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인문잡지 삐라 2호 - 죽음
삐라 편집부 / 노트인비트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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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은 농담조로 말하며 제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캐내려 했어요. 그래서 저는 솔직하게 나는 아무도 안 좋아한다고 말해주었죠. 그러자 아이들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물어보더군요. 그러는 내내 저는 닥치라고 소리 질렀고요. 마침내 그 아이들은 내가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누구를 좋아하는지 이야기하지 않는 거라는 결론을 내렸죠. (...) 자라면서 제가 이성애자 외에 그 어떤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 미친 거 아님? 나라도 그 아이들 다 버스 창 밖으로 던졌을 듯. 하지 말라는데 왜 계속 해? 죽을 때까지 해봐? 아무튼 짧지만 맨 끝에 무성애자에 관한 글이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퀴어잡지에 나오는 게 좀 새롭긴 했지만 그래도 반투명인간 2권을 지르지 못한 내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ㅠㅠ



생각해보니 명절날 고의 아니게 이런 책을 본다. 뭐 딱히 저항하려 하는 건 아니고 조상님께 제사도 지냈으며(...) 읽던 책 끝까지 마저 읽던 거니 괜찮겠지. 표지 글씨가 매우 작은 데다가 글씨 색채를 잘 보이지 않도록 설정해서 다른 사람들에겐 무슨 책을 읽는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해 놓은 점 또한 훌륭하다. 3권 이후로 소식이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4권도 나왔음 하고 바란다.



 


지금은 좀 덜한 듯하다. 그만큼 잘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죽는 게 차라리 더 편했겠네.'라던가, '이 고통스러운 세상 차라리 죽는 게 나았으니 잘 되었네'라던가, '고통 없이 갔으니 잘 됐네'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마도 세상에서 죽은 사람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란 지적이 많아져서 드물게 된 게 아닌가 싶다마는. 문제는 못 사는 사람들이 죽을 때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세월호 때는 어떤가? 죽은 아이들 중 학교에서 요즘 유행하는 왕따를 주도했을지도 모를 아이들이나 왕따를 당했을 아이도 있을 거라며 잘 죽었다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이 경우는 좀 극단적일지라도, 정체성과 생계의 곤란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하는가? 왕따를 가했던 당했던 간에, 인생이 괴롭던 아니던 간에 사람은 모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죽음에 빠지기보다 살고 싶을 것이다. 어떻게 차라리 죽음을 바라는 사람의 마음을,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헤아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런 소리들이 좀 살만한 사람들 입에서 으레 나도는 갑질이라고 생각한다.

 

커밍아웃을 하는 건 솔직하게 살자는 이념과 연결된다. 그러나 다 털어놓으면 상대방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짝사랑은 어째서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잘못 고백했다가 차이고, 실망해서 짝사랑이란 개념까지 잃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솔직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느니, 커밍아웃하는 동성애자가 쿨한 부류이고 안 하는 사람은 꽉 막힌 부류라거나, 무작정 프리허그를 해와도 받아주어야 착하다느니, 이런 말을 하는 무리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이 어디에도 없을 뿐더러 어디에나 없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세상의 반은 여자/남자야'라느니, 허례허식 같은 말은 필요없다. 중요한 것은 일단 그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커밍아웃을 하지 말아야 한단 소리냐?라는 반발이 있을지 우려했지만 내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닌가 싶어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대뜸 이야기하더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근거없이 남을 혐오하는 사람을 나는 혐오한다. 그렇지만, 성소수자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지 않아? 커밍아웃을 하면 좋아~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이다. 몇몇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유로 성소수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해도 된다는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강요당하는 사람에게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말고도 수많은 정체성이 있다. 심지어 난 '성소수자인데 왜 BL물을 좋아해요?' 라는 말을 남성 동성애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하는데... 물론 BL물이 대부분 환상으로 이루어진 것은 맞다. 그러나 성소수자라서 BL물을 좋아하면 안된다는 말이 마치 내게는 '여성들이 BL물을 보니 남자친구 요도에 손가락을 꽂는 걸 좋아한다'라는 근거없는 차별처럼 들린다. 지가 결과가 좋았단 이유로 남들에게 커밍아웃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반박을 해보자면, '성소수자는 착하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그런 이야기였다.

