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입니다. 탐험의 목표가 남극대륙 횡단에서 살아 남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그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배가 난파된 상황에서도 634일동안 28명 전원이 살아 남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해저 2만리"라는 책을 읽은 이래 모험에 관한 장르는 주로 영화를 통해서 접했고 소설을 읽어본 것은 참으로 오랫만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시대, 문화가 너무 생소해서 이해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눈과 바다, 항해, 빙하, 남극 지리, 날씨, 탐험에 관한 수 많은 용어들이 생소합니다. 어떤 부분은 상황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자세하여 지루해서 몇 번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한 28명의 이야기는 스릴에 넘치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서 지난밤 새벽 2시까지 읽고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도 몇 장면이 나타나네요.


634일간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대원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28명의 대원들은 다중 지능이론의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의 관점으로 본다면 자연친화지능이 뛰어난 인물들입니다. 얼음이 떠다니는 차가운 바닷물이 쉴새 없이 들이치는 작은 보트를 타고 어떻게 그 넒은 바다를 건넜는지, 빙하위에 캠프를 치고 서너달을 어떻게 견뎌 냈는지, 황량한 무인도에서 구조선을 기다리며 22명의 대원들은 어떻게 희망을 잃지 않고 3개월이나 버텼는지..... 생명을 위협하는 대 자연에 꿋꿋하게 맞서는 그들의 용기와 적응력, 긍정적 사고방식,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탐험 대장인 섀클턴의 리더십에 관해서는 따로 책이 출판 될 정도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그의 리더십의 장점을 여러군데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대원들에게 베푸는 따뜻한 관심과 우정(107)을 비롯해서 대원들과 격이 없이 지내는 친밀성(109), 대원들 개개인의 성격을 파악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민감성, 각자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공동체에 기여하도록 배려하는 능력,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확신(127)이 돋보입니다. 물론 자기 확신이 지나칠 때도 있어서 소소한 결정을 잘 못 내릴 때도 있지만 이런 그의 성품은 대원들에게도 자연스레 전염이 되어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낙관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 책에서 또하나 놓칠 수 없는 주제가 있다면 "기다림"입니다. 빙하에 갇혀서 옴짝 딸싹하지 못하고 얼음위에 캠프를 설치하고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세월들, 무엇보다도 앨리펀트 섬에 도착했을 때 선장과 몇 명이 작은 보트를 타고 구조를 요청하러 갔을 때 남은 대원들의 하염 없는 기다림을 생각해봅니다. 내가 만약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면 선장의 배에 올라타고 행동하기를 선택했을 지 아니면 섬에 남아서 학수고대 기다리기를 선택했을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기다리는 것은 사실 행동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인내와 강한 긍정성, 매일 반복되는 삶의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 필요합니다. 떠난 사람들은 자연과의 싸움이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신과의 싸움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그들이 타고온 배의 이름이 견디다, 참다, 인내하다라는 뜻의 인듀어런스(endurence)호입니다. 배 이름이 그들의 운명을 예견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사건은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건조되어 운항중인 쇄빙선 아라온 호를 타면 왠만한 빙산이나 얼음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우리 삶에 많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던져 줍니다. 먼저 빙산이 떠다니는 바다는 우리가 살아내야할 만만치 않은 현실을 말해줍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을 비롯해서 온갖 사고와 질병, 실업 등등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저 남극의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탐험대원들이 탔던 "인듀어런스"라는 배는 운명공동체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너랑 나랑 한 배를 탔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 배를 탄 사람들은 먼저는 가족이요 좀 더 확장하면 한 직장의 동료들, 지역사회, 종교공동체, 더 나가서 우리나라와 지구촌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한 배를 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야하는 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한 배려는 물론 자신이 맡은 역할을 빈틈 없이 해내는 것,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서 가장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 리더의 배려, 팔로워들의 리더에 대한 신뢰 등등. 그 밖에도 강한 풍랑과 언제 깨질 지 모르는 얼음캠프, 물개와 펭귄, 궂은 날씨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 삶을 상징하는 은유가 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역사적인 사실이기도 하면서 우리 삶을 비추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섀클턴의 항해는 진행중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탐험 대장은 저와 여러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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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활동을 위한 발문>


1. 섀클턴의 본래 목표인 남극대륙횡단은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패담이 오히려 감동을 주고 많은 사람들의 연구대상이 된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다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것들을 우리 삶의 상황에서 해석해 봅니다.


