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이야기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4
기쿠치 간 지음, 이경재 옮김 / 소화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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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소하치로는 비장하고 있는 패도의 칼이 빠지지 않게 쇠못에 금으로 된 당사자상을 장식으로 붙이고 다녔다. 그것을 그는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누가 그 내력을 물어 보면,

"이것 말인가? 아마쿠사봉기 때 노획한 십자가를 다시 주조해서 만든 것이요" 하며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은혜 갚는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천주교도에 분노하고 그들을 탄압하면서도 그들에게 초자연적인 공포를 느끼고 십자가는 되려 숭배하는 일본인들의 모순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부적으로 쓴답시고 만들었겠지만 도리어 예수님의 노여움을 사는 게 아닐까 ㅋ

참고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마바라의 난은 정말 엄청났다고 한다. 천주교세는 그 이후 처참하게 몰락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공회와 정교회 교세는 성장했으니;; 대단한 종교민족이라고 할까 백귀야행에서부터 알아봤긴 했지만() 또한 그리스도교인은 극소수이긴 하나 그 고문 속에서;;; 신앙을 지켜나갔고 또한 카쿠레키리시탄과 같이 천주교를 암암리에 유지해 나간 면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분명 설화를 리메이크했다 들었는데, 센스있게도 중간중간에 배경 묘사를 넣었다. 일본 문화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어서 당시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래서인가 뒤에서도 극본이 나오지만, 소설보다는 어딘가 시나리오같은 느낌이 많이 난다.

원한을 넘어서를 읽기 위해 봤는데(사이코패스 감독의 말처럼 반드시 읽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게다가 주인공인 중이 좀 빻아서 극장판의 여주인공처럼 읽다 실망할지도 모른다 ㅋㅋ 게다가 남주는 하필 왜 그런 사무라이한테 감정이입하는지..), 정작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도주로의 사랑이었다. 그는 교토의 난봉꾼 역할 전문 배우지만, 정작 가부키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 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었다. 바로 유부녀와 정사를 벌이지 않기 때문인데, 아는 사람이 이제까지 없던 대담한 가부키 각본을 짜서 그것으로 연기를 하게 된다. 바로 유부녀와 진지한 사랑에 빠진 남자 이야기이다. 현재 에도에서 온 배우가 뜨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어떻게든 이 역할을 잘 소화해내야 다시 배우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옛날부터 알고 지냈던 한 유부녀에게 거짓 사랑 고백을 한다. 이전엔 가짜로 난봉꾼 연기를 했으나 이젠 정말로 여성을 농락하는 난봉꾼이 된 셈이다. 그러나 도주로를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던 유부녀는 그의 고백이 정말인지 의심한다. 도주로의 연기는 유부녀와 다른 관객들에게 먹힐 수 있을까.

사회에 진출한 여성에게 남편이 가정폭력을 가한다는 내용인 분재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은 특이하게도 여성이 받는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주로의 거짓 고백은 탁월하고 그걸 받은 대상인 유부녀는 '복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그게 전해진다. 그녀가 그것을 모욕으로 간주하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할까.. 이건 실제 전해지는 설화에 기초한다기보단 설화를 각색한 기쿠치 간의 관점인 것 같다.

마침 가부키에 관련된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있는지라 관련 지식도 쌓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일본에서는 가부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지, 생각보다 눈에 익은 단어들이 많았다. 가부키에 의해 유래된 단어들이 현재에도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 남자를ㅡ지금 젊은이들의 말대로 하면ㅡ사랑을 하게 된 거죠. 웃지 말아요. 할머니는 참회하는 생각으로 얘기하고 있는 거니까. 그 남자는 배우였어요. 과부가 배우에게 반한다는 것은 세상에 흔한 일로, 자네에게도 우스운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내 얘기는 조금 달라요. 내가 사랑을 느낀 그 배우는 아사쿠사의 사루와카초의 모리타좌ㅡ이 극단은 유신 후에 쓰키지로 옮겨서 지금은 신토미좌가 되었는데, 여기 출연하고 있던 소메노스케라는 배우였어요. 와카슈가타였는데 인기도 없고, 집안 내력도 없는 배우였지만 왠지 이 배우가 무대에 나오면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혼이 나간 듯,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마음이 되고 마는 거예요.