 

그럼 어떤 만남이 진정 마음이 통하는 좋은 만남이 될 수 있을까? 어찌보면 간단한데, 그냥 '계급장 떼고' 정체를 모르는 대로 날씨나 물어보며 사람을 대하는 게 가장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닌가 최근 생각 중이다. 가령 나는 사회복지 현장실습에서 지적장애인 작업장을 견학한 적이 있다. 나는 그곳의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 분이 질문할 게 있냐고 물었을 때 '이 기관의 전달체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꽤 격식을 차려서 솔직하게 물어본 것 같은데 그 직원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내 슈퍼바이저는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전달체계 같은 건 미뤄두고 안부인사로 물어보지 그랬냐'라는 슈퍼비전을 남겼다. 명백히 목적이 있고, 실습생이 직원을 만나 질문을 하는 그런 자리임에도 근원적인 정체성부터 이야기하는 건 실례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만날 때 조심스러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운동가를 포함하여) 트랜스젠더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수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대뜸 물어본다. 우리는 훌륭한 일을 하는 잘난 사람들에게는 무의식 중에도 언사를 조심하지만, 정작 한없이 감정이 섬세한 소수자들에게는 언동을 경망스럽게 하지 않는 걸 쉽게 까먹는 듯하다.

 

나는 그래서 어떤 사람을 죽어서도 반드시 만날 수 있을거라 단정짓지 않는다. 솔직히 기억에서 지워버리면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지워진다. 죽은 사람은 마주칠 확률이 없으니 더하다. 그러니 잊지 않으려는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남'의 죽음보다 당장 내 손이 칼에 베인 게 더 아픈 게 사람 현실이다. 이 책에서의 단점은 과도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무시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집착할 만한 면이 있지도 않다고 본다. 내가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 내가 사는 세상이 잘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게 결국 궁극적인 인간관계의 목표가 아닐까?




 


한국어로 '아스톨포 웨딩드레스'라고 검색하면 안 나오는데 영어로 'astolfo wedding'이라고 검색하면 다양한 사진이 나온다. 크로스드레서이긴 하지만 이런 사소한 데서 우리나라가 젠더에 얼마나 꽉 막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할까(...)


지금 결혼이 시들해져서 어떤 퀴어들은 그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결혼할 수 있어도 안 하는 것과 결혼 못 하는 상황에서 결혼 안 하는 건 천지차이다.

특히 운동권 중에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도로서의 혼인은 혜택이 많은 편이다. 그건 가족규범이나 성담론 통제와는 다르다. 그쪽은 법보단 결혼문화에 좀 더 가깝다고 할까? 결혼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점이 많다는 건 법제도 분야에서의 의미인데, '결혼한 사람들이 다 잘 사는 건 아니구만요'라고 맞받아치는 분들이 계신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과 전혀 다른 맞장구를 친다는 이야기이다. 난 분명 문화까진 이야기 안 했는데, 이들은 혼인에 알레르기라도 있는지 혼인 하면 꼭 문화를 들이댄다. 심지어 자신이 동성애자라 소개하는 사람들도 그러는데, 자신의 생각 때문에 다른 동성애자들이 결혼할 권리가 가로막혀 피해를 입는다는 걸 알아줬음 한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이 있길래 이 주제에 대해 한마디 더. 이전 동성혼을 찬성하는 자리에서 동성혼이라도 결혼이니 안 된다라는 논박을 해서 큰 혼란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읽고 있는 책에선 뭐, 3명이 결혼해도 상관없지 않느냐 하고 도리어 결혼의 사회제도를 깨뜨리는 형식인데 왜 안 된다고 하느냐라는 주장이 있다. 이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쪽 운동권 분들에게 물어보면 결혼을 반대하는 의외로 많더라. 아무래도 책에서의 말대로 몇몇 분들의 연설에 말려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내가 줄곧 주장해왔던 것과 책이 말하는 건 결혼이 되느냐는 문제고 사실혼도 결혼과 같은 혜택을 주는 문제와 완전히 다르다. 그런 이론을 동성혼을 논의하는데서 끌고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란 것이다.