- 얼음이 떠다니는 바다:

- 배를 위협하는 빙산:

- 인듀어런스호:

- 폭풍우:

- 나침반, 해도:

- 얼음위의 캠프:

- 구조선:

- 앨리펀트 섬:

- 추위:

- 물개와 펭귄:


3. 만약 당신이 탐험대원 중에 있다면 엘리펀트 섬에서 남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선장과 더불어 구조를 요청하는 데 동참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선택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4. 한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로서 섀클턴의 디더십의 특징과 장점은 무엇입니까? 그를 통해서 우리사회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5. 새클턴을 비롯한 대원들의 뛰어난 점은 무엇입니까? 특히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에 비춰서 토론해 봅시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언어지능, 수리지능, 음악지능, 운동지능, 공간지능, 자연친화지능, 대인관계지능, 자기성찰지능)


6. 오늘 내가 극복해야할 거친 환경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목록으로 작성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또한 목록으로 작성하여 발표해 봅시다. (예: 취업난, 경제적 불황, 약한 스펙..........)


7.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8. 내가 현실의 삶에서 견뎌 내기로 선택해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9. 내가 현실의 삶에서 견뎌내기보다 행동에 옮기기를 선택해야할 상황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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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대한 핵심 내용들은 앞 선 다른 이들의 서평을 통해서 잘 소개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행복심리학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사람으로 이 책은 조금 비평적 시각에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관점이란 사물과 현상을 보는 하나의 시선입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삼차원에서 사는 인간은 사물이나 현상을 한 번에 전체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관점을 채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점을 바꿀 때마다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되고 시야가 그만큼 확장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자는 "행복"에 관해서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조명한다고 분명한 관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저자의 관점을 따라가면서 다섯가지 정도의 주제를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1. 아리스토 텔레스의 목적론적 행복론과 진화론적 행복론은 서로 배치되는가?

저자는 행복을 보는 진화론적 관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행복관은 서로 반대된다고 봅니다. 참고로 네이버 사전에서 "행복주의"란 철학적 개념으로 "행복인생최고 목표삼고, 이것실현도덕적 이상으로 삼는 윤리설. 쾌락주의쾌락최상목표삼는비하여, 이것이성적정신적만족 따위의 포괄적만족구한다는 데서 차이있다. "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존재 목적 자체가 행복이라고 아리스토 텔레스는 주장하는 데 반하여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행복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존재한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관점은 언뜻 보면 서로 배치되는 것 같지만 하나의 맥락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진화론의 이론적 근거로 물리학자 캐론의 "이유없는 우주"의 개념으로 무목적성을 강조합니다.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이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또한 "인간은 수천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시계보다 복잡한 존재지만 이 복잡성 자체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p.47)라고 단언합니다. 이런 저자의 주장과 가정을 따른다면 우주의 어떤 존재도,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은 타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분명하고도 강력한 목적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또한 기술합니다. 그것은 곧 "생존과 번식"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다."(p.48)

"그것은 '생명체가 가진 모든 생김새와 습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라는 점이다. 너무 중요해서 다시 한 번쓴다.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다.(p.55)

"그러나 이 오랜 관점과 진화론은 정면 대립된다. 앞서 보았듯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특성은 생존을 위해 최적화된 도구다. 밀러에 의하면, 신체적 특성뿐 아니라 고차원의 정신적인 특성도 이 '생존도구'의 역할을 한다."(p.59)

진화론의 기본가정이 우주의 무목적성이라면 유기체들의 이러한 강력한 목적지향적 의지는 어떻게 발생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전제와 주장이 일치하려면 목적 없는 우주이기에 어떤 생명체도 목적지향적인 경향성을 지지니 않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생존과 번식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원시인들이 사용했던 돌도끼부터 제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든 도구야말로 가장 강력한 목적지향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행복론과 진화론적 행복론은 언뜻 보기에 반대로 보이지만 철학적 차원에서는 하나의 관점입니다. 전자는 인간의 존재 목적을 행복이라고 보았고 후자는 생존과 번식으로 본 것일 뿐입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로,사물의 본질인 이데아(아르케)가 개별적인 존재 외부에 있다고 보는 스승의 관점을 취하지 않고 개별존재 내부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진화론적인 행복관은 차라리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배치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지요.

