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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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리라. 그 꿈이 이미 그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저쪽의 광막하고 어두운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꽂혀서 읽었는데 이 책에서도 인간이 30세가 되면 인생에 석양이 진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데 슬픔이 느껴진다. 아무리 사람의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시작은 50대부터라고 힘을 주어 강조하지만 확실히 30살 이후부터는 젊음을 유지하려면 교육과 과학의 힘을 받아야 하는 게 맞는 듯하다.

 

 초반에 등장했던 마피아의 보스같은 노인이 '젊은이는 젊은이들끼리 스포츠나 젊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나 하게.' 라고 말할 때 얼마나 경륜있고 슬퍼보였는지. 그가 자랑할 건 이제 힘이나 권력이 아니라 인간의 어금니를 단추로 한 정장이나 과거에 동료가 총맞아 죽은 걸 목격했던 이야기밖에 없는 것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지만 데이지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뒀으며(데이지가 철이 없어서 아이는 완전히 뒷전이긴 했지만 굳이 아이를 옷까지 갈아입혀서 개츠비 앞에 데리고 온 건 역시 본능적인 거절의 의사였긴 했지.), 이전부터 서서히 톰의 종노릇에 길들여져 있긴 했지만 모종의 사고 이후엔 완전히 속물이 되어 버렸다.

 옛날에 이 책을 집었을 때 개츠비와 데이지의 로맨스에 압도되었다면 이번에 압도된 것은 거물도 벼락부자도 아닌 신종인류 개츠비가 기존 보수들에게 당하는 온갖 모욕이었다. 주인공이 안타까워하는 점이 언뜻 이해가 되었다. 그는 개츠비가 톰과 데이지에게 그런 무시와 모욕을 받더라도, 다시 그에게 어울리는 진보적인 사상을 지닌 여성을 찾고 계속 그의 상상력을 펼쳐나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자살을 택한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언뜻 그 자신의 실패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정신 이상자와 결혼하면 안 된다는 법칙은 없지만, 내가 그 정신 이상자를 고쳐보겠다는 오만을 지닌 채 결혼하면 그 생활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는 이 책을 읽는 (가족 아닌)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책에 숨어 있는 혁명의 메시지를 깨달아 주길 바랬던 게 아닐까. 그러나 인류 종족을 번식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띈 사랑이 너무나 강력하다. 욕망의 단계를 뛰어넘는다는 게 참 어렵지.

 솔직히 개츠비의 집도 아깝다. 진짜 책이 그렇게 많이 꽂혀있고, 일반인을 위한 잡학 지식 책들 위주라지만 아무튼 알짜배기들만 있는데다가 깔끔한 잔디가 있는 넓은 정원. 이건 뭘 의미하겠는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정원에 나와서 토론하는 거다. 그것도 술을 마시고 재즈의 역사에 대한 음악을 들으면서 즐겁게. 미국에선 왜 그렇게 못했을까?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황무지에서 사느라 그렇게 빠듯했었나? 그렇게 보면 게르만 족들도 얼마나 힘들었을텐데? 사람을 제압하는 듯한 그런 유쾌함을 지녔으면서 왜 그 유쾌함으로 유럽의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지식에 칼을 댈 생각을 못한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자본주의가 그렇게 강력한가?

 위대한 개츠비 보면서 그나마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이걸 이야기하는 개츠비 친구에 대한 내 생각이다. 아무리 그 사건 일어나고 나서 개츠비 자살하기 전까지 개츠비를 존경하게 되었다곤 하지만 장례식 겁나 성대하게 해줘 ㅋㅋㅋ 죽을 때에나 잘해주지 말고 살 때 잘해줘 친구들아 ㅎㅎㅎ 죽을 때도 잘해주는 친구들이 있을까 의문이기도 하다만 ㅠㅠ

 

 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세상을 오래 살려면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너무 천천히 걷다가도 결국 나이를 먹으면 어차피 쓸데없는 오만과 자신감이 생겨서 막 나가기는 하다. 하지만 여러 인물상들을 보건대, 자신이 전적으로 옳고 나머지는 다 '개인사'라고 보면 수명이 짧아지는 듯하다. 앞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제 갈길 가는 중인데 거기서 전력으로 달리면 크게 부딪쳐서 죽거나 죽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난 조심하지 않을 거지만 ㅎㅎ 요리조리 싹싹 비켜나면 빨리 달려도 사고는 안 나더라..

