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ite:SIDE-R(4) (DC) (コミック)
川上 修一 / アスキ-·メディアワ-クス發行/角川グル-プパブリッシング發賣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oint of no return

 

이번엔 단순한 하렘물만이 아닌 데다가 상당히 다양한 느낌을 얻어서 여러가지 감상을 적으려 한다.

1. 남주도 결국 인간인지라 엄청난 숫자의 환생을 겪으며 여자란 여자는 다 만나본 뒤(...) 번뇌를 떨치고 결국 카가리와 접한다. 그러나 인간을 넘어서는 지식을 가진 카가리. 그녀가 딛고 있는 땅조차 그는 접근도 불가능했고 결국 몇 번 더 죽고 나서야 그 땅을 딛으려는 욕심을 버리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결국 남주는 인간성조차 뛰어넘어버렸다. 뭐 그렇다고 해서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카가리만 일직선으로 보게 되서 난 차라리 다크한 남주 버전이 좋달까. 오메 저 믿음직한 등짝보소. 여하튼 카가리가 환경을 살리려 세상을 멸망시켰으나 결국 지구의 자원에 한계가 다다른 탓에 생명체가 모두 말라버렸다는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결국 남주는 카가리라도 살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뭐 연애 시나리오라고 우기면 가능하겠지만 글쎄... 그보단 생명체 자체를 존중하는 마음에 대해 이 애니메이션은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려면 물질주의 시대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는 현대인은 몇 번이나 반복하여 죽고 살아나야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나 인간은 순수한 자연의 법칙과는 다른 존재이다. 딱히 원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멋대로 죄를 판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의 균형은 결국 인간에게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인간은 자신의 종족이 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며, 그것이 결국 자신의 삶까지 먹어들어가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을 정의롭다고 느끼는 인간이 어리석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선택이 결국 파국을 낳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파괴를 바라는 마음조차 옳다고 여기면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왜 하필 사쿠야 등장 씬에서 지리는 OST가 나오는진 모르겠지만 주인공 빼고 등장인물 다 사망하는 장면에서 울었고 OST의 멋짐에 두 번 울었다. 확실히 이 애니는 캐릭터와 OP, ED, OST 하나는 끝내준다. 1기에서 인기 없던 걸 만회하려는 몸부림이긴 하나, 그래도 이 정도면 솔직히 인정해줄 만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2. 아시안 타이거맘들은 진짜 답이 없다 ㅋ 이건 페친의 경험인데 마이클 샌덜 강연 때 백인들이 호주 침략을 한거나 다름 없는데 어떻게 백인이 처음 호주로 이주한 날을 국경일로 지키냐 이거에 대해서 청중의 질문들을 듣는데 이제 초딩 갓 졸업한 애가 갑자기 손을 들었음. ​

그러더니 자기 소개를 하는데 한국으로 따지면 과학중학교 같은데 거기 1학년 뭐시기라나. 그러면서 진짜 토픽하고는 아예 동떨어지는 질문을 하는거임. 그러면서 흐름이 끊겨 버렸다고 한다. 아니 그래 애가 질문하는건 좋다 이거야. 근데 애 본인도 무슨 질문을 하는지 본인이 모르니까 계속 목소리 기어 들어가고 듣는 사람들도 존나 뭐가 뭔지 모르게 됨. 그러면서 계속 엄마가 애를 옆에서 찔렀다고 한다. 손 들라고 ㅋ 마이클 샌덜 저 하버드 교수님이 너 찝어서 발표 시켜주실꺼야 그렇게 계속 애를 잡나보다. 계속 무시하다가 나중에 진짜 애교로 또 마이크 넘겨 줌. 그러니 애가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어리둥절 ㅋㅋ

아니 엄마분, 이런 짓을 해서 도대체 얻는게 뭐야? 그 유명한 강연에 청중중에 마이크 잡아보게 하면 애가 갑자기 무궁무진한 학업에 대한 욕구가 생겨서 하버드로 갈꺼 같은거야? 나중에 북 싸인 하는것도 득달같이 가서 사진 찍고 ㅋ 아니 당신 무슨 기념패 사진 같은거 경험은 그냥 강연 끝나고 사인하는데 가서 하는거 그걸로도 모자라? 아예 그냥 아들을 무대위로 떠 밀어 올려보내지 그랬어?

