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간다
이인휘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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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에서 두번이나 아주머니들을 멋대로 해석했다. 공장의 불빛에서는 돈 몇푼에 목을 매며 죽은 듯이 지내는 사람들로 묘사했고, 폐허를 보다에서는 한 여인이 절망적인 세상을 봤음에도 다시 공장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썼다. 나의 주관적인 오만한 생각이 그들을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규정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결혼한 사이일 때 남자가 아프면 여자가 병간호해 주는데 여자가 아프면 대체로 남자들이 병간호를 잘 안 해줌. 그러면서 자기 내조해주는 건 완전 당연한 걸로 생각하던데. 근데 연애 초기에는 잘 해줌 솔직히 사기 아니냐 ㅡㅡ


소설에 나오는 왕언니도 아무 일의 고됨도 모른 채 손주 손을 잡고 나들이하러 가다 호떡을 사려고 하는 삶을 원할지 모른다. 이 문제는 그녀가 출세하는 것만으로 해결될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이미 그것을 만들며 사는 사람의 고됨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가 최저임금보다 더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를 요행이 찾아 공장을 떠난다면, 다른 어려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일베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예처럼 잘 일한다고 하며 삶이 힘들다고 사회에 책임을 돌리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 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은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계급을 벗어나는 걸 상상할 수도 없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

 

문득 동생이 '플랜카드 걸고 1인 시위해도 소용없어. 누나가 뭔데? 아무도 누나 이야길 들어주지 않아'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만큼, 아무도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 아니 그보다 이해를 못 하는 건 형벌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람이 당연히 누릴 수 있을 권리를 못 누리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항의하는 이유는 그 가슴 속에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 안에 있는 용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촛불 시위를 할 용기를 돋구었으며, 여럿의 용기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일면 이인휘 소설가의 글을 왜 주변 사람들이 제대로 해석 못하는지 이해는 한다. 그 사람들은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인휘 소설가는 소위 돈을 잔뜩 모아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글만 쓰는 그런 세련된 소설가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공장에서 차별받는 아주머니 할머님들을 누님이라 부르고, 그녀들은 이인휘 소설가를 오빠라 부른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글을 썼던 것이다. 나도 고모가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일하고 있고, 외할머니께서는 약을 드시며 미아리촌에서 일하는 기생분들의 한복을 짓다가 최근 허리를 못 쓰시게 되어 병상에 눕게 되셨다. 그래도 이인휘 소설가를 난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 분을 차마 뵙질 못하겠다. 현장을 겪지 않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이 냉철한 마음으로 세상을 꿰뚫어보고 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는 게 몇몇은 괴로운 것이다. 그의 소설에선 환상이 없다.

 

물론 그것은 기생충과 다르다. 소설의 제목은 '건너간다'이다. 소설에서 정태춘은 아무도 자신을 눈여겨보지 않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최근 관심을 받으려 하는 짓거리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힘들다 여기는 유투버들을 생각할 때,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처절함을 희망이라 부르는 것일까. 혁명이라 부르는 것일까.

 

내가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하는 것도 좀 꼰대같긴 한데. 그래도 환상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나서 말한다.

세상이 니 머리와 니 얼굴로 성공하기란 존내 어려운 세상이다. 아, 돈은 좀 있네. 근데 그렇다고 아버지가 삼성전자 회장임? 그런 것도 아니면서 벌써 꼰대소리하고 친구를 몰아세우고 그러는 모습 보기가 안 좋다. 분수를 모른단 소린 안 하겠지만, 재벌들 얼마나 똑똑한지 아나? 제발 거울 좀 보고 정신차렸음 좋겠다. 어느 스님이 그랬지. 제발 거울에 때가 꼈음 좀 닦고 관리하라고. 페북질이란 말도 웃기지만, 스마트폰 꺼내는 충동 눌러도 충분히 자기가 하기 싫고 듣기 싫은 교육 받으며 생각 정리할 수 있다. 쓸데없는 환상 품지 마라. 메이져 편 든다고 니가 메이져 되는 게 아님. 나도 공감능력 딸리긴 한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지식을 쌓고 노력을 하면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너 자신을 알고 수양하기를 바람. 악플다는 인간들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듯.

