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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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고, 내면을 향하여 혹은 아주 먼 곳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 파리 한 마리가 그의 이마에 내려앉아 천천히 코와 입술 위로 서서히 기어갔다. 그러나 그는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꿈이었는지 뭔진 기억 안 나지만 꿈이라고 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 이거 따라하려고 옛날에 가만히 있던 적이 있었다.


 근데 등에 정도의 곤충이 날아와서 얼굴로 기어가고, 가만히 있었는데 귓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ㅋㅋㅋ 정확히 그 이후 귓속에 무지막지한 염증이 생겨서 난리가 났는데, 그 때 사람이 아무거나 책에 나오는 내용을 무작정 따라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당시엔 베토벤을 떠올리며 엄청난 무서움에 사로잡혔었는데, 그래서 베토벤 곡을 듣다보면 크게 쿵쾅거리는 대목에서 지금도 움찔하는 면이 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인간에게는 남을 조종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없어. 목사님이라도 말이야. 다른 사람 쪽에서 내가 원하는 생각을 할 수도 없거니와 내 쪽에서 원하는 것을 그가 생각하게 만들 수도 없어. 하지만 누군가를 잘 관찰할 수는 있지. 그러면 그 사람이 종종 무얼 생각하는지, 혹은 무얼 느끼는지 꽤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어. 그러면 그가 다음 순간에 무얼 느끼는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어."

옛날에는 왜 이딴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는지 신기했는데 전 지금 보니까 왜 데미안을 반복해서 읽었는지 알겠다. 특히 이 대목은 아직도 내 인생 명언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이 구절 읽을 땐 정말 여기서 감동을 받고 아 이렇게 하면 내가 힘든 게 해결되겠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빛이 보였던 듯했다. 학교가 너무 힘들었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싱클레어에겐 데미안이라는 조력자가 있으니 그렇게 좋아질 수 있었고, 무언가가 가능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데미안보단 빨강머리 앤 보고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듯하다. 데미안은 되고 싶은 사람이란 느낌이 강했고. 아직도 데미안 같은 인물이 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책 한권으로 사람을 계몽시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데미안은 사람이 바뀔 수 없다고 여기서 말하는 듯하다. 관찰당한단 느낌이 강할때 잠깐 바뀌고 그뿐. 어릴 때는 이게 그냥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인 줄 알고 집중력만 줄창 연습했지만, 나머지가 안 되어 학교에서의 괴로움은 지속되었다. 뭐, 관찰하려면 쳐다보는 것부터 연습하는 건 맞지만. 

 

소녀들은 상냥하고 정중한 태도와 아첨만을 바라는데 그거야 실로 귀엽긴 하지만 진짜는 아니라고 했다. 성숙한 여자들한테서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고 그들이 훨씬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사실 데미안은 내 성적 취향을 자리잡게 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때부터 어머니를 보는 눈이 달리 보이고 나이든 여성 중에서도 성숙한 여자를 가려내는 눈이 생겼으며 심지어 내가 나이가 들었음에도 이번엔 2D에서 성숙한 여성을 찾게 되더라. 좋던 싫던 첫사랑이었던 분도 경험많은 분이셨으니... 생각해보면 이걸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추천하는 닌겐들이 데미안 정말 제대로 읽었는지 궁금한 부분 ㅋㅋㅋ 자세히 보면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누님 찬양인 책인데.

 


 

최근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한 번 다 읽게 되어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이 책에도 니체가 있었군. 이 대목에서부터는 별로 감흥이 없어서 대강 읽었었는데, 이렇게 니체를 만나게 될 것도 운명까진 아니지만 인연인가 보다.


