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도 보도 못한 정치 -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유쾌한 실험
이진순.와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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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공격적이고 폄하하는 발언들의 95%가 여성들을 향해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을 드러내거나, 평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여성들은 폭력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됩니다. 온라인상에서 남성 우월성은 심지어 평등을 지향하는 조직 안에서 훨씬 더 미묘하고 복잡하게 드러납니다. 직접적이고 권위적인 어투로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이론상 디지털미디어는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에선 권력 관계나 문화적 패턴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한남충한남충거리지 마세요~
남녀 모두 사이좋게 지내요~ 

 

 

 씨발.
 너네가 이런 댓글 다는 게 폭력이다.

 

 

  

일단 출간할 타이밍을 잘 잡은 것 같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대로변에서도 이 책을 읽다가 '빨갱이'라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았겠지. 하루종일 이 책을 표지 다 보이게 읽고 다녔지만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볼 뿐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 아버지는 씩씩대면서 들어왔는데, 식당에서 30대 남자가 술에 만취해서는 뉴스말고 드라마를 틀라며 아무에게나 욕을 해댔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메시지를 표명하기 위해 시청 앞에서 책을 읽었던 캠페인이 떠올랐다. 역시 책은 지식의 보고라는 말이 있어서 표지가 대놓고 혁명적이더라도 모두들 닥치는 효과가 있어 좋은 듯 하다. 개인의 선택의 자유라던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 관점에서 방어도 가능하고.

 일단 이 책의 문제점을 좀 지적할 수밖에 없겠다. 첫째, 우리나라에서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여태 정치에 시스템이 도입되지 못한 이유가 여러가지 겹쳐져 있다. 일단 노무현의 개죽음이 가장 크다. 그는 네트워크를 신뢰했으나 이 책에서 말하듯 기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진보적인 것은 아니기에 인격적 모욕만 잔뜩 받고 사망하였다. 게다가 프로그래머들의 박봉도 있다. 오픈소스를 쓴다고 말은 하지만 책에서 나오는 이들도 어딘가에서 돈을 받으면서 먹고 자고 하면서 프로그램 개발을 했을 것이다. 더 이상 지칠대로 지친 청년들에게 열정페이를 바래서는 안 될 일이다.

 두번째로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해커'다. 우리나라는 IMF 위기 이전에도 각종 위기를 겪어왔고 극단적인 자본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으로 정치를 한다면 각종 정당이 실력 있는 해커를 고용하기 위해 돈을 쏟아부을 가능성이 있으며, 결국 돈 많은 당이 네트워크를 지배할 수 있다. 일베가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은 빈민이라던가 장애인에 대해 책으로 봤거나 해서 전혀 모를 것이며, 이는 결국 현장에는 가 보지도 않고 탁상공론하는 무능한 기업인들과 하나도 다를바 없다. 실제로 이과 사람들이 팟캐스트에서 '로봇이 나오면 택배기사들은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다. 그들은 결국 정치계 싸움의 용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며, 최악의 상황에선 정치라는 자리에서 인간을 없앨 수도 있다. 시위에 참여하면 별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되는데, 정신이상자도 거지도 장애인도 다 있다. 이들은 네트워크에 접속하기도 힘들지만, 엄연히 시민이다.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현장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네트워크보다 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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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팜 파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0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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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 잡념 중에서

어디선가 뵌 것 같아요
내가 머리를 굴리느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벗겨놓으면 그년이 그년이라고

 

 

  

시에서는 여자는 벗으면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한편으론 시 자체로 그걸 또 부정하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녀는 실비아 플라스의 시에서 보이는 어마어마한 자괴감과 실비아 수수께끼라는 시집에서 보여지는 가정에 대한 극도의 집착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인의 기구한 삶이 시집에서 그대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 보임으로서 슬픔을 중화시키고 있다. 슬픈 와중에 이 분열된 인격들이 갑자기 등장하여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지라, 그녀가 결국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알기 힘들다.

