이미 죽은 사람들(두이 두오의 할머니, 부모, 두이의 남편)과 사라진 사람(두오)을 뒤로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호재와 두이는 이상하리만치 담담하다. 그들 삶에서 벌어지는 고난을 멀리서 관조하는 이들처럼.



과연 쉽기만한 삶이 있을까. 고통과 고난 없는 삶이 있을까. 각자 주어진 상황과 느끼는 정도는 달라도 어느 삶이나 녹록치 않을 것이다.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짊어진 고난이 있다. ‘호재’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을 한 이 소설은 내게 묻는 듯하다. ‘이 삶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부모에게든 고모에게든 깍듯이 존대를 하는, 혼자이고 싶어하는 호재. 그리고 세 번의 상주 노릇을 거치며 ‘죽는 일은 인과응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한 두이. 이들 둘은 이상하리만치 고독해보인다. 그래서 닮았고. 소설 말미의 행운은 진짜일까? 그 행운이 그들 삶의 고난을 씻어줄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의 삶의 무게만을 지고 살 수 있다면 어떨까. 부모도 친척도 친구도 자식도 그들 삶의 무게도 상관 없이 홀로. 호재로.



‘누구에게나 삶은 첫번째 경험이고 우리는 매 순간 무능하다.’ - 조남주 작가의 추천사 중에서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