사랑인 것 같으면서도 사랑이 아닌 것 같고, 철학인 것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철학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오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음. 아예 소설 자체가 아브락사스인듯. 처음 이 책을 접할 땐 이 결말에 강한 반발심이 생겨서 덮었는데 둘의 관계는 요즘의 썸이라고 하는 그런거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사랑보다 더한 어떤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면 싱클레어는 에바부인보단 데미안을 사랑했던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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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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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 나라에 오기 위해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버렸는데, 결국 그 모든 것이 이렇게 죽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고골리의 아버지에겐 사연이 있다. 그는 고골리의 외투를 우연히 읽다가 마음에 들어 전철까지 들고 갔었다. 그런데 전철이 전복되어서 구조를 청하려는 도중 손에 있던 종이를 날려 간신히 구조된 것이다. 여러분 이렇게 책을 들고 읽으면서 걸어가면 위기의 순간에 구조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는 우리나라에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행위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방금 차 타자마자 이야기한 사람이 사지가 뎅겅 잘려서 자기 몸 위에 올려졌다니 굉장히 서스펜스하네요. 인도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내 기대가 좀 많이 컸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고골리가 너무 소심해서 대학시절 부터는 보기가 괴롭다 ㅋㅋㅋ 나도 이름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기는 했다만 그걸 보통 대학생 때까지 끌어안고 앉아 있냐. 역시 인간은 나이가 들 때까지 무언가 성장하는 게 없음 그것만큼 꼴사나운 게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핸드백 속에는 세븐업 맛이 나는 입술 연고가 들어 있었는데, 그 애는 이따금씩 그것을 꺼내어 입술에 발랐다.

 

이 때부터 끼가 충만했던 흑로리 분이

 

그녀가 책에서 눈을 떼어 고개를 들었을 때, 기다리는 사람은 그녀였음에도 자신이 방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갸름한 얼굴이었다. 고양이 상이지만 얄밉지 않았고, 눈썹은 가늘고 곧았다.

이런 흑누님이 되어 돌아옵니다.
아니 고골리 전생에 나라 구했음?
게다가 고골리보다 나이 한 살 많다고 함.

 

샌들 위로 드러난 발톱에는 고동색이 칠해져 있었고, 쪽지어 올린 머리에서 몇 가닥이 흘러내려와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는 반쯤 피운 담배가 끼워져 있었는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키스하기 전, 그녀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샌들 끝으로 비벼 껐다. (...) 그녀가 돌아서서 그를 보았다. 계속 웃고 있었고, 안경엔 아직도 김이 서려 있었다. 그녀가 요리 때문에 밀가루와 닭고기 기름으로 엉망이 된 손을 들어보이며 물었다. "이것 좀 벗겨줄래?"

이후 메챠쿠챠했다!
않이!
이거 너무 내 취향 흑누님 아닙니까!
일러스트 하나 없는데 흥분했다!
나 이 책 보기 잘했어!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의 모슈미를 내 최애로 임명합니다 ㅠㅠ 사... 샤릉합니다 ㅠㅠ.
아니 진짜 고골리 이 자식 여자 보는 눈이 없네 옆에 모슈미 있는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오금이 저리는 반전이다.

 

피로연에서 고골리는 양복으로, 모슈미는 가는 어깨끈이 달린 바나라시 실크로 만든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그녀가 직접 디자인해서 재봉사 친구가 만들어준 옷이었다. 살와 카미즈가 어디가 어때서 입지 않느냐고 따지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슈미는 이 드레스를 입었다. 모슈미가 깜빡 잊고 숄을 의자 위에 놓아두고 일어섰을 때 그녀의 가느다란 구릿빛 어깨가 드러났고, 모슈미가 바른 특별한 파우더 때문에 어깨는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모슈미의 이미지는 이 분으로 정했습니다.
아마도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캐스터로 짐작?

 

 

