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그 세번째
아키야마 미즈히토 지음, 서범주 옮김, 코마츠 에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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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구치의 오른손은 이리야의 백발 한 뭉치를 움켜쥐고 있었다. 카와구치는 이리야를 일으켜 세우려고 오른손을 휘익 끌어당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 뿐으로, 카와구치가 잡고 있던 한 움큼의 백발은 그 반 이상이 뿌리까지 주르륵 뽑혀 있었다.

 

 

이리야의 머리가 백발로 변했다. 근데 변하자마자 선생님의 폭력에 의해 주르륵 뽑힌다. 으으 봐 버렸다 봐 버렸어라는 심정이랄까 나 이제 백발 캐릭터 보면 어떻게 반응해야 해.. 

 그 이후 이리야의 비중이 엄청나게 급증하는데 그 반 이상이 뽑혔다는 머리칼의 문제가 어떻게 복구되었더라는 이야기도 전혀 없어서 더 무서웠다. 오히려 아키호와 철인정식 대결을 한 다음부터 충격적인 장면들이 갑자기 계속되는 것 같다. 남주가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도청하고 있는 몸 속의 벌레를 끊어내는 게 설령 이리야 뿐만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를 위한 일이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리야가 선생님 카와구치에게 폭력을 당했을 땐 놓으라고 이야기했으면서도 군인이 폭력을 가했을 때는 왜 아무 저항을 못했는지 궁금하다. 순간 전신이 붕 날을 정도로 맞아서 그랬던 것일까. 아님 친한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맞은 데 대한 충격일까. 그것도 아니면 맞기 이전 격렬하게 저항을 한 자신에게 놀랐던 걸까. 상당한 급전개로 진행되는데, 정작 중요한 감정들은 기밀처럼 처리하는 느낌이다. 외계인의 잔해(?)를 발견한 스이센지에 대한 떡밥도 단 1권 내에 해소될 리가 없다. 그런데 색종이에 적은 '죽은 시체 주운 사람 없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가문에 대해 이전부터 알고 있어서 그 답답함을 해소하려 한 것일까. 아님 가문이나 혹은 마을에 의해 이전부터 실험체 취급을 당해온 것일까. 외전의 존재로 인해 스케일이 상당히 커지는 느낌인데, 어쩌면 이 세계관에서 실험체는 이리야 한 명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 남자주인공은 도청하는 벌레를 몸 안에 담고 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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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했던 것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2
미야모토 테루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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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대단해. 세계에서 하나뿐인 A라는 볼록이 세계에서 하나뿐인 A라는 오목 안으로 쏙 들어간 기분."

 

 

 4월구라가 간혹 암이라는 분들이 있는데.
내용 비슷한 순정소설 <배를 타라>에서는 남주가 여주 임신시켜놓고 우물쭈물 하다가 여자 뺏기고,
헬조선 중앙대 음대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저게 사실 암 축에 속하나...? 싶기도 하다.
걍 좋은 이별이지.

 

 일단 배경이 암이라는 말부터 하고 싶다. 캐릭터 자체가 워낙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약간 신경질적이지만 쿨해보이는 남자 주인공이었는데... 관계가 진행될수록 점점 질척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그녀가 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연애감정이었을 뿐이며, 내가 한 사랑은 사랑같은 느낌이었다.'라고 주장한다. '남자와 여자가 쌍으로 마음이 멀어졌을 수 있다'라는 사장님의 충고는 말끔히 씹어드신 채 말이다. 그렇게 주장을 했으면 단호히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끊던가 해야 하는데, 그녀가 바람을 피던 상대와 거의 결혼하기 직전까지 같이 살면서 섹스까지 한다. 결국 주인공 남자가 집을 모두 비워버렸을 때 찾아온 주인공 여자도 어지간하긴 하지만 말이다. 결국 주인공 남자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 배우자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고, 무엇보다 아파트로 인해 인연을 맺던 친구 네 명하고도 친하게 사귄다. 하지만 여자친구였던 아이코는 결국 결혼한 사람과 같이 소말리아로 가버린다. 갑자기 봉사활동에 푹 빠져버렸을 수도 있지만, 주인공이 여전히 그녀의 거짓말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새삼 거짓말이라거나 쿨함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주인공은 사랑이 무엇인지, 거짓말과 침묵의 차이가 뭔지 겉으로 보면 매우 명확하게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자신이 아직도 품고 있는 '짝사랑'조차 사랑이라고 결론을 내지 못한다. 그가 사랑하는 그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의 행복을 빌며 곱게 돌려보내는 방법을 택한다. 차라리 나쁜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저주하기라도 하면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자꾸 헛소리만 하는 주인공이 안타깝다. 생각해보면 남자 주인공이 잘못한 일이라고는 초반에 여자 주인공의 공황장애 상태에 대해 짜증을 낸 것밖에 더 하나. 그 분노도 그녀에 대한 극도의 걱정에서 초래된 상태일 수 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돈을 빌렸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남자 주인공은 돈이 거의 다 떨어져 독립 생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위기 상에선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친구들만 늘었다. (아이코는 아마 죽을 때까지 돈을 갚지 않을 것이다. 해외로 튀었으니까!) 아마 이래서 친구가 없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난 저런 상황이면 차라리 아이코와 알고 지내는 요코와 당나귀 모두와 인연을 끊고 지낼지도 모르겠다. 
 
