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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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자들도 한번쯤은 여자들처럼 다뤄져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왕은 머뭇거리더니 고개 숙이며 말한다.

...... 삽입당해봐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소유당하고, 채워지려는 욕구를 이해하겠지요. 여자가 배 속 깊은 곳에서 느낄 공허감과 버림받은 느낌을 말입니다.......

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가 마음의 동요를 감추는 동안 왕은 그의 주위를 돌며 점점 더 원을 좁혀온다.

...... 하지만 반대로 여자들 역시 한번이라도, 분출하기 위해, 씨를 뿌리기 위해 힘이 솟구쳤다 시들고 사라지는 욕망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남자들은 그 욕망이 오래가지 않고, 거기 집착하지 않으며, 다중적이라는 걸 잘 알지요. 그렇잖습니까? 우리는 그런 욕망을 매번 느끼지만 여자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왕은 멀찍이 떨어지며 다시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만약 두 성이 서로를 잘 안다면, 각 성이 잠깐이라도 상대 성의 입장에 서볼 수만 있다면, 이렇게 많은 비극과 불행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비극 작품도 없겠지요. 이건 안타까운 일이겠군요.



잠깐 출연한 태양왕 루이 14세.

애초에 페이트의 길가메시는 동성애자처럼 묘사되었고 은근 마초라서 저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임.

그러나 왕의 느낌이 강한 동작과 대사라서 짤 넣어봄.

주인공은 남주인공을 사귀었었다. 남주인공은 유부남이었고 시한부 인생이었으며 죽기 전에 본처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본처는 주인공에게 남주인공이 죽기 전에 남아달라고 끈질기게 간청하나 주인공은 그들을 뿌리친다.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자꾸 마음이 그들에게 향하자, 주인공은 자신을 첫사랑이 낙태를 하다 죽은 장 라신의 작품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베레니스에 맞춘다. 이후로는 장 라신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10년 남짓 사귀었던 전 애인과 헤어지면서 내가 딱 그 생각했다. 그냥 죽어있는 게 낫지. 그래서 '넌 그냥 죽었다고 생각할거야'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상황에선 현명한 해결책이었다. 실연한 사람들은 끝까지 버티길 바란다. 당장은 싫겠지만 몸에 좋은 먹을거리가 따로 있듯이 정신건강에도 좋은 사람이 따로 있다니깐. 애초에 인생에서 그 인간만 있는 건 아니다. 살아보니 몇몇 더 나오더라고. 제본 상태상 보관이 용이하지 않아 이것도 소장하지 않고 경비실 아저씨께 드릴 예정이다. 책 소장하려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선생은 그리스도 이전에는 많은 작가들이 저속했으며, 그렇다고 위대하지 못할 건 없다고 대답했다. 내친 김에 그는 "pallida morte futura"라는 구절을 아용했다. (...) 프랑스어는 개가 이빨을 드러내듯 분절을 드러내고, 굵은 뼈마디를 드러낸다. 반면에 라틴어는 이음새를 감춘다. 그 생략 속에서 의미가 돋아나 몰려온다. 축축한 흙이 냄새를 발산하듯이.

다가오는 죽음 때문에 하얗게 질린, 하고 한 학생이 말한다.

아니지, 선생이 말한다.

다가오는 죽음에 창백한, 장이 제안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장 라신 희곡집에 이어 읽을 책을 많이 던져주는 이런 소설이 개인적으로 아주 좋다.

아이네이스 구절. 아이네이스는 디도 여왕이 다스리는 카르타고에 머무르게 되나 제우스의 명으로 디도를 떠나게 된다. 디도는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 생을 마감한다. 자살한 것이다. 그녀는 죽어가며 카르타고가 아이네이스가 훗날 건설할 나라와 원수가 되어 영원히 싸우게 될 것이라 저주한다. 장장 120년이 걸리는 포에니 전쟁은 로마 제국이 세워지기 전부터 예견된 것이다.

이 장면을 재연한 멜스메도 있다. 공식 장르는 블랙메탈이지만 판타지적 의미가 있다는 데서 나에겐 멜스메다.


Crusado Orchestra - ACT III. Pallida Morte Futura (youtube.com)


"Ibant obscuri sola nocte per umbram."

장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또렷한 목소리로 제안한다.

그들은 홀로 어두운 밤 속을 나아갔다.

아니야, 적절하지 않아. 베르길리우스는 정확히 그렇게 말한 게 아니야.

장은 큰소리로 다시 한 번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열 번을 읽는다. 그는 이동하는 그림자들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형체들을 본다.