사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떨지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학을 전공하는 여성들도 인간이다. 그런지라 그 가운데서도 능구렁이 같은 남자에게 휘둘리고, 주변 친구들에게 노예처럼 휘둘리고, 비밀로 지켜야할 일들도 술에 만취해서 서슴없이 폭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인간은 여성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대단하지 않다. 오히려 여성학을 공부함으로써 여성에게서 인기를 얻으려는 남성보다 훨씬 더 멍청해 보인다. 예를 들어, 여성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어떨까.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담배를 피운다는 건 해로운 일이다. 하지만 임신할 수도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을 볼 때, 그닥 책임감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남성들의 정자에도 해롭다고는 한다. 하지만 여성은 아이라는 생명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면 상관없지만, 결혼을 하는 사람이라면 남성과 여성 모두가 희생을 감수해야 함을 이 책은 담담하게 주장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최근 익명으로 어떤 남성의 성추행 성폭력을 폭로한 글들이 일부는 거짓임이 밝혀지고 있다. 폭력을 폭력으로서 대응하면 안 된다는 줌파 라히리의 선견지명이 최근 한국에서도 은연중에 뿌리내려지고 있다. 모슈미는 선명하게 빤한 거짓말을 함으로서 죄가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름을 숨기는 게 딱히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된 요즘 시점에서 사람들은 더욱 신중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행동해야 할 일이다.

 

 그날 밤 고골리는 부모님이 이제 쓰시지 않는 RCA 턴테이블로 화이트 앨범의 3면을 듣고 있었다. 그룹이 해체될 무렵 태어난 고골리는 존, 폴, 조지, 그리고 링고의 열렬한 팬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들의 거의 모든 앨범을 사모았다. 문 뒤에 걸린 게시판에는 보스턴 글로브지에 실렸던, 이미 노랗게 바래고 나달나달해진 존 레논의 부고가 유일하게 붙어 있었다.

 

음악이 주가 되는 소설이 아니라서 소설에서 나온 모든 음악은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80~90년대 당시 굉장히 인기가 있었던 음악들이 많이 나온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이 매력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니 한번 챙겨서 들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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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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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들에겐 경멸밖에 들질 않아요. 최고의 형을 받아 마땅해요." 잭이 단호히 말한다.

  

놀랍게도 작가는 사이코패스 잭에게 이런 말을 하도록 시킨다. 

 

 설정상으로 볼 때 잭은 가정폭력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범죄자를 욕한다고 하여 가정폭력 범죄자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나중에 그의 변호도 실패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성폭력 범죄자를 욕한다고 하여 성폭력 범죄자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유독 범죄자들을 욕하며 강한 처벌을 내리길 어필하는 듯하다. 잭처럼 남들에게 도덕적으로 보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자신이 세 보이려는 걸까? 성폭력 범죄자를 까길래 같이 까주는데 그것도 안 된단 말이냐 할지도 모르겠는데, 저거 사실 내가 경험한 거다. 실제로 정신병 있던 친구가 성범죄자 이야기하면서 전기의자 같은거 리얼하게 이야기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바르게 살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나쁘단 말은 아니지만 무서웠다. 흥미로웠던 건 이 구절을 올렸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보통은 이 구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다가도 '이 말을 사이코패스가 말했습니다'라는 정보를 알려주면 놀라워한다. 그러나 몇몇은 '사이코패스도 맞는 답을 말할 때가 있네요'라는 식으로 답했다. 다시 말하지만, 잭은 자신의 범죄도 가리고 더불어 그레이스를 괴롭히기 위해 범죄자를 욕하는 부정적인 말만 골라서 하는 것이다. 그가 최고의 벌을 내리고 싶은 상대는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는 그레이스와 밀리지, 추상적으로 멀리 있는 모든 범죄자들이 아니다. 이 구절을 읽은 사람들은 범죄자를 손가락질하지만 실은 어떤 다른 사람을 벌주고 싶은 걸까?

 비하인드 도어에서 남편 잘못 만난 여주의 수난을 보면서 '아 그러게 남자들은 좀만 이상한 소리 하면 바로 헤어져야 하는데 꼼꼼히 좀 따지지...' 하고 생각했다가 문득 슬퍼졌다. 보통 남자는 여자가 '꽃뱀'인가 아닌가를 따져보지만, 여자는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인가 당하지 않을 것인가를 따져봐야;

 

  

보통은 사이코패스나 성범죄자 등을 괴물이나 괴물이 된 인간으로 보는 데 그게 틀린 지식이라는 걸 이 소설에서는 몇 번이나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정신병인가 귀신들림인가의 문제와 비슷한데, 이 소설가는 정신병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 진행한다. 즉 당신이 만나는 특출난(?) 인물들 중 대부분은 기현상을 만나서 인류에서 변형된 외계인이 아니라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다. 어찌보면 남편이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유심히 고민해본 적이 있는 세상의 모든 부인이 쓸 만한 이야기일 듯하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결혼한 또래들에게서도 종종 엄청 희안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의 남편 이야기를 모아서 만들다보니 사이코패스 된 거 아닌가 이거...