내가 왜 이 얘기 하냐면 이 애니에서도 사이비 환경단체(목표는 세계 멸망)에 부모가 무조건 주인공에게 손들라 시키고 결국 주인공은 IS 단체 같은 곳에 가입하지 않나여 ㅋ 아이한테 지가 원하는 걸 강요하지 맙시다 제발. 근데 나도 연세대에서 한 마이클 샌덜 강의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 있는데. 왜 다들 마이클 샌덜에게 그러세요 악감정 있음??? 졸지에 영원히 고통받는 마이클 샌덜..

3. 개인적으로 주입받은 가치관에 대항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그냥 더 높이 삼. 인권 운동하는 사람들이나 페미니즘 외치는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 피땀이 섞인 저항이 없었으면 새로운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흡수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들도 사람들이라 모순을 보이고 병크를 터트린다 할지언정 그들은 그래도 자기 자신을 평생 속박해오던 사회의 가치관들을 자기 손으로 깨부수고 재정립한다는 면에선 자기주도적이고 자아실현의 틀을 마련하는거 같다. 그리고 이런 저항은 분명 내면의 성장을 뜻하는거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혈계전선 4
나이토우 야스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본적으로 화려한 액션이 깔려있다. 또한 트라이건 형태의 그림체가 상당히 복고풍이라 8090년대의 세대들에겐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 하겠다. 1기보다는 왠지 섬세함이 떨어지지만, 1기에서는 엑스트라로 취급되었던 체인이 단독으로 서비스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체인 팬이었던 나로서는 꽤 감사한 일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1기 오리지널 스토리의 내용을 살리기 위해 많이 노력한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1기와 원작의 내용이 상당히 달랐던지라, 이 정도만 해도 꽤 심혈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제작진 중 한 명이 우리나라 걸그룹을 좋아했던지라 그들의 음악도 그대로 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그래서 여성들을 그린 그림체가 좀 더 입체적으로 된 듯도 하고. 덕분에 이렇게 보배스러운 체인의 한 컷을 얻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프가 제레기로 등장하게 되었다. (페친의 자녀분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제프 팬들 죄송 제가 그 이름 붙인 게 아님;;;) 1기에서는 그래도 꽤 순정적인 스토리도 등장했는데 여기에서는 제프가 끼고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만 나온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 여성 분들이 싸우다가 가슴이 늘어난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코믹하기보단 상당히 고어스러웠다(...) 그 이야기 웃으라고 만든 거?

 

후반부엔 좀 더 재밌어진다. 성인물로서 지목되고 있다는 걸 제작진도 잘 인지하고 있는지, K.K가 학교견학을 하면서 동시에 근무 뛰는 이야기가 상당히 재밌게 전개된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1기에선 화이트의 비중이 너무 커서 다른 여성 등장인물들이 상대적으로 가려진 측면이 있었는데, 그 단점을 잘 커버한 것 같다. 혈계전선 원작은 보고 싶지 않지만 1기와 비슷한 작화로 라이브라의 등장인물들을 좀 더 세심하게 보고 싶다면, 2기를 봐도 무난할 것 같다. 2기 안 봤음 하마터면 스티븐하고 체인이 썸 타는 것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속의 네버랜드 3
시라이 카이우 원작, 데미즈 포스카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다 알만한 쉬운 반전인데 원작 쓴 분이 함정 깔음.

1. 일단 1인칭 시점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등장함으로써 이동하는 인물이 정말로 누군지 모르게한 배치.

2. 마마가 시설에 무슨 장치를 해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시스터의 등장. 그러나 단순무식한 사람의 의견이 때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도 있는데...

3. 그리고 똑똑한 척하지만 두 명 앞에서는 생각을 아무렇게나 늘어놓으며 쿨한 척하는 레이.(사실은 츤데레.)