 돈은 원래 그냥 주는 거지 빌려주는 게 아니랬다. 여러분도 안 갚아도 괜찮은 게 아니면 절대 남한테 돈 빌려주지 마라. 그리고 현실 세계에선 남자나 여자나 츳코미는 완전 매력 없다. 차라리 짜증나면 짜증난다고 솔직히 말하자. 남한테 훈계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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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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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 이야기를 묻는 거야? 진실을 밝히는 게 두렵진 않아...... 나는 페페제였어. 그 말을 풀어보면 야전용 아내라는 말이지. 전장의 아내. 두번째 아내. 내연의 아내.

 

 

   

  

솔직히 말해서 이런거 만들고 기획하는 놈들은 빨리 디져서 지옥에나 가버렸음 좋겠다.

 

 김연수 소설가는 소설에서 간호병을 등장시킨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해야 남자들이 전장에 나가지 않을까요? 손과 발을 모두 잘라야 다시 전장에 나갈 생각을 안 할까요? 효과적인 방법이겠는데... 하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빨이다. 손과 발이 없으면 이빨로라도 인간을 공격할 생각을 하는 게 인간이다. 괜히 인육을 먹는 살인자가 등장하겠는가 말이다. 올해도 서코를 갔다. 꼭 밀리터리 코스프레가 등장한다. 시대를 타서 그런가 올해는 더욱 그런 인간들이 득시글한 것 같다. 여러가지 의문이 일었다. 첫째로, 나같은 여자가 밀리터리 코스프레를 하고 나가면(남자 옷으로) 반응이 어떨까. 둘째로, 갑자기 이곳에 폭탄이 떨어지면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소설은 러시아와 독일의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남자들이 우후죽순으로 죽어나가다 보니 여자가 전쟁에 투여되어야 했었다. 이 소설 속 진술에 의하면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먹을 게 없고 추운 데 입을 게 없어서 자원했다는 사람도 또한 등장한다. 그들은 사랑할 시간이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땅바닥에 널려있던 독일인의 시체 중 사랑했던 독일인을 발견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던 사람도 있었다. 자신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편이 독일군에게 고문을 당하고 나서 풀려나니 스탈린에 의해 감옥에 갇힌 여자의 진술은 너무나 한스럽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너무나 열심히 생각을 했다. 그들의 변명과 거짓말에서 그들이 모두, 실은 세탁병과 간호병과 의사까지 포함하여 모두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역력히 드러나 너무나 역겨웠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적국을 미워하고 있었고, 딱히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생각나는 게 이것밖에 없다. 아 이들은 죽으면 지옥에 가겠구나. 아 박근혜와 모든 위선자들을 죽일 듯이 미워하는 우리는 지옥에 가겠구나. 사람들을 이미 미워하게 되었으니 그 죄가 크구나. 만약 전쟁이 나면 무조건 최전선으로 가야겠구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참하게 죽어선 안 되겠구나. 어떻게든, 어떻게든 살아서 전쟁에 대한 진술도 하고 글도 써야겠구나......