 

노동하는 손이 과연 아름답냐고 이인휘 소설가가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나는 들었다. 쥐의 똥오줌이 아름다운가? 곰팡이가 아름다운가? 이에 답하려면 내 레벨로서는 많은 생각과 내공이 필요할 것 같다.

 

소설가 분이 페친이시지만 딱 불평 한마디만 하자면 난 화자가 왜 창녀촌을 가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그러고서 페미니즘 소설을 쓰는 것도 모순적이긴 하지만 남자가 힘들면 무작정 술과 여자를 찾는 방법밖에 없나? 당구라던가 다른 데서 스트레스 풀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계속 비슷한 화자가 반복되다 보니 살짝 질리는 면이 있다. 그나마 음악 가사나 책에 나온 구절이 흥미를 돋구는지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으면 더욱 이 책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나마 최근에 쓰신 두 권의 책은 기존의 책들과 좀 다른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관 안은 캄캄했다. 형은 내 손을 잡아끌어 자리에 앉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엿과 찹쌀떡과 사탕을 파는 판매원이 목판을 들고서 돌아다녔다. 형이 사탕을 사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나는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대한뉴스가 스크린에 펼쳐지며 말들을 쏟아내자 충격을 받았다. (...)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가 전국토를 울리던 그 시절 우리는 학교 조회시간마다 '국기에 대한 멩세'를 외워 복창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그럴 때마다 재범이는 "퍽큐!"를 외쳤다.

 




 


 

혹시 모르지만 유신 좋아하시는 분이 글을 읽고 계실까봐 생략하긴 했지만 퍽큐는 그분의 사진에다 하셨다 합니다. 무튼 이 대목을 읽으니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이 많아지네요 ㅋㅋㅋ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왕따시킬 틈도 없고 몸도 건강해져서 좋았다나요. (물론 이 말씀을 하신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죽어라 버신 돈으로 매우 좋은 학교를 다니셨다 합니다 ㅋ... 왕따는 안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두들겨 패던 시절이었고, 예전 학교 폭력이 훨씬 심했는데 지나고 나니 기억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당시 대한민국 위장취업자 구속 1호였던 강원대 출신 박인균은 태백에서 광부로 활동하고 있었다. 보안사는 그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프락치를 시켜 탄광 폭파를 계획한 주범으로 몰려고 했다. (...) 박인균이 노동운동은 공장과 노동자를 함께 살리는 운동이라고 설득하자 프락치는 그의 머리를 쳐 미인폭포 밑으로 떨어뜨렸다. (.. ) 그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은 뒤 구타와 물고문 그리고 잠 안 재우기 고문 등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당했다. (...) 천주교에서는 정부를 향해 광산 간첩단 조작 사건의 진상 조사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이듬해 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면서 이 사건은 묻혔다.



 


 

근데 이런 거 보면 차라리 난 광부같이 목숨 걸고 힘들게 일하는 직업은 돈을 좀 많이 줬음 좋겠다. 외국에서는 광부가 말 그대로 억소리 나게 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광부 연봉 평균이 3500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면 사고나도 왠만하면 죽지 않을 체력의 젊은이들 인력으로 쓸 수 있고 말이다. 쓰다보니 또 열받는데 자유한국당같이 국회 일 못하게 하는 국회의원들 월급 떼서 그 사람들한테 주면 안 되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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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Mobile Suit Gundam Age TV Series: Collection 2 (기동전사 건담 에이지)(한글무자막)(Blu-ray)
RIGHT STUF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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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단언하건대 크루 구성은 최악이고... 내부에 배신자까지 쏟아지니 이건 당장 해산시켜도 할 말이 없긴 한데 건담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배경을 형성시키는 듯하다. 일단 강압적인 할아버지는 군에서 은퇴하신 데다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들에게보단 고압적으로 대하지도 않고, 함장도 무능하니 일단 발진하고 봐도 혼낼 사람이 없엌ㅋㅋㅋ 아버지에게도 안 맞아본 뺨을 모르는 인간에게 맞아본 퍼스트 건담 주인공이 존내 부러워할 환경.