2.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의 개념과 진화론적 행복은 같은 개념인가?

우리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양자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행복"이라는 단어의 풀이를 찾아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행복이란 생활 속에서 느끼는 만족과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생활"은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맥락적인 요소이고 만족은 욕구가 충족된 것을, 기쁨은 느때 느껴지는 긍정적인 정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행복은 크고 작은 생활사와 행복 사이에 자극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평가와 의미부여 과정이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데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랑하는 일상의 삶은 몸으로 하는 것이기에 행복은 생물학적 차원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행복을 최고의 선과 동일시합니다(p.46). 최고 선이란 가장 인간답게 기능하는 상태이자 자신의 삶에 최고로 만족하는 상태라고 새겨도 좋겠군요.  여기서 아리스토 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개념이 과연 인간의 생물학적인 차원을 배제했는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진화론적 행복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안타깝게도 저자가 직접적으로 행복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내린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안에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은 곧 쾌감이라는 것입니다. 몇 군데 저자의 글을 인용해 봅니다. 

"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쾌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p.68)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른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123)

그런데 행복과 쾌감은 같은 말일까요? 행복이라는 감정이나 상태는 기쁨과 설렘, 황홀함, 평안함, 흥분과 같은 감각적 감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결코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마치 통증이 따가움과 쓰림, 아픔과 같은 통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같은 차원의 개념이 아닌 것가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평생동안 만성 통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통증과 통각의 관계를 평생 파헤쳐온 맬러니 선스트럼의 책 < 통증연대기 : 은유 역사 미스터리 치유그리고 과학>에서 잘 설명합니다. 통각은 오감을 통해서 느껴지는 불쾌하고 고통을 주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통각이 곧 통증, 특히 만성 통증이 되지는 않습니다. 팔이나 다리 등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의 경우에도 상실된 신체 부위를 통해서 강렬한 통증을 느낀다는 사실을 통해서 통증과 통각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각이 마치 피아노의 현의 진동이라면 통증은 그 진동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음암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같은 원리로 행복이란 육체적인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껴지는 쾌감을 기초로하지만 반드시 쾌감이 느껴진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고 반대로 통증이 느껴진다고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콜 중독자가 술을 마실 때 몸은 이완되어 쾌감을 느끼지만 마음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자위를 하면 몸이 쾌감을 느끼지만 마음은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 몸이 부셔져라 노동을 하면서도 마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적절한 통증과 고통은 큰 행복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인도의 요가승들은 철 침이 가득박힌 침상에서 누워자고 꼰 다리를 또 꽈서 몸을 괴롭히며 행복해 합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요는 쾌감과 행복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개념과 진화론적 관점, 정확하게 생리적 쾌감의 관점의 행복에 대한 개념이 같지 않은 데 둘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3. 쾌감(행복)이 항상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가?