 난 새움의 말에서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형씨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쓸까? 그것도 암흑세계에서 그렇게 얌전한 말을? 차라리 'old' sport에서 과거를 추구하는 개츠비의 성격을 유추하여 '이보게'같은 고리타분한 단어를 쓰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어떤 번역들은 상당히 읽기가 불편했다. 민음사의 번역은 어차피 수정될 때가 되었었다. 그 증거로 지금은 창비에게도 문학동네에게도 밀리는 출판사가 되지 않았던가. 이정서가 번역한 문장이 더 아름답다는 건 아니지만 젊은 세대들이 읽기에 훨씬 편하고, 기존 출판사 편을 드는 수많은 사람들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미 죽고 없지만 그가 독자를 광범위하게 설정해놨고 따라서 읽기 쉬운 문장을 선호할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츠비는 정말로 위대하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걸 의도했다. 그것까지 부정한다면 우리나라 출판사가 상업자본주의의 흐름으로 간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개츠비가 위대하지 않아 보이면 그냥 책도 읽질 마라. 감상은 자유지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저자의 진정한 의도를 왜곡하는 건 앞으로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 해로운 짓이다.

 

 http://vasura135.blog.me/220998169943->민음사판 하나에서 발췌했지만 위대한 개츠비엔 저자의 성장배경에 대한 설명이 특히 많다는 느낌을 주었다. 인상적이었던 설명들만 뽑아서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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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완역본 하서 완역본 시리즈 1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유성인 옮김 / (주)하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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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당신들은 아직 모르고 있어요. 이 애의 마음이 어떤지. 이 애가 도둑질을 했다고요? 이 애가? 이 애는 당신들이 필요하다면 입고 있는 단벌마저 벗어줄 만큼 착한 아이랍니다. 이 애는 그런 앱니다! 이 애가 황색감찰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를 위해서 몸을 판 것입니다. 아아! 돌아가신 당신, 여보! 여보, 당신은 보셨어요? 이것이 당신의 추도식이랍니다. 아아, 하느님! 자, 이 애를 보호해주십시오. 뭘 우두커니 서 있어요? 당신도 그 말을 믿고 있습니까? 당신들은 모두, 모두, 모두 이 애의 새끼손가락만큼도 못합니다. 하느님, 제발 보호해주소서!"

 

  

어렸을 적 수십 번은 죄와 벌을 읽은 듯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완역본을 통째로 읽은 건 처음이다. 확실히 예전에 책을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세상에 대한 잡지식도 풍부해지고 윤리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져서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책을 볼 수 있었다. 일단 도저히 종잡을 수 없던 스미드로가일로프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히 감이 잡히게 되었다. 마치 독일 사람을 소시지 장수라고 욕하는 장면에서 크게 웃으면서 반응했듯이(...), 이 남자는 난봉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어쩌면 정의에 어긋나면 망설임 없이 철퇴를 때려박았던 어린 시절이었으니, 증오도 없이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던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나오듯이 증오도 일종의 관심이 있다는 제스쳐니까.

 

 수법이 너무 뻔해서 여전히 왜 여성들이 그에게 빠져 있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어쨌던 간에 그와 얘기를 하고 그를 구원하려 했던 두냐가 옛날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다부진 매력이 있는 여성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루진의 돈에 홀린 것 같다고 시인하면서 넘어가지만, 이 영문 모를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다. 아니 왜 스미드로가일로프랑 같이 그의 방으로 걸어들어가냐고? 정절 이전에 생명의 위기가 닥쳐오는데 오빠따위 알게 뭐야? 뺨이나 갈겨주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될 것을. 라주미힌과 만나서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로쟈의 독백처럼, 이 여성은 창녀인 소냐보다도 더 천박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를 잘 만나야 여자가 패가망신하지 않는다는 사상이 배어있는 듯도 하여 좀 씁쓸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일생일대의 선택에 마주하는 법이니까.