 

 P.S 아아 남자들이여. 물론 가운뎃다리가 뜨거울 때 전쟁터에서 만난 여인은 한낯 노리개로 생각하겠지. 그래. 나도 그런 작자들은 많이 만나봤다. 하지만, 이건 알아두게. 어차피 일상도 하나의 전쟁이며, 그 때 아무 대처를 할 줄 모르는 나약한 여성들보단 전우같은 여성이 훨씬 듬직하다는 사실을. 안 그러면 자네들의 삶은 벌써 지옥이 될 걸세. 나는 군대에서 여인을 버린 놈들은 쉽게 죽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랫동안 고통스럽되 자신이 왜 고통스러운지도 깨닫지 못하다가 비참하게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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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6-02-2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카링

갈매미르 2016-02-20 09:43   좋아요 0 | URL
노렸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2-20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 좀 아는군요. 아카링 다이스키 카와이이인겁니다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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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믿었던 키누요한테서도 버림받고, '누구 남은 사람 없어요' 하는 질문에 손을 들어올릴 때의 그 비참함. 적어도 입으로 대답했으면 좋았을 거다. 두리번거리다가 말없이 이마 높이까지 손을 들어올리는 내가 마치 무슨 괴물 같았겠지. 또 다른 나머지 한 사람도 나처럼 비굴하게 손을 드는 방법을 취해 씁쓸했다. 이 들어올린 손으로, 아직까지 반에 친구가 없는 인간은 나와 또 한 명의 그 남자아이, 니나가와뿐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묘사되는 여주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라면 이쪽이 아닐까 싶다.

 

 보이쉬한 캐릭터는 꾸준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보이쉬한 측에 속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딱히 여자력을 과시하고 싶지도 않지만(여자력이란 말만큼 여자에게 폭력적인 단어도 없다.), 설령 여성스럽게 소녀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해도 그게 더 부자연스러워 보여서 보이쉬라는 딱지가 붙어버린 사람도 있다.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라 말하고 싶다. 여기서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불쌍할 만큼이나 조숙하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중학생 시절에 대한 언급이 잠깐 등장하는데, 아무리 독백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그렇게 급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다 털어놓지 않는 그녀의 현명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그녀는 소설 중반에 자신이 비뚤어진 생각을 지녔다고 자학하지만, 글쎄. 그녀의 회의주의는 사실 사회의 근본적인 액면에 맞닥뜨린 20대 초중반의 사람들이 학교에서 강제로 심어준 이상적인 환상 세계를 저버릴 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절망감에 가까웠다. 아마도 키누요같은 친구에 의해 계속 압력을 받은 탓에 더 쪼그라들었겠지. 여름엔 이렇게 잠깐 사랑과 호기심을 키웠겠지만, 여주인공과 니나가와가 맞닥뜨릴 세계는 혹독할 것이다. 2학기가 되면 하츠의 예측대로 될 것이다. 일단 2학기가 시작되면 니나가와가 먼저 폭행을 당한다. 하츠는 니나가와를 밟는 사람을 몰래 부러워하겠지만, 그것도 잠시. 하츠가 니나가와를 좋아하는 걸 눈치챈 키누요가 자신들과 친한 다른 무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이다. 결국 니나가와와 똑같이 하츠도 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츠는 니나가와의 등짝을 밟아야 할 것이다. 그녀도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처음 니나가와의 집에서 니나가와의 오타쿠적인 액면 그대로를 발견했을 때 그를 사정없이 찬 데에서 그렇다. 니나가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하츠가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츠는 니나가와의 등짝을 지긋이 밟을 뿐, 때리지 않는다. 이는 결국 그녀도 조만간이던 좀 더 늦던 간에 니나가와같이 왕따나 폭행을 당하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고등학생 때의 인간관계는 성인이 되도 그 특성이 바뀌는 경우가 결코 없다. 니나가와 또한 자신의 등을 (아마도) 처음으로 때리고 밟은 하츠의 발가락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느 쪽이나 쉽게 잊지 못할 청춘이 되리라는 건 자명하다. 

 

 그리고 나는 여주가 니나가와에게 느낀 공감 이전에 키누요와 여주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 그리고 다른 여자 아이들의 브래지어를 빤히 쳐다보는 그 시선에서 굉장히 퀴어함을 느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설이 나왔다면 기독교들의 반발에 의해 동성애를 조장하는 작품으로 찍혀 매장당하지 않았을까, 라고 멍하니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도 니나가와같은 남자랑 사귀면 안 된다'

라는 말을 꼭 한 마디 남겨주고 싶었는데,

와타야 리사가 2012년에 이런 내용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 작가도 살면서 한두번쯤 우유부단한 남자한테 데였던 것일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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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인즈 게이트 Steins Gate 원환연쇄의 우로보로스 2 - NT Novel
미와 쵸시로 지음, 김정규 옮김, huke 그림, 니트로플러스 원작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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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낚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녀석은
ㅡ진실의 문을 열 수 없는 법이다- p. 743

 

 

  

일단 작가가 수고했다. 당신은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이다.

