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 시대의 강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고민들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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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작가의 신작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비장한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이지만, 막상 펼쳐보면 저자의 다정한 통찰이 가득담겨있다.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이 시대를, 어딘가 미친 구석이 있는 인생을 헤쳐나가기 위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기준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점을 짚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중심을 지켜내는 일이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나 - 나의 시선과 태도 말이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의견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절망은 희망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은 절망이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비관보다는 낙관이 힘이 세다.



책을 읽으며 나도 느껴왔지만 미처 언어화하지는 못했던 것들을 정리된 글로 만날 수 있어 무척 속시원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선택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모르고 딜레마에 빠진다. 무엇을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을까? 최상의 선택은? 그러나 선택보다 중요한 건 선택 이후의 태도가 아닐까. 저자의 말처럼 지도 없는 시대를 건너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선택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을 선택했든 그 선택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건 내 태도다. 과거의 선택이 아쉽게 느껴질지라도 과거의 나는 최선이었음을 이해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없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대의 흐름을 문제로 인식하거나, 그 문제를 나의 문제로 치환하는 식의 사고는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절망으로 내몰 뿐이다.



아무튼, 전작들에서 그러했듯이 시대적 징후와 타인과의 관계, 더 나아가 개인의 삶을 응시하는 저자의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사회비평 에세이의 경우 뾰족함을 느낄 때가 많아 섬칫하곤 하는데, 저자의 글은 언제나 나로 하여금 스스로와 주변을 더 깊이 돌아보고 더 정확하게 사랑하게끔 만든다. 배움도 사랑도 모두 느낄 수 있는,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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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한 마리는 기쁨 - 두 아버지와 나, 그리고 새
찰리 길모어 지음, 고정아 옮김 / 에포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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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 데이비드 길모어의 양아들, 찰리 길모어의 회고록 <까치 한 마리는 기쁨>. 이 책은 저자가 까치를 만난 이후 자기 인생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불안정한 사람이었던 생부 히스코트를 이해하고, 그와의 관계에서 항상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마침내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이야기. 그 중심에는 까치 한 마리가 있다.



왜 생부 히스코트는 그와 그의 어머니를 버렸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오래도록 천착해왔다. 트라우마는 사람을 갉아먹는다. 특히 가족과 관련된 것이라면 피할 수 없으니 더더욱. 저자는 오래도록 답을 찾아 헤맸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자기 자신을 탓하고, 붕괴되고, 무너지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니까 까치를 만난 뒤 히스코트 또한 갈까마귀를 길렀음을 기억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글쓰기는 일종의 고해다. 저자는 까치를 만나면서 배우게 된 자연과 돌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둔 생부와 관련된 상처 또한 가감없이 풀어놓는다. 아주 면밀하게. 그는 상상 속 아버지가 되었다가, 노인이 된 아버지를 직접 만났다가, 끝끝내 현재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저자가 내면에서 온갖 혼란과 두려움을 끌어내고 또 펼쳐내는 이 과정은 어쩐지 기이하게 아름답다.



까치의 가르침 중 가장 빛나는 것은 바로 존재의 단순한 기쁨에 대한 것이다. 하늘을 나는 것은 오직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 그러니 과거를 붙잡지 말고 현재를 살며 미래로 나아갈 것. 우리의 과거가 우리를 규정한다는 건 그저 믿음일 뿐이다. 믿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믿음이 아니게 된다.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물론 그 전에 마음 속 의문에 치열하게 매달려보는 일도 필요하다. 바로 이 책 속 저자가 그러했듯이.



까치와의 우정을 다룬 자연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예상보다 더 다채롭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 역시, 자기 자신의 내면을 치열하게 탐구하는 이의 글을 마다하기란 어렵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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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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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화학입니다.˝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 그녀는 꾸밈없는 사람이고,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믿는 사람이며, 무엇보다 여성 화학자다. 그러니까 1955년에. 여성이 직업인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던 바로 그 시기에.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다.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는 단연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에게 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화학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남들이 뭐라든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빛을 발한다.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을 벗어던지고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로서 분자식을 설명해가며 요리를 하는 그녀는 괴짜같다가도 엄숙하고 진지한 전사같다. (<스토너>에서 1학년 대상 강의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려운 내용을 가르쳤던 스토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단호하고 우아하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바로 자기존중에서 나온다. 스스로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녀가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이기도 하다.



