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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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네 아버진 친구를 너무 좋아했단다. 남자들이란 참!"

  

이별은 사별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난다 해도 그때의 사랑을 후회하고 그때의 분노를 경멸하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비교한다면, 당신은 그저 청춘을 낭비한 것이 된다. 왜, 당신이 만인에게 그렇게 잘 떠벌렸듯이 말이다. 그리고 청춘의 낭비는 죄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서 벌 받는다. 그렇게나 그 사람이 밉다면, 아니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상실감이 배가 된다면, 차라리 바다를 보고 하모니카를 불어라. 바이올린을 켜라. 목청껏 노래를 불러라. 기분이 풀릴 때까지 그 바다를 가라. 그리고 당신이 감히 버리거나 태울 수 없었던 그 추억의 물품을 버려라. 당신은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걸 잊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추억의 물품을 버려도 추억은 살아 있다. 그 골목에. 그리고 생각날 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라. 그걸 가슴 속 깊이 묻어버릴 수 있는 사람에게. 혹은 완곡하게 세상에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이 점점 나빠지는 걸 도저히 볼 수 없어서 당신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살다보면 기적같이 만날 수 있는 날이 한 번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명심해라.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다. 그건 내가 변화하지 않은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서다.

 

 

  

어머니가 가난한 집안의 여성으로서 학교를 1년 쉬는 등 갖가지 이중차별을 겪었다면, 화자는 군대에서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른 나이부터 마음에 간접적인 상처를 입었다.

 

 이것도 또한 페미니즘적인 이야기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이라는 망막이 씌일 뿐, 엄마로 된다고 해서 딱히 벌레나 괴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이야기인 만큼, 여성의 본성을 최대한 발휘한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시바삐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야 군인들의 긴장감도 없어지고, 시스템도 파괴할 수 있다. 잘못된 군대 시스템이야기는 결코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와 퀄리티가 같지 않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왜 모를까?

 

  

음악은 각각의 사람과 장르를 넘나든다.

 이 책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곡이 거론된다. 102년의 역사가 있는 흑백다방의 현재 주인장이 여성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차는 팔지 않고 연주회를 연다고 한다. 거기서 4월은 너의 거짓말이란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남자주인공이 카오리라는 시한부 인생의 여자아이를 만나서 사랑을 했다. 베토벤 곡을 같이 연주한 순간은 한 번 뿐이었고, 카오리를 잃은 순간 그는 혼신을 쏟아 벚꽃을 피워내듯이 쇼팽을 연주했다. 원작이 만화인 애니는 거기서 끝나지만 난 그 이후의, 벚꽃이 진 이후의 앙상한 나무 코우세이란 남자의 삶이 궁금했다. 이 책에선 그가 죽고 그녀가 오래 살아남았다. 이 애니메이션에선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카오리가 석양과 젊음에 반짝반짝 빛난다. 이 책에선 주인공인 아들이 뛰어내린다. 이 책에선 남자는 죽고 여자는 살아남았다. 꽃이 없어도 기억이 살아남고 담벼락이 헐렸어도 그 안의 집이 보이는 이 책은 사건이 없어도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애초부터 진해에 놀러가고 싶었고 그 곳의 명소를 찾기 위해서 이 책을 집었다. 김탁환 씨와 페친으로 지내고 있지만 그의 저서는 99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를 도서관에서 잠깐 쓱 훑어본 게 전부다. 요새 페친들이 써낸 책들을 보는 데 재미 붙였는데, 홍보도 많고 겸사겸사해서 책을 샀다. 그런데 거짓말이다라는 소설을 여기 안에서 그렇게 홍보하시더라. 꽤 힘들게 쓰신 거 같은데, 볼까말까 망설여진다. 왠지 그 책을 보려고 결심하면 목격자들도, 걸어본다 시리즈도, 민쟁 님의 시도 결국 다 보게 될 것 같다. 끝없이 이야기를 보게 되는 건가. 