 

 

지금도 난 이 책의 종교적인 구도와 해피엔딩에 감동을 먹고 있다. 

 

 마르멜라도프와 카테리나에게 아직도 연민의 감정을 품고 있다. 소냐가 좀 인간으로서 과하게 완벽해 보이긴 하다만 광신도라니, 터무니없는 중상이라 생각한다. 그런 후기를 책에 붙일 시간이 있으면 오탈자나 섬세하게 수정해줬음 좋으련만. 지하 생활자의 수기를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줬는데, 이 책의 설명을 보니 로쟈의 감옥생활에서 소냐가 없는 엔딩이라 하여 도저히 흥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감옥 생활에 대한 글은 이 소설의 에필로그로도 충분히 본 것 같다. 난 사실 톨스토이를 더 좋아하는 편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필력을 보여두고 있지만 스케일이 비교적 작다. 차라리 국내의 감옥 생활에 관련된 다른 소설책을 읽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여기까지만 읽기로 한다. 찌질한 로쟈가 갱생했다. 라자로가 부활했듯이. 여기까지만 읽으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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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School idol diary 2 - ~소노다 우미~, L Novel
키미노 사쿠라코 지음, 원성민 옮김, 무로타 유헤이 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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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돌아서면ㅡ지금까지 지나왔던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아키하바라의 빌딩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그곳을 나와서 커다란 도로를 몇 개 건너고, 이렇게 돌아온 저희의 마을에서 바라보니......
그곳은 마치 주위의 어둠 속에서 떠오른 커다랗고 눈부신 섬처럼 느껴졌습니다.
두 곳으로 나뉜...... 피안과 차안.
가슴이 먹먹해져 오고.
습하고 서늘한 바람이 선뜩 불어와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꽤 많이...... 변했구나."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저처럼 아키하바라의 눈부신 빌딩 숲을 바라보고 있던 호노카가, 혼잣말하듯 툭 내뱉었습니다.

 

  

일단 우미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캐릭터다. 

 

 각본가부터 이 캐릭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러브라이브의 기본적인 골격이 마을과 마을에 위치한 학교에 대한 사랑을 기초로 하는 만큼, 옛날부터 마을의 전통을 지켜왔던 그녀의 위치는 범상치 않다. 어머니가 일본의 전통 춤을 배우고 있고, 아버지는 일본 검도에 정통한 분인 만큼, 모든 스포츠와 도예에 만능인 그녀는 상당히 완고하고 도도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만큼 그녀의 인기는 수직하강하기 딱 좋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데릴 사위로 장가갔었다는데, 남자의 자존심을 아직도 고집하는 고지식한 파오후 남자들 사이에서 솔직히 우미에게 장가가겠다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오타쿠 계열에서 부잣집 도도한 아가씨를 보는 시선은 조금 복잡하다. 집안에서 교육을 잘 받아서 순결은 잘 보전하고 있을 것 같지만, 교육을 받은 만큼 모든 남자들이 자신들의 레벨에서 가르치기 딱 좋은 백치미와는 억만년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나 소노다 우미의 경우 점점 첨단 도시로 변해가는 옆 마을 아키하바라가 자신의 마을까지 점령할까봐 걱정하는 그런 안타까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녀의 철벽같은 도도함을 무너뜨리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똑똑해야 호노카의 그림자던 뭐던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각본가가 택한 방법은 성우계에서 제법 관록이 있는 미모링을 우미 성우로 채택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풍부한 표정을 그려넣었는데, 언뜻 보면 단순해보이지만 이게 각본가 쥿키의 신의 한 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때문에 소노다 우미를 놀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오묘한 표정을 캡쳐해서 올려대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의 3D같은 면모를 좋아하는 미묘한 팬층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마이너틱한 유명세가 붙으면서 여성들이 뮤즈 팀원 중에서도 유달리 튀는 우미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러브라이브 팬층 자체가 단순히 아이돌로서의 면모만을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 뮤즈의 다른 점들도 의식하기 시작하는 등 다양성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우미의 매력을 알려면 애니 자체에서 끝내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TVA와 달리 드라마 CD에서는 영상편지 끝에 키스를 날리는 의외성을 보이며, 장난기도 풍부하다. 그리고 스쿨 아이돌 다이어리에서 호노카를 사모하는 듯한 돌직구들은 확실히 그녀의 독백에서만 나올 법한 것들이다. 이걸 입밖으로 꺼낸다면 호노카-코토리-우미 삼각관계를 깰 수 있을 텐데. (호노카와 니코를 제외한) 러브라이브 팀원들도 왠지 우미에게 러브콜을 마구 날리는 기세여서 심상치 않았다. 특히 마키가 자기와 사귀어 달라는 등 엄청나게 달라붙었는데, 아니 니코는 어쩌고 여기서 그러시나요...?