 한때 성별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중성'이라고 쓰는 게 유행했다. 남성들은 대부분 여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성 자신들에게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암담하기만 하다. 보통 여성의 아름다움은 남성이라던가 성관계에 의해서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화자 즉 팜 파탈은 철학자들의 이름을 부름으로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분석적으로 찾아내려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일기 형태거나 스토리텔링으로 쓰여 있지만, 결코 읽기 편한 시는 아니다.

 그러고보면 "좋은 사람으로 불리우는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기만 할까", "이 세상을 편하게 살기 위해선 매사에 진지해야만 하는구나. 강간으로 테크닉을 배웠다는 농담조차 할 수 없다니." 등의 사유를 할 수 있는 팜 파탈은 여성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백치미에 어긋나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사유를 포기하지 않는 한편, 끊임없이 세이렌의 노래를 불러댄다. 물론, 그건 파리의 능글맞은 남성을 향한 추억의 노래같은 것이지 딱히 남성을 유혹하는 노래는 아니다. 착각하지 말기를.

유령 시인들의 정원을 지나 중에서

#6
우르르 유령 시인들이 몰려와 여자의 종이를 찢어 버립니다. 종이만 찢었을 뿐인데 여자의 가슴에서 피가 흐릅니다. 욕조 안에 핏물이 고입니다. 유령 시인들은 종이에 대고 협박합니다. 자신의 시를 모방했다고, 갖은 기교 범벅 비스킷 같다느니 뭐니 벽돌로 여자의 머리를 빗어줍니다. 칭찬은 아닌 것 같은데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상 옆에서 김수영이 사랑에 미쳐 날뛰는 날을 이야기합니다. 전 당신들을 닮을 생각도 없고 오마주도 모르는데요. 우리는 영원히 무한히 우리를 배신하여...... 입에서 두부만 한 핏덩이가 쏟아집니다. 가만히 보니 오래 묵은 자의식과 낭패감 따위가 묻어 있습니다. 초라한 절망으로는 충분히 가벼워지지 않은 근육들이 핏물에 자유롭게 꿈틀거립니다. 여자는 잠에 빠지듯 혼몽합니다. 몸이 조금씩 빠져나갑니다. 스르르 욕조 구멍에서 빠져나가 다른 세계로 흘러갑니다. 모든 수치와 장난, 인연으로부터 먼 세계로 나아갑니다. 기고 있지만 날아가는 것 같고 유령들과 한패가 된 듯도 하지만 동물들의 울음을 이해합니다. 용감무쌍하지 않고 나약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절반 죽은 것 같습니다.

#7
이모네 근처 키노쿠니야 서점이 있는 건물의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일 년 내내 무더운 도시의 길거리에서 책을 오래 읽는 건 위험합니다. 태생적으로 스스로에게 반한 여자는 유령들이 자신을 모방하는 것에 질렸습니다. 눈 나쁜 사내와 팔짱을 끼고 오래 산책했습니다. 그는 거리의 싸구려 화가였고 아무데서나 키스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루속히 미래로 사내는 사라져야 합니다. 여자는 그의 안경을 엘리자베스 산책로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시구절을 주웠습니다.

#8
급하니 빨리 빨리 빨아

 

 

 

직접적으로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왠지 에반게리온과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이 두 장면이 결합되는군요.

 

여드름투성이 안장 중에서

셔텨 내리고 있는데 누가 기어들어왔다
내 자전거와 부딪힌 승용차 주인이다
나의 안녕을 묻기 위해 퇴근길에 들렀단다
약간의 가슴 통증 외엔 괜찮다고 말하자
천만다행입니다 나를 걱정해주는 보험사 직원 같은 아버지 같은
그가 가져온 상자 백 퍼센트의 순수 원액 어쩌고저쩌고 올라가는 내 책상
이름이 책상이지 무릎 담요와 운동화 칫솔 따위가 있고 쭈뼛하게 사전이 있다
백 퍼센트 말이 되는 거짓말같이 다시 가슴 부위가 저려온다
여기 유방과 쇄골 사이 손바닥으로 눌러주면 조금 낫는 듯하다
교통사고와 연애는 후유증이 더 무섭다고
내일은 병원에 가보라며 남자가 아픈 데를 주물러 준다
호호 불어주다가 애도 아닌데 침을 발라대기 시작한다
한 세트의 유리병들이 위태롭게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
십이 간지 꾸러기 수비대와 몬스터 만화책이 자빠지고
과일을 사라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행상인이 지나가고
얼떨결에 심드렁한 개처럼 남자는 내 치마 아래로 기어들어간다