 

누군가를 찍어서 악인으로 몰아가는 건 쉽다.

나와 생각이 다른 자를 존중하기란 정말 어렵다. 애초에 남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같은지 아닌지도 분별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건대, 그 레벨까지 도달하기가 어려운 사람도 있긴 있는 듯하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것과 다른 사람에게 막말하면서 '닥치고 내 말이나 들어'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말하기 전에 약자 괴롭히지 말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해도 개무시당하지 않을지 생각은 좀 하고 살자.

 

위 설명에 따르면 '백합'은 여성들 사이의 로맨틱한 우정, 동경, 연애를 모두 의미한다. 우정과 연애 어느 하나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과 관계들, 그 사이에 이름 없이 놓여 있던 감정과 관계까지 모두 아우른다. (그러나 본격 문학작품과 영화를 백합물이라 부르지 않고, 삼사십 대 여성들의 로맨스를 백합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결국 현재의 '백합'이란 만화와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이라는 특정 하위문화 장르의 용어이며, 젊은 여성들 특히 십 대 여학생들의 관계를 일컫는 말로 한정된다고 할 수 있다.)

 

 위 설명에 따르면 '백합'은 여성들 사이의 로맨틱한 우정, 동경, 연애를 모두 의미한다. 우정과 연애 어느 하나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과 관계들, 그 사이에 이름 없이 놓여 있던 감정과 관계까지 모두 아우른다. (그러나 본격 문학작품과 영화를 백합물이라 부르지 않고, 삼사십 대 여성들의 로맨스를 백합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결국 현재의 '백합'이란 만화와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이라는 특정 하위문화 장르의 용어이며, 젊은 여성들 특히 십 대 여학생들의 관계를 일컫는 말로 한정된다고 할 수 있다.)



 


언니 저 달나라로 1탄에서도 왠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는 것 같지만, 일본 여학생의 비극을 폭넓게 다루었었다. 2탄에서 아마 동반자살을 심도 있게 다룰 것 같다. 혼불에서도 나오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나라 만큼이나 일본 내의 운동권들과 성소수자들도 박해를 당했었다.



42년이면 2차대전이 한창이고 당시 한국은 파쇼정권인 구 일본에게 점령당하고 있었다. 그랬을 뿐 아니라 당시 독일과 동맹국인데다 같은 파쇼성향이라 일본 게슈타포들이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당시 한국인보다 더 지독하게 했을 듯했다는 예측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독일과는 좀 다른 케이스였다고 할까?

남성 중에서 간혹 나에게 '근데 백합물은 왜 다 그렇게 막장이야?'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글쎄. 애초 여성 간 동성애는 동반자살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이 중에서 팔팔한 십 대이자 부자인 영애들의 죽음이 많이 부각되었다. 당시 매스컴을 움켜쥐었던 일본 남성들은 여성 동성애에 관심이 많았다. 언니 저 달나라로 1권을 보면 오히려 일본 여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적극 장려하기도 했다. 기껏해야 질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건 처녀성을 잃는 행위에서 노카운트라는 것일지. 아무튼 일본의 여학생들은 애인을 버리고 다른 남성과 사귀던지, 아님 애인과 동반자살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반자살한 그들의 시체와 가족과 소유물은 매스컴에 맛깔나게 팔려나갔다. 솔직히 최근의 백합물이라고 해서 다를 게 뭔가. 소프트한 백합물은 항상 친구이상 애인미만만을 다루고 있다. 가끔 시트러스같은 하드한 백합물도 있지만, 그것 또한 연애의 첫 시작을 찍는 이야기이다. BL물에서는 가끔 연애하는 커플의 권태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내가 최근 본 백합물에선 헤어져 다른 연인과 사귀어도 그녀의 앞날은 죽음뿐이더라.