 

팬층에서는 우미와 코토리를 맺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기엔 스쿨 아이돌 다이어리에서 우미의 호노카에 대한 공세가 너무 강하다. 일단 몇 글귀만 뽑아보자.

준비운동을 하던 중이라 린과 서로 등을 맞댄 채 팔을 엮고 있던 호노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동그랗고 커다란 호노카의 눈.

 

호노카가 없는 뮤즈는 역시 어딘가 부족해 보이거든요. 마치 레몬 조각이 들어있지 않은 콜라처럼. 겨자를 뿌리지 않은 우무묵처럼. 팥이 빠진 녹차 팥빙수처럼ㅡ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마음 속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마는 순수한 동경심.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감정이니까요.
제게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매우 눈부시고도 매우 소중한 사람. 반짝반짝 빛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동경하는 사람이 있고- 설령 그 대상과 성별이 같더라도,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상대가 극히 가까운 곳에 있으며, 이따금 그 마음이 저를 극심한 혼란의 도가니에 밀어 넣기도 할 뿐.......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배 속에 있던 시절부터 쭈욱 소꿉친구인 저와 호노카.
분명 이대로 어른이 되어서도.
아줌마가 되어서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저희 두 사람은 지금처럼....... 같은 장소에서 함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나중에 코토리 버전에서 상세히 쓸 생각이지만 호노카의 친구는 우미 말고도 코토리가 있다. 아무래도 의식적으로 코토리를 언급하기 피하는 이유는 질투가 나서가 아닐까? 자신이 먼저 호노카와 친했는데 코토리가 끼어들었고 심지어 그녀는 여성스러운 면모가 충만하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우미가 부끄럼을 타기 때문에 호노카에게 자신의 애정을 어필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이라면, 코토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가 없어서 호노카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어찌보면 상당히 우유부단한 성격인데, 그에 비해 우미는 호노카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품고 있어서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든다. 호노카와 코토리가 죽을 때까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호노카와 우미는 죽을 때까지 친구가 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호노카 어머니와 친한 우미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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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쪽
마르셀 서루 지음, 조영학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후기 / 사월의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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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우리와 다릅니다. 땅 한 뼘을 내주면 한 평을 가져갑니다. 우리가 땀을 흘려 모아놓은 먹거리를 내주면 등 뒤에서 바보들이라며 비웃을 뿐입니다. 예, 저자들도 보답이야 하겠죠. 여러분들은 제 아버지와 똑같은 선물을 받게 될 겁니다. 바로 사방 2미터짜리 무덤 말입니다."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세계의 소련에서 혼자 살고 있는 메이크피스는 얼어 죽더라도 책을 불태우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책을 불태우려 하는 걸 발견하고 총으로 쏘았지만, 곧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고 자책감에 집으로 데려간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상당히 어렸던 데다 그가 가지고 있던 무기라곤 녹슬어빠진 칼밖에 없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임신하고 있었다.

