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재미는 역시 내가 가보지 않은 시대의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간접체험하는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30년대 미국의 탄광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진 웹스터의 데뷔작 <우물과 탄광>을 읽는 내내 아주 재미있었다. ​



앨버트와 리타, 그들의 세 아이 버지, 테스, 잭은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족이다. 소설은 그들의 집 근처 우물에 어떤 여자가 갓난아이를 던져넣는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앨버트는 앨버트대로, 버지와 테스는 그들대로 누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이 배우는 것은 다양한 삶의 면면들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 누군가의 가난은 동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결국 ‘함께’이기에 살 수 있다는 것. ​



이 소설의 핵심은 ‘함께’라는 단어에 있는 듯하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 누가 우물에 아이를 던졌는지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을 했는지(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더 궁금해하는 것. 미스테리로부터 시작되지만 앨버트 가족의 다섯 시각으로 펼쳐지는 일상과 그 일상 속 배움들이 더 깊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



연필 굿즈에 새겨진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미친 건 아무것도 아니죠.’라는 문구가 어떤 장면에서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그 장면이 앨버트가 흑인 동료인 조나로부터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방법’을 깨닫는 장면이라 더욱 좋았다. 리타가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장면만큼이나! 탄광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매일 매일 목숨을 담보로 일한다는 것임에도, 배려와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앨버트 가족의 모습에 명절을 무사히 보낸 것 같기도. ​ ​



(*첫번째 독자-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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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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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출간 이후 34년만에 나온 후속작 <증언들>. 시간적으로는 <시녀 이야기>로부터 15년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리디아 아주머니의 수기, 길리어드 내에서 자란 아그네스와 국외 캐나다에서 자란 데이지의 증언이 번갈아가며 계속된다. 이들의 증언들로 길리어드가 어떻게 세워졌으며 어떻게 부패하고 있는지가 자세하게 드러난다.



‘길리어드는 어떻게 무너졌는가?’라는 독자들의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증언들>을 썼다는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와 독자의 주고받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독자의 의견들에 휘둘리지 않고 작가 자신이 정교하고 치밀하게 이야기를 쌓아올려갔다는 것이 포인트!)



<시녀 이야기>가 오브프레드의 구술을 통해 길리아드 체제의 끔찍함을 독자로 하여금 경험하게 한다면, <증언들>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길리어드의 내부자와 외부자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려주며 조금 더 다각도에서 길리어드 체제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리디아 아주머니의 수기가 인상적이다. 어떻게 판사였던 그녀가 ‘아주머니’가 되었는지, 어떻게 끈질기게 길리어드 체제에서 살아남았는지, 왜 수기를 남기고 있는지까지. 독자를 ‘여러분들’이라 지칭하며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녀. 그녀는 어느 편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요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계속 보고 있는데, 두번째 관람을 마친 뒤에 <증언들>을 끝낸 터라 여성들의 연대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50페이지 정도를 읽을 때. 절망 끝에는 희망이 있다. 길리어드를 벗어난 이들이 잔혹하고 끔찍한 세계에서 버티고 살아남은 것은 결국 사랑 덕분이고 사랑 때문이다. 또한 아주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움직임일지라도 결국 이타심이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물론 길리어드에서 고통받는 것은 여성 뿐만이 아니지만, 모든 자율권을 박탈당하고 ‘아내’,’아주머니’,’시녀’가 되어야 하는건 여성이다. 그러니 길리아드의 멸망에는 여성들의 연대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해도 되겠지.



자, 그래서 이 소설, 읽어야 하냐고? 당연하다. 단, <시녀 이야기>를 꼭 먼저 읽을 것. 그런데 왜 읽어야 하냐고? 1.놀라우리만큼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며 2.마거릿 애트우드의 문장과 전개가 최고이고 3.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흡입력있고 4.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기 때문.



자 그래서 이제 나는 무엇으로 연휴를 버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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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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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읽으려고 아껴둔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을 거의 다 읽어버렸다. 마가릿 애트우드 소설은 참 빨리 읽히는데 충격적이고 생각할거리도 많아서 읽고 난 뒤에도 ‘더 잘 읽어낼 수는 없을까‘ 도전의식마저 생긴다. 그의 작품들을 여럿 읽었지만 단 한 번도 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애트우드의 작품들은 읽을 때보다 읽고 나서가 더 길다.