또한 소프트한 백합물은 서로 좋아한다고 고백한 게 아닌데 노출은 많이 나온다. 여차하면 남자가 거기 끼어들어 3P 베드씬을 찍을 기회를 주는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난교를 배경으로 하는 동인지에서 2명 이상의 여성이 나오면 서로 키스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사실 그건 소프트한 백합물이라기 보단 '덮밥물'이 아닐지.

뭐 그렇다고 백합물 애니를 보지 말란 말은 아니다. 나도 바쿠온 등 몇 개 소프트물로 보고 있고(...) 단지 그런 걸 볼 땐 가끔 동성애자 생각 좀 해달라는 것 ㅎㅎ;

백합물 중에서도 반드시 등장하고 유일하게 여성 간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는 게 가족, 그 중에서도 특히 노인이다. 그들은 남녀 불문하고 여성에게 자식을 출산하고 길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책임을 지운다. 현재는 1인 가구의 유행으로 인해 그런 것도 사라진 듯하지만, 나이가 들었거나 이미 결혼한 여성은 동성애가 아직 상당히 위험하다. 임신할 시기도 놓친데다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여성이라 결혼도 안 하는 여성은 국가에 쓸모가 없을 뿐더러 가문에 수치를 안겨 줄 뿐이다. 이용가치가 없으니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하기사 최근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50대 여성이 연인에게 살해당했다 하니 어떻게든 죽는 건 변함이 없을 것 같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겠지만, 저들은 사랑하니깐 죽일 수 있다.

 

나야 뭐 나이가 들어도 어차피 빨리 죽고 싶어서 상관은 없다만, 험하게 죽지 않았음 좋겠는데 말이다. 나한테 초등학교 전부터 죽고 싶다고 계속 이야기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클램프를 추천해주며 동성애를 거론했던 친구였다. 난 딱히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던지라 관계는 금방 깨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오빠와 어머니가 가정학대를 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그 땐 어려서 잘 몰랐다. 살아는 있을까. 여성과 소수자는 언제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두 개가 겹쳐지면 말할 나위도 없지.

소설에서 재현한 게이, 즉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에 노출된-여성스러운-약물과 섹스에 탐닉하는-가족과 불화하는-게이는 출판사와 평론계가 부각하는 대로 "루저 중의 루저인 정크족"의 대표 격이 될 법하다. 특히 마케팅 과정에서 부각된, 직접 동성애자들을 인터뷰하고 보건소에서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는 작가의 취재 경험과 주인공을 게이로 설정한 이유로 "특히 청년 게이는 청춘 중에서도 더욱 힘든 삶을 살게 마련"이라 답한 작가의 취재 '이력'은 소설 주인공과 같은 '게이들의 힘든 삶'에 대한 증명처럼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


 


아니 시벌 그래 다 좋은데 보건소에서 에이즈 검사 받는 거 뭔데 걍 보건소에 들어가서 물어보면 될 거 아냐. 저게 뭐라고 마케팅까지 했냐? 이성애자들에게 성매매 하는 사람들도 에이즈 검사 받는다.



여태까진 페미 혐오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를 히키코모리에 타자칠 줄 밖에 모르는 살집 있는 여자로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줄곧 생각해왔다. 그 결과 미러링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이들은 정말로 여성을 차별하는 공간 속에 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또 실제로 페미니스트를 멋대로 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페미니스트인데도, 그럭저럭 돈 벌며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들이 비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인지, 그럭저럭 잘 산다는 나의 말을 그들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어차피 승진이 어려운 직장에 취직하고 있지? 그래도 취직이 힘든 자격증을 따려고 하고 있지? 여전히 트집을 잡을 구실을 찾으려 한다. 자신의 색안경을 벗을 생각은 안 하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생각해보자. 정말 운이 없어서 이성애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야 동성애자인게 동성애 혐오자들에게 들킬 염려는 없다. 에이즈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여러 약도 존재해서 돈만 있음 손에 넣을 수 있고, 레즈비언들은 애초에 에이즈 염려가 없다. 그런데 왜 동성애 혐오자들은 동성애자들이 사회생활을 못할 거라 극단적으로 생각할까? 이는 동성애자가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를 과시하는 행위라 생각한다.