 

 

Boy meets girl 같은 상황을 굉장히 잘 묘사하시는 듯 ㅎㅎ

소베의 장녀인 금년 11세가 되는 오슌의ㅡ오칸은 그녀에게 첫손녀였던 오슌을 얼마나 마음 깊이 사랑했는지 모른다ㅡ끊임없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처음에는 죽어가는 오칸의 가슴을 슬픔에 휘저어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오칸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가장 사랑하는 손녀딸의 울음소리가 조금도 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영혼을 영원한 잠으로 유인하는 음률의 자장가나 그 무엇처럼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저자는 그래도 죽음을 경험해보진 않았겠지만 ㅎㅎ 그래도 죽음은 저렇지 않을까 하고 나도 어렴풋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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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맨서 환상문학전집 21
윌리엄 깁슨 지음, 김창규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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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넌 어떻게 우니? 눈이 완전히 막혀 있는 것 같은데. 궁금하구나."


노인은 눈 언저리가 붉었고 이마는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안색이 무척 창백했다. '병이 들었거나 마약이겠군.' 케이스가 생각했다.


"별로 울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가 너를 울리든가 한다면, 그땐 어떻게 울지?"


몰리가 말했다.


"침을 뱉죠. 관이 입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중요한 교훈을 배운 셈이군."


그는 권총을 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다음 옆에 있는 테이블에 놓인 대여섯 종의 술 중에서 한 병을 아무렇게나 골라 집어 마셨다. 브랜디였다. 술 한 방울이 그의 입가에서 떨어졌다.



 


 

주인공 상황보고 어느 정도 귀환병 이야기려니하고 짐작했는데 세상에 코르토 에피소드는 이 정도면 조커될 만하다고 인정합니다; 자기 국가 군인들 죽음을 그냥 어느 모르는 집 개고양이가 죽은 것처럼 취급하네. 하기사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6.25에서 군공 세운 사람이나 부상병들에게 훈장 주는 거 못 봤다. 나도 전전전남친이 전우 잃고 절름발이 되신 외할아버지 계급이 뭐냐 물어볼 때 걍 그 새끼 얼마 없던 머리채 몽창 뽑아버릴걸 그랬네. 왜 난 조커가 되지 못했나...


보다보니 남주 찌질함이 한남 수준이다. 절도해서 신경 다 망가진 뒤 기계 하나 가지지 못한 채 퇴역당한 스페이스 카우보이인데, 그 시절 은근 그리워하면서도 술집에서 기계 고치러 해외 간다는 인간 보면서 그딴 기계 왜 달아 이러고 있음 ㅋㅋㅋ 자기 건드리면 잣으로 만들어놓겠다며 약 먹고 본진 쳐들어가면서 정작 달리다 약기운 깨면 총 버리고 굽신굽신ㅋㅋㅋ 정의감 그런 거 1도 없음. 맨날 일본 애니만 보다보니 '내 정의가 즈엉의다!' 이러는 인간들만 오조오억명 대한 것 같은데, 오랜만에 이런 인물 보니 재밌네. 아무튼 스토리의 완성도도 제법 높은 편이고, 퀘스트(?)를 깨면서 성장하는 케이스의 모습도 바람직하다. 마지막엔 의미심장한 반전이 나오지만.

역시 단 한 번, 케이스는 술을 마시려고 손을 뻗다가 물 탄 버번 잔 바닥에서 언뜻 거대한 인간의 정자 같은 것이 비치는 것을 알아챘다. 몰리가 케이스 너머로 몸을 뻗쳐 리비에라의 얼굴을 한 대 후려쳤다.


"까불지 마. 장난치지 말라고.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그런 무의식 장난질을 하면 혼쭐을 내주겠어. 상처 하나 안 내고 보내 버릴 테니까. 아주 재밌을 거야."


(...) 케이스는 눈을 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왕복선은 그저 커다랗고 아주 높이 나는 비행기에 불과하다고. 비행기 냄새가 났다. 새 옷과 껌과 피로의 냄새도. 케이스는 선내 방송의 코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다렸다.



 


 

코토가 뭔가 했더니 최근 애니 이 소리에 모여에 나오는 가야금같은 악기였네요.

 

"좁은 부분으로 가면 산 같은 느낌을 받게 돼. 지면이 가팔라지면서 바위가 점점 많아지지. 하지만 올라가기는 쉬워. 높이 올라갈수록 중력이 약하니까. 그쪽에 운동 센터가 있어. 이쪽에는 벨로드롬이 있고."


"벨로....... 뭐요?"


케이스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몰리가 말했다.


