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 장소 페미니즘프레임 1
류은숙 지음 / 낮은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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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보고 있었던 ‘페미니즘 프레임‘ 시리즈. ‘우리 자신과 일상을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다르게, 더 깊게, 정확하게 들여다보려는 시리즈‘라는 설명을 읽고 어떤 책들일지 궁금했었다. 드디어 그 첫번째 책인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를 읽었다.



저자는 부엌, 화장실, 연단, 회의장 등을 비롯한 열 세곳의 장소를 각각 한 꼭지로 삼아 우리에게 익숙한 그 장소들이 계층과 성별 등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 적고 있다. ‘장소는 인간 삶에서 중립적이지 않다‘. 같은 장소에 존재하더라도 계층과 성별 등에 따라 대접이 다르고 스스로의 태도도 다르다.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다르고. 요즘 넷플릭스에서 <빨간 머리 앤> 시즌3을 열심히 보고 있는 터라 특히 ‘회의장‘에 대한 글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스포일러일 수도 있으니 여기까지! 모두들 꼭 앤을 보세요.)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 길지 않은 책이지만, 일상 속 장소들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가지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같은 사람들인데 같은 장소에 존재하면서도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변화는 그 사실을 직시하는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반면 생각할 거리는 많았던 책.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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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클래식 클라우드 13
고영범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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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는 <대성당>으로 처음 만났다. 장편 위주의 독서를 하다 조금씩 단편을 읽어보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로, 내게 카버는 작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를 쓴 작가였다. 불협화음 끝에 따뜻한 롤빵과 어렴풋하게 스며드는 희망. 그런 소설을 쓴 작가 말이다.



믿고 읽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카버가 출간된다길래 기대하고 있었다. 작품으로만, 그것도 역작이자 생전 마지막 작품집 <대성당>으로만 그를 만났기 때문에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드는 생각은 ‘그냥 작품으로만 그를 만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사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그것을 집필한 작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작품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이이기에 이런 작품을 썼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보통의 경우 인터뷰나 낭독회, 에세이 등에서 만나는 작가들은 ‘인간 누구‘라기보다는 ‘작가 누구‘의 모습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런데 우리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을, 내밀한 면모를, 절망과 수치의 순간들을, 비윤리적인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그것도 날 것 그대로의 그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레이먼드 카버>는 다른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카버라는 인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지역을 여행하고 그의 삶과 작품 등에 대해 풀어놓는 에세이다. 카버의 삶은 그 자신이 ‘나쁜 레이‘와 ‘착한 레이‘의 시대로 구분할 정도로 극단적이다. 두 번의 파산, 알콜중독, 흩어진 가족, 계속되는 가난. 내게는 오래도록 진창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실제 그가 처했던 상황과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으니 함부로 논하기는 힘들지만, 이 책에 쓰여진 바를 통해 내가 알게 된 카버는 뭐랄까, 책임감 없는 고주망태랄까. 개인사는 개인사니까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겠지만 그에게 조금 실망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훌륭한 작가가 반드시 훌륭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재미있었던 부분은 <사랑을 말 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편집자가 거의 개작하다시피 한 작품집이며, 결국 카버의 문체를 고스란히 살린 <풋내기들>이 그의 사후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편집자가 개작에 가까운 편집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독자로서는 두 작품집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또, 카버의 시! 한국에는 제대로 번역 소개된 적이 없지만 사실 카버는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거듭해서 들었다.