요새 동성애를 다루는 순문학이 많아지고 있는데, 동성애 혐오자들의 꼰대적인 시각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들은 왜 색안경을 벗지 못하는 것일까? 오만하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동성애자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동시에 자극적인 소재를 채용하려 애쓰는 게 역겹다. 진심으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 걱정한다면, 동성애자들을 상처입히지 않을 방법에 대한 이론적 공부부터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순리대로라면 그 다음이 동성애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일 것이다. 근데 정말 내 주변에 나보다 잘 사는 동성애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 흑흑 양성애자 솔로 울어양.

 

아까 했던 이야기에서 좀 더 확장하자면 사회생활 많이 하고 돈 많이 쓰는 게 뭐가 좋은지 이제는 단정지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이건 내 환경이 좋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 많이 살 수 없는 건 아쉽지만 대체물로 집에 도서관이 있고, 이렇게 아픈 곳 없이 일 안 하면서 여유잡고 공부만 할 수 있고, 어차피 돈 많아도 이젠 성인병 무서워서 밥 많이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내가 다니는 대학교 비웃어도 그냥 무념무상하게 되었다. 문제는 취업이야 등신대들아... 뭐 어느 학교는 안 뽑아준다고 하지만 그게 뭔 대수라고. 붙으면 장땡이다. 모두들 가난해지고 중산층이 흔들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는 게 다 비슷해지는 건 사실 같다. 차별하고 혐오해봤자 이제 더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그렇게 하는 사람만 비웃음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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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RETURN OF KINGS(1): Gファンタジ-コミックス (コミック) K RETURN OF KINGS (Gファンタジ-コミックス) 1
汐田晴人 鈴木鈴 / スクウェア·エニックス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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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만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문학의 위기도 겪고 있습니다. 유럽 문학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유럽에서 경험하는 것은 정신의 위기입니다. (...) 지난 십 년 혹은 이십 년 동안 문학에서는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책은 홍수처럼 출간되지만 정신은 정지 상태입니다. 원인은 커뮤니케이션의 위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경탄할 만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냅니다."- <에로스의 종말> p. 93

세상에는 어느 정도 질서가 필요하다. 무분별한 포르노그래피는 인간의 상상력을 가로막고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상상력과 창조력은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성장하는 로봇과 우리가 대결할 유일한 수단이라고도 일컬여진다. 그런데 포르노그래피는 저항하는 우리에게 선택권을 준다. 원한다면 현재 세상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타자를 차단하고 관계를 끊게 만들 수 있다. 모두가 선택할 힘을 원하며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I can do it을 외친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는 애초 자본주의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돈이 많은 자에게만 진정한 자유를 부여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포르노를 정할 자유만을 가진 채, 포르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간다. 위에선 '선택'이라고 했지만 그게 과연 선택의 차원 이야기인지 의문이다. 데이터에는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계산하느냐 계산하지 않느냐일 뿐.

나이가 더 들었다고 해서 무대에서 은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과 같이 협동하고, 남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젊은이들은 그저 나이 어린 꼰대일 뿐이다. 그들의 생각보다 나이를 따지게 된다면, 세상은 다시 단순한 자본주의와 경쟁 사회 구도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꼰대같은 생각을 하진 않는지 일상적으로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안에 일베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애니는 그걸 단편적이나마 묘사하고 있다.

덕후의 길은 멀지만 일단 정해놓은 것이 더 있어 적어놓는다.