"인간이 현재 가진 신체적 모습과 생각, 감정. 이는 우연히 갖게 된 특징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모두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보유하게 된 특징이다."(63)라고 저자는 가정하고 행복의 느낌, 즉 쾌감 역시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기에 진화의 과정에서 발현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쾌감"이 생존에 항상 도움이 되는지 않는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오히려 생존에 도움이 되는 감정은 쾌감보다는 불쾌감이기 때문입니다.  정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인간의 감정은 목적이 있는데 쾌감은 지금 행동과 사회적 관계를 촉진하는 기능을 하고 불쾌감은 반대로 행동을 멈추게 할뿐 아니라 관계도 소원하게 합니다. 비유컨대 쾌감이 자동차의 엑셀레이터라고 하면 불쾌감은 브레이크라고 하겠습니다. 예컨대 높은 빌딩 난간에 여러분이 서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밑을 내려다 보니 사람과 자동차가 콩알만하게 보이는 높이입니다. 이때 불안감을 느끼는 것과 짜릿한 스릴을 느끼는 것 중 어느 감정이 생존에 도움이 될까요? 또  밤길에 으슥한 골목에서 괴한과 마주 쳤을 때 그 사람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 호감을 느끼는 것과 순간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 어느 쪽이 생존에 도움이될까요? 물론 유아기에 양육자에 대한 애착은 생존에 필수적인 감정입니다만 이 역시 낯 선 사람에 대한 불안(낯가리기)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곤충들 가운데는 단 한번의 짝짓기 쾌락을 추구하다가 암 컷에게 잡아 먹히고맙니다. 종족의 번성을 위해서 개인인 생존을 포기하는 셈입니다. 그 곤충이 종족의 번식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는 자아초월적인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인지 아니며 물불 가리지 않고 쾌락만 추구하다 목숨을 잃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므로 쾌감이 생존을 위해서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불안과 분노, 슬픔같은 불쾌한 감정의 도움을 받아 분별있게 활용될 때 그러하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4. 행복, 선천적인 요인이 중요한가, 후천적인 요인이 중요한가?

저자는 행복의 기원에 대해서,생물이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과 번식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도구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논거는 개인의 행복감의 50%정도가 유전적인 기빌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50퍼센트는 결코 작은 비율이 아니긴 합니다만 행복이 생존에 그처럼 중요하다면, 인간의 존재 목적 자체가 생존과 번식이라면 왜 100%가 아닌가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율 추이를 살펴보면 80년 대 이전에는 10명도 채 안되는 것이 최근 들어 30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2위이며(2013년)과 노인과 청소년 자살율은 세계 1위를 마크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자살율이 제로이거나 그에 근접한 나라들은 오히려 이디오피아나 가나와 같은 아프리카 최 빈국들입니다. 인류가 기왕에 진화하는 김에 어떤 상황에서도 불행감이나 절망감 따위는 느끼지 않도록 철저하게 긍정적인 유전자라면 좋은텐데 말입니다. 차라리 진화의 위계에서 하등 동물로 분류되는 지렁이나 곤충들은 자살하는 개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 역시  행복에 대해서 너무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은 반대합니다. 하지만 행복의 관점을 생물학적인 관점으로만 환원시키는 것 역시 반대합니다. 인간의 행복을 쾌감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행복의 후천적인 요인이 50%나 된다는 사실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다시 말해서 자극과 반응사이에 생각하는 나가 있는 셈입니다. 이 점을 함께 고려할 때 행복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실천에 이를 수 있을 것이며 대부분의 긍정심리학자들 역시 행복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하며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을 강조합니다. 만약 행복해 지는 데 있어서 그런 가능성이 없다면 저자의 책도, 저의 글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수고도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입니다.

5. 유기체에게 외부의 설계자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가?

저자에 따르면 진화론은 어떠한 외부자의 의도나 설계를 철저히 배제합니다. 설계자가 없으니 당연히 우주에 어떤 지성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연"과 오랜 시간이만이 존재할 뿐이지요. 하지만 진화론에도 여러가지 갈래가 있어서 우주적인 설계자를 가정한 진화론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의 신부였던 떼야르드 샤르뎅(Pierre Teilhard de Chardin)은 우주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오메가 포인트를 향해서 스스로 진화해 간다고 보았습니다. 우주가 무목적적이 아니라 스스로가 궁극적인 목적을 지니고 진화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우연에 의한 돌연변이는 물리적 차원에서의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한한 세월이 흘러도 그런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는 진화론이 무목적적인 우주관에 기초해 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주장에서는 설계된 진화론을 말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 하도록 설계게된 생물학적 기계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p.64)

말하자면 저자의 설명을 살펴보면 자연=설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은 진화론 자체가 자연의 일정한 질서를 전제로합니다. 우연에 의한 돌연변이와 그들이 지닌 적응에 적절한 특질들이 반복적으로 변함없이 유전되지 않는다면 진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질서 안에서 발생한 우연만이 유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물리적 질서는 생명체의 진화에 있어서 외부적 설계자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할 듯 싶습니다.

