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길 - 만화로 읽는 철학 4
조준상 지음 / 서광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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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를 중히 여기고 선(마음)을 가볍게 여기면, 한없는 세월을 지낼지라도 이는 모두 하늘의 마군이요 외도이다.- p. 34

 

 

 

살아계셨을 때의 성철 스님.

 

 일반 사람들은 글을 많이 쓴 혜민스님이나 법륜스님에 대해서는 이름을 들어봤지만, 이 스님에 대해선 거의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올바른 스님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는 주로 교리사상에 대한 비판의 글을 싣고 있어서 꽤나 어렵고 곰곰히 생각해봐야 하긴 하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욕망을 벗겨내기 위한 수행을 해야 한다'는 명쾌한 결론을 내고 있다. 천팔배 절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테스트하기 위한 질문마저 던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가 '아는 병'에 대해 얼마나 조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성철스님 사후에 스님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가 마지막 임종 순간에 '사탄을 섬긴 죄로 나는 지옥에 간다'라고 참회했다는 것이다. 난 비록 천주교인이라지만 성철 스님이 한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다. 이미 죽은 사람의 어록까지도 파헤치고 매도하려고 하는 걸 보면 할 말은 다 했던 그 강직한 스님의 모습에 참 시기심이 났는가 보다. 이제는 어쩌겠는가. 어차피 불신론자들이 이 세상에 더 많고, 종교의 힘을 비웃는 세상에서, 그들만의 말장난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철 스님은 '내 말에 속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진실은 그의 텍스트를 건너 그 너머에 아득히 존재할 것이다. 명상을 하려 눈을 감아도 오만가지 생각에 집중을 못하고 한시라도 몸을 가만히 하지 못하는 천성인 나로선 이미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겠지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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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2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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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나의 당이나 하나의 정부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그것을 전복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반드시 전복시켜야 합니다!- p. 220

 

 

 

위에 있는 글귀를 읽고나니 김규항이 생각났다.

여기 이 책에서는 공산당 체제의 시절을 빗대어 사람의 탐욕을 비난하고 있는데,

반면에 이 사람은 민주주의를 비난하며 비슷한 말을 하고 있으니 특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이야기꾼이 있다. 그들은 마치 자신의 사명이라도 되는 마냥, 예술로 얇은 천을 드리워 체제의 눈을 교묘히 피한 뒤 사회를 비판한다. 가난한 자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천성적으로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목적은 권력이 아니라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유일 것이다. 만일 그것을 사회적으로 짓밟고 누르려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폭력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우리나라의 사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이 소설엔 이야기꾼을 비롯하여 티엔탕 마을의 피해와 살인사건을 널리 알리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노래를 만드는 맹인 장코우와 그 후계자, 연인의 충격적인 자살을 계기로 이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열혈청년, 남편의 죽음과 가문의 몰락에 의해 자신의 악행을 반성하게 되는 넷째 숙모, 자신의 권력을 온전히 바칠 것을 각오하고 사회의 부당함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권력자까지. 그들은 비록 끔찍하게 희생되었지만 티엔탕 마을은 그들로 인해 조금이나마 누명을 벗을 수 있었고, 아주 조금이나마 잘 살 수 있었다.

 쌍용의 김정우 지부장 님이 결국 경찰에게 끌려갔다고 들었다. 쌍용의 부당한 폭력을 비롯하여 대통령 부정선거까지... 그동안 사회의 부당함을 고발하던 대한문 농성 철거를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일이 밝은 대낮에, 민주주의 국가하에서 버젓하게 일어나고 있다. 마을도 아닌 하나의 국가를 권력 하에서 지켜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당연히 4.19와 5.18때처럼 국민들이 크게 들고 일어나야 한다. 각자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부당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 공자도 부모가 안 좋은 일을 한다면 자식이 지적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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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1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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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아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엄마, 나는 그래도 나가서 보고 싶어. 한 개의 둥근 공 모양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아들아, 그건 태양이란다."
"나는 태양을 보고 싶어!"
"아들아, 그건 볼 수 없어. 그건 하나의 불덩어리라서 이 어미의 피부와 살까지도 태운단다."
"나는 들판 도처에 신선한 꽃이 널려 있는 것도 봤어. 그 꽃들의 향기도 맡아보았는걸."
"아들아, 그런 꽃들은 독이 있어서 그 향기에도 독이 있기 마련이야. 엄마도 그 꽃들의 독 때문에 죽게 생겼단다!"
"엄마, 나는 나가서 붉은 말의 머리를 어루만져주고 싶어."
"아들아, 붉은 말은 없단다. 그것은 하나의 환영이란다!"
태아는 죽은 듯 조용해지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p. 274

 

 

 

책의 제목만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모옌은 티엔탕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중국 농민들의 이야기를 적었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농민들이 영원히 고통받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가 보다.

