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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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직장을 갖지 않은 사람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직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중요하며 그것 없이는 근무를 할 수가 없는 의무ㅡ본부에 얼굴을 내민다는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페테르부르크로 나와 있었다. 그가 그 의무 수행을 위해서 거의 모든 돈을 긁어내다가 경마장과 별장에서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돌리는 되도록 생활비를 절약할 목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로 옮겨왔다. (...) 버터와 우유는 아이들 몫도 모자랐다. 달걀은 없었다. 암탉도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보랏빛의 힘줄이 많은 늙은 수탉이 구워지기도 하고 삶아지기도 했다.


  

 

가정교사와 남편이 불륜을 일으켰다고 그녀가 질투를 하니까 집에서 내보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ㅠㅠ

 

 

주로 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남자와 가정주부인 여자의 일상을 구분하곤 하던데, 남자는 항상 극한적인 상황에 몰린 케이스고 여자는 부유한 집에서 산다. 어떻게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래된 고전, 특히 톨스토이란 남자가 쓴 이 책에선 같이 결혼해 사는 남녀가 그려져 있는데도 여자가 훨씬 더 불행하다.

이래서 고전을 본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이름과 사건이 낯설어도 그 속엔 지성이 있고, 그것이 현대에서 여러 갈래의 책들로 나뉘어져 지금도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의 책들은 친절하지만, 대부분은 작가의 생각이 너무 들어가 있거나 혹은 곡해되기도 한다. 고전을 보면 직접 사고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보라색이 작품에 자주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는데, 키티가 안나와 만났을 때 보라색 옷이 이쁘다 했는데 안나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야회에 나갔기 때문이다. 그 옷은 브론스키를 낚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에게 청혼할 기회를 뺏긴 키티는 안나를 의식해 그녀처럼 되고 싶어서 연보라색 옷을 입고 레빈의 청혼을 수락했다. 의외로 보라색이 이 작품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레빈과 키티의 결혼을 주관하는 사제가 보라색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이 '왜 죽은 시체처럼 보이는 빛깔의 옷을 입느냐'고 불평했던 일도 있었고.

번역하시는 분의 사적 감정이 들어가 있는 해설도 눈길을 끈다 ㅋㅋ

카레닌이 안나의 서랍을 강제로 뒤져 그녀에게로 온 우편물을 빼앗는 장면도 나오는데, 해설에 의하면 당시엔 남편이 아내나 종에게 온 우편물에 대해서도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모두 읽어볼 권한이 있었다고 한다. 저기 가면 아내가 멋대로 게임기를 팔았다고 불평하던 어느 남편도 게임기를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 마더 로씨아! 남편은 타임머신 타고 톨스토이 살던 과거의 러시아로 가면 되겠네 ㅋ 하긴 남녀차별이 심화되었던 조선 말기가 더 남자들 살기 좋았으려나?

P.S 얼간망둥이라는 욕이 등장한다. 다른 국적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똑같은 단어가 등장하는 걸 보면 욕설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쓰지 않았다는 걸로 해석된다. 이 출판사가 유독 그런 욕으로 순화시켜 쓰는 걸 좋아하는지?

한 아낙네가 덜렁대는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뽑아 후렴구까지 부르고 나자, 이번에는 곧이어 굵직한 목소리며 가느다란 목소리 그리고 기운찬 목소리 등 쉰 남짓의 갖가지 목소리들이 한결같은 노래를 처음부터 되풀이했다.


  

 

1권처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음악적 요소가 곳곳에 등장한다. 이거 정말 뮤지컬 노리고 쓴 게 아닐지. TV에 KT를 연계하니 영화를 사서 볼 수 있는 게 뜨던데, 기회가 있으면 찾아내서 도전해볼까 한다.

 그러자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말할 것까지도 없지만, 아름다운 헬레네 때문에 최근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되살아난 메넬라오스를 위시하여 현대 상류사회에서 남편에 대해 부정했던 아내의 실례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머릿속에 쭉 떠올랐다. '다리얄로프, 폴타프스키, 카리바노프 공작, 파스쿠딘 백작, 드람...... 그렇다. 드람도...... 그처럼 성실하고 유능한 인물조차 그런 일을 당했다...... 세묘노프, 챠긴, 시고닌' 하고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생각했다. '설령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 어떤 불합리한 조소가 던져졌을지언정 난 결코 그들에게서 불운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그들을 동정해왔다.' 이렇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스스로에게 말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이런 종류의 불행에 동정하지 않았고, 남편을 배반한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자기의 값어치는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한남들이 그렇게 여혐을 하면서도 지네들끼리 뭉치지 못하는 이유를 정말 명확히 제시하는 듯해서 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봤다.