끝으로 이 책에서 소개한 행복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과 발견들은 마음에 새겨둘만 합니다. 특히 한국인들의 행복을 진단한 장은 많은 공감이 갑니다. 물론 행복에 대한 원리들을 꼭 진화론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행복감의 생리적 차원의 설명으로 족할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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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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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영 선생님의 <사랑의 역사>를 단숨에 읽었습니다. 동서고금 34권의 유명한 문학작품을 통해서 남녀 간의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사랑이 시작될 무렵 꼭 읽게 되는 황순원의 <소나기>를 비롯해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통해서는 열정적인 사랑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랑과 성장’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사랑과 이별, 사랑과 도덕,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로 사랑에 대한 흥미진진한 문학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사랑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문학의 가장 오래된 탐구대상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사랑은 우리 삶에 중요하며 끊임없이 연구해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교육은 외국어와 방정식과 미적분 그리고 먼 우주에 대한 지식은 가르쳤지만, 사랑만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저도 그러고 보니 결혼 전에 남녀 간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체계적으로 배워본 기억이 없군요. 사랑에 대해서 배워보지 않고 실전에 뛰어드니 무작정 자전거에 올라탄 사람처럼 넘어지고 깨지고.... 실패의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사랑의 본질을 모른 채 하는 백번의 사랑보다 사랑의 본질을 알고 하는 한 번의 사랑이 더욱 아름답다.”는 저자의 주장에 백 번 공감이 갑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 혹은 본질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사랑이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상대방과 나의 생명을 성장시키는 경험이며 활동’(338쪽)이라고 합니다. 에릭 프롬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영원히 자신을 성장시키는 경험으로서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라 배워야할 기술이자 능력인 것이며, 스콧 펙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것이죠. 또 철학자 니체는 ‘정과 망치를 가지고 돌 속에 잠들어 있는 상대방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 사랑이라고 멋지고 표현합니다.

 잘못된 사랑은 서로를 착취하고 파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진실한 사랑, 위에서 저자가 정의한 사랑은 서로를 성장시킨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립 플로레스의 말을 인용하여 진실한 사랑의 영향력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누가 될 수 있는가 상당부분은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 사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에 달렸다.”(347쪽).

이런 차원에서 사랑받지 못한 것은 불운에 지나지 않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 불행이라는 저자의 말에 진심으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또 문학이란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삶의 거울’이요 ‘거리고 매고 다니는 거울’이라는데 34편의 작품에 비추인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떤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썩은 사과 한 상자>라는 노부부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봄이되자 집에서 기르는 말을 팔러 가는 영감님이 그것을 당나귀로 바꾸고 다시 염소로, 거위로 자꾸 작아지다가 시장에 도착했을 무렵 상한 데가 많은 사과를 노점에서 파는 것을 보고 ‘영감, 맛있는 사과 한 상자 사오시구려.’라고 했던 할머니 말이 떠올라 마지막으로 그것과 바꿨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대목은 말 한 필을 끌고 가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썩은 사과 한 상자를 들고 오는 영감님을 비난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영감 잘했수, 어쩌면 내 맘과 똑 같소.’라고 맞장구 쳤다라는 부분입니다. 우주는 리듬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리듬을 맞춰주면 행진하는 군인들의 발걸음에도 거대한 다리가 무너진다는 데  우리 생각과 정서에도 리듬이 있어서 그 박자에 맞게 추임새를 넣어주면 죽은 사람도 살아난다는 이야기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결혼생활을 할 때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제인 에어>같은 드라마틱한 사랑은 아닐지라도 아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요리를 못해도, 집안을 잘 안치우고 벗은 옷을 그대로 두고 외출해도 사랑하는 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저 나라는 남자를 만나서 내 곁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보너스로 누리는 것이지요.