이루마 히토마같은 천재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열심히 수고했지만,

역시 당신은 그런 중2병들을 따라가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문체도 그렇고 오카베 린타로도 중2병 캐릭터가 되는데 실패했다. 몹시 유감이다.

 

 나는 생각한다. 현진건이 살던 사회가 술 권하는 사회였다면, 지금 우리는 자살 권하는 사회를 살고 있지 않나 하고, 그런 면에서 오카베 린타로가 '신이 마유리의 죽음을 정해놓았다'라고 하는 생각한 것은 착각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거기서 약간 비틀린 오해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신이 아니라, 악마가 아닐까 한다.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 이 소설을 읽다보면 알 수 있지만, 수많은 오카베 린타로가 한데 뭉쳐서 저항하는 대상은 오히려 악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나마 슈타인즈 게이트 선으로 넘어오는 데 성공한 린타로도 15년 후엔 죽는다 한다. 소설에서는 적히지 않았지만, 결코 천국에 떨어지진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유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토록 나락에 떨어진 자신을 구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나마 15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니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 할 순 있겠다. 하지만 인간을 변화시키기에는 너무나도 짧다.

 

 성당을 의무적으로 다녔다. 오히려 내 신상에 위기가 닥친 적이 있던 초등학교 시절 덕분에 규칙적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하면 좀 더 상세한 설명이 되려나? 그 때부터 어렴풋이 신이 나를 내려다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살짝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하지만... '악마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낀 시기는 대학교 때 와서이다. 메탈 우파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보면, 나비효과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의 불장난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될 것이다. 나도 '잠깐 바람 좀 쐴까?'하는 생각이 내 인생을 이렇게까지 바꿀 줄은 몰랐다. 국정교과서를 만든다고 한다, 광주에서 아무 죄 없이, 그저 숨쉬고 있다는 이유로 죽은 시민들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좌파로 변신했다. 일본에서 윤동주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잡아다 산 채로 생체실험했다는 사실은 묻힐 듯하다. 대신 우리나라가 자발적으로 쌀을 일본에 수출했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들이 밉다. 그저 그 치들과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이 기억 못하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는 이유만으로' 죽도록 혐오스럽다. 오카베처럼 그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저지르기 전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사정을 지켜볼 수도 없다. 오카베는 분명 행운아이다. 그들에 대한 원한을 해소했으니 지옥으로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혹은 나와 운동권으로 연관된 사람들은,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미워하고 있으니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은 모두 리딩 슈타이너 기질을 가지고 있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중2병 환자들이다. 역사의 승자들이 이 수많은 오카베 린타로들을 위해 베풀 자비는 단 한 줌도 없을 것인가.

 

 그저 데자뷰를 지닌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가. 당신들이 그들을 좀 도와줬으면 한다. 오카베도 도저히 자신 혼자서는 버틸 수 없어서 크리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유리를 살려달라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이론에 의해 버려진 다음 인생의 의미를 잃었다고 자살한다. 그 노동자의 가족들이 절망감과 광폭함에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마치 산책하듯이 가뿐하게 베란다를 걸어나가 떨어진다. 이번 국정교과서가 작성되면 그 국정교과서를 작성하길 거부한 80%의 교수들과 그 교과서에서 패자로 기록된 수많은 독립유공자 등의 사람들이 사회에서, 우리의 기억에서 잘려나갈 것이다. 마치 슈타인즈 게이트 의외의 세계선에서 마유리가 죽어도 그러려니 하게 되고, 크리스가 죽어도 그러려니 하게 되듯이 말이다. 여기선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사람들이 큰 문제다. 당신들도 결국 뇌과학의 그속한 발달로 인해 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상범으로 찍혀 잘려나가 죽기 직전에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이미 당신을 도와줄 가능성조차 없다. 그나마 시위라도 있는 지금 이 때밖에 기회가 없다. 이 세상 온 연옥이 악마로 넘쳐나기 전에... 부탁한다.

 

 나는 정말로 지옥에 빠져도 괜찮다. 다만 촛불을 킨 내 옆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손을. 한 번만이라도, 잡아주길. 그들의 손을 잡아주기에 내 손은 너무도 힘이 없다. 점점 차가워진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마도 악마가>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결말을 너무나 간절히 부러워했던 나로선 그들에게 위로를 줄 수 없다. 간절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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