1. 헌터헌터는 구작을 같이 보기로 했다. 생각에 따라 극장판도 추가로 볼 계획이다. 구작이 훨씬 더 사이코 같다던데, 신작을 보는 나로선 대체 어떻게 해야 저거보다 더 사이코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2. K 제작진의 시리즈는 챙겨보기로 했다. 이는 트리거 회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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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4 -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김완 옮김, 야스다 스즈히토 그림 / ㈜소미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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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한다길래 단순한 연애물인 줄 알았건만 상대편 여자가 초짜는 쳐다보도 못할 만큼 넘사벽이었다. 신체적으로도 약골인 주인공인지라, 그는 좋아하며 동경하는 여성을 보며 내적으로 많은 갈등을 한다. 사람들에게도 근처에 올라가지도 못할 인물이니 엄두도 내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나로전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 어째서 어거지란 말을 듣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만일 그 어거지를 부리지 않는다면 사람은 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소소한 반전이 있다는 암시가 여러번 나오지만, 만일 주인공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실력 향상을 위한 단련을 포기했다면 그의 주변에 현재 있는 인물들 자체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나는 이런 성장물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림체는 솔직히 작지만 그쪽으로 영양이 간(...) 헤스티아의 바스트 모핑 덕분에 확실히 뒷받침된다 생각된다. (솔직히 헤스티아의 그런 체형과 옷 때문에 감점이다 쩝. 라노벨 분량에 맞추려고 그러는지 전개는 휙휙 지나가는데 헤스티아 여신만 등장하면 스토리와 대사에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놓친 게 많아짐; 어딜봐도 뽕빨물은 아닌데.) 게다가 게임처럼 설계된 세계관에다 주인공이 꽤 열심히 분발하는 성격이라 액션씬은 굉장히 많은 편이다. 주인공이 쓰는 무기는 서바이벌 나이프에 가까운 크기이지만, 마력을 쓰는 사람도 있고 일본칼을 쓰는 사람도 있고 주변 사람들이 총 빼고 정말로 다양한 무기를 쓰니 골고루 즐길 수 있겠다.

 

 

P.S 아무리 일본인이라는 설정이라지만 온천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마지막화 쯤 서비스 씬이 많이 나오니 꼭 챙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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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면의 힘 민음의 시 223
서동욱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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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밥

모이 먹는 시계는

안에 양계장을 차리고 있다

용두를 돌려 모이를 부수자.

공장의 회전 톱은

야채를 자르고

갈은 벌레를 공급한다

꼬끼오가 시계의 상징이 된 건

이 양계 사업 덕분이다

시계의 살해가 있었는가?

분명 톱니 틈에 낀 인골의 소리였다

사료분쇄기에 사람을 밀어 넣다니!

팔목을 꼭 붙들고 있는 비밀의 도살장

양계업은 위장이다

연필처럼 깎인 무수한 두개골이

기차를 놓친 표정으로 벙쪄 있다


 



개념과 명제는 물론이며 감정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것은 우리를 초과해 있다. 시만큼이나 훨씬 인상적인 글귀였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벽이 뚫리는 것이 그렇게 인간에게 있어 중요하고 소중한 일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벽에서 안전히 보호받으면서 사는 하루하루가 귀중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현대시는 옛날의 시와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벽을 파괴함으로서 시는 시인을 제외한 문인들에게서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시는 자유롭게 되었다.


시가 어딘가 친숙하다 싶어서 광고 같은 시인가 했는데 센다이의 수상 대학을 읽으니 어딘가 일본어로 된 가사같기도 하다. 묘하네.

아무튼 한국 시치고는 제법 건조하고 깔끔한 맛이 있다. 그렇다고 짧은 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지금 생각해보니 세계음치라고 일본 단가 짓는 사람 호무라 히로시 많이 닮은 것 같다. 작법이나 스타일이나. 혹시 해서 얘기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표절 얘기한 건 아님;)


전체적으로는 자신을 철학덕후인 듯 소개하면서, 과학으로 향해 돌진하는 현재 철학의 태세를 절묘하게 비판하고 있다. 물이 인간의 감정인데, 오랫동안 그 감정이 철학의 빛으로 인해 말라붙어 있어서 세상이 과자처럼 바스락거리고, 그 소리가 무섭다고 하니 말이다. 전체적으로 시집의 세계관이 탄탄하다. 시집으로 나올 걸 의도하고 짰다면 음.. 무서울 정도로 예리하고 치밀한 시인이라 하겠다.