(...) 왜 프랑스어로는 언제나 단어가 늘어날까? 똑같이 치밀하고 밀도 높게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다시 시도한다.

그들은 시커먼 형체로 홀로인 밤 속을 나아갔다.

(...) 한 학생이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아무 의미없는 문장입니다. "홀로인 밤"이 무엇입니까?


아이네이스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구절. 모든 게 불확실한 아이네이스에게 한 쿠마이의 무녀가 호의를 갖고 그와 같이 지하 세계로 내려가며 로마 제국의 건설을 공식적으로 예견한다. 일행은 아이네이스에게 이를 입증시켜 주기 위해, 아이네이스의 죽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이에 대한 첫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유명한 문장이다.

뭐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네이스는 결국 저승에서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난다. 안키세스는 뼈의 문과 상아의 문을 소개하는데, 전자는 진실을 볼 수 있고 후자는 꿈을 볼 수 있다. 아이네이스와 무녀는 후자를 통해 저승에서 나가는데(그것도 그럴게 외노자들에게 빡센 국경수비 맡겨 로마 망하는 장면을 굳이 아이네이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지요 ㅋㅋ), 이 구절에 대한 블랙메탈 아니 멜스메가 있다.


The Agonist - Gates Of Horn And Ivory (Lyrics)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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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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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천사들 앞에서만 네 아버지와 결혼하고 싶었을 거야. 천사들은 시청 공무원보다 훨씬 더 좋은 증인이 되어 주었을 테니까 말이지.



그래도 남의 인생 이해해줄 만큼 많이 성숙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던 거 같다. 도저히 주인공의 삶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ㅋㅋ 하긴 내가 여태 지와 사랑도 못 보는 인간인데 ㅋㅋㅋ 내가 보기에는 그저 주인공이 남편에 대해 염증을 느끼기 시작해 자신의 유일한 위안인 단풍나무 구해준 남자와 바람을 폈는데 그 남자는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그냥 흐지부지되서 친정 돌아온 거 같은데, 내 생각이 틀리냐;; 그렇다고 주인공 남편이 취향인 건 아니다. 마지막에 담배피는 태도 이야기하는 거 보고 확 깨더라. 담배꽁초 던지는 사람 제일 싫어함. 내가 여태 만난 흡연자들은 꽁초 넣는 케이스 가지고 다녔음. 결국 이 책은 나와 안 맞는 걸로. 다음부터는 아예 결혼하질 말던가, 아님 남편과 헤어지고 애인만나 섹스하길 ㅇㅇ 그래도 사랑을 하려면 본인 스스로가 혼자서도 잘 사는 얼론 스탠드여야 한다는 주인공의 이론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 중에서 파오후는 없었음. 살찐 사람은 있었을지 몰라도 걔 권투교실 다녔음 ㅇㅇ 운동권에서 술담배하다보니 살이 쪘을지는 몰라도. 그 둘 중 어느 하나 포기할 줄 몰랐음.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 중에서 여권'만' 추구하는 사람은 없었음. 남성들이 이야기하는 불만 중 합리적인 의견은 다 존중해줬음. 여권을 좀 더 존중해야 하지 않겠냐고 한 나에게 페미들이 오히려 화를 냈을 정도.

나는 여성이든 남성이든간에 다들 성장해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음. 혼자 살 거라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혼자 살아도 가능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 성장이 되어야 남을 이해하고 같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이 있음. 무언가 하나를 포기할 수 있다는 건, 그 무언가를 남한테 담보로 맡긴다는 소리임. 근데 요즘은 가족도 남이에요.. 모든 걸 잘 하라는 소린 아님. 아무리 바빠서 남들보다 못했어도 최소 애썼다는 표시 정도는 보이게끔 해야 남들도 인정해주는 것임. 공부도 좀 하고. 요샌 평생공부임. 안 하면 밀릴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 직장 그만두고 벼락치기하기엔 나이가 들어서 힘들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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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야행로 창비세계문학 17
시가 나오야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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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문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나오꼬는 불현듯 그런 말을 꺼냈다. 켄사꾸는 몸을 구부려 진흙 덩어리를 주워 거북이 가는 쪽을 향해서 던졌다. 거북은 약간 고개를 움츠렸다가 진흙이 물에 씻기자 등딱지에 약간 흙을 묻힌 채 걷기 시작했다.

"모르는 편이 좋아요." 켄사꾸는 몸을 구부린 채로 말했다.