새벽에 마음이 심란해서 <대성당>을 다시 펼쳐 몇 편을 읽었는데 잘 쓰긴 잘 쓴다. 좋기는 좋다. 카버의 생애를 생각할 때면 찰스 부코스키(와 그의 페르소나 헨리 치나스키)가 떠오른다. 사실- 나는 부코스키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어디가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는편이다. 너무 적나라하거든. 뭐랄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숨어서 읽는 것 같은 그런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아무튼 카버의 <대성당>을 다시 읽고 있고, <풋내기들>도 읽어볼 생각이다. 아직은 생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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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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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의 미발표 초기 단편들 중 SF에 가까운 작품들 14편을 묶은 <카메라를 보세요>. 사실 그의 작품은 <제5도살장> 밖에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조차 크게 강렬하지는 않았었다. 그저 최근 몇 년 그의 작품이 다수 번역 출간되기에 흥미롭다고 생각했을 뿐 딱히 찾아 읽어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짧은 단편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아보게 되었다. <카메라를 보세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짧은 단편들이라 쉽게 읽힌다. 무엇보다 저자의 문장이 간결하고 매끄럽다. 소설들은 굉장히 진지하게 이야기가 시작되다가 그 상황에서 불쑥 ‘커트 보니것식 유머‘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특히 SF 요소가 들어간 작품들에서는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능청스럽게 행동해서 웃음이 난다. 이 단편집에는 엉뚱하지만 따뜻하게 마무리되는 소설도, 장황하게 늘어지다 예상 가능한 결말을 맞는 소설도, 처음부터 끝까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소설도 있다. 거의 뭐 종합선물세트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았던 작품은 분란을 조장하는 말만 내뱉는 기이한 기계 이야기인 ‘비밀돌이‘와 지루한 일터가 신입 직원의 등장으로 기적같은 에덴동산으로 바뀌는 이야기인 ‘푸바‘, 도저히 얼굴을 일그러뜨리지 않기가 힘든 결말의 ‘안녕, 레드‘, 마지막으로 개미 문명에 대한 상상력과 파시즘에 대한 블랙유머로 가득한 ‘개미화석‘이다. 이렇게만 봐도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한지.



근 이틀동안 침대 맡에서 야금야금 이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던지 커트보니것의 다른 책들을 어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목록도 작성했다! 리뷰마다 저자의 다른 책을 꼭 읽어보겠다는 말을 적고 다니지만, 다 진심이고, 이번에도 진심이다. 정말!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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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요조.임경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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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장 재미있는 읽기는 1.일기 2.편지라고 적었던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 두가지를 적절히 섞은 ‘교환일기‘라니. 게다가 요조와 임경선! 두 멋진 여성 선배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좋아하는 영화 개봉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두고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일단 이 책을 엮게 된 계기부터가 재미있다. 하루종일 시도때도 없이 연락을 하는 두 사람. 기왕 이야기를 나눌거라면 뭔가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보자며 시작된 것이 바로 이 교환일기라고. 이미 친한 두 사람이 나누는 교환일기여서인지 이야기의 주제와 그것을 다루어나가는 문장이 거침없이 솔직하다. 그런가하면 서로의 이야기에 생각을 더해 답하는 모습에서는 꽤 깊이있는 생각들이 묻어난다. 프리랜서로 사는 것, 사랑과 섹스, 강연, 나이 등 두 저자가 현재 골몰하고 있는 고민들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이는 곧 많은 이들의 고민과 같다! 마치 친한 언니들이 나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지, 하며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책 같았다.



게다가 이 책의 시작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의 ‘임경선과 요조의 교환일기‘ 오디오 콘텐츠라고. 목소리로 읽으며 전하는 교환일기라니. 낭만적이지 않은가.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아주아주아주 많은 편지를 써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편지를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상상만해도! 아무튼. 두 분의 목소리로 듣는 교환일기도 아주 좋았다.



덧. 김이나 작사가가 함께하는 두 저자분의 북토크 및 낭독 - 브이 라이브(vlive페이지에 있음)도 재미있게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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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정리사 - 연꽃 죽음의 비밀
정명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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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은 <소각의 여왕>이라는 소설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다. 실제로 요즘은 고독사한 현장을 수습하거나 고인의 물건들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업체들도 꽤 많다고 들었다. 유품정리사가 필요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테지만 그중 어떤 것을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명섭 작가의 <유품정리사>는 무겁다기보다는 술술 읽히는 페이지터너에 가깝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의문의 살인사건으로 아버지를 여읜 화연이 그 비밀을 알아내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몸종 곱분과 함께 단 둘이 한양에 남아 포도청에 당차게 들어서는 화연은 참 멋진 캐릭터다. 그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게되는 일이 죽은 여성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 일이다.



비록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암울하고 무겁지만(누군가의 죽음, 음모, 살해 등) 등장인물들은 굳세고 명랑하다. 문체도 시원시원하고 재미있어서 가독성도 좋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당시 억울해도 억울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던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주인공 화연이 당차게 행동하는 모습도 멋졌다.



페이지 터너로 빠르고 재미있게 읽기 제격인 소설이다. 추리물, 시대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히 이 책도 마음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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