 

  

글쓰기의 최전선 이후 리뷰보기를 갑자기 좋아하게 되었지만 인간들의 낮은 수준을 보면 상처받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번 비하인드 도어는 여성들이 특히 많이 볼테고, 두께상 책을 읽는 좋아하시는 분들만 읽을 거 같아서 어떤 글을 남길지 흥미로웠다.

1. 남주가 왜 나쁜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갑갑한 성격이라서 오히려 여주를 죽기 직전까지 팼다고 썼으면 속이 후련할 거 같다는 이야기였다. 의외로 이런 여자들이 많다. 폭력으로 인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할까? 그러나 남주는 여주가 공포 외에 다른 감정을 느낄 빌미를 주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다.
게다가 남주는 이전에 힘조절을 못해 어머니를 죽인 적이 있다고 하며 가급적 오래 즐기고 싶다고 했다. 사람은 동물적 본능 때문에 신체적 폭력만 폭력인 줄 알지 다른 폭력도 폭력임을 잘 모른다. 그러면서 '잘못'에 대해 사과한다며 꽃을 바치고 다정하게 대하면 정이 많은 사람은 넘어가기 쉽다.

 2. 여주가 바보같다는 의견. 그렇게 완벽한 남자가 이 세상에 있겠느냐고 비웃는다. 솔직히 나도 엔젤이란 성은 많이 촌스럽지 않나 생각했으나, 의외로 사람들은 그런 거에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는 에스터가 오히려 이상한 편이지.

 3. 대게 이런 소설에선 반전을 이해 못 하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쓰여진다. 문제는 그 구절만 달랑 쓰여진 경우인데, 네타에 대한 걱정은 아닌 듯하고 정말로 반전이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현실에서 책을 읽어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이 책의 반전이 왜 이런지를 물어보느니 차라리 넷상에서라도 반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상세히 이야기하는게 좋을텐데.
 결말은 일단 스포일러하면 재미 없어질 가능성이 너무 강해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지만 어떤 리뷰에서 말한대로 소설이 '부유층의 고충을 말하고 있다'는 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비하인드 도어는 결국 여러 필연과 우연들이 겹쳤지만 눈치 빠르고 진보적이며 사회에 영향력이 센 이웃들의 협력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자가 되어야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하는 허탈감이 약간 남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스릴러였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잭이 좀 죠죠 4부의 키라 요시카게 같은 이미지였던지라 그렇게 허당인 스토리도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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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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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리라. 그 꿈이 이미 그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저쪽의 광막하고 어두운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꽂혀서 읽었는데 이 책에서도 인간이 30세가 되면 인생에 석양이 진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데 슬픔이 느껴진다. 아무리 사람의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시작은 50대부터라고 힘을 주어 강조하지만 확실히 30살 이후부터는 젊음을 유지하려면 교육과 과학의 힘을 받아야 하는 게 맞는 듯하다.

 

 초반에 등장했던 마피아의 보스같은 노인이 '젊은이는 젊은이들끼리 스포츠나 젊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나 하게.' 라고 말할 때 얼마나 경륜있고 슬퍼보였는지. 그가 자랑할 건 이제 힘이나 권력이 아니라 인간의 어금니를 단추로 한 정장이나 과거에 동료가 총맞아 죽은 걸 목격했던 이야기밖에 없는 것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지만 데이지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뒀으며(데이지가 철이 없어서 아이는 완전히 뒷전이긴 했지만 굳이 아이를 옷까지 갈아입혀서 개츠비 앞에 데리고 온 건 역시 본능적인 거절의 의사였긴 했지.), 이전부터 서서히 톰의 종노릇에 길들여져 있긴 했지만 모종의 사고 이후엔 완전히 속물이 되어 버렸다.