 

 어쨌던 진해로 출발하기 전에 이 책을 다 보게 되어서 다행이다. 저자의 동생이 설계했다는 표지 속 지도를 손에 들고 내일 새벽 포항가는 버스를 탄다. 어머니랑 같이 사진을 찍으려 한다.

 P.S 세월호 관련 소설로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도 나왔다고 한다. 3권째라고 하신다. 시리즈가 더 나올지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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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인형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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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랑하는 데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은 직감처럼 느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의: 위의 이야기는 제 20대 초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대 전반과 중반 대부분을 차지했던 남자 아이와 헤어지고 나서 며칠 혹은 몇달 후에 남자 아이는 다른 여자 아이를 사귄다. 놀랍게도 혹은 이전부터 남자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어렴풋이 예감하며 몸을 떨었던 그 여자 아이와 사귄다. 조용히 SNS를 뒤졌거나, 아님 나와 남자 아이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친구 관계가 넓다고 공공연히 과시해 오던 어떤 친구에게서 듣고 싶지 않았는데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에게 질렸을 지도 모르고, 그 여자 아이의 눈이 좀 더 높아져서 결혼은 걔보단 좀 더 어른스러운 사람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 남자 아이와 사귀었을 때처럼 말이다.

 

 

  

내부자들 영화에서 사실 하나 더 주목한 게 있는데 차마 어머니에게 고백할 수 없던 건 창녀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어머니가 그 부분이 너무 끔찍하다며 몸을 부르르 떠셨기에 함구해야 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녀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그 영화에 반전을 일으킨 것도 그녀였고 몸을 바쳐 희생한 것도 그녀였으며 그 모든 일이 다 끝나고 그녀의 사랑하는 이병헌에게 동영상을 넘긴 다음 쿨하게 해외로 떠나간 것도 그녀였다. 얼굴도 예쁘고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불태울 수 있으며 전국에 혁명을 일으키고 운전도 잘 하는 그녀. 그녀는 영화의 말미에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안녕 내 사랑. 모든 연애가 그렇게 쿨하게 끝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거리의 여자가 되고 꼬리가 길어야만 여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현실이 슬프다. 이 책에서는 그런 성공을 거둔 사람이 프린세스 안나밖에 없다는 것도. 청부로 사람을 죽였으니(그것도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노아가 아닌 허세밖에 없는 핑크를 신뢰해서.) 그 지배의 쾌감도 어차피 짧겠지만.

  

무튼 내가 이 단편소설집 중에서 그나마 좋았던 소설은 포도 상자 속의 뮤리다. 내가 왠만하면 충격과 공포의 반전 소설 좋아하고 힐링 이런거 싫어하는데 아... 프린세스 안나가 너무 독하고 지독하고 군인한테 강간당하던 소설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도 너무 끔찍하고 진짜 ㅋㅋㅋ

 리제로 작가 사망하면 캐릭터가 불쌍해서 애도한다더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수아 누나 ㅋㅋㅋ 왜 캐릭터로 오우야 묵직한 미사일을 만들어서 펙트 공격하고 있어 차라리 죽여줘 쓰발 ㅋㅋㅋ 왠만하면 읽은 직후에 리뷰 쓰는데 이건 좀 생각을 정리하고 나중에 차분하게 썼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 뒤숭숭하고 우리나라에 배수아라는 작가가 있다는게 감사하고 100페이지 남짓 되는 책 읽고 인생 다 산 거 같다 생각되는 건 처음이다. 진짜 늙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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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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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서 현기증이 났다. 내가 칼을 쥔 게 아니라 칼이 내 손을 거머쥐고 여자 안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저항이 용납되지 않는 무지막지한 장력이었다. 눈앞이 와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칼을 든 손이 저릿저릿했다. 음속을 돌파하는 듯한 충격이 몸을 덮쳐왔다.

 

  

그러고보니 종의 기원을 가지고 독서모임에서 한 이야기를 정리해야겠구만.