"자전거 경주장이야. 중력이 낮은 데다가 마찰력이 높은 타이어를 사용해서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달릴 수 있어."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정말 그런 경기가 있었다. 그리고 만화도;;; 일본은 정말 만화로 안 그린 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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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자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3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동녘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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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이건 말건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삶이나 다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 어째서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은 이다지도 끔찍하고, 기괴하고, 이해타산적이며, 불신으로 가득한 걸까? (...) 이놈의 도시, 말 많은 작은 도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3부이다. 어쩐지 2부에서 나왔던 내용과 상당수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굉장히 의미심장한 내용들이 펼쳐진다.



일단 2부는 제제가 거짓말로 둘러대고 입양된 집을 나와 도망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광란자에서 제제는 버젓이 학교를 다닌다. 그리고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라임오렌지나무라던가 두꺼비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따르씨지우라는 의미심장한 아이가 처음부터 수상한 태도를 보인다. 제제와 달리 쭉 빠진 바지를 입고 다니는 그는 (하필이면) 망고나무에서 제제에게 비밀스런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하면 무엇을 할 건지 제제의 아버지와 똑같이 물어보는 데서 2부의 모리스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왜 이렇게 교장인 수학선생이 소리를 지르니 죽이겠다는 말이 공감이 되는 걸까. 그나저나 수학 선생이 교장인데다 찍힌 상황이라니 끔찍하다. 수학은 나의 원수..  

생각해보니 2부에서는 난리통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제제가 졸업을 한 것으로 나오는데 3부에서는 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2부에서도 조금씩 관심을 보여주긴 했지만 3부에서는 유달리 다정한 양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3부는 일종의 평행세계가 아닐까 한다. 만약 제제가 자퇴를 했다면? 이라는 설정 정도?? 아니면 2부가 제제의 상상이고 3부가 그의 현실이었던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씰비아는 대놓고 제제를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여기고 있는 거 같은데... 불안불안하다.





불안함은 제제의 연애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제는 보수도 적고 현재는 인공지능에 의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화물 검수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엄연히 돈을 버는 일이긴 하지만 정작 제제는 그 일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기지 못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왜 제제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냐고 잔소리들이 심하다. 현실과 함께 제제를 무겁게 짓누르는 아버지란 권력. 이것을 어떻게 떨치고 나가는지는 2부와 3부가 각각 다르다. 2부에서 제제가 도망을 쳤다면 3부에서의 제제는 허심탄회하게 아버지에게 자신의 장래를 털어놓는다. 그런 점에서는 3부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시리즈 중 가장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제제의 상상력은 이미 죽었다 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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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사냥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2
J.M.바스콘셀로스 지음, 박원복 옮김, 김효진 그림 / 동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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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똑같은 반성문 천 줄을 써야 한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천 줄이나? 차라리 책 한 권을 쓰는 편이 낫겠군. 소설 한 권 말이야. 젠장, 내가 알게 뭐야. 거지 같은 걸로 한 권 쓰고 말지. 그런데 천 줄이나 쓰라니, 한 문장 한 문장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건 연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한 걸 거야. (...) 나는 일부러 그걸 증오한다고 말할 텐데, 그게 받아들여진다면 최소한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쓰게 될 것이다.
"문장을 말해요!"
"이삐랑가의 평온한 강변들은 들었노라......."
(...) "이 아이가 완전히 돌았구먼. 애국가를 증오한다고?"

내가 듣기로 이 시기의 브라질은 우리나라의 80년대와 비슷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구절은 유머를 담아서 작가가 현실을 비꼬는 구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젠장. 내가 너무 소설을 해석하려 드는 건가? 혹시라도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조언을 구한다.

 


보통 혼혈아들은 생김새가 준수하다고 한다.