삐죽삐죽 뻐드렁니가 튀어나온 안장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손잡이를 뿌리치고
오르막길을 달려간다 페달을 돌리면서 살짝살짝 음핵을 비벼주는 게 자전거 타기의 묘미다

 

 

몬스터하면 요한, 꾸러기 수비대하면 치치죠. 잘 어울리는 조합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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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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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 어느 날 밤에 아빠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상카라를 우연히 만났어. 상카라는 나라 일로 그곳에 가 있었고, 아빠는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던 중이었지. 아빠는 그의 숙소인 호텔에서 그와 마주앉아 20년 전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살해된 체 게바라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했어. 상카라는 "살해될 당시 그는 몇 살이었을까요?"하고 물었고, 아빠는 "39세 8개월"이라고 대답했어. 그러자 생각에 잠겨 있던 상카라는 "나도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요?"라고 하더구나. 만약 살아 있었더라면 상카라는 살해된 해 12월에 38세 생일을 맞이했을 텐데 말이야.

  

소련이 무너지기까지 인류가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잘못 불렸던 부패한 국가자본주의에 있었다라... 북한 욕할 때부터 불안하더니 책 저자가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음. 공산주의는 세계에서 혼자 고립되었기 때문에 그 이론이 더럽혀졌던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각 나라의 독립을 주장하는지?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랬다가는 남한과 북한의 전쟁과 그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질 따름이다. 유엔으로 인해 한 명의 아이라도 기아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하지만 정작 유엔기구의 원조는 전쟁에서 한 쪽의 원조로서 여겨지며 그게 더 큰 피해를 초래한다는 걸 저자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나중에 에필로그 부분에선 나오지만.) 근본적인 인간의 전쟁 본능을 뿌리뽑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 유엔기구로서는 힘들다. 당장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아프리카의 상황에선 특히나 완전 독립을 요구하기가 힘들다. 인간은 전쟁을 좋아한다.

 이 책은 또한 부시 편을 들어주는데 여기서 유엔이 미국의 꼭두각시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나마 이 책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빛나는 점이 있다면 저자의 유엔 활동에 대한 이야기보단 끝부분의 상카라에 대한 짧은 설명이다. 굶어 죽는 아이처럼 그 또한 체 게바라보다도 짧은 인생을 살았다.

 아이들은 원래 현 시대처럼 극진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중세시대에 아이들이 작은 어른, 즉 드워프 취급을 받았던 게 고작이다. 반지의 제왕만 봐도 알겠지만 그들은 인간을 닮은 종족 중 제일 땅딸막하다고 무시받고 천대받으며 땅굴 속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었다. 예전부터 그래왔긴 하지만, 노동력이 필요하고 인류의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대우하는 척 하면서 어느 순간 배신하는 건 비겁한 짓이지 않은가. 심지어 어떤 아이는 정유라같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다른 아이는 나같이 뭣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둘의 입장이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생각된다. 이는 마치 샘물 안에 있으면서도 손으로 물을 뜨려하면 물이 달아나버린다는 지옥의 이야기와 흡사하지 않은가. 천국은 모두가 성적욕구없이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이라 한다. 기아민들의 천국엔 맛있는 음식이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국가가 힘들어하는 요소들을 열거하는데 왠지 우리나라가 오버랩되는 건 기분 탓이냐. 젠장. 역시 애를 낳지 않는게 제일 훌륭한 해결책인 듯하다. 낳자마자 굶겨죽일 거면 뭐하러 세상에 나오게 하나. 기아의 후원만큼이나 피임교육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원조보다는 개혁이 우선시해야 된다고 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아이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우리는 저자도 부자임을 감안해야 하며, '내 새끼에겐 빈궁함을 주고 싶지 않은' 아빠임을 감안해야 한다. 모든 선생님들이 기아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일반화는 정말이지 너무나 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이 책으로 기아에 대해 배우느니 차라리 레닌에 대해서 배우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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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비틀거리는 날이면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시인들이 보내는 5월의 시!
안도현.도종환.이창동.유시민.명계남 외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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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하다