그나저나 밖에서는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 집에서 문 닫으면 지 아내랑 자식을 팬다. 나도 아버지가 주먹으로 날 때려서 피멍이 들었는데도 사람들이 여태 내가 거짓말한 줄 안다. 덕분에 성당 가고 싶은데 이상한 소문 퍼져서 못 가고 아버지는 잘 다니심.

약간 스포를 하자면 안나의 남편은 안나의 힘겨운 출산을 보고 충격을 먹어 잠시 새 사람으로 돌아올 각오를 하지만 결국 얀데레에게 빠져(응?) 요상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남 어차피 오래가지 못한다는 톨스토이의 코웃음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아, 그렇군, 그 속에 재미있는 논문이 있어." 스비야쥐스키는 레빈이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보고 말했다. "결국은 그거야" 하고 그는 유쾌하고 발랄한 어조로 덧붙였다. "폴란드 분할의 주요 책임자는 결코 프리드리히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그리고 그는 특유의 명쾌한 어조로 간단하게 이 새롭고도 몹시 중대한 흥미로운 발견해 대해 얘기했다. 지금 레빈은 농사에 대한 생각에 무엇보다도 많이 마음을 뺏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이렇게 자문했다. '도대체 이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이 사내는 폴란드의 분할이니 하는 문제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스비야쥐스키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레빈은 무심코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노빠꾸 레빈 ㅋ 근데 어떤 페친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윌리엄 포크너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지 고향 얘기만 나와서 재미없어서 덮었다나. 근데 이건 약간 이세계 덕후랑 비슷해서, 무조건 지 일과 먼 얘기를 봐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런 심정인 것 같다. 이건 정말 모르는 사람은 이해가 안 간다 하더라. 현실도피와는 좀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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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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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경주에 참가하는 이들은 스스로 그 직업을 선택한 군인이라는 것을 잊으셔선 안 됩니다. 또 모든 직업은 영광의 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이 곧 군인으로서의 직무니까요. 권투라든가 스페인식 투우라든가 하는 종류의 추악한 경기는 야만의 표상입니다. 그렇지만 전문화된 경기는 문화의 표상이지요."



 


말박이들이 좋아할 만한 대사라 올려본다. 그렇지만 여기서 잠깐 출연하는 말 프루프루는 너무 불쌍했다 ㅠㅠ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문학 사상 가장 압도적인 첫 문장으로 꼽히는 톨스토이의 이 작품 속 이 문장은, 이 속에 담긴 다층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다'는 문장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치환시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을 행복의 필요조건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은 사유리 씨에게 "애비 없는 아이를 낳을 셈이냐?"는 오지랖을 떠는 배경에도 이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작용한다.

저 첫 문장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오독이고 톨스토이에 대한 모독이다.

'행복한 가정'의 '서로 닮은 점' 딱 한 가지는 오직 '관계'다. 그 가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 사이의 관계가 어떠한지가 행복을 더 많이 규정한다.

독서모임하다가 어떤 분이 저 행복한 가정 어쩌구 구절에 관련해서 한 얘기가 있는데, 지금은 뭐였는지 자세히 기억도 안 나지만 그게 너무 마음에 안 들고 심지어 기분까지 나빠져서 ㅡㅡ 소설에 대한 감상은 자유이지만 지 머가리에 사로잡혀 작가의 의도까지 무시하지 말자.

 

은근 경마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일단 돈도 거니 경마라 치자.). 말이 가자는 대로 기수가 따라야지 말을 힘주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몰려고 하면 그것이 아무리 선한 의도였더라도 끔찍한 일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이런 걸 봐도 그렇지만 톨스토이는 어지간히 교훈을 던져주려는 의도가 다분해서 어릴 때 보면 딱 좋은 작품들을 많이 쓴다. 그래서 이 분이 쓴 인생론을 본 후에 소설을 보게 될 경우 지루함이 몰려들게 되는 것이다(그리고 톨스토이가 쓴 소설은 왠지 필요 이상으로 일상적인 장면에 페이지를 과하게 할애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고 프루스트처럼 의미 있게 연출하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도 그게 닥쳐왔지만, 어떻게든 페이지를 넘겨보려 노력했다. 다행히도 내가 관심있어 하는 여성들의 수난 이야기라서 그럭저럭 잘 넘어갈 수는 있었다.

