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스 랩 - 그 멋진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론 M. 버크먼 지음, 신동숙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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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백지 앞에서 머리가 하얗게 될 때가 있다. 무엇을 써야하지? 어떻게하면 잘 쓸 수 있지? 그럴 땐 괜히 옆에 놓인 책들을 뒤적이거나, 영감의 신이 나를 찾아와주기를 바라며 빈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창작의 비밀이 있다면 제발 좀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연극, 그림, 건축.. 멋진 작품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건지, 50여명의 크리에이터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창조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이커스 랩>.



자, 그래서 창작의 비밀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가, 디자이너, 건축가, 연주자 등 여러 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따르면 그 비밀은 놀랍게도 ‘만들면서 알게된다‘는 것이다! 작품을 시작하기에 앞서 불안이나 두려움, 막막함을 겪는 것은 유명한 창작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자신이 무엇을 창조해내고 있는지는 일단 만들면서 알게 된다. 인터뷰이들은 글을 쓰면서, 디자인을 스케치하면서, 연주를 하면서 자신이 창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창작활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전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만드는 게 아니라, 알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 순서가 틀렸다.



책 속에는 창작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또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앎과 패턴을 지우고 모호하고 불확실한 모름의 상태를 견디는 것이다. 단순한 스케치를 계속하면서 손을 움직이다보면 아이디어가 흘러들어온다고 말하는 작가도 있고, 가면을 통해 습관화된 표현 방식을 억제하면서 몸에서 자유로운 표현이 나오는 방식으로 연습을 한다는 배우도 있다. 결국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알기 위해서는 일단 경험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 인생의 창조자다. 삶에서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경험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해준다.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은 만들어낼 수 없으므로. 그러니까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을 창작해내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창작의 비밀은 우리 자신 그 자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 만든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백지가 전만큼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는 듯하다. 지난한 과정을 지나 나는 결국 나 자신을 발견해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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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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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부하는게 정말 좋다. 단언컨대 세상 모든 기쁨들 중에서 최고는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기쁨이다. 학교, 성적, 등수 같은 것들에 가려져 공부라는 단어가 오명을 쓰게 되었을 뿐, 살면서 누구나 공부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한 번쯤 온다고 믿는다. 배움의 기쁨을 한 번 맛본 사람은 그 달콤함을 쉽게 잊기 힘들것이라고도 생각하고. <공부의 위로>는 저자가 대학 4년간 들었던 교양수업을 바탕으로 공부의 진정한 쓸모에 대해, 진짜 교양이 무엇인지에 대해 담아낸 책이다. 저자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만큼 예술 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다시 학부에 들어가거나 대학원에 가야겠어! 고고미술사학과라는게 있는 줄 알았더라면..‘ 하는 것들이다(미쳤나보다). 졸업한 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업계획서와 책 목록을 홅어보기도 했고, 오랜만에 대학 수업 필기노트를 꺼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깨달은 것은 ‘아, 나도 모범생이었지.‘ 형편없는 수업이었다고 기억되는 수업도 참 열심히 듣고 필기해둔 나를 발견했다. 듣고 싶은 교양 수업만 골라서 듣는 바람에 막판에는 추가학기를 다녀야만 했었는데, 그 모든 순간들이 내게 자양분이 되었음을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와 푸코의 텍스트를 깊이 읽을 수 있었던 것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예술사를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희랍어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대학 교양 수업 덕분이었으니. 모든 공부는 독학이기에 지금도 마음만 먹는다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겠지만, 대학 이후의 공부는 시작과 지속의 측면에서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저자가 불어 수업에서 까뮈의 텍스트를 원어로 읽고 불어를 감각의 언어라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번역된 문장으로 읽는 것과 원어로 읽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집중해서 시간을 들여 내 힘으로 온전히 읽어낸 텍스트는 기억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한때 세상 모든 책을 원어로 읽고싶다는 포부를 가졌던 사람으로서 너무나 공감하며 읽었다. (언젠가 <닥터 지바고>를 원서로 읽어보리라.)



그런가하면 소개된 수업들 중 가장 듣고 싶었던 건 ‘독일 명작의 이해‘였다. 저자가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시작을 발견했다는 바로 그 수업. ‘인간은 지향하는 바가 있는 한 방황한다‘는 것을 배웠다는 바로 그 수업. 명강의로 소문난 수업에는 꼭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대부분 그 이유가 되는 것은 교수님이다. 수업을 통해 자신의 삶의 태도를 전하는 교수님의 진심을 학생들이 알아보지 못할리가 없으니. 책 속에 소개된 전설의 독명이를 담당하셨던 교수님의 저작 또한 읽어보려고 적어두었다. (바로 그 수업을 들을 수 없다면 책을 읽으면 된다! 독서 최고.)