백승훈

앵두나무 우물가에
그녀가 산다

경기도 포천시 동교동 255-2번지
정든 집 떠나 전입신고도 없이
몸부터 먼저 가 누운
샘물치매요양원

얘야, 밥 먹어야지, 밥 먹구 가

면회 마치고
요양원 입구 길 모퉁이 카페
'앵두나무 우물가에'를 돌아 나올 때
등 뒤로 들려오던 어머니 음성
차는 돌부리에 채여
덜컥, 하고
나는 노모의 목소리에 걸려
울컥, 하고

 

 

 

일단, 나는 노무현에 관심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망하신 분이라 더 관심이 없다. 자살이던 타살이던 사망하지만 않으셨다면 봉하마을을 방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관심은 노무현을 맹신했던 사람들에게 있을 뿐이지 노무현에게 있진 않다.

 

 변명같긴 하지만 나는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수능과 드래곤라자같은 판타지소설과 BL물에 열중해 있느라 정치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즉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나는 지랄맞은 담임을 만났고, 그 년이 날 학대할 때 대통령은 나에게 어떤 직접적인 악영향도 도움도 주지 않았다. 노무현도 그러했다. 대통령에게 속았다는 사람들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하느님은 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가' 따위를 지껄이는 개신교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야만스런 대통령이 하는 짓을 보면서 나는 다시 중국 성인의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정치인이 정치를 잘한다는 첫째 증거는 백성들이 정치에 대해 호감도 없고 반감도 없고 그냥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금은 민주주의라서 그런 이상이 더이상 실현되지 못하리라. 그리고 그 정치가는 굉장히 고독하리라. 노무현은 이 두가지를 잊어버리고 자신 혼자 이 모두를 떠맡느라 죽음을 당했다. 이는 중국 성인의 또 다른 말을 생각나게 한다. '전쟁에선 최대한 손실이 적어야 한다.' 사실 이 문장도 일대 혁명이다. 적군과 아군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을 제거해 나가는 게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단어 하나로 작전이라는 단어가 탄생했고 전쟁은 진화를 거듭했다. 그는 정치에 너무 빠져들어 자신이 수행하는 일이 전쟁이라는 사실을 까먹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혁명가는 수명이 짧다. 그래도 노무현 정도면 오래 산 거지.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시인뿐만 아니라 시인이 아닌 사람들도 시를 썼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부담스럽고 닭살이 돋았지만 제법 사람 냄새도 나고 좋다. 무엇보다 이 시집에 쓰인 메타포들은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 전남진의 마지막 헌시에서 나온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요. 그건 당신을 부르는 초혼이라는 걸 알았어요.'라던가는 세월호 추모때에도 실제로 쓰였다. 죽은 사람은 잊혀질지라도 좋은 추모글들은 오래 간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참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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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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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보세요?" 하고 물었다. 그는 그녀를 깨우지 말고 다시 재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의 생각 속에서 새로운 꿈의 씨앗을 낳게 할 만한 단어로 대답하려고 애썼다.
"별을 보고 있어." 하고 말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당신은 별을 보고 있지 않아요. 당신은 땅바닥을 보고 있어요."
"비행기에 타고 있으니 별이 우리 아래에 있지."
"아, 그런가요?" 하고 테레사가 말했다.

