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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함 나데시코 1,2
사토 타츠오 감독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옛날에는 유리카가 좋았는데 지금은 이전에 성우를 했다던 메구미가 좋다.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은 친숙함이 들기도 하고, 사랑에 빠진 모습이 귀엽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대쉬로 밀고 나가는 유리카보다 좀 더 인간적인 면모가 있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결국 내 정체성은 없어요~라는 어필과 같지. 그러면서도 계속 상대방에게는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한다면 누가 그에 따를까. 그냥 솔직히 그의 곁에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하고 그를 찾아다니면 될 것을.
그리고 오렌지 안경 불쌍 ㅠ 그렇지 취미랑 연애는 다르지. 그나저나 동거까지 했음 정말 진지하게 살려고 했던 거 같은데 헤어졌구만 나도 남말이 아니지만. 서브컬쳐 같이 공유하던 인간들이 죄다 한남이었기에ㅠ
나도 초등학생 시절 무렵엔 남자아이들이 여자랑 놀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놀자고 울면서 따라다니다가 그만둔 적이 있긴 하다. 그런 걸 보면 난 딱히 그 남자애를 좋아하진 않아도 외로워서 따라다닌 타입인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엔 카드게임을 하다 진 적이 있는데, 놀림을 받다보니 갑자기 굉장히 화가 나서 그냥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는 게 싫어서 그랬다고 전남친에게 설명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생각나서 외로웠던 느낌이 들었던 듯하다. (말해도 이해하질 못해서 결국 입을 다물었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기동전함 나데시코를 볼 때도 화가 났었다. 유리카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남자주인공을 보고는 몹시 짜증이 났다고 할까.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작품을 감상하다보니, 유리카는 자기중심적인 아가씨에 돌직구 타입으로서 남성에겐 좀 부담스러운 타입이라고 할 만하다. 결국 화성에서 같이 지낸 추억 때문에 둘은 관계를 맺지만, 남주의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지 PTSD에 대해서 아이들이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잘 순화시켜 놓은 탓에, 남주의 캐릭터성에 혼란이 오게 된 건 아닌가 싶다.
남자답게가 왜 새롭지 않은 대사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는데, 보통 남자는 유사시 군대를 가서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는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은 현 세대로써는 그 말의 의미를 간파했다는 말이다. 1996년이니 23년 전에 나온 애니인데, 여기서 1화 제목이 남자답게 가자!인건 의미가 크다. 아키토는 여기서 요리사 일을 전전하고 있을 뿐더러, 그마저도 PTSD를 앓고 있는 중이라 어디서도 오래 일하지 못한다. 뭐, 굳이 우기자면 결국 주인공은 파일럿이 되었지만. 그리고 엔딩 음악은 나답게다 ㅋㅋㅋ 나답게 요리사 겸 파일럿 되면 뭐가 이상하냐는 아키토의 당참.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남동생은 유리카가 다소 어처구니없는 4차원 캐릭터라고 말했었다. 이처럼 다소 길지만, 여러 명이서 보고 감상을 주고받기에는 꽤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사실 감상을 일방적으로 털어놓기보다는, 사람들과 모여 토론할 만한 소재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참 바보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만큼 시간 죽이기에 효과적인 게 없는 것 같다. 영화에 비해서 러닝타임도 길지, 게다가 TV판 다 보면 극장판이 있는 작품이 흔하니 다음에 볼 걸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 난 액자식 구성을 설명하는 과제를 쓸 때 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게키강가3를 예로 들게 되는데... 가끔 저거 애니로 나왔으면 싶단 말이죠. (극장판은 있지만.)
작품은 묘한 부분을 개그로 처리하는 습성이 있다. 단순히 90년대 개그라기엔 오히려 잔인성이라던가 비극적인 장면을 희극으로 처리한 게 돋보인다 할까. 이 점에서 호불호가 엇갈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여성 파일럿이 다수 있던 시절 로봇 중 하나의 색깔이 계속 복숭아를 떠올리게 한단 말이죠...
총집편이 나오지만 지루하지 않다. 주인공이 히키코모리가 된 채 계속 보던 게키강가3의 등장인물들이 나데시코를 관람하는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데시코 총집편이냐고 투덜투덜 불평하면서 ㅋ 그 다음은 함대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등장하면서, 각각의 공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압축해 설명하고 있다. 다른 애니에서도 이렇게 총집편을 재밌게 만든다면 불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ㅋ 이런 거 보면 1분도 안 되는 새로운 장면 넣은 주제에 극장판에서 방영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