난 38화가 굉장히 베낀 게 많은 거 빼곤(건담 Seed 닮았다는 건 좀 오바고 난 목성 도마뱀 생각났다) 왜 욕을 먹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루는 시한부 인생인 거 좋아한다는 것쯤 모르는 척하고 그냥 친구로 좋게 지내면 서로서로 좋지 않나? 내가 너무 매정하게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이제르칸트 할아범이 드디어 프로젝트 에덴이라는 곳을 보여주는데 아니 시뎅 처음에 인간이 한 명도 없어 ㅋㅋㅋㅋ 얼마나 뼛속까지 염세주의적인 할아범인겨. 아무튼 에덴은 늘그막에 죽은 어린 외동아들의 한마디를 듣고 정신 나가버린 아버지의 주작극이라는 게 밝혀지게 된다. (누구나 짐작했겠지만.) 근데 베이건에서 희생될 열등한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나 제물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지 새끼 닮은 적군은 치지 못한다니... 개인으로서의 자신만 생각하느라 지도자로서의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자의 말로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지도자가 몸소 싸울 수도 있으나, 아스노 사령관처럼 나이 들면 은퇴하여 후계자들을 지지해주는 따뜻한 리더십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저 베이건 건담을 아셈 친구에게 줬더라면 여기서 벌써 아셈과 그의 아들 모두를 처단하고 지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긴 그런 판단력이 없으니 사이비 종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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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나 아이 1st 사진집 AI - Novel Engine
키즈나 아이 지음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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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픔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공감은 할 수 있다는 것. 열심히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상처는 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어떻게 설명할 수 없지만 주인공의 성장 과정으로 당사자주의에 대해 반박하는 좋은 작품인 것 같다. 그리고 말총머리 성애자님이 좋아하실만한 말총머리 캐릭 발견. 그나저나 이 여자애 이름도 풀메탈패닉처럼 치도리네요. 뭔가 린처럼 모에한 구석이라도 있나 그 이름.

 

그나저나 아무리 맞아도 아픔이 없다면 생존 위기 상황까지 가도 깨닫지 못해서 결국 일찍 죽는다는 내용의 책을 본 것 같은데. 아파도 통각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계속 전투를 지속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 전사의 수를 보존치 못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나. 또 애니메이션이 부질없는 인체실험을 했구만.

이건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오지만, 결국 피험자가 의욕도 없고 힘도 없어서 쳐맞기만 한다면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메리트도 없음. 설령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놨다 한들 전투의욕이 없음 전사로 만들어지질 못한다. (나중엔 주인공들 중 한 명이 그걸 역이용하고 있었다는 반전이 나오지만.) 처음부터 애니의 주축을 이루는 실험의 무쓸모를 어필하는 작품도 흔하진 않을 듯하다. 그래서 키즈나이버는 분량이 짧으며, 완성도도 높다고 볼 수 있다.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다 보니 질질 끄는 듯한 구석도 하나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소설 중편을 보는 것 같았다. 스토리에 무게는 있으나 간편하게 볼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하면 좋아하면서도 아닌 척 하거나 아님 서로의 과거를 숨기면서 스토리를 질질 끄는데, 스토리상 때문인지 애들이 대체로 쿨하고 시원스럽다. 일본 애니의 발전성을 볼 수 있었달까.