 혼혈인이 아름답다라고도 하지만 그런 표현은 극히 드물며, 보통은 혼혈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들은 특수한 부모들에게는 인기가 많아 잘 선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그 선택을 좋아하게 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귀여움 받는 걸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데도 계속 귀여워하는 건 폭력이라고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를 읽으면서 나는 배웠다. 게다가 귀여워하는 방식이 애정표현도 아니고 공부를 마구 시킨다는 비정상적인 방식이라면 어떨까. 차라리 아주 솔직히 네가 이쁘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의 체면을 내세우고 훗날 자신에게 베풀어주는 걸 기대하고 투자하는 것 뿐이라 말한다면 나을지도 모른다. 귀여워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 볼 수는 없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제발 귀여워하는 사람에게 할말 못할말 다 말하지 마라... 귀여운 인간은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하지 않단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뭐? 아버지가 이사를 가고 우리는 잘 살 거라고 했더니? 웨 입양이 됨? 그럼 가족이 애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겁니까? 너무 열받는데. 평소 애를 죽을 때까지 패놓더니 ㅋㅋㅋ 아니 그렇게 애를 많이 낳았으면 다 책임을 져야할 거 아냐 ㅋㅋㅋ 이거 정말 너무하네요 ㅠㅠ 1부도 그렇게 시궁창이었는데. 슈발것들 진짜 그 가족 보면 머리 다 뽑고 싶을 정도의 증오가 올라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제는 어른들을 이해하려 애쓰며 현실과 타협해 나간다. 고도이아의 자동차 사고가 계가가 된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따지고보면 우리나라도 옛날엔 이런 거 많았다. 가난한 애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에 위탁형태로 가서 돈 벌거나 공부해서 잘 살고 집에 원래 집에 돈 가져다 주는 방식. 내 주변에도 그런 어른 있고.

 


제제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게 특히나 슬프다.


 1부에서 돈을 벌어야 하고 죽음과 싸우는 어른들의 심정을 모르고 장난쳤던 제제가 있다면 이 2부에서는 어른들을 배려해주는 제제가 있다. 안돼 제제야 ㅠㅠ 어른의 심정을 안다는 건 늙어간다는 증거야 ㅠㅠ 점점 건강해지고 있는 건 좋지만 얼굴이 이쁘장해서 아버지가 경계하는 걸 보니 역시 3부에서는 여자들이 졸졸 따라다닐 거 같다 ㅠㅠ 옛날에는 제제한테 감정이입해서 어른들을 욕하고 다니면서 제제가 빨리 성장하길 바랬는데 다 커서는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뭘까. 역시 내가 늙었단 증거인가(...) 아님 최애를 애끼는 마음? 애인이 생긴들 분명 제제의 불우한 환경을 버틸리 없다는 불안감이 작용하는 듯하다.

대체로 꼬꼬댁 꼬꼬 하는 암탉 웃음소리를 내는 등 제제 리즈 시절에 비하면 완전 평범하지만 기숙사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장난을 치는 듯하다. 1부의 화려한 경력을 생각하면 상류층계에 눌려서 기가 죽은 것 같아 매우 짠하다. 전엔 반항이라도 했지 여기선 초반에 찍소리도 못하고 눈물만 질질 흘리는 장면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제제에게 점점 말을 거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지혜가 생기면서 전에 없던 완벽범죄(?)가 가능해진다. 그 점이 신박하다. 제제가 하는 짓이 내가 하는 짓 같은데 어른들에게 들켜서 혼날 것 같으면서 들키지 않는 스릴이 있다. 제제가 도시에 와서 생활하다보니 아무래도 상상력이 밍기뉴 때보다 빈곤해지는 듯하다. 어쩌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실제 인물이었던 뽀르뚜가가 기차에 치여 죽은 게 충격이 커서 거리를 뒀는지도 모르겠다. 햇빛사냥 중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두꺼비 아담도 짐을 쌀 때는 제제한테 쌀쌀맞게 대하는 걸로 나오고. 기타 모리스 아저씨가 자신을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 걸로 나오고 아담이 자신에 대해 다 알지 못하는 등, 일부러 한계를 설정해놓고 가상의 인물들을 조롱하듯이 말한다. 너는 근데 예전에 이 수사님이 말한 것과 어쩜 그렇게 똑같이 말하니? 라는 식으로. 무엇보다 죽음을 무서워한다. 처음 만날 때부터 너도 떠날거야? 너도 죽어? 그러고 물어보는 식. 전반적으로 기운이 없는 듯해서 불쌍하다. 안 울려고 했는데 모리스 슈발리에를 진짜로 만날 때 울었다... 제제가 모리스를 만난 게 꿈인지 아닌지 아직도 헷갈려하는 사람이 있는 듯한데, 나는 어린 시절 제제가 만난 모리스는 모리스를 꿈꾸는, 제제가 양자로 들어간 집안과 관련된 어느 배우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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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하룻밤의 만찬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1
데이비드 그레고리 지음, 서소울 옮김 / 포이에마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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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더 사랑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고 있어요.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그만한 능력이 선생에겐 없죠. 하나님만이 그렇게 사랑합니다. 그런 사랑을 선생을 통해 하고 싶으신 겁니다."