 

 주인공이 세상 험한 일 다 겪은 지혜로운 여성인지라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데 상당히 경계를 한다. (얼마나 조심했으면 빌 에반스가 죽은 이야기는 쏙 빠졌을까... 랄까 작가님 소설 써가다가 중도에 설정 빼먹은 건 아니죠? 그렇다고 말해줘?!) 회상 장면은 공간도 시간 개념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에 소설 내용을 잘 읽으려면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한다. 일단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 사는데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주인공이 뭔 소릴 하는지 하나도 모를테니 읽지 말길 추천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자신을 비꼬는 말을 하고 있는지, 액면 그대로 말하고 있는지 심중을 파악하는 훈련은 아주 잘 된다. 이 소설에서는 유달리 "저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저 판국에서 살아남은 거야?" 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 전무하다. 다시 고쳐 말하자면, 전부 죽인다. 내가 디스토피아 소설 정말 좋아하긴 하는데, 정말 이 소설은 주인공 너무 빡세게 굴린다. 얼굴에 염산 끼얹고 애를 두 번이나 사산시키는데 하물며 친구까지 없어...

 

  

나는 굉장한 사람이고, 생존력이 높아. 그런 사람들은 물론 어디에나 있다며 말하고 있지만 은근 자신이 힘센 남자들 패거리에 끼어있다고 자랑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이런 특이한 나를 발견하고 데려가주길 바란다는 건 희망이 아니라 어찌보면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단지 신데렐라 콤플렉스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주인공은 포기했을 수 있다. 일단 고향집에 돌아가지만 마을은 커녕 가정도 만들지 못했고 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사회에 편승하려 노력했는데 할머니가 되도록 늙었는데도 이웃 간 최소한의 물물교환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아무튼 소설이 다 끝날 때까지 메이크피스는 아직도 소련 땅 내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사실 메이크피스의 결정적인 실수는 쓸데없는 희망을 품기 이전의 문제이다. 평생 그녀는 종교를 맹신하는 아버지가 선한가 악한가에 너무 집착했다. 사드라던가 하는 민감한 사안이 세상의 이슈가 될 때는 그에 대한 많은 의견을 들어봐야 하고, 최소한 찬성과 반대 둘 다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책을 읽어봤자 머리만 아프다'라고 한다. 대부분의 술자리에서는 핵발전소라던가 정치 의견같은 주제가 금물인데, 그걸 금물이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 머릿속엔 분명 99.9% 맹신적으로 믿는 어떤 사상이 있다. 결국 메이크피스는 죽는 날까지 책을 땔감으로 쓰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 소설의 처음부터 그녀가 책을 읽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걸 명심하자.