 옛날에 이 책을 집었을 때 개츠비와 데이지의 로맨스에 압도되었다면 이번에 압도된 것은 거물도 벼락부자도 아닌 신종인류 개츠비가 기존 보수들에게 당하는 온갖 모욕이었다. 주인공이 안타까워하는 점이 언뜻 이해가 되었다. 그는 개츠비가 톰과 데이지에게 그런 무시와 모욕을 받더라도, 다시 그에게 어울리는 진보적인 사상을 지닌 여성을 찾고 계속 그의 상상력을 펼쳐나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자살을 택한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언뜻 그 자신의 실패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정신 이상자와 결혼하면 안 된다는 법칙은 없지만, 내가 그 정신 이상자를 고쳐보겠다는 오만을 지닌 채 결혼하면 그 생활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는 이 책을 읽는 (가족 아닌)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책에 숨어 있는 혁명의 메시지를 깨달아 주길 바랬던 게 아닐까. 그러나 인류 종족을 번식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띈 사랑이 너무나 강력하다. 욕망의 단계를 뛰어넘는다는 게 참 어렵지.

 솔직히 개츠비의 집도 아깝다. 진짜 책이 그렇게 많이 꽂혀있고, 일반인을 위한 잡학 지식 책들 위주라지만 아무튼 알짜배기들만 있는데다가 깔끔한 잔디가 있는 넓은 정원. 이건 뭘 의미하겠는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정원에 나와서 토론하는 거다. 그것도 술을 마시고 재즈의 역사에 대한 음악을 들으면서 즐겁게. 미국에선 왜 그렇게 못했을까?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황무지에서 사느라 그렇게 빠듯했었나? 그렇게 보면 게르만 족들도 얼마나 힘들었을텐데? 사람을 제압하는 듯한 그런 유쾌함을 지녔으면서 왜 그 유쾌함으로 유럽의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지식에 칼을 댈 생각을 못한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자본주의가 그렇게 강력한가?

 위대한 개츠비 보면서 그나마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이걸 이야기하는 개츠비 친구에 대한 내 생각이다. 아무리 그 사건 일어나고 나서 개츠비 자살하기 전까지 개츠비를 존경하게 되었다곤 하지만 장례식 겁나 성대하게 해줘 ㅋㅋㅋ 죽을 때에나 잘해주지 말고 살 때 잘해줘 친구들아 ㅎㅎㅎ 죽을 때도 잘해주는 친구들이 있을까 의문이기도 하다만 ㅠㅠ

 

 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세상을 오래 살려면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너무 천천히 걷다가도 결국 나이를 먹으면 어차피 쓸데없는 오만과 자신감이 생겨서 막 나가기는 하다. 하지만 여러 인물상들을 보건대, 자신이 전적으로 옳고 나머지는 다 '개인사'라고 보면 수명이 짧아지는 듯하다. 앞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제 갈길 가는 중인데 거기서 전력으로 달리면 크게 부딪쳐서 죽거나 죽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난 조심하지 않을 거지만 ㅎㅎ 요리조리 싹싹 비켜나면 빨리 달려도 사고는 안 나더라..

 난 새움의 말에서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형씨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쓸까? 그것도 암흑세계에서 그렇게 얌전한 말을? 차라리 'old' sport에서 과거를 추구하는 개츠비의 성격을 유추하여 '이보게'같은 고리타분한 단어를 쓰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어떤 번역들은 상당히 읽기가 불편했다. 민음사의 번역은 어차피 수정될 때가 되었었다. 그 증거로 지금은 창비에게도 문학동네에게도 밀리는 출판사가 되지 않았던가. 이정서가 번역한 문장이 더 아름답다는 건 아니지만 젊은 세대들이 읽기에 훨씬 편하고, 기존 출판사 편을 드는 수많은 사람들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미 죽고 없지만 그가 독자를 광범위하게 설정해놨고 따라서 읽기 쉬운 문장을 선호할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츠비는 정말로 위대하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걸 의도했다. 그것까지 부정한다면 우리나라 출판사가 상업자본주의의 흐름으로 간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개츠비가 위대하지 않아 보이면 그냥 책도 읽질 마라. 감상은 자유지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저자의 진정한 의도를 왜곡하는 건 앞으로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 해로운 짓이다.