남미영 선생님은 매우 뛰어난 이야기꾼입니다. 길고 복잡한 스토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은 놓치지 않도록 클로즈업해서 작품의 속살을 보여 주지요. 유명한 작품들이라 한 번쯤 읽어본 기억이 있고 상당수가 영화로도 만들어 졌는데 중년기를 넘어서 다시 친구들과 읽고 사랑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토론해 보는 데 훌륭한 마중물로 활용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참 저는 영화로 된 작품들의 주제곡을 인터넷을 통해 들으면서 읽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저 역시 행복한 삶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저 자신의 치유와 성장, 그리고 부부의 관계를 튼튼하게 만들어 가는데 도움을 주었던 자가 치료서 34권을 선별해서 책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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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 가로세로그림책 1
토미 웅거러 글.그림, 이현정 옮김 / 초록개구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토미 웅거러의 성냥팔이 소녀 버전에는 추운 겨울 얼어 죽는 나약하고 불쌍한 아이는 더이상 없습니다. 전통버전에서 성냥팔이 소녀가 얼어 죽은 것은 날씨가 추워서도 성냥이 잘 안팔려서도 아닙니다. 해가 지면 돌아갈 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이 있어도 아버지의 폭력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매 맞는 아이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있는 것을 보면 성냥팔이 소녀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토미웅거러는 이런 슬픈 이야기를 영웅적 서사로 바꾸어 놓습니다. 발단은 비슷합니다 . 라이타의 등장으로 더이상 팔리지 않는 성냥을 파는 소녀 .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가 호되게 야단 맞고 쫒겨나네요.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에 하늘로부터 온갖 음식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 음식에 치여 식당이 무너지고 당황해 하는 주인 부부 끊긴 수도파이프들을 배경 곳곳에 그려 넣어 타인과 나눌줄 모르는 그들의 인색한 삶을 비판합니다. 소녀는 하늘에서 내린 음식으로 가난한 이들과 나누기 시작하는데...그녀의 선행에 감동한 상람들이 기부에 동참하네요.

이 작품은 성냥팔이 소녀를 패러디 했지만 전혀 다른 플롯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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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린이용) 생각하는 숲 1
셸 실버스타인 지음 / 시공주니어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우리 솔이 오늘도 이야기가 듣고 싶구나?”
“네! 할아버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어요.”

그래, 그럼 오늘은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마. 옛날에 아주 오랜 옛날에 어느 마을에 “사과나무”가 살았단다. 가을이면 탐스러운 사과가 아주 많이 열리는 나무였지. 그 나무에게는 아주 친한 단짝이 있었어. 나무는 그 아이를 “소년”이라고 불렀지. 아직 어렸으니까 말이야. 나무는 소년이 무척 사랑스러웠어. 소년 또한 나무를 타고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지. 그래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나무를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놀았단다. 나무는 소년을 기다리는 것이 살아가는 기쁨이 되어 버렸지. 소년은 나무 둥치에다가 “나는 나무를 사랑해”라는 글씨와 함께 하트 모양을 새겼단다.
소년은 점점 자라서 이제 청년이 되었어. 예전과 다르게 소년의 발걸음이 뜸해졌어. 나무는 소년이 자기를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고 조금 슬퍼졌단다. 어느 날 이제 청년이 되어버린 소년이 오는 데 혼자가 아니라 예쁜 아가씨와 함께 오는 거야. 나무는 오랜만에 오는 소년을 보고 반갑기도 하고 한편 섭섭하기도 했어. 저 아가씨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가보다 생각했지만 소년의 마음을 다칠까봐 섭섭한 마음을 꾹 참기로 했단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은 이제 거의 오지 않았어. 지나가는 새들과 바람으로부터 소년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지. 나무는 소년이 무척 보고 싶었지만 걸을 수가 없기에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가슴속에 그리움만 키웠지. 그러던 어느 날 이제 한 사람의 건장한 어른으로 성장한 소년이 오는 거야. 나무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 몰랐어. 그런데 소년은 나무처럼 기쁜 것 같지는 않았어. 나무는 소년을 조금이라도 자기 곁에 오래 머물게 하고 싶어서 소년이 원하는 것을 주기로 했어. 소년은 집을 살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자신의 잘 익은 열매를 따다가 팔면 제법 돈이 될 것이라고 했어. 소년은 두 말하지 않고 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따서 가져갔단다. 저런 고맙다는 인사말도 한 마디 없이 말이야. 하지만 나무는 소년이 조금이라도 자기 곁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지.