 

'알라빈은 유리탁자 위에서 오찬을 베풀고 있었어. 그리고 탁자들도 모두 Il mio tesoro란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아니, Il mio tesoro가 아니라 뭔가 훨씬 훌륭한 노래였어. 그리고 그 탁자 위에 목이 길고 귀엽게 생긴 병들이 있었는데, 그것들도 모두 여자였어.'



 


가끔 이렇게 음악을 소개?해주듯이 하더라. 확실히 뮤지컬 영화로 만들면 딱 좋겠음.

 

무엇보다도 불쾌했던 건 그가 즐겁고 흐뭇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선물할 큼직한 배 한 개를 손에 들고 극장에서 돌아왔을 때, 아내의 모습을 객실에서도 서재에서도 보지 못하고 마침내 침실에서 모든 것을 폭로하고 만 그 불행의 편지를 논에 들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서른네 살의 미목이 반듯하고 다정다감한 사내인 자신이, 지금 살아남은 다섯 아이와 이미 죽어버린 두 아이의 어미이며 그보다 한 살밖에 젊지 않은 아내한테만 빠져 있지 않았다고 해서 이제 와 새삼스럽게 뉘우칠 마음은 없었다. 그는 다만 아내의 눈을 좀 더 솜씨 있게 속일 수 없었던 것을 후회하였다.


 


 

말뽄새봐라 ㅅㅂ ㅋㅋ 어릴 때도 이 구절 때문에 이 ㅅㄲ 뭐야?하고 때려친 건데 지금 봐도 대환장파티네.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과격하지는 않지만 다수가 지지하는 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는 자유주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 자유파 사람들은 말하기를ㅡ아니, 그보다 암시하고 있었다는 것이 적절할지 모른다ㅡ종교는 인민 가운데 야만층을 위한 재갈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비록 짧은 기도라 할지라도 두 발이 쑤시는 일 없이 견뎌낼 수가 없었고, 또한 이승의 생활이 아주 즐거운데 구태여 저승에 대한 두렵고 과장된 말이 무엇때문에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또 인상적인 구절에 스테판 아르카디이치가 나오는데 이 망나니가 나오는 첫 장면이 워낙 충격과 공포인지라(...)

그나저나 신문은 또 톨스토이 본인 꺼라는 게 소름 ㅋ 이 글 쓸 때에도 눈 앞에 신문이 있었을 거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레빈은 정말 성격이 톨스토이 보는 줄 알았다. 매사 뭔갈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행동하는 츤데레 성격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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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 이야기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4
기쿠치 간 지음, 이경재 옮김 / 소화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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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소하치로는 비장하고 있는 패도의 칼이 빠지지 않게 쇠못에 금으로 된 당사자상을 장식으로 붙이고 다녔다. 그것을 그는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누가 그 내력을 물어 보면,

"이것 말인가? 아마쿠사봉기 때 노획한 십자가를 다시 주조해서 만든 것이요" 하며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은혜 갚는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천주교도에 분노하고 그들을 탄압하면서도 그들에게 초자연적인 공포를 느끼고 십자가는 되려 숭배하는 일본인들의 모순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부적으로 쓴답시고 만들었겠지만 도리어 예수님의 노여움을 사는 게 아닐까 ㅋ

참고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마바라의 난은 정말 엄청났다고 한다. 천주교세는 그 이후 처참하게 몰락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공회와 정교회 교세는 성장했으니;; 대단한 종교민족이라고 할까 백귀야행에서부터 알아봤긴 했지만() 또한 그리스도교인은 극소수이긴 하나 그 고문 속에서;;; 신앙을 지켜나갔고 또한 카쿠레키리시탄과 같이 천주교를 암암리에 유지해 나간 면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분명 설화를 리메이크했다 들었는데, 센스있게도 중간중간에 배경 묘사를 넣었다. 일본 문화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어서 당시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래서인가 뒤에서도 극본이 나오지만, 소설보다는 어딘가 시나리오같은 느낌이 많이 난다.

원한을 넘어서를 읽기 위해 봤는데(사이코패스 감독의 말처럼 반드시 읽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게다가 주인공인 중이 좀 빻아서 극장판의 여주인공처럼 읽다 실망할지도 모른다 ㅋㅋ 게다가 남주는 하필 왜 그런 사무라이한테 감정이입하는지..), 정작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도주로의 사랑이었다. 그는 교토의 난봉꾼 역할 전문 배우지만, 정작 가부키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 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었다. 바로 유부녀와 정사를 벌이지 않기 때문인데, 아는 사람이 이제까지 없던 대담한 가부키 각본을 짜서 그것으로 연기를 하게 된다. 바로 유부녀와 진지한 사랑에 빠진 남자 이야기이다. 현재 에도에서 온 배우가 뜨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어떻게든 이 역할을 잘 소화해내야 다시 배우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옛날부터 알고 지냈던 한 유부녀에게 거짓 사랑 고백을 한다. 이전엔 가짜로 난봉꾼 연기를 했으나 이젠 정말로 여성을 농락하는 난봉꾼이 된 셈이다. 그러나 도주로를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던 유부녀는 그의 고백이 정말인지 의심한다. 도주로의 연기는 유부녀와 다른 관객들에게 먹힐 수 있을까.