데뷔작 사상 최고가에 출판권이 팔렸으며, 브리 라슨 주연의 티비 시리즈로 제작 예정이라는 이 작품(드라마화되면 <와이 우먼 킬> 같은 분위기일지도). 왜 찬사가 쏟아지는지 읽어보니 알겠더라. 매력적인 주인공을 비롯해 마치 시트콤의 주인공같은 생동감 넘치는 조연들, 사회적 문제를 꼬집어내면서도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는 문장들, 탄탄한 에피소드들까지 재미있는 소설의 요소들은 전부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역시 현실적인 문제들을 녹여내고 있으면서도 명랑한 위트가 느껴진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작품.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2권, 2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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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
손수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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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멀리서 좋아하던 언니가 어느 날 갑자기 같이 맥주 마시자며 자취방에 초대해준 느낌. 가로등 켜진 한적한 골목길을 같이 걷는 느낌. 손수현 배우의 에세이 <쓸데 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를 읽는 건 그런 느낌이었다.



에세이의 매력은 곧 저자의 매력. 저자가 자기 자신을 애써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바로 그때 좋은 글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좋은 글이란 솔직한 글이다. 잘나면 잘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보여주는 글.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은 꽤 매력적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은 ‘3에게‘였다. 이 글에서 저자가 10년 전 사용했던 아이폰3을 꺼내 다시 작동해보는 이야기인데, 차-아-알칵 하는 느린 셔터음을 두고 ‘10년의 시간을 한꺼번에 찍고, 조금 기다리니 현재를 찍는다‘고 표현한 것이 왜인지 계속 기억에 남는다. 10년 전을 돌아보며 지금은 그때보다 또렷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회고하는 문장도. 저자는 아주 일상적인 순간을, 쓸데없었다 치부할 수도 있었던 순간을 선명하게 담아낸다.



책 속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너는 그래도 좋아하는 거 하잖아.

종종 보는 저 문장, 잘 봐 봐. 완벽하게 이탈한 자동차 바퀴 같다.‘ (59p)



그런데 이 문장을 지나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도 허리를 꼿꼿이 하자, 쓸데없는 짓은 없으니까. 언제나 반전은 존재하고 모든 것에는 쓸모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저자의 단단하고 씩씩한 마음이 스며들게 된 모양이다. 환영!



+) 책 중간중간에 들어간 사진들도, 표지와 판형과 내지 구성도 무척 좋았다. 부담없이 펼치기 좋아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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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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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설. 책을 읽는 동안 우주를 탐험하는 것 같기도 했고, 한 편의 연극 속에 들어가있는 것 같기도 했다. 리처드 파워스의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아내의 죽음 이후 조금 특별한 아들 로빈과 살아나가는 우주생물학자 시오의 이야기이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주에 대한 이야기,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층위로 해석할 수 있기에 더욱 매력적인 작품.

아홉 살 로빈은 살아있는 것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생명과의 감응도가 높은 아이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겪는 고통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인식하고 괴로워하는 아이. 아버지 시오는 세상과 자꾸 부딪히는 로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며, 더 나아가 로빈의 시각에서 함께 세상을 보고자 한다. 시오와 로빈이 함께 조금씩 나아가는 이 과정이 무척 사려깊게 그려져있어 좋았다. 얼리사의 부재가 남긴 슬픔을 메워나간다는 면에서도, 생명에 대한 두 사람의 이해가 깊어진다는 면에서도. 특히 시오가 밤마다 들려주는 우주 행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생명이 있으리라는 기묘한 감각과 그로 인한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장면들이었는데, 마치 소설 속 소설을 읽는 듯했다.

그렇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건 바로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이야기였다. AI를 통해 타인의 감정 지문을 그대로 경험하는 기술로, 로빈은 이 기술을 통해 얼리사가 남긴 감정 지문을 학습한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사랑했던 얼리사. 로빈은 그녀가 남긴 감정을 통해 생명이 가진 유기적인 연결성과 사랑을, 부드럽게 감정을 통합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모두가 다른 존재로 살면 어떤지 배워야 하는 거야.‘(241p) 하는 로빈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사려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이의 존재 방식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떨까. 생명의 경이로움을 매 순간 느껴볼 수 있을까.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죠.‘(18p)

이 문장을 오래오래 기억해두고 싶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도, 특별한 아이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스러져가는 생명의 편에 서는 일도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해낸 시오의 편에서. 본문이 여러 층위로 해석될 수 있었던 것처럼, 소설의 결말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이 아름다운 행성에는 생명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는 것.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과 황홀함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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