메인디시에서 하나님의 공평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에겐 인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그 점에선 나와 의견이 다르지만 완전무결하다는 점에선 나와 같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워낙 더럽혀져서 그 단어를 쓰는 게 싫은 것 뿐이지, '인간과 다른 종류의 사랑'이라 쓴다면 그건 맞는 듯하다. 그러나 역시 사랑이라고 하면 인간적인 사랑을 연상시키니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것일 뿐. 아무튼 사람이라서 같은 사람을 볼 때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약점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메가데레는 2D나 신에게만 존재하지 사람에겐 있을 수 없다. 영원한 사랑 또한 없다. 이 책에선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그 무언가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크리스마스날 읽고 리뷰쓰려다 귀찮아서 걍 지금 쓴다. 짧아서 영어공부하고 싶으면 원본 사서 읽어도 괜찮을 듯하다. 나는 기왕 산 거 이걸로.. 원문 제목은 Dinner with a perfect stranger이다. 미국 소설책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유머로 이루어진 책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골프장에 도착해 '내 주인은 유대인 목수시니'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인 차 뒤에 주차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나는 4인 1조 시합에 배정되었고, 알고 보니 그 차 주인도 같은 조였다. 그는 누군가에게 벽돌로 얻어맞고는 휴일에 성형외과 의사를 불러내 수술을 받은 사람처럼 부자연스런 미소가 얼굴에 고정돼 있었다. 


유대인 목수는 요셉이 아니냐는 말을 듣고 생각난 에피소드. 저번주 일요일날 성당에서 명화 강의 있어서 들으러 갔는데 마리아는 예쁘고 막 파랑색 이쁜 옷입고 그랬는데 요셉은 무슨 푸줏간 옷 입고 몸을 있는대로 꾸부리고 있고 완전 짜져있던 게 너무 리얼했다. 현재 산부인과 병원상태 보는 줄. 알고보면 요셉은 조신한 남자의 모범이다.


처음부터 힌두교를 대뜸 까기 시작한다. 일단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주고 우주가 나라는데, 힌두교에서는 당장 내가 우주는 될 수 있어도 우주는 내가 될 수 없음. 개성을 버리면 우주에 속할 수 있지만 우주가 개성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이건 마치 내가 계급장을 찰 수는 있지만 계급장 까고 이야기하는 건 리스토라를 각오해야 한다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불교도 이와 비슷하게 까는데, 불교에서는 버려야 한다는 욕망이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다는 이야길하면서 스치듯이 지나간다.

 


 살다보면 죽다 살아날 때도 있고 그런거죠 뭐. 난 예수 부활을 믿음. 오히려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과도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을 의심하는 편.


왜 안 믿냐 물어보면 대부분은 개신교나 천주교 신자에게 당한 일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신에게 당한 건 아니잖아? 예수 입장에선 걍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죽다 살아난 것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은근 시샘하고 공격하는 걸 보고 좀 억울해할 듯. 납득 안 되는 이야기는 오히려 창세기쪽이다.

 


 맨 끝에 소소하고 깜찍하지만 예리한, 누구나 겪지만 가볍지는 않은 반전이 나온다.


아마 이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2탄이 나온 듯하다. 짧지만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잘 파악한 책이라고 생각되며,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할 수 없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절대 단순한 자기계발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책.

 

"창세기는 역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거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빛으로 시작해서 천지를 질서정연하게 창조합니다. 땅을 만든 다음 땅을 구성할 것들을 설계하죠. 대양으로 대륙을 만들어 내고, 식물을 창조하고, 동물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합니다. 자, 이 일련의 순서에 과학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점이 있습니까?"


 

이 다음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에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닉이 말하니 예수가 과학자들이 창조주를 설명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맞긴 하지만 과학자란 직업 자체가 가설을 증명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지라 눈앞에서 보는 것도 믿지 않는 판인데, 너무 가혹한 건 아닌지;;? 다 좋은데 여기서 지뢰를 밟은 듯하다. 과학자들은 믿음 자체가 없기 때문에 창조주를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무신론자들이니 예수가 나타나서 신이 있다고 말한들 관심도 없을 것이다. 스켑틱이라는 과학 잡지만 봐도 그런 이야기 천지다. 이 경우엔 예수가 먼저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게 아닌지? 닉도 빨리 넘어가려는지 기적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꾼다. 하지만 기적은 창조랑은 연관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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