뭔가 사회생활 못하는 애들 뽑았다 싶었더니 처음부터 파탄을 노렸던 것 같다. 당하는 애들은 불쌍하지 무슨 죄냐 ㅉㅉ 근데 어른들 커뮤니티도 대부분 저런 식으로 연애감정 꼬여서 폭망하기는 함. 그렇지만 얘네는 캇쫑 빼고 다 강제로 실험에 참가했다는 데서 차이가 크고, 더군다나 피해자들을 무리하게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데서 어른들을 탓하지 않기는 곤란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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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소리 땅의소리 - 어두움 덮인 인생길에서 듣는 하늘 이야기
김운용 지음 / 두란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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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말이야, 잃는 것의 반복이야.

 

 

처음엔 음악 애니인 줄 알고 봤는데 알고보니 군대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뷰티풀 군바리와 비교했을 때 비슷하게 선정적인 면은 있지만, 평화로운 분위기의 마을이 배경인지라 폭력은 나오지 않는다. 무기로 사람을 해치지도 않으며 대부분 동료나 마을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에 쓰기 때문에 다소 감동적인 부분도 있다. 제법 전쟁의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을 어둡게 다루는 면도 있으나, 트라우마에 빠져 살지만 않으며 몰래 밀매를 하며 돈을 버는 장면도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제는 코믹이다. 일상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제작진은 케이온을 그린 곳이라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온다. 떡을 먹다가 주제가 생각났다고 하는데 꽤 특이하다(...) 마을도 일본으로서는 드물게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게 아닌가 추정된다. 심지어 적군이 독일인이다. (로마인이라고 표현하지만 언어는 독일어.) 심심할 때 시간 죽이기 위해 보면 딱일 듯하다. 마지막화는 꽤 진지하니 집중해서 보는 게 좋을 듯.

 

이 애니 중 커플 예감인데 나이차 너무 나나 크라우스X쿠레하 맺어져라 ㅠㅠ

P.S 노맨 랜드란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사람이 없고 황폐한 대륙이란 뜻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양쪽에서 총을 겨누고 있다면 참호에서 머리를 내미는 순간 죽을 가능성이 확실히 높아지기 때문에 노맨 랜드라 부르는 것이다. 참호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여전히 살아있는 경우엔 구조하러 가야 한다. 그 긴장상태가 간혹 작품에서 생동감 있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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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것들의 낮 민음의 시 216
유계영 지음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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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토르소 중에서

 

 

 

방은 더 이상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흐트러진 상태에 아무 보호도 없는

 

이것은 순진한 상태?

 

ㅡ앙리 미쇼, 나타남ㅡ사라짐에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

 

눈알이 도마 위에서 굴러떨어져

 

열린 창문 틈으로 지켜본다

 

나는 길어지는 허리

 

칼날의 곡선

 

(...)

 

나는 밤거리의 어린 남자에게

 

오빠ㅡ하고 불렀다

 

 

 

내가 사랑하게 된 남자는

 

빨간 글로스를 바르고 아무 말 없는 계단처럼

 

침착하게 눈멀고

 

 

 

지금 읽는 소설에서 아주머니들이 주인공을 오빠 혹은 오라버니로 부른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어쩐지 기억에 자꾸 남는 시이다 ㅎㅎ 보다시피 시들이 범상치 않다. 낮에 읽고 있는 중인데 '빛이 있으면 행복한 줄 알지? 그럼 적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왜 불행해?'라고 말하는 듯하여 묘한 기분이 든다. 

 

옛날에 왕따를 당하고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힘들 때 방이 점점 수축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게다가 이 시인의 시에선 벼랑까지 팽창한다. 화자가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렸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적이지 않다. 시인은 항상 시에서 자연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환경운동적이지 않아 더욱 특이하다. 하기사 사랑이 마음의 병이라 하는 사람도 있지.

 

나는 생각한 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시인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자신이 좋다고 했다. 나는 내가 나이들어 쉽게 지치고 주름살이 생기는 게 싫어 일찍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시인은 천천히 노인이 되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 오래 살고 싶다 이야기한다. 나는 아침형 인간인데 시인은 밤에 깨어있는 걸 좋아한다는 인상을 준다. 내가 개를 키우고 시인이 고양이를 키우듯이, 나와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일은 때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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