전남친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머리도 좋은데 노력도 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그러나 세상에는 노력을 하는데도 인생이 스타트부터 꼬이고 그 후에도 의도치 않게 계속 함정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뭘 해도 시원치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 이 주인공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게이샤가 되려 그를 찾을 정도인 걸 보면 외모도 나쁘지는 않았던 듯하다. 출생의 비밀을 알고 현타를 먹지만(스포를 알고 싶다면 전희절창 심포기어 참조. 아마 심포기어가 이 소설 내용을 베꼈을 가능성이 크지만, 비교적 자주 나오는 테마인 걸 보면 이런 케이스가 실제로도 있던 게 아닌가 싶다.) 비교적 회복 속도가 빠른 편이다. 본인은 자꾸 자학하지만 될 수 있는대로 나쁜 길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며 그 시대 살았던 사람 치고는 정직하고 성실하다. 그런데도 계속 뭔가가 풀리지 않는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머리도 좋은데 노력도 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어딘가 부족한 인간이라면 다른 사람의 성공담을 보며 쓸데없는 열등감을 품을 시간에 이런 책을 참조하는 게 훨씬 실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편이라 대개 덤덤하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을 보면 이 주인공이 역경에 빠질 때마다 취하는 행동이 있는데 공부(직업이 소설가이다보니 이것들은 글쓰기와 연관된다.), 그리고 여행이다. 물론 후자는 이 주인공의 출생이 좀 비뚤어졌어도 근본적으로는 금수저라서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정서와도 맞는 책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빙점(...)보다는 훨씬 통하는 점이 많을 듯하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같은 데서도 만만치 않게 등장하는 소설이니(최근만 세 번 정도 봤다.) 일본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쯤 훑어봐도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P.S 설명이 부족한 거 같아 더 쓰기로 한다. 맨 마지막 사건은 솔직히 주인공의 자업자득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걸 보면 또 이 작품이 비극만을 다루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싶다. 주인공이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이다가 갑자기 난봉꾼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렇고. 아무튼 일본소설답지 않게 매우 솔직해서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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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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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직장을 갖지 않은 사람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직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중요하며 그것 없이는 근무를 할 수가 없는 의무ㅡ본부에 얼굴을 내민다는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페테르부르크로 나와 있었다. 그가 그 의무 수행을 위해서 거의 모든 돈을 긁어내다가 경마장과 별장에서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돌리는 되도록 생활비를 절약할 목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로 옮겨왔다. (...) 버터와 우유는 아이들 몫도 모자랐다. 달걀은 없었다. 암탉도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보랏빛의 힘줄이 많은 늙은 수탉이 구워지기도 하고 삶아지기도 했다.


  

 

가정교사와 남편이 불륜을 일으켰다고 그녀가 질투를 하니까 집에서 내보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ㅠㅠ

 

 

주로 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남자와 가정주부인 여자의 일상을 구분하곤 하던데, 남자는 항상 극한적인 상황에 몰린 케이스고 여자는 부유한 집에서 산다. 어떻게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래된 고전, 특히 톨스토이란 남자가 쓴 이 책에선 같이 결혼해 사는 남녀가 그려져 있는데도 여자가 훨씬 더 불행하다.

이래서 고전을 본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이름과 사건이 낯설어도 그 속엔 지성이 있고, 그것이 현대에서 여러 갈래의 책들로 나뉘어져 지금도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의 책들은 친절하지만, 대부분은 작가의 생각이 너무 들어가 있거나 혹은 곡해되기도 한다. 고전을 보면 직접 사고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보라색이 작품에 자주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는데, 키티가 안나와 만났을 때 보라색 옷이 이쁘다 했는데 안나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야회에 나갔기 때문이다. 그 옷은 브론스키를 낚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에게 청혼할 기회를 뺏긴 키티는 안나를 의식해 그녀처럼 되고 싶어서 연보라색 옷을 입고 레빈의 청혼을 수락했다. 의외로 보라색이 이 작품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레빈과 키티의 결혼을 주관하는 사제가 보라색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이 '왜 죽은 시체처럼 보이는 빛깔의 옷을 입느냐'고 불평했던 일도 있었고.

번역하시는 분의 사적 감정이 들어가 있는 해설도 눈길을 끈다 ㅋㅋ

카레닌이 안나의 서랍을 강제로 뒤져 그녀에게로 온 우편물을 빼앗는 장면도 나오는데, 해설에 의하면 당시엔 남편이 아내나 종에게 온 우편물에 대해서도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모두 읽어볼 권한이 있었다고 한다. 저기 가면 아내가 멋대로 게임기를 팔았다고 불평하던 어느 남편도 게임기를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 마더 로씨아! 남편은 타임머신 타고 톨스토이 살던 과거의 러시아로 가면 되겠네 ㅋ 하긴 남녀차별이 심화되었던 조선 말기가 더 남자들 살기 좋았으려나?