 

1. 일단 스릴러인데 이야기가 너무 루즈한 데서 실패한 소설이라는 데서 만장일치.

2. 퍼걸러가 대체 뭔지 아무도 모름. 일단 복층아파트에서 살아봤어야 알지.

3. 그 와중에 방이 상당히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빨간 이미지에서 영화를 노린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요즘엔 애니도 영화화하고 돈 벌려고 소설 쓰는데 뭐...

4. 근데 왜 남자애는 여자만 줄창 죽이고 남자는 안 죽이냐에서 많은 의견이 있었다. 여기서 내 주장은 일단 여자 사이코패스도 남자를 죽이지만, 사례가 드물고 가족을 노리는 경우가 가장 막장이지만 돈을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상당히 용의주도적으로 계획을 꾸민다는 점. 결국 여자가 남자를 죽이려면 상당히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왜냐하면 남자가 힘이 세니까. 내가 자주 말하는 것, '남자가 무섭다'는 건 바로 그 이유이다. 어느 하나에 집착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본능으로 넘어가는 게 남자들이다. 그리고 본능으로 넘어가면 힘 없는 여자들을 죽이며 남자들과는 가급적 충돌을 피하려 한다. 사이코패스는 무조건 관계를 상하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하류층인 인간이 감히 상류층인 자신을 억압한다는 데서 불만이 온다나?

5. 그러나 나는 조현병 외에는 이 소설에서 다른 정신병이라거나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 결국 악의 특수성을 다루려 했지만 악의 평범성하고의 간격이 너무 얇았다는 게 이 소설의 단점이다. 의도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러고보니 테드 강의던가 거기서 한 유명한 사람이 우연히 사이코패스 검사를 했는데 99%가 떴다고 하더라. 의외로 사이코패스는 가까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도 조금 그런 성향이 있고 아마도 내 두번째 애인도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6. 점점 소설이 설명투로 나아가는데, 소설은 스토리의 룰을 설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수록 가망이 없다. 사실 나는 정유정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지만, 남성의 본성을 모르고 무서워하지 않는 여성이 읽기엔 딱 좋은 책이다.

P. S 종의 기원을 가지고 읽기 버겁다, 이전과는 다른 글을 가지고 왔는데 왜 이런 걸 썼는지 모르겠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돈 많이 벌고 지가 쓰고 싶은 소설 쓰겠다는데 너네들이 뭔 상관이냐. 그리고 혹시 사이코패스같은 인간들에게 마음껏 폭력을 쓰고 거리낌없이 혐오를 드러냈던 지난 시절이 생각나서 혹시 찔렸던 거 아니냐. 항상 책에서 공감을 느낀다거나 교훈을 느낀다거나 하는 책들만 보다가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책을 접하니까 머리가 아프면서 학습할 수 있는 책이 그리워진거냐. 그러나 그건 주인공과 이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저지르는 자기합리화와 다를 바가 없다. 자기합리화를 밥먹듯이 저지르던 지난날이 떠올라서 머리가 아프다고 솔직히 자수해보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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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기사
이경 지음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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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은 메밀 공장으로 가고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걸 꼭 물어봐야 아나.

 

 

먼지별이란 단편소설에서 도둑질하면서 몸 팔고 다니는 화성 여자애가 나오는데, 어쩐지 이 여자애하고 비슷하게 생겼을 것 같다. 바지를 벗는다는 비유가 나오는데 어쩐지 바지도 팬티인지 뭔지 모를 이런 위태로운 옷을 입을 것 같다. 그야말로 외국에서는 지식인으로 대학까지 제대로 나왔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샌님이 홀리기 딱 좋지 않은가.