사회에 진출한 여성에게 남편이 가정폭력을 가한다는 내용인 분재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은 특이하게도 여성이 받는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주로의 거짓 고백은 탁월하고 그걸 받은 대상인 유부녀는 '복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그게 전해진다. 그녀가 그것을 모욕으로 간주하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할까.. 이건 실제 전해지는 설화에 기초한다기보단 설화를 각색한 기쿠치 간의 관점인 것 같다.

마침 가부키에 관련된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있는지라 관련 지식도 쌓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일본에서는 가부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지, 생각보다 눈에 익은 단어들이 많았다. 가부키에 의해 유래된 단어들이 현재에도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 남자를ㅡ지금 젊은이들의 말대로 하면ㅡ사랑을 하게 된 거죠. 웃지 말아요. 할머니는 참회하는 생각으로 얘기하고 있는 거니까. 그 남자는 배우였어요. 과부가 배우에게 반한다는 것은 세상에 흔한 일로, 자네에게도 우스운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내 얘기는 조금 달라요. 내가 사랑을 느낀 그 배우는 아사쿠사의 사루와카초의 모리타좌ㅡ이 극단은 유신 후에 쓰키지로 옮겨서 지금은 신토미좌가 되었는데, 여기 출연하고 있던 소메노스케라는 배우였어요. 와카슈가타였는데 인기도 없고, 집안 내력도 없는 배우였지만 왠지 이 배우가 무대에 나오면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혼이 나간 듯,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마음이 되고 마는 거예요.

 

 

Boy meets girl 같은 상황을 굉장히 잘 묘사하시는 듯 ㅎㅎ

소베의 장녀인 금년 11세가 되는 오슌의ㅡ오칸은 그녀에게 첫손녀였던 오슌을 얼마나 마음 깊이 사랑했는지 모른다ㅡ끊임없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처음에는 죽어가는 오칸의 가슴을 슬픔에 휘저어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오칸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가장 사랑하는 손녀딸의 울음소리가 조금도 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영혼을 영원한 잠으로 유인하는 음률의 자장가나 그 무엇처럼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저자는 그래도 죽음을 경험해보진 않았겠지만 ㅎㅎ 그래도 죽음은 저렇지 않을까 하고 나도 어렴풋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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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맨서 환상문학전집 21
윌리엄 깁슨 지음, 김창규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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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넌 어떻게 우니? 눈이 완전히 막혀 있는 것 같은데. 궁금하구나."


노인은 눈 언저리가 붉었고 이마는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안색이 무척 창백했다. '병이 들었거나 마약이겠군.' 케이스가 생각했다.


"별로 울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가 너를 울리든가 한다면, 그땐 어떻게 울지?"


몰리가 말했다.


"침을 뱉죠. 관이 입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중요한 교훈을 배운 셈이군."


그는 권총을 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다음 옆에 있는 테이블에 놓인 대여섯 종의 술 중에서 한 병을 아무렇게나 골라 집어 마셨다. 브랜디였다. 술 한 방울이 그의 입가에서 떨어졌다.



 


 

주인공 상황보고 어느 정도 귀환병 이야기려니하고 짐작했는데 세상에 코르토 에피소드는 이 정도면 조커될 만하다고 인정합니다; 자기 국가 군인들 죽음을 그냥 어느 모르는 집 개고양이가 죽은 것처럼 취급하네. 하기사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6.25에서 군공 세운 사람이나 부상병들에게 훈장 주는 거 못 봤다. 나도 전전전남친이 전우 잃고 절름발이 되신 외할아버지 계급이 뭐냐 물어볼 때 걍 그 새끼 얼마 없던 머리채 몽창 뽑아버릴걸 그랬네. 왜 난 조커가 되지 못했나...