<시녀 이야기>는 무려 1985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분명히 예전에 읽었는데 싶어서 독서기록을 살펴보니 2017년 2월에 읽었던 작품이다. (그 해에 드라마화되면서 다시금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당시 따로 리뷰를 적어두지는 않아 이야기의 설정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도 소설을 읽다보니 새록새록 기억이 되돌아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역시 설정 자체가 기괴하고 끔찍하지만 불안함을 불러일으켜 쉽게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시녀 이야기>의 설정이라 함은 출생률이 급강한 21세기 중반, 길리아드라는 전체주의 국가가 등장하면서 여성으로부터 주체성을 빼앗고 일부 생식기능이 남아있는 여성을 ‘시녀‘로 만든다는 것이 중심이다. 소설 속의 화자 오브프레드는 남편과 딸을 두고 있었지만 길리아드의 등장과 함께 이름을 빼앗기고 ‘시녀‘가 된다. 그녀가 ‘시녀‘가 된 이유는 자궁이 있고 생식능력이 있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녀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있기에 더욱 생생하고 잔인하다. 초반에는 소설 속 설정 자체가 너무나 어처구니없게 느껴져 전부 거부하고 싶어지고, 중반부에 다다르면서는 화자의 순응과 체념에 같이 마음이 무너져내리다가 ‘이건 소설이야‘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 그저 자궁달린 생식기계로 취급받는다면 그건 나라는 존재가 전부 지워지는 것과 같다. 존재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는게 이상하겠지. 소설을 읽는 내내 너무 공포스러웠다. 길리아드라는 구체적인 실체가 나를 짓눌러오는 것 같았다.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갈수록 너무나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소설 속 상황들. 길리아드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지탱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무너진 평등을 신의 뜻이라고 가져다 붙이면 해결되는 마법의 국가인가), 그 신은 여성을 위한 신이 아니다. 여성에게는 신조차 없다.



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빌어먹을 놈들이 너를 짓밟게 내버려두지 마라.

방 한 켠에 이 말을 적은 (전)오브프레드는 자살했다. 우리의 화자 오브프레드는 적군인지 아군인지 모를 자들에게 끌려간다. 내가 오브프레드라면 진작에 미쳐버렸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여성은 결국 죽거나 미치거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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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두루미 사상서 1
허정숙 지음 / 두루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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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허정숙의 글 열 편을 묶은 작고 얇은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깔끔한 만듦새가 인상적이다. 실물을 만나보고 생각보다 두께가 얇은 책이라 놀랐으나 글을 한 편 한 편 읽다보니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표제작이기도 한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는 신여성들의 단발이 가십거리가 되었던 당시 사회상을 꼬집은 명쾌한 글로, 여성이 단발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여성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로 글을 맺고 있다. 이 글을 읽자마자 탄식이 나왔다. 세기가 바뀐 지금도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라는 당연한 말을 굳이 굳이 목터지게 하고 있는 형국이니 답답하지 않을수가. ‘‘신여성들에게‘를 읽고‘라는 글에서는 신여성들에게 헛소리를 남발한 어느 필자를 비판하고 있는데 ‘군은 신여성을 멸시하였다‘, ‘군의 논변은 심히 착란하다‘ 등의 표현에 쿡쿡 웃으며 읽었다. ‘군이 신여성에 대해 비판적 시찰을 한 것을 보니 군 역시 시대의 청년인 것이 분명하다‘는 문장에서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여자해방은 경제적 독립이 근본‘이라는 글을 읽으면서는 ‘아니 역시!‘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이 대목에서야 앞에 실린 글에서 여성을 인터뷰하려는데 집안의 온갖 남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며 문 밖에서 26분을 기다렸다는 일화에서 터졌던 울화통을 잠재울 수 있었다. 기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아파트다.‘(<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게 아니라고>)



몇년 전 아주 즐겁게 읽은 조선희 소설 <세 여자>가 생각나기도 했다. <세 여자>는 일제강점기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세 여성운동가의 이야기를 집중 조명한 소설로 아직 읽지 못한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를. 또한 멋진 여성들의 글이 더 많이 발굴되기를, 더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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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가벼운 여행 쏜살 문고
토베 얀손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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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쏜살문고 여성문학 시리즈 중 한 권인 토베 얀손의 <두 손 가벼운 여행>. 맞다, ‘무민 시리즈‘의 작가 토베 얀손! 함께 출간된 경장편 <여름의 책>도 함께 예약해두었는데, 단편집 <두 손 가벼운 여행>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이쯤 되면 쏜살문고 시리즈를 한 권씩 격파하는 중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계속 보니 표지도 디자인도 크기도 너무 사랑스럽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작고 얇은 책은 별로라고 했던 사람..저..)



<두 손 가벼운 여행>은 표제작을 비롯해 열 두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제각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들로 ‘편지 교환‘과 ‘팔순 생일‘, ‘두 손 가벼운 여행‘ 세 편이 특히 인상깊었다. 읽는 동안 내 머릿속 순하고 무해한 무민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야기가 어딘가 불안하고 짖궃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민음사 블로그에서 김용언 작가의 리뷰를 읽고서야 그 생각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평대로 소설가로서의 토베 얀손은 셜리 잭슨이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계보를 잇는 듯하다. 어딘가 씁쓸하고 냉소적이야! 주인공들이 전부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니까, 혼자 있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혹은 여행을 떠나면서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



북유럽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녀가 나고 자란 핀란드가 더욱 궁금해졌다. 트위터의 ‘오세요 핀란드‘ 계정이 생각나기도 했다. (‘돌아갈 곳이 있다면 오세요 핀란드‘라는 멘션이 마음에 길게 남았었다. 긴 밤을 견디기위해 사람들은 자꾸 술을 마신다던 그 나라. 계정주님 잘 계신지..)



어쨌든, 우리가 흔히 무민의 작가로만 알고있는 토베 얀손은 일러스트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큰 성과를 이뤘다. 더 나아가 무대미술, 소설, 시, 일러스트 등 여러 분야을 자유롭게 오고갔던 예술가였다고. 쏜살문고 시리즈를 시작으로 더 많은 그녀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곧 읽게 될 <여름의 책>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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