 

 어린이는 왜 반드시 학교에 가야하는가?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건 왜 당연하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는 다시 모노가타리 시리즈의 초등학생 하치쿠지 마요이를 떠올리게 된다. 떠돌이들을 보고 불쌍한 시선으로 쳐다보거나 그들에게 무언가 궁금한 척 질문을 던지는 건 '토박이'라는 사람들의 속성이다. 그러나 떠돌이인 그들도 막상 우물 안 개구리인 경우가 있다. 이 책 속의 떠돌이는 그 다음 자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똑바로 알고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표범기사라는 단편에서 어머니의 몸을 짓이기고 나온 '나'의 공포는 아즈텍 신화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계속 질문을 던지는데, 이는 이라크 이발사라는 마지막 단편에서 복합적으로 뭉쳐서 터져나온다. 다큐멘터리 방송계의 세상을 그려낸 게 무엇보다 흥미진진했다. 어쩌면 비디오카메라 은새는 주인공의 손을 떠나있는 동안 다큐멘터리 방송이 아닌 방송 사무실 자체를 혼자서 촬영하여, 디렉터스 컷을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카메라의 시선은 다시 우리를 향해 있다. 공동체라는 건 공간을 소유할 때 진정 성립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진정 우리의 공간을 지녔는가. 당신이 서 있는 땅과 하늘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토착민인 인디언이 이방인인 백인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개를 자신있게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취향은 제각각이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제각각일 것이다. 굳이 해결책을 던져주지 않는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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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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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흔히 '사리마다'라고 불리는 펑퍼짐한 주부용 속옷이 아니라 주니어용 팬티를 입는 걸까? 혹시 누군가 아직 엄마의 팬티를 봐줄 남자가 있다는 걸까? 그렇다고 쳐도 그게 과연 엄마의 엉덩이에 들어가기나 하는 걸까?

 

 

  

 전남친이 이 작가의 팬이어서 이 책을 들고 대신 천명관 작가의 사인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하나도 몰랐지만 작가 분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굉장히 텁수룩하고 새까만 인상이라서 깜짝 놀랐었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작가가 '내 팬이라고 하는 젊은 여자는 이 분이 처음이다'라면서 자꾸만 나에게 작업을 거셨다는 거다(...) 나는 거기에다가 대놓고 "남친 이름과 제 이름을 같이 써서 싸인해주세요."라고 하였다. 그렇게 쓰면 절대 후회할 거라는 작가분과 맞서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받아쳤다. 사실 작가의 인상이 남성으로서 너무나 내 타입이었고, 남친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실실 웃으면서 그 작가분의 말을 매몰차게 맞받아쳤을까. 그 때는 나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난 어지간히 S 취향이니까.

 그 때의 남자친구와는 5년 사귀고 나서 헤어졌다. 서점직원 일조차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힘든 나날이 되풀이되었다. 그 때 이 책을 읽고나서 그에게 빠져들게 되었고, 최근 악스트 잡지를 보고 나서 더욱더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교보문고 사인회 때 만났던 천명관과 지금의 천명관은 천지차이다. 그 때도 유명인이긴 했지만 지금은 사인회를 가도 손을 잡기는 커녕(손이 상당히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얼굴조차 제대로 보기 힘들어졌다는 데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오함마에서 나는 천명관 씨를 떠올린다. 집에서 틀어박혀서 방귀를 뀌고 조카의 팬티를 훔치는 그의 모습은 친숙하다 못해 더할 나위 없이 동네 아저씨같지만, 얼마든지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 무궁무진한 남자. 언제나 나에게 걸려드는 이성은 있다. 하지만 마구 괴롭히면서 무신경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그가 멋있어 보일 때면 항상 때가 늦는다. 그는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그도 서로 만날 수도 없는 저 멀리에 각각 떨어져 있다. 후회해도 늦는 일이다.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과 캐서린처럼 다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인생은 또 그렇게 흘러간다.

 팬티 사건 다음으로 음식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계란을 안 넣은 삼양라면을 좋아하는 건 작가 본인의 취향일까, 아님 다른 사람의 취향일까. 나도 삼양라면 상당히 좋아하는데 말이다. 계란은 넣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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