이전에도 도가니 같은 실화소설 때문에 시설에 사는 아이들의 삶이 큰 논란으로 번진 적이 있다. 그러면서 탈시설화는 힘을 얻기 시작했다. 지역사회에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나 기타 약자들을 돌보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까? 약속의 네버랜드 오프님에서는 똑똑한 아이들 3명이 숲을 달려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무언가 벽 같은 것을 깨뜨리고 그들이 달려들어가는 공간은 칠흑같이 까맣다. 물론 시설에서 가만히 있으면 괴물에게 잡아먹히거나 어른이 되어도 다른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가해자로서 그 무리에 가담할 뿐이다. 그러나 아주 어린 아이들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설령 그들 중 몇 명이 운 좋게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일반 사회에서 정상인처럼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시설의 교육은 일반 사회의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는 것 또한 만만치 않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요령을 기본적으로 숙지하지 못한 채 무작정 시설 밖으로 나간다면 시설에서보다 더 일찍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엠마는 철저하게 아이들 모두의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러려면 지역사회를 변화시켜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설을 새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시설에서 탈주하는 엠마의 활약과 그녀를 항상 도와주는 노먼의 무서운 지략이 이 애니메이션의 매력 포인트이긴 하다. 스릴과 감동도 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철저히 지역사회와 아이들의 행복에 대해 숙고하며 함부로 교훈성을 내세우지 않는 게 이 작품의 최대 강점이다. 서브컬쳐계 스토리에 새로운 지점을 그려넣고 있는 명작이다. 혁명까진 아니지만, 신중한 구석이 있다. 물론 주인공 엠마에 의해 확고한 윤리 기준은 존재한다. 사람에 따라 엠마의 그 집요한 보편적 복지 이론에 반발감이 있을 순 있는데(그런데 항상 일본 작품에선 적군의 편도 생각해보자는 이론이 집요하게 등장하는 면이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싶은데...), 작중에선 명백히 엠마 편으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진다. 난 그게 또 마음에 든다. 데스노트보다는 좀 더 무게가 있고, 데빌맨에 비해선 가볍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P.S 시설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대뜸 사회복지사 직원에게 아이들을 이렇게 가둬도 되냐 삿대질하면서 말리는 나에게 '넌 사회복지사가 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한 어르신이 있다. 내가 이 계열에 대해 잘 몰라도 이것만은 안다. 시설의 부당함에 대해서 화를 내는 건 너무나 쉽다. 마찬가지로 고발도 쉽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시설의 병폐를 무작정 고발하고 일이 커졌을 때 직장을 잃은 (소수 양심이 있고 시설을 잘 이끌어 나가려 내부에서 노력했던) 직원들은, 그리고 졸지에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은 어디에 가느냐이다. 누가 맞는지, 누가 사회복지사로서 어울리는 생각을 지녔는지 여기서 얘기하진 않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RTFX J Dies irae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おもちゃ&ホビ-) - 1/8 PVC 도색완료 완성품 피규어
壽屋(KOTOBUKIYA)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애정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증오하는 마음도 있다. 자신이 실패할 수도 있음을, 추락할 수도 있음을 깨닫고 경계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마치 한없이 먹을 것만을 추구하는 어린아이의 탐욕스런 마음과도 같다. 사랑해야 할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야 하나 아직 되지 못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말한다. 자신의 귀에 듣기 감미로운 말만을 줏어담는 사람은, 자기혐오에 빠질 것을 두려워한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진실을 모르며 알기 싫다고 부정한다. 그렇게 현실을 오판하면 결국 이루려는 일을 그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난 사람이 진실을 알 권리와 함께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진실은 하나라고 보며, 신은 이를 주관한다고 여긴다. 신이 아닌 인간에게 진실을 부정할 자유는 없고, 무지에 대한 대가는 결국 치뤄질 것이다.