 

이별의 복기 중에서


1

잃어버린 동전처럼

구석을 점유하고 있으면 안 된다

줄 서 있는 식판들처럼 게 껍질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이동해야지

자신을 망가진 피규어처럼 애지중지해 보자

가령 볼펜의 스프링 같은 귀중한 부속은 우리에겐 감기약

추워서 훌쩍거리는 건 아녜요 그래도

망가진 피규어를 겨우 지탱하는 이쑤시개 또는

감기약, 우리는 쏟아지는 새우깡처럼

저녁의 바람 속에 있고

스프링이 사라져 해는 매달아 놓은 껌만 지익 늘어나

결국 미지근한 강가에 떨어져 익는 게 한 마리

이런 저녁엔 동전을 움직여 볼 힘이 없습니다


2

(...) 정신의 불은 검은 구멍

준법은 맥주

그리고 꽤액


 


 

시인은 항상 맨 끝에 술을 적어놓더라. 왠지 끄트머리에 중요한 문장을 적어 놓는 걸 좋아하는 분 같았다. 나랑 취향이 맞았다.

 

​음 오랜만의 야짤인데, 페친과 블로그의 반응이 두렵다. 저는 그저 맥주와 꽤액이라길래 제가 에반게리온 내 밀어주는 커플 신지X아스카 커플과 이 장면이 생각나서 올립니다. 가릴 거 다 가려서 아주 아쉽다거나 저 빌어먹을 맥주캔 좀 정리했음 좋겠다거나 빨대를 왜 맥주캔에 꽂는 거냐아 하는 생각은 요만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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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라이더 이그제이드 스티커 미니북
대원키즈 편집부 엮음 / 대원키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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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라면서 왠지 그냥 남의 게임 가서 붓페인터 그려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아이디어는 꽤 좋은 듯하다. 단지 저런 게임이 생겨서 어느 회사의 게임이나 침입해 난동부릴 수 있다면 저작권이나 해킹 문제는 있을 듯. 어쨌거나 일본은 미국만큼 저작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강하지 않고. 게다가 이건 단 쿠로토라서 해낼 수 있는 생각인 듯. 가면라이더 이그제이드만의 3D 떡칠(?)을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다. 나도 저 게임 해보고 싶을 정도.

 

역시 이그제이드인지라 유치함에 대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통제하려는 아버지의 욕심이 가족 사랑으로 미화되어 표현된 게 무척 짜증스럽다. 어쨌거나 가면라이더 사상 유달리 개판 오분전인 팀워크를 무려 50화동안 혼자서 정리해왔듯이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는 호죠 에무의 신념은 결국 이번 적에게도 전달되었고, 그는 결국 환자의 가족관계를 치료해준 셈이다. 요즘 트렌드인 사회복지와 아버지의 올바른 육아활동을 잘 잡았다고 할까.

 

마지막 쿠키영상에서 호죠 에무가 결국 쿠로토를 자기 분신으로 받아들인 점, 그리고 가면라이더 빌드가 악당처럼 나온 것도 흥미롭다. 한 사건을 바라볼 때 유달리 각자의 시각이 다른, 이그제이드 다운 영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이 서로 다른 가면라이더가 등장하는 게 다음 편과는 그닥 연관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빌드가 그 다음 나올 극장판인 새드 엔딩 V시네마와 연관되어 나오는 게 아닐지? 약간 스포를 뿌리자면 빌드는 좋은 의도로 이그제이드에게 접근해온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쨌던 간에 막무가내로 호죠 에무의 힘을 빼앗은 건 ㅎㅎ 날강도 같았다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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