교양이란 무엇인가. ‘교양이란 학식과는 다르다. 교양은 비정한 현실 속에서, 더 비정하거나 덜 비정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에 틈입할 여지를 준다. 그러한 자유라도 있기에, 우리는 지지 않고 생의 수레바퀴를 유연하게 굴릴 수 있는 것이다.‘(308) 이 책 덕분에 잊고 있었던 교양 수업의 기쁨을 다시 누릴 수 있었다. 무엇을 배운건지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폭넓게 접하고 깊이있게 외웠던 것들은 나의 일부가 된다. 공부의 기쁨을 많은 사람들이 누리기를 바라며. 교양의 쓸모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 공부 예찬론자들, 대학생들에게 특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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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파이 2022-03-27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 하기싫어 겨우겨우 했던 저까지도 학부시절이 그리워지네요ㅋㅋ 이렇게 또 영업당하고야 맙니다😆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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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리베카 솔닛. 이 책,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에서 솔닛은 그가 어떻게 자기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동안 솔닛의 작품들을 충실하게 따라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의 전작들을 관통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글쓰기에 대한 솔닛의 신념, 걷고 경험하고 쓰면서 연대하고자 고군분투했던 젊은 날들, 유명세를 얻게 해준 에세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의 탄생 비화까지 다양한 이야기들 또한 책 속에 실려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작가가 되는 일에는 어엿한 인간이 되는 일의 핵심이 담겨 있다.‘(178)는 것. 솔닛은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래 깊게 사유하고 멀리 내다보고 실제로 쓰는 일을 계속해왔다. 어쩌면 그동안 출간된 수십권의 책들은 그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매 순간 애써온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솔닛 자신의 성장 기록이자 어떻게 그녀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전부 아주 작은 책상에서 쓰여진 글들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래전 들었던 ‘문장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아무래도 문장문장마다 배인 깊이 있는 사유, 진실성, 에너지야말로 내가 계속해서 솔닛의 책을 찾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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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나에게 무엇이었더라. 쟁취해야 할 무언가, 내 삶을 지탱해 준 무엇, 유일하게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 그러니까,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것, 내 삶의 의미.‘



오우 진짜 재미있다. 흡입력있고 흥미진진하고. 몰입해서 한 번에 읽기 딱인 소설.



<백 오피스>는 일에 진심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완벽하게 보여야만 하는 행사 뒷편의 아슬아슬함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진다. 에너지 그룹 태형의 대형 행사를 위해 모인 태형의 홍지영, 호텔 퀸스턴의 강혜원, 기획사의 임강이, 이들 세 여성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각자의 사정 탓에 긴장하며 서로를 탐색하다가도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이는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대치상태인 것 같다가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육아휴직을 마치고 일터로 복귀한 호텔리어 강혜원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백오피스와 객실, 홀을 넘나들며 기민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일처리를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미처 챙기지 못하는 가족을 떠올리는 사람. 일의 의미에 대해, 일과 가족 사이에 낀 자기 자신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 사람. 그럼에도 호텔리어라는 직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이러한 고민들이 무척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대기업의 관행 앞에서 정의를 고민하는 홍지영이나 회사의 존폐위기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임강이 등 책 속 다른 인물의 고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생생하고 탁월한 묘사의 힘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무언가 아우라가 있는 것 같다.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그래서 일에 너무나 진심인 사람의 아우라가. 그리고 그 아우라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 그게 진짜 멋. 어쩐지 <백오피스> 속 세 여성에게는 그런 아우라가, 그런 멋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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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의 시간 속으로 - 지구의 숨겨진 시간을 찾아가는 한 지질학자의 사색과 기록
윌리엄 글래슬리 지음, 이지민 옮김, 좌용주 감수 / 더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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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자 윌리엄 글래스리의 <근원의 시간 속으로>. 저자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구의 거의 모든 역사를 고스란히 가진 그린란드 지역을 답사한다.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야생을 감각하며 그가 써내려간 사색의 기록이다.



인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야생의 장대함 앞에서는 어떠한 분별도 필요치 않다. 저자는 끝없는 야생을 홀로 걸으며 체험한 이러한 통찰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모든 존재는 동등하며 그것들은 각자의 속도로 자연히 변화한다. 전체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없으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인간 또한 그 장대함의 일부다. 시작도 끝도 한계도 없는 바로 그 야생의 풍경이랴말로 생의 본질이고 근원일 것이다. 지질학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은 잘 모르는 분야라 기억 속에서 흩어졌지만, 저자가 묘사하는 야생의 풍경과 사색의 기록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북극으로 떠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어디갔어, 버나뎃?>의 남극 기지가 떠올랐다. 영화 <와일드>와 <인 투 더 와일드>도. 언젠가 직접 야생의 웅장함 앞에 설 날을 기다리며, 야생이 사라지면 영혼의 집도 사라진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야생은 우리가 영혼이라 여기는 것의 태곳적 심장이다. 따라서 야생은 일종의 집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중략) 우리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지구의 진화 방식을 둘러싼 질문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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