물론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때로는 과거를 외면하고 도망치려는 사람들의 변명이 되기도 한다. 전통과 역사는 과거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경계의 일침을 날린다. 과거의 외면은 근미래에만 우리의 시각을 고정시키며 결국 편협한 성격을 낳는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이 애니 혐한이라고 규정한 게 설마 김치장아찌 샌드위치 때문이냐...? 아니 한국인이 먹기에도 충분히 위험한 것 같고 츄라이 김치 정신은 한국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니 딱히 혐한까지 갈 건 없다고 보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창간호 소장판
이프 편집부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군 경험은 일종의 정신적 육체적 '트라우마'(외상)이기 때문에 매우 정밀한 정신 분석학적 연구나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복학생들이 교수에 대해 '예의'가 바른 것은 후배들에게 선배 대접 받으려는 의지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그것을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이 되었다고 혹은 '어른'이 되었다고 표현힌다. 더불어 집단적 동질성의 문화 역시 군대에서 극단화된다. (...) 불안감 주입의 메커니즘도 큰 역할을 담당한다. (...) "군복무 동안 형성된 집단의식은 그들이 제대하는 순간 다시 사회로 환원되며 50년 동안 군대라는 조직을 거쳐 온 그들의 선배들과 조우해 거대한 집단의식을 형성한다."


 

군대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건 탈모, 착모, 탈모, 착모, 탈모, 착모, 탈모, 착모, 탈모, 착모라는 분이 계신다.


훈련소에서 군사 이론 교육을 받기 위해 실내 강당에 모였을 때 조교가 수많은 훈련병들을 통제할 때 쓰는 방법이라 한다. 조교 혼자 수많은 훈련병 군중 앞 한 가운데 서서 카리스마를 뿜뿜하며 전투모를 쓰고 벗기를 반복하는 귀찮은 짓을 시키는데 그 자체가 무지 컬트적이라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조교가 “탈모!” 라고 외치면 다들 동시에 전투모를 벗고 “착모”라고 외치면 다시 다들 전투모를 쓴다. 원칙적으로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하는데, 모자를 씌운다는 것은 “너희들은 교육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요란스럽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다시 모자를 벗긴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교육받을 준비가 되었는지 재차 확인하는 것이다. 훈련병들의 탈모 속도가 느리거나 모자를 벗는 것 외에 잔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보여서 조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직도 준비가 덜 되었군!” 이라는 의미로 다시 “착모”를 주문한다.

 

난 이 글을 보고 왠지 어린왕자에 나오는 신사가 생각났다. 그는 인사할 때마다 항상 모자를 벗는 의미 없는 짓을 한다. 그도 그 행동이 의미 없다는 걸 은연중에 안다. 그래도 어린왕자가 박수칠 때마다 쉴새없이 탈모와 착모를 반복하느라 탈진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신사가 힘들어한다면, 아예 모자를 없앨 순 없는 걸까?

 

군대에 막 다녀온 사람 보면 단순히 그 사람답지 않은 게 아니라 거의 인간같지 않은 말과 행동을 보이곤 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쏟아내는 말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찬성이건 반대이건 간에 직설적이다. 여성가족부가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유투브 방송을 차단한다 들었는데 이에 대해선 좀 아쉬운 바이다. '개인의 발언할 자유'가 차단되서 그러는 게 결코 아니다. 평소 남자들만 있는 자리에서 이들이 어떤 행동과 발언을 하거나 듣고 보고 나왔는지에 관해 생생히 겪을 수 있어 상당히 흥미가 있었다. 예전에 오타쿠 모임에서도 직업 군인을 막 때려치고 나온 인물을 본 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지만, 그의 이론에 반박할 페미니즘 이론을 정리하는 데엔 상당한 도움이 되었었고 나중에는 헤어져야 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여성들은 감정이 풍부해서 충동적이라 하는데, 나는 대부분의 남성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군대에서 막 전역한 남성을 건드렸을 때 그 분노는 매우 충동적이라고 본다. 나는 그들에게서 당사자주의의 위험성을 목격하곤 한다. 그들은 전쟁에 출전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분노하며 사실상 전쟁나면 군인이 가장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군인들은 여성들을 지키기 위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나면 여성들은 제일 먼저 강간당할텐데 자기 남성들에게 지켜달라 애원하지 않는다며 고충을 호소한다. 이는 매우 모순이지 않은가? 강간에 대한 이야기는 곧 출산하지 않는 비혼 여성들에 대한 분노로 번지다가 곧 자신이 전쟁나서 총을 잡게 되면 일단 우리나라 여성부터 다 쏴 죽일 거라는 이야기로 끝난다. 이 정도면 대체 여성이 누구한테 공격을 받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북한이던 우리나라 남성이던 어쨌던 간에 남성이지 않을까?