보다보니 남주 찌질함이 한남 수준이다. 절도해서 신경 다 망가진 뒤 기계 하나 가지지 못한 채 퇴역당한 스페이스 카우보이인데, 그 시절 은근 그리워하면서도 술집에서 기계 고치러 해외 간다는 인간 보면서 그딴 기계 왜 달아 이러고 있음 ㅋㅋㅋ 자기 건드리면 잣으로 만들어놓겠다며 약 먹고 본진 쳐들어가면서 정작 달리다 약기운 깨면 총 버리고 굽신굽신ㅋㅋㅋ 정의감 그런 거 1도 없음. 맨날 일본 애니만 보다보니 '내 정의가 즈엉의다!' 이러는 인간들만 오조오억명 대한 것 같은데, 오랜만에 이런 인물 보니 재밌네. 아무튼 스토리의 완성도도 제법 높은 편이고, 퀘스트(?)를 깨면서 성장하는 케이스의 모습도 바람직하다. 마지막엔 의미심장한 반전이 나오지만.

역시 단 한 번, 케이스는 술을 마시려고 손을 뻗다가 물 탄 버번 잔 바닥에서 언뜻 거대한 인간의 정자 같은 것이 비치는 것을 알아챘다. 몰리가 케이스 너머로 몸을 뻗쳐 리비에라의 얼굴을 한 대 후려쳤다.


"까불지 마. 장난치지 말라고.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그런 무의식 장난질을 하면 혼쭐을 내주겠어. 상처 하나 안 내고 보내 버릴 테니까. 아주 재밌을 거야."


(...) 케이스는 눈을 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왕복선은 그저 커다랗고 아주 높이 나는 비행기에 불과하다고. 비행기 냄새가 났다. 새 옷과 껌과 피로의 냄새도. 케이스는 선내 방송의 코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다렸다.



 


 

코토가 뭔가 했더니 최근 애니 이 소리에 모여에 나오는 가야금같은 악기였네요.

 

"좁은 부분으로 가면 산 같은 느낌을 받게 돼. 지면이 가팔라지면서 바위가 점점 많아지지. 하지만 올라가기는 쉬워. 높이 올라갈수록 중력이 약하니까. 그쪽에 운동 센터가 있어. 이쪽에는 벨로드롬이 있고."


"벨로....... 뭐요?"


케이스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몰리가 말했다.


"자전거 경주장이야. 중력이 낮은 데다가 마찰력이 높은 타이어를 사용해서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달릴 수 있어."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정말 그런 경기가 있었다. 그리고 만화도;;; 일본은 정말 만화로 안 그린 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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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자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3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동녘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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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이건 말건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삶이나 다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 어째서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은 이다지도 끔찍하고, 기괴하고, 이해타산적이며, 불신으로 가득한 걸까? (...) 이놈의 도시, 말 많은 작은 도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3부이다. 어쩐지 2부에서 나왔던 내용과 상당수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굉장히 의미심장한 내용들이 펼쳐진다.



일단 2부는 제제가 거짓말로 둘러대고 입양된 집을 나와 도망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광란자에서 제제는 버젓이 학교를 다닌다. 그리고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라임오렌지나무라던가 두꺼비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따르씨지우라는 의미심장한 아이가 처음부터 수상한 태도를 보인다. 제제와 달리 쭉 빠진 바지를 입고 다니는 그는 (하필이면) 망고나무에서 제제에게 비밀스런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하면 무엇을 할 건지 제제의 아버지와 똑같이 물어보는 데서 2부의 모리스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왜 이렇게 교장인 수학선생이 소리를 지르니 죽이겠다는 말이 공감이 되는 걸까. 그나저나 수학 선생이 교장인데다 찍힌 상황이라니 끔찍하다. 수학은 나의 원수..  

생각해보니 2부에서는 난리통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제제가 졸업을 한 것으로 나오는데 3부에서는 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2부에서도 조금씩 관심을 보여주긴 했지만 3부에서는 유달리 다정한 양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3부는 일종의 평행세계가 아닐까 한다. 만약 제제가 자퇴를 했다면? 이라는 설정 정도?? 아니면 2부가 제제의 상상이고 3부가 그의 현실이었던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씰비아는 대놓고 제제를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여기고 있는 거 같은데... 불안불안하다.





불안함은 제제의 연애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제는 보수도 적고 현재는 인공지능에 의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화물 검수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엄연히 돈을 버는 일이긴 하지만 정작 제제는 그 일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기지 못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왜 제제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냐고 잔소리들이 심하다. 현실과 함께 제제를 무겁게 짓누르는 아버지란 권력. 이것을 어떻게 떨치고 나가는지는 2부와 3부가 각각 다르다. 2부에서 제제가 도망을 쳤다면 3부에서의 제제는 허심탄회하게 아버지에게 자신의 장래를 털어놓는다. 그런 점에서는 3부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시리즈 중 가장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제제의 상상력은 이미 죽었다 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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