 

 

 일단 이 책은 전부 무겁다. 가벼움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가벼움을 자유연애에서 찾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목숨걸고 여자를 찾는 토마스가 목줄 묶인 개처럼 보이냐. 차라리 아내 따로 여학생 애인 따로 둔 프란츠가 훨씬 자유로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사비나라는 여성 빼면 대체로 마음대로 집어치우고 집을 나설 수가 없는 상류층 이야기라서 분위기가 무거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그 사비나도 우울증에 걸려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 생각으로는 아내 테레사가 겁나 마음대로 휘두르는 토마스를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님 마음 속 깊은 곳으론 그들의 심각한 사랑이 부러워서 그런 애정을 애인 프란츠에게서 찾으려 했는지도. 아무튼 운동권의 그 복잡한 사랑 이야기 생각나고 재밌다. 토마스는 여자랑 섹스를 하면서 그녀에게서 백만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자아를 발견한다고 한데, 아무래도 그 이론이 운동권 마초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생물심리학을 보자. 씨를 광활하게 뿌리려는 게 수컷이라 함으로서 토마스의 이론이 완벽한 개소리라는 게 입증된다. 생각해보면 과학의 발전도 어느 정도 세상에 도움이 된다. 지가 절제를 못해서 테레사가 저렇게 고통을 받는 걸 보고,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낀다면 아예 무성애자로 사는 게 나을텐데. 결국 테레사의 호기심으로 인해 사건이 커지면서 소설의 재미도 더욱 커진다.

 자유연애 자체로 보면 진짜 여자가 손해보기 딱 좋은 듯. 이 소설에서도 관계의 결실(혹은 현실과 연관된 귀찮은 존재)이라 볼 수 있는 애는 등장도 안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연애를 하면 다 여자가 책임을 져야 하고, 안 하면 여자가 혼자 정절을 지켜야 하고 아무튼 다 여자가 불리하지 않은가. 남자들은 좋은 여자 잡았으면 한눈 팔지 마라... 반대도 마찬가지고.

 그렇다고 급진 페미니즘으로 가면 어떻게 되느냐? 테레사가 된다. 일단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좋아하는 남자를 닮기 위해 바람을 폈다지만, 결과는 미러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에 대한 질투와 분노로 인해 마초들이 주장하는 '성적 이분법'은 남게 되는 것이다. 거울에 비춰서 좌우를 반대로 바꿔도 일단 대상은 같기 때문에. 그런데 여자는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간에 남자와는 다르기 때문에 남자가 바람필 때 느끼는 그 감정을 겪을 수 없다. 이 책은 피해자중심주의에 빠진 급진 페미니즘의 치명적인 단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토마스가 바람을 피는 이유에 대해 온갖 변명을 하듯이 그녀도 온갖 변명을 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결국 결혼의 붕괴와 죽음이었다. 급진 페미니즘 또한 그렇다고 난 생각한다. 그들이 펼치는 시위도 '검은 시위'이지 않은가. 물론 지금 젠더라는 개념이 나왔지만 이 책에선 시대가 시대니만큼 아직 미숙하고.

 

  

많이 힘들지만, 절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개와 인간의 사랑이 인간과 인간의 사랑보다 더 위대하다 생각된다면, 심지어 살인자라고 할지라도 용서못할 건 없다고 생각된다. 법의 심판을 얌전히 받는다는 가정 하에. 하얀 거짓말은 여전히 말도 안 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건 마치 투표를 아예 안 하고 침묵하는 게 자신의 소신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냥 가만히 넘어가도 될만한 것들이 산적해있다. 우리는 정치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왜 남이 나에게 저지른 부당한 일에 대해선 침묵하지 못하는가.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해는 하지만 나는 특히 남성이 여성을 성추행한 후 여성이 그것을 SNS같은 데다가 퍼뜨리는 경우를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나도 한때 누군가의 추문을 그런 식으로 퍼뜨린 적이 있지만, 그래봤자 상대방은 나를 더 싫어하게 될 뿐이며 나는 미묘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해결법은 사실 간단하다. 그냥 상대방의 키치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나와 키치가 맞다고 생각되는, 혹은 착각되어지는 사람을 찾아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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