 

그에겐 미안하지만 사실 한남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때 그가 했던 행동과 발언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 신고하려고 하나하나 그의 성적 발언을 캡쳐했는데, 그게 의외의 보물이 된 셈이다. 더불어 그 옆에 있는 친구들도 은근슬쩍 성차별적인 발언을 많이 했는데, 그것들 중 인상깊었던 것들을 혼합해서 쓰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정치 얘기와 같이 군대 축구 얘기를 싫어한다. 어째서일까? 한국의 정치는 한국만의 특수한 사안으로 이뤄져 있다. 그처럼 군대도 다른 나라의 군대와는 달리, 한국의 특수한 문화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군 복무를 끝내고 나온 사람들은 자기 빼고 다른 군인들이 과연 전쟁시 나라를 지킬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진보적인 대통령이 뽑혀도 징병제를 시작하고 또한 계속 유지하는 중일까? 나는 이게 한국을 유지하는 유교 문화와 비슷하다 생각한다. 즉, 직업군인을 빼자면 군대는 한국 남자를 한국 남자로 만들어주는 특수교육같은 것이다.

 

 

 

 


 

P.S 방송하시는 분께 남길 명언이 있군요.

여성은 남성의 힘의 우위에 굴복했지만, 여성 특유의 무기를 가지고 반격했다. 그들의 주된 무기는 남성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에리히 프롬의 격언입니다. 덕분에 웃음으로 즐겁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또한 이 글 남기려고 이 책을 초스피드로 읽을 수 있던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는 이제 국가 방위의 주체이며 사회적 책임을 떠맡은 자이며 "남들(특히 여자!) 판판이 놀 때" 혼자만 죽도록 고생한 공인이다. (...) 그러나 군필자들이 부르주아고 고학력자라면 과연 '손해 보았다'는 느낌을 그랗게 강하게 투사하게 될까? 그들은 특권층의 병역 기피나 면제에 대한 분노를 '자기 계급에 대한 피해 의식'의 형태로 갖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지방대' 제자들이 왜 한결같이 고성, 인제, 원통 등 전방 산간 지역으로 배치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 군필 남성들은 군대 경험을 토대로 해서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느끼는 소외감, 불안증, 차별에 감정 이입하는 계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걸까?




페미니즘이나 메X 여성들이 남성에 대해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는데, 솔직히 군대 막 다녀온 남성만큼 피해 의식 쩌는 분들을 '일반인들' 사이에서 난 거의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다 죽어가는 군 가산점 이슈에다가 댓글을 다는 분들도 캐물어보면 복학생이다. 심지어 여성의 출산을 군대에 빗대어 표현했다가 본격적으로 고령화 저출산 현상이 터지게 되어서, 괜히 비혼 여성들 탓하며 아닥을 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어째서 남들이 자기와 겪는 똑같은 고생을 해야 한다며 어느 지식인을 포함한 숱한 남성들이 찬동을 해대는지 모르겠다. 고통은 혼자 지고 축하할 일을 만들며 파티에 모두 같이 가는 게 사람이 해야 할 진정한 도리가 아닐지, 이들을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간단히 말하자면 '쓸데없이 주둥이 나불대지 말고 1절만 하면 정상적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같은 개똥철학이랄까? 형님이 사람되고 싶다면 나가 페미니스트 되십쇼 더 이상 징징거리지 말고 ㅇㅇ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