 

 http://vasura135.blog.me/220998169943->민음사판 하나에서 발췌했지만 위대한 개츠비엔 저자의 성장배경에 대한 설명이 특히 많다는 느낌을 주었다. 인상적이었던 설명들만 뽑아서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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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완역본 하서 완역본 시리즈 1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유성인 옮김 / (주)하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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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당신들은 아직 모르고 있어요. 이 애의 마음이 어떤지. 이 애가 도둑질을 했다고요? 이 애가? 이 애는 당신들이 필요하다면 입고 있는 단벌마저 벗어줄 만큼 착한 아이랍니다. 이 애는 그런 앱니다! 이 애가 황색감찰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를 위해서 몸을 판 것입니다. 아아! 돌아가신 당신, 여보! 여보, 당신은 보셨어요? 이것이 당신의 추도식이랍니다. 아아, 하느님! 자, 이 애를 보호해주십시오. 뭘 우두커니 서 있어요? 당신도 그 말을 믿고 있습니까? 당신들은 모두, 모두, 모두 이 애의 새끼손가락만큼도 못합니다. 하느님, 제발 보호해주소서!"

 

  

어렸을 적 수십 번은 죄와 벌을 읽은 듯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완역본을 통째로 읽은 건 처음이다. 확실히 예전에 책을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세상에 대한 잡지식도 풍부해지고 윤리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져서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책을 볼 수 있었다. 일단 도저히 종잡을 수 없던 스미드로가일로프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히 감이 잡히게 되었다. 마치 독일 사람을 소시지 장수라고 욕하는 장면에서 크게 웃으면서 반응했듯이(...), 이 남자는 난봉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어쩌면 정의에 어긋나면 망설임 없이 철퇴를 때려박았던 어린 시절이었으니, 증오도 없이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던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나오듯이 증오도 일종의 관심이 있다는 제스쳐니까.

 

 수법이 너무 뻔해서 여전히 왜 여성들이 그에게 빠져 있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어쨌던 간에 그와 얘기를 하고 그를 구원하려 했던 두냐가 옛날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다부진 매력이 있는 여성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루진의 돈에 홀린 것 같다고 시인하면서 넘어가지만, 이 영문 모를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다. 아니 왜 스미드로가일로프랑 같이 그의 방으로 걸어들어가냐고? 정절 이전에 생명의 위기가 닥쳐오는데 오빠따위 알게 뭐야? 뺨이나 갈겨주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될 것을. 라주미힌과 만나서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로쟈의 독백처럼, 이 여성은 창녀인 소냐보다도 더 천박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를 잘 만나야 여자가 패가망신하지 않는다는 사상이 배어있는 듯도 하여 좀 씁쓸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일생일대의 선택에 마주하는 법이니까.

 

 

지금도 난 이 책의 종교적인 구도와 해피엔딩에 감동을 먹고 있다. 

 

 마르멜라도프와 카테리나에게 아직도 연민의 감정을 품고 있다. 소냐가 좀 인간으로서 과하게 완벽해 보이긴 하다만 광신도라니, 터무니없는 중상이라 생각한다. 그런 후기를 책에 붙일 시간이 있으면 오탈자나 섬세하게 수정해줬음 좋으련만. 지하 생활자의 수기를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줬는데, 이 책의 설명을 보니 로쟈의 감옥생활에서 소냐가 없는 엔딩이라 하여 도저히 흥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감옥 생활에 대한 글은 이 소설의 에필로그로도 충분히 본 것 같다. 난 사실 톨스토이를 더 좋아하는 편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필력을 보여두고 있지만 스케일이 비교적 작다. 차라리 국내의 감옥 생활에 관련된 다른 소설책을 읽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여기까지만 읽기로 한다. 찌질한 로쟈가 갱생했다. 라자로가 부활했듯이. 여기까지만 읽으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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