 

 이 이야기에서는 주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둘이다. 하나는 몰락한 지주의 아들 까오양. 그리고 또 하나는 진쥐라는 여자아이에게 반한 귀환병 까오마이다. 까오양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회에 잔혹하게 탄압받는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까오마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사실 본인은 작가가 흥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까오마와 진쥐의 사랑이야기를 어거지로 집어넣었다고 생각했으나, 매우 달랐다. 아마도 진쥐가 단순한 시골여자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진중한 여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중년아저씨와 결혼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질 않는 것이다. 앞뒤없이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까오마를 어린애 대하듯 하는 걸 보면 한편으로 웃음이 나오기도 하다. 

 중국이 확실히 더러운 나라이긴 한가보다. 모옌의 이야기에서 중점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더러운 오물들은 소설 텍스트의 모습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정말 말할 수 없는 찝찝함과 혐오감을 안겨다준다. 확실히 중국이 더러운 나라이긴 한가보다 -_-...

 

 

넓적데데한 얼굴에 근엄하게 생긴 것 외엔 별 다른 특징이 없는 이 얼굴에 속으면 안 된다.

그는 그로테스크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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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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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뚱이는 더 나은 내 존재의 찌꺼기일 뿐인지도 몰라. 원하는 사람은 내 몸뚱이를 가져가도 좋다. 이건 내가 아니니까.

 

 영문학에서 <폭풍의 언덕>, <리어 왕>과 함께 비극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래도 그 둘보다는 덜 우울하다고 생각한다. 폭풍의 언덕이 아침드라마 전개, 리어 왕이 주인공을 포함하여 거의 모두가 죽는 피바람 엔딩이라면, 모비딕은 기묘한 이야기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라던가 <해저 2만리> 등등에선 섬찟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이 작품들의 분위기를 만회시켜주는 건 두 가지가 있다.

허풍과 사회풍자. 이 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모비딕과의 전투는 매우 짧은 순간이었다. 그 동안에 끊임없이 주인공은 허풍을 섞어 포경선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흡사 하나의 심령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왜 그런 방송에서는 으레 귀신이 나오는 장면의 이전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귀신이 나왔어요!'라던가 귀신이 나왔던 상황을 떠들어대지 않는가. 확실히 발디딜 땅도 없는 그 드넓은 바다에서 매머드같은 고래가 출현하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리라.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혹은 신으로 숭배해버리는 거겠지.

 참고래와 향유고래를 욕심껏 챙겼음에도 모비딕이라는 거대한 향유고래를 찾아나서는 피쿼드 호의 여정을 보다보면 인간세계의 여러 면모를 보게 될 것이다.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는 자연을 대하면서 가라앉는 면모를 보이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피하는 인간들과 대화하면서 증폭된다. 어쩌면 그는 다리를 잃었을 때부터 선장으로서의 강철같은 마음을 빼앗겨, 그를 보충하기 위해 겉으로 그렇게 힘을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환상과 실제가 얽힌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실제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몰라서 재미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바다의 이야기야 더이상 말할 게 없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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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시집들 - 첫 시집들, 초기 시들, 백의의 후작부인, 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 기도시집 릴케전집 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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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스로에게 다르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호화로움에 둘러싸인
멋지게 치장한 자가 아니니까요.
당신은 아낄 줄 아는 소박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가는
턱수염 난 농부입니다.- p. 44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모습.

수없이 많은 여성이 그에게 빠져들었다고 하던데, 과연 요즘 남자배우들도 뺨칠만한 얼굴이로세.

 

 정말 놀랄만큼 순수한 시였다. 처음에 루 살로메와 러시아 여행을 할 때 영감을 받았던 시라고 들었는데, 과연 중간에 사랑시라고 할 만한 요소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러시아 여행을 하고 중간에 런던여행을 해도 아무런 영감을 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때 시인이 느꼈던 감정이 '순례'의 무거운 분위기로 심화되어 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있는 그대로 투영하면서도 그럭저럭 장편의 시를 완성시킬 수 있다니, 조금 감탄했다.

 어머니가 심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그에 호되게 질린 릴케는 기독교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기도시집을 쓰는 게 아이러니하기는 했지만, 일면으로는 이해가 가는 면도 있었다. 어린 시절 상처받았던 것과 마주쳐서, 어떻게든 그 갈등을 자기 안에서 풀어나가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닐까. 성경의 구절들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여 침묵과 검소함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데 쓴 점은 참신했다. 또한 릴케는 예술가들이 예술을 창조하는 장면을 사람들이 종교심에 힘입어 성당을 세우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도 그와 비슷하게 예술의 중요성을 역설하긴 했지만, 이국적이고 섬세한 아름다움에서는 기도시집이 더 뛰어나지 않았나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이 시에서 비유하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러시아 성당.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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