P.S 얼간망둥이라는 욕이 등장한다. 다른 국적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똑같은 단어가 등장하는 걸 보면 욕설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쓰지 않았다는 걸로 해석된다. 이 출판사가 유독 그런 욕으로 순화시켜 쓰는 걸 좋아하는지?

한 아낙네가 덜렁대는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뽑아 후렴구까지 부르고 나자, 이번에는 곧이어 굵직한 목소리며 가느다란 목소리 그리고 기운찬 목소리 등 쉰 남짓의 갖가지 목소리들이 한결같은 노래를 처음부터 되풀이했다.


  

 

1권처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음악적 요소가 곳곳에 등장한다. 이거 정말 뮤지컬 노리고 쓴 게 아닐지. TV에 KT를 연계하니 영화를 사서 볼 수 있는 게 뜨던데, 기회가 있으면 찾아내서 도전해볼까 한다.

 그러자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말할 것까지도 없지만, 아름다운 헬레네 때문에 최근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되살아난 메넬라오스를 위시하여 현대 상류사회에서 남편에 대해 부정했던 아내의 실례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머릿속에 쭉 떠올랐다. '다리얄로프, 폴타프스키, 카리바노프 공작, 파스쿠딘 백작, 드람...... 그렇다. 드람도...... 그처럼 성실하고 유능한 인물조차 그런 일을 당했다...... 세묘노프, 챠긴, 시고닌' 하고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생각했다. '설령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 어떤 불합리한 조소가 던져졌을지언정 난 결코 그들에게서 불운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그들을 동정해왔다.' 이렇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스스로에게 말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이런 종류의 불행에 동정하지 않았고, 남편을 배반한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자기의 값어치는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한남들이 그렇게 여혐을 하면서도 지네들끼리 뭉치지 못하는 이유를 정말 명확히 제시하는 듯해서 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봤다.

그나저나 밖에서는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 집에서 문 닫으면 지 아내랑 자식을 팬다. 나도 아버지가 주먹으로 날 때려서 피멍이 들었는데도 사람들이 여태 내가 거짓말한 줄 안다. 덕분에 성당 가고 싶은데 이상한 소문 퍼져서 못 가고 아버지는 잘 다니심.

약간 스포를 하자면 안나의 남편은 안나의 힘겨운 출산을 보고 충격을 먹어 잠시 새 사람으로 돌아올 각오를 하지만 결국 얀데레에게 빠져(응?) 요상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남 어차피 오래가지 못한다는 톨스토이의 코웃음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아, 그렇군, 그 속에 재미있는 논문이 있어." 스비야쥐스키는 레빈이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보고 말했다. "결국은 그거야" 하고 그는 유쾌하고 발랄한 어조로 덧붙였다. "폴란드 분할의 주요 책임자는 결코 프리드리히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그리고 그는 특유의 명쾌한 어조로 간단하게 이 새롭고도 몹시 중대한 흥미로운 발견해 대해 얘기했다. 지금 레빈은 농사에 대한 생각에 무엇보다도 많이 마음을 뺏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이렇게 자문했다. '도대체 이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이 사내는 폴란드의 분할이니 하는 문제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스비야쥐스키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레빈은 무심코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노빠꾸 레빈 ㅋ 근데 어떤 페친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윌리엄 포크너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지 고향 얘기만 나와서 재미없어서 덮었다나. 근데 이건 약간 이세계 덕후랑 비슷해서, 무조건 지 일과 먼 얘기를 봐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런 심정인 것 같다. 이건 정말 모르는 사람은 이해가 안 간다 하더라. 현실도피와는 좀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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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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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경주에 참가하는 이들은 스스로 그 직업을 선택한 군인이라는 것을 잊으셔선 안 됩니다. 또 모든 직업은 영광의 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이 곧 군인으로서의 직무니까요. 권투라든가 스페인식 투우라든가 하는 종류의 추악한 경기는 야만의 표상입니다. 그렇지만 전문화된 경기는 문화의 표상이지요."