그렇게 또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소년이 나무에게 왔어. 나무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소년은 나무의 그런 기분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번에는 집을 지을 목재가 필요하다는 거야. 나무는 소년을 자기 곁에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 두기 위해 자신의 가지를 내어 줄까생각해 봤지. 하지만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어. 왜냐하면 가지 없는 사과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사과나무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지. 더구나 가지를 다 베어 버리면 나무의 생명마저 위태로워진단다. 그리고 문득 새들이 날아와서 자신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도 생각이 났단다. 쉘 실버스타인이라는 작가가 사는 마을에 “아낌없니 주는 나무”가 살았는데 자기처럼 소년을 사랑했고 그를 조금이라도 자기 곁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주고 그루터기만 남았다고 했어. 사과나무는 그루터기만 남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어. 왠지 슬퍼지고 결코 자신이 꿈꾸던 노후의 모습은 아니었단다. 소년의 요구를 거절하면 자기를 영영 떠나버릴 것 같아 두렵고 요구를 들어주면 자신의 불행에 빠지고 생명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 분명했어. 솔이야 네가 만약 나무라면 어떻게 하겠니?

“할아버지, 내가 사과나무라면 그 버르장머리 없는 소년 말고 다른 친구를 사귈 거예요.”
“오호, 그런 방법도 있겠구나. 하지만 누군가와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쉽게 끊을 수가 없단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끊는 것이 훨씬 고통스럽고 어렵거든”
“그래서 사과나무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그래서 사과나무는 소년도 행복하고 자신도 행복한 길을 찾아보기로 했단다. 그리고 소년에게 제안을 했지. 지금 당장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내 가지를 베어 가라고 할 수 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조금밖에 이익을 얻을 수 없고 대신 소년이 조금만 도와주면 더 많은 사과를 생산하여 소년을 오랫동안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지. 그러자 소년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어. ‘나에게 잘 숙성된 퇴비를 가져다가 듬뿍 주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와서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돌봐다오’라고 나무가 말했단다. 소년도 그 정도 손익 계산을 할 수 있었지. 나무의 요청대로 소년은 정성껏 퇴비를 주고 병충해를 방비한 결과 그해 가을 평소보다 몇 배가 넘는 사과를 수확할 수 있었단다. 물론 소년은 그것을 팔아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어.

그런데 어느 핸가 사과를 수확할 즈음에 태풍이 세차게 몰아쳐서 대부분의 사과가 떨어지고 20%정도만 달려있었는데 그마져도 상처투성이였단다. 나무는 소년이 실망하고 자기를 떠날까봐 몹시 두려웠지.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을 때 상처 입은 자신의 모습이 보여주기 싫었단다. 그런데 그때 문득 철새들이 쉬면서 자기에게 들려준 일본의 아오모리현 사과나무 이야기가 떠올랐어. 나무는 다시 희망을 찾고 소년을 기다렸지. 그리고 이렇게 제안했단다. 얘야, 내게 남아 있는 사과를 따다가 ‘합격사과’라는 상표를 붙여서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팔아보렴. 소년은 나무의 제안대로 했고 그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들은 ‘합격사과’라는 이름을 달고 고가의 가격에 불티나게 팔렸단다.

“할아버지, 나무의 지혜가 참 놀라워요. 그런 지혜가 도대체 어디서 난 거예요?”
“하하, 궁금하지. 나무는 비록 여행을 할 수 없지만 바람과 새들과 곤충들로부터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듣는단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지혜를 배운 거지. 솔이야, 너도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렴. 그 이야기 속에 삶의 지혜가 들어있단다. 너는 사과나무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느꼈니?”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사과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라 아끼며 주는 나무 같아요. 그리고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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