 결론을 내리자면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방사능과 탄저균이 마구 뒤섞인 디스토피아는 좀 억지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둘 다 현실에 존재하는 무기인지라 지적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요즘 판타지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잔인한 설정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이 책을 아주 좋아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역시 예상대로 변태였나. (?) 또한 여자는 무기를 만든들, 힘이 센들, 숫자가 많아진들 결코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다. 요즘 페미니즘 한번 유행한다고 남자들의 세상이 전복될 것처럼 떠들썩한데,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과격분자들을 찾아가(어쩌면 그들이 지속적으로 협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의 집안에 소동을 일으켜달라고 부탁했던 메이크피스의 아버지처럼, 오히려 함정의 느낌이 다분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던 세상에 문자와 책이 없어지면 머리보다는 근육이 좋은 사람이 유리하다. 얼마나 간단한가. 전쟁이 일어나면 남성들이 여자를 지키고(혹은 약탈하고) 힘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다. 본능으로 힘내보시라. 나는 세상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힘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해야할 일 다 잊어버리고 책에 푹 빠진 건 정말로 오랜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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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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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창녀와 관계한 건 포함시키지 말고요' 하는 말까지 웃으면서 태연히 하죠, 그놈들은. 나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참고로 주인공은 이 분처럼 모에하지 않습니다. 손가락과 팔에 털이 많은 타입이라고 하죠. 잠깐 동거했던 남자도 이 여자와 같이 살면서도 몸을 건드리는 것조차 싫어하고요. 이 소설의 그런 점도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내 현재의 모습과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걸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정말 편의점에서 근무한다는 근본적인 점만 빼고는, 이 점원은 나와 많이 닮았다. 성적인 욕망이 극도로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아기를 보면 귀엽다고는 생각하지만 정작 내가 아이를 낳아서 기를 생각은 없다. 한번 사회에 도태된 적이 있는 내가 내 유전자를 뿌려서 내가 이전에 겪은 일과 똑같은 짓을 당하게 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과의 차이점이라면, 나는 일단 '남'과 내 집을 같이 쓰는 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서 애초에 결혼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동거 따위는 죽었음 죽었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오래 전부터 다짐했었다. 또한 내가 자식을 낳지 않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내 탓이라기보다는 남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심하게 굴고 도태시키는 사회 때문이라 생각하는 점이다. 옛날엔 자급자족이라도 할 수 있었지, 지금은 몸을 망가뜨리고 부서지게 해서 서서히 죽이고 있지 않은가. 이 작가는 자신을 '크레이지' 사야카라고 부르고 있다는데, 4기 죠죠의 스탠드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를 베낀 느낌과 더불어 작위성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도 '세상에서 도저히 써먹을 데가 없는 소설', 특히 범죄소설을 매우 좋아한다는 데서 어딘가 정상적이지 못한 주인공과 비슷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범죄소설에 깊이 빠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티비에서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보고 너무나 감명을 받아 빨강머리 앤을 따라하려 했던 게 시작이었다. 물론 그 시도는 교무실에 불려갈 정도의 문제가 되어 처참하게 실패했고 '앤은 어딘가 이상하다' 따위의 구절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20대 중반이 되고 나서부터다. 그러고보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소설 속 인물 제제도 도가 넘도록 심한 장난꾸러기라서 어른들에게 '혼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직장에 취직하기까지 수많은 직장에서 쫓겨나는 생활을 했는데, 그 중 한명에게는 쓸데없는 소설 좀 그만 읽고 세상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쓴 자서전이라거나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병원에는 현재 근무하지 않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간호사 중 한 명이 열심히 자기계발서를 읽고 암기한 뒤 그녀에게 열심히 그 구절들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울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당신과 세상 사람들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인식받기 위해, 안도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것일까." 그러나 현재 그들은 만나지 않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편의점에 직원이 없으면 편의점이 운영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구박을 받는 이들은 야간파트가 아닐까 한다. 야간 편의점은 술에 절은 인간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보통 뭔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야간 알바를 뛴다. 그래서 같은 점원이라도 주간보다 더욱 차별을 받는다. 그리고 이 소설의 폭은 사실상 편의점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면서 편의점 알바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알바의 이점은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일단 사무직보다는 더 편하게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육체노동자가 아닌 사람들도 육체가 아프면 끝장이 나 버린다. 편의점에서 암컷 취급을 당하는 후루카와가 고로케를 튀기다가 손에 입은 화상보다도 그걸 더 견디지 못하는 데서 그 암시는 뚜렷해진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곧장 육체적인 문제로 직결된다. 내 또래도 공무원이 되었었지만, 현재 스트레스로 인해 피부와 근육이 썩는 질병에 걸려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다. 그런 병이 항상 그렇듯, 나을 가망이 없어보인다 한다.

 사람들이 대학을 다녀야 하는 이유는, 그 곳은 회사와 기업을 떠나 중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잠시나마 지닐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이 세운 대학은 예외다.) 나는 대학교가 딱 그 정도의 가치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교의 그런 가치가 점점 사라져가고, 취업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지고 있는 지금은 수많은 '편의점 인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바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려면 어떤 대기업을 먼저 무너뜨리고 어떤 형태로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편의점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대통령감은 누구이며, 어떤 정책을 통과시켜서 편의점 인간들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위선적인 인간들이 더 이상 우리를 깔보지 않기 위해선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가. 그렇다. 편의점 인간들이 이상한 게 아니다. 우리들이 대다수인 건 확실하니 뭉치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우리들이 '이쪽'이고 이상한 건 '저쪽'이다. 권력을 잡을 궁리를 해야 한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들이 "서점 직원으로 일하지 말고 덕질하는 돈을 줄여서 저축을 해 서점을 세워보지 그러세요?"라고 질문할 때 "그럼 니가 세워보세요." 이상의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후루카와나 사야카는 삽으로 머리를 때린다는 답을 내렸지만 그 전에 그 인간들이 그런 말을 할 엄두도 못 내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못 하도록 최소한 속으로만 이야기하고 닥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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