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낮은산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 ‘아, 좋다.‘ 소리가 절로 나왔던 책. 확신의 좋은 책.



진정한 강함은 쓰러지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면 쓰러지는대로 다시 일어나면 일어나는대로 내맡길 수 있는 유연함에서 온다고 믿는다. 고통은 저항에서 오고, 행복은 받아들임에서 온다. 어쩔 수 없는 삶의 파고 속에 그저 몸을 맡기는 것 - 그것이야말로 바로 진짜 강한 것이 아닐지. 그런 의미에서 시사 IN 장일호 기자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년시절의 가난, 여성이기에 겪은 일들, 주간지 기자로서의 직업정신 등 저자가 삶에서 직접 겪어온 이야기가 단단한 문장으로 담겨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크고 작은 슬픔들을 통과해낸 사람의 이야기다.



가장 좋았던 글은 지금의 남편 분과 결혼 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주고받자고 했다는 이야기. 책을 읽는 지금이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그런가 유독 이 이야기에 혹했다. ‘한 사람의 독서 목록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책 선물‘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내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선물로 보낼 책 목록 안에 일정 부분 담기게 되리라 여겼다.‘(31p) 아, 이거다. ‘몰랐던 책을 알게된 기쁨이 더 컸다‘는 문장에서는 역시 독서가들의 마음은 다 똑같구나 싶기도 했다. 책은 ‘슬픔이 쉴 자리‘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매개체이기도 하고, 꾸준한 기쁨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슬픔의 방문>은 읽는 사람의 이야기. ‘책 앞에 선 사람의 이야기‘(추천사 중에서).



연약한 부분조차 감추는 것 없이 솔직하면서도 담대하고, 현실에 발 디디고 선 이의 단단함까지 갖춘 글들. 아끼는 에세이들만 모아두는 칸에 살며시 꽂아둬야겠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줄리엣과 줄리엣 - 희곡집 에세이
한송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손꼽게 아끼는 연극 작품 중 하나다. 2018년 초연 이래로 재연, 삼연을 전부 관람한 연극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틀어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렛의 사랑이야기로 재해석한 이야기.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가짜고, 두 여성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렛의 사랑이 진짜라면? 너무나 낭만적이고 동시대적이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 덕분에 수 년간 앵콜 공연을 거듭해온 이 연극을 드디어 희곡과 에세이로 만난다. 한송희 극작가 겸 배우의 <줄리엣과 줄리엣>.

원작 희곡과 더불어 작가가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을 탄생시키기까지의 일화가 자세하게 수록되어있어 그냥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다. 연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각색 과정에서 어떤 부분들을 고민했는지, 왜 마지막에 스님이 등장하는지, 공연을 거듭하며 왜 젠더 프리 배역이 생기게 되었는지 등등.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관극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그 때의 감흥을 되새기며, 이 책으로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같이 올리는 것처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연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저자가 연극인으로서 가지는 마음가짐과 지금껏 지나온 길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어 무척 좋았다.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관객석에서 무대로 여과 없이 전달되는 에너지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공연을 거듭하며 ‘우리의 줄리엣들‘로부터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대목에서 괜히 뭉클했다.

사상 첫 퀴어 희곡집 에세이 <줄리엣과 줄리엣>
˝멈춰지지 않아, 지워지지 않아, 이 사랑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김소영 지음 / 책발전소X테라코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발전소 김소영 대표의 에세이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종이책 구독 서비스 ‘책발전소 북클럽‘에 동봉되었던,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편지들이 실려있다. 책발전소 북클럽은 구독자가 수 천명에 달한다고 알고 있어, 무척 신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서비스다. 간혹 좋아하는 책이 북클럽 에디션 한정판으로 표지를 갈아입고 출간될 때 책만 구해서 소장하는 편(<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북클럽 에디션 정말 예쁩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궁금했던 것은 편지였다. 어떤 내용이길래 그토록 좋은 후기가 많은건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다들 좋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 책을 읽으며 저자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단정하게 쓰여져있는데, 개인적인 경험들이 함께 소개되어 있어 무척 공감하며 읽었다. 소설을 읽으며 가슴 아픈 내용에 멈칫하면서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던 일화라던지, 어학연수 시절 느꼈던 감정이라던지 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특히 좋았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값진 것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이입하고, 에세이를 읽으며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고, 인문서가 알려주는 새로운 깨달음에 기뻐하는 것.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함께 나누어받는 것, 이렇게 다정한 일이었구나. 한 달에 한 번 이 편지들을 만났을 북클럽 구독자분들은 이 다정함을 매달 받아보았겠구나 싶어 살짝 부럽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어트리스의 예언 비룡소 걸작선 63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소피 블랙올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동화. 사랑과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는 속절없이 끌리게 된다. <비어트리스의 예언>은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에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여자아이 비어트리스가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뉴베리상 2회 수상자이자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으로 유명한 케이트 디카밀로의 작품이다. 담백하면서도 선하고 따뜻한 동화. 어쩌면 어른들을 위한.

