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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린게이블즈 빨강머리 앤-03 ANNE ㅣ 그린게이블즈 빨강머리 앤 3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어째서 누구나 내가 길버트와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까요?"
앤은 토라졌다.
"그건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그렇게 되도록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그 때문이죠. 앤, 그렇게 기를 쓰며 부정할 것 없어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p. 230

빨강머리 앤 만화에서만 보는 말라깽이 주근깨 소녀 앤만 생각하지 마시라.
이렇게 놀랍게 아름다운 얼굴에 나이스 바디(?)로 성장한 모습의 앤도 있다.
저기 멀리서 얼쩡거리는 남자는 당연히 길버트 블라이스겠지 ㅋㅋㅋ
아마도 학문을 좀 더 배우고 싶지만 남들의 이목도 신경쓰는 대부분의 평범한 지식인 여성들의 고민이 이 앤에게 담겨있었으리라 생각해본다. 풍부한 상상력과 이해심 그리고 언어력을 갖춘 남자를 원하는데 좀처럼 그에 맞는 사람은 접근하지 않고 왠 어중이떠중이들이 거래를 제시하는 것처럼 '난 돈이 많아 그러니 나랑 결혼하지 않겠는가' 이딴 식으로 프로포즈 하지 않나. 게다가 모처럼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본능은 그 사람에게 속박되길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연애하고 있고 좋아하긴 하는데 결혼은 왠지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사람, 겪어본 적 있는가? 앤은 그런 남자도 겪어본다. 그녀는 슬슬 지쳐간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검은 눈동자를 지닌 지나치지 않게 나쁜 남자'는 나타나지 않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눈을 조금만 낮춰보라 권한다. 물론 자신의 옆을 오랫동안 얼쩡거리는 착한 성품의 길버트 블라이스가 있지만, 그는 정확하게 현실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인물이며 단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앤의 상상력을 귀담아 들어줄 뿐이다. 결국 길버트가 타지에서의 대학생활로 건강을 해치고 앓아눕게 되자, 그녀는 길버트를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그와 결혼한다. 길버트의 상상력 부족을 눈감아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사람의 인연은 사람으로 인해 연결되고 끊어지기도 하지만, 난 결혼에 있어서 결정적인 운명이 있다는 주장을 믿는 편이다. 그런 남녀는(물론 남남이나 여여일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고, 두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특유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되더라도 여전히 특정한 사람과 옷깃 한 번 스치기도 미묘하게 힘든 세상이다. 결국 철벽같던 앤의 이상형 때문에 힘들게 돌아서 갔지만 결국 앤과 길버트는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앤이 결혼해서 자식을 다섯이나 낳은 후를 그린 외전도 두편 있던데, 모두 그런식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년,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 전부터 '결국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된다'라고 우리 엄마는 누누히 나에게 강조해왔었다. 이 소설의 작가도 우리 엄마와 생각이 같은 듯하다.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는 대부분 조그마한 시골마을 애번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지만, 이 3권에선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작가는 여기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캐번디쉬 공동묘지와 공원을 빼고는 그 경치좋은 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캐번디쉬 공동묘지마저 완전히 '몽고메리의 무덤'으로 이름이 바뀌어 관광명소가 되었으니, 몽고메리 씨는 무덤 속에서도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일까.
김정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