 


말박이들이 좋아할 만한 대사라 올려본다. 그렇지만 여기서 잠깐 출연하는 말 프루프루는 너무 불쌍했다 ㅠㅠ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문학 사상 가장 압도적인 첫 문장으로 꼽히는 톨스토이의 이 작품 속 이 문장은, 이 속에 담긴 다층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다'는 문장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치환시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을 행복의 필요조건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은 사유리 씨에게 "애비 없는 아이를 낳을 셈이냐?"는 오지랖을 떠는 배경에도 이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작용한다.

저 첫 문장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오독이고 톨스토이에 대한 모독이다.

'행복한 가정'의 '서로 닮은 점' 딱 한 가지는 오직 '관계'다. 그 가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 사이의 관계가 어떠한지가 행복을 더 많이 규정한다.

독서모임하다가 어떤 분이 저 행복한 가정 어쩌구 구절에 관련해서 한 얘기가 있는데, 지금은 뭐였는지 자세히 기억도 안 나지만 그게 너무 마음에 안 들고 심지어 기분까지 나빠져서 ㅡㅡ 소설에 대한 감상은 자유이지만 지 머가리에 사로잡혀 작가의 의도까지 무시하지 말자.

 

은근 경마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일단 돈도 거니 경마라 치자.). 말이 가자는 대로 기수가 따라야지 말을 힘주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몰려고 하면 그것이 아무리 선한 의도였더라도 끔찍한 일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이런 걸 봐도 그렇지만 톨스토이는 어지간히 교훈을 던져주려는 의도가 다분해서 어릴 때 보면 딱 좋은 작품들을 많이 쓴다. 그래서 이 분이 쓴 인생론을 본 후에 소설을 보게 될 경우 지루함이 몰려들게 되는 것이다(그리고 톨스토이가 쓴 소설은 왠지 필요 이상으로 일상적인 장면에 페이지를 과하게 할애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고 프루스트처럼 의미 있게 연출하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도 그게 닥쳐왔지만, 어떻게든 페이지를 넘겨보려 노력했다. 다행히도 내가 관심있어 하는 여성들의 수난 이야기라서 그럭저럭 잘 넘어갈 수는 있었다.

 

'알라빈은 유리탁자 위에서 오찬을 베풀고 있었어. 그리고 탁자들도 모두 Il mio tesoro란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아니, Il mio tesoro가 아니라 뭔가 훨씬 훌륭한 노래였어. 그리고 그 탁자 위에 목이 길고 귀엽게 생긴 병들이 있었는데, 그것들도 모두 여자였어.'



 


가끔 이렇게 음악을 소개?해주듯이 하더라. 확실히 뮤지컬 영화로 만들면 딱 좋겠음.

 

무엇보다도 불쾌했던 건 그가 즐겁고 흐뭇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선물할 큼직한 배 한 개를 손에 들고 극장에서 돌아왔을 때, 아내의 모습을 객실에서도 서재에서도 보지 못하고 마침내 침실에서 모든 것을 폭로하고 만 그 불행의 편지를 논에 들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서른네 살의 미목이 반듯하고 다정다감한 사내인 자신이, 지금 살아남은 다섯 아이와 이미 죽어버린 두 아이의 어미이며 그보다 한 살밖에 젊지 않은 아내한테만 빠져 있지 않았다고 해서 이제 와 새삼스럽게 뉘우칠 마음은 없었다. 그는 다만 아내의 눈을 좀 더 솜씨 있게 속일 수 없었던 것을 후회하였다.


 


 

말뽄새봐라 ㅅㅂ ㅋㅋ 어릴 때도 이 구절 때문에 이 ㅅㄲ 뭐야?하고 때려친 건데 지금 봐도 대환장파티네.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과격하지는 않지만 다수가 지지하는 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는 자유주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 자유파 사람들은 말하기를ㅡ아니, 그보다 암시하고 있었다는 것이 적절할지 모른다ㅡ종교는 인민 가운데 야만층을 위한 재갈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비록 짧은 기도라 할지라도 두 발이 쑤시는 일 없이 견뎌낼 수가 없었고, 또한 이승의 생활이 아주 즐거운데 구태여 저승에 대한 두렵고 과장된 말이 무엇때문에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또 인상적인 구절에 스테판 아르카디이치가 나오는데 이 망나니가 나오는 첫 장면이 워낙 충격과 공포인지라(...)

그나저나 신문은 또 톨스토이 본인 꺼라는 게 소름 ㅋ 이 글 쓸 때에도 눈 앞에 신문이 있었을 거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레빈은 정말 성격이 톨스토이 보는 줄 알았다. 매사 뭔갈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행동하는 츤데레 성격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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