작품의 배경은 전쟁의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여자아이가 왕을 왕좌에서 내려오게 한다는 예언이 있었으나, 그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예언은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다. 그러나 기어이 등장한 주인공 비어트리스. 그녀는 ‘슬픔이 적힌 책이라면 읽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당돌한 면모와,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의연함,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그런 비어트리스가 염소, 에릭 수사, 동료를 만나 왕을 만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그녀의 가장 큰 무기는 사랑과 이야기다.

동화 특유의 은유와 단정한 문장들이 주는 위안에 새삼 놀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여운이 결코 짧지 않다. 자기 자신을 믿는 여자아이, 배움에 대한 열망, 사랑과 우정, 시련에도 불구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용기. 다 읽고 나면 누구라도 꼭 안아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된다. 이런 류의 동화는 직접 읽고 체험해보아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 부드럽고 우아한 방식으로, 동화라는 형식을 빌려,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배웠다.

-˝우리는 모두 마침내, 집으로 가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세상은, 글자로 다 쓸 수 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이지민 지음 / 정은문고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작가들의 도시 브루클린. 월트 휘트먼, 제니퍼 이건, 콜슨 화이트헤드, 줌파 라히리가 사는 도시. 이곳에는 책방들이 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곳들이. 브루클린 책방들은 어떻게 코로나를 통과해 살아남았을까?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때마다 책방을 찾는 사람으로서, 브루클린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었던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동네 서점의 가장 큰 강점은 큐레이션이다. 어떤 서점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 한 바퀴 둘러보기만 해도 애정을 가지고 꾸며진 서가라면 단번에 티가 난다. 바꾸어 말하면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본다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특색있고 알차게 꾸며진 동네 서점들을 나 역시 무척 사랑한다. 브루클린 서점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동네 서점의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것은 책을 사랑하는 마음임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다. 책 문화의 거점으로서 동네 서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소개된 책방들 중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센터 포 픽션. 사진 속 책으로 꽉 찬 벽면 서가 앞에 서면 책들을 바라만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도서관이자 책방인 이 곳에서는 멤버십 회원 운영과 작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을 임대한다. 책방은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라 책의 시작을 함께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책방은 작가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가닿는 마지막 순간을 돕는 것‘이기에 책방 운영을 겸허한 일이라 생각한다는 운영자의 말도 좋았다. 이 곳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청담동에 위치한 도서관이자 아트살롱인 소전서림(@sojeonseolim) 생각도 났다. 작가 지원은 물론 크고 작은 전시와 문화 강연을 여는 곳이다. 매년 열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책방 - 세가방‘ 팝업스토어(@segabang) 생각도 났고. 한국의 멋진 동네 서점들도 브루클린 서점들 못지 않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결국 동네 서점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건 동네 서점을 지키려는 독자들의 마음일지도.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애독자이자 번역가, 작가로 활동하는 저자의 서점탐방기인지라 동시대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은 데보라 리비의 신작, 메리 올리버의 시집, 야 지야시의 신작 이야기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번역을 통해 영미권 작가들의 책들을 만나보다보니 고전이나 현대문학이나 똑같이 멀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브루클린 서점에 깔려있을 이들의 책들을 상상하다보니 동시대성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더불어 원서를 발굴해 소개해주시는 번역가, 편집자 등 출판 관계자 분들에 대한 감사도. 그나마 아는 언어로 쓰인 책은 어떻게든 원서를 읽어본다지만 그 외의 언어는 번역가 분들의 노고가 아니면 읽을 일이 요원하니, 결국 나의 독서는 수많은 분들께 빚지고 있는 셈이다. 욕심을 더 부려, 다양한 저자들의 책들을 국내에서 만나보려면 역시 독자들의 니즈가 있어야하려나 싶다. 이번에도 생각하게 되는 건 독자의 마음이다. 동네서점을 지키고, 출판 시장의 활성화를